168화 제4장 파견(3)
“네, 네. 지금 가겠습니다.”
1년 차 강도경이 전화를 받고 당직실을 나가려 했다.
하지만 나는 강도경을 붙잡아 자리에 앉혔다.
“스테이션에서 콜이 와서 나가려고 하는 건데 왜 저를 붙잡으시는지…….”
내 의도를 모르는 강도경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허수현도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확인해 보고 싶은 게 있어서. 도경이 넌 당직실 지키고, 처치는 수현이 네가 해라.”
1년 차 강도경에게 들어온 일을 나는 2년 차 허수현에게 맡겼다.
이유라면 간단했다.
용인 레지던트들의 대략적인 수준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4월인 현시점의 1년 차 레지던트는 햇병아리에 불과했다. 아는 것도 없고 할 줄 아는 것도 없었다.
그래서 레지던트들의 수준을 파악하고 싶다면 허리 라인인 2년 차가 가장 적당했다.
2년 차를 보면 1년 차와 3년 차의 수준을 동시에 가늠할 수 있기에.
허수현은 과연 몇 점짜리 레지던트일까.
용인 흉부외과 의국은 과연 몇 점짜리 의국일까.
채점에 따라서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임무의 방향이나 성격이 정해질 것이다.
드르르륵.
나는 2년 차 허수현과 당직실을 나왔다.
간호사와 합류해서 드레싱 카트를 끌고 6인실로 들어갔다.
503호실은 50대 이상의 환자들이 입원했으며 전체적으로 조용한 분위기였다.
환자들은 자고 있거나 천장에 걸린 TV를 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보호자들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신나게 떠들어 대는 건 화면 속 개그맨뿐이었다.
저 사람도 임자를 제대로 만났네.
제아무리 잘난 개그맨이라도 흉부외과 입원 환자를 웃기기란 하늘의 별 따기인데…….
나는 잠깐 잡념에 빠졌다가 허수현의 처치를 지켜보았다.
첫 번째 처치는 ABGA, 동맥혈 가스 분석이었다.
인턴 때 이미 숙달했어야 하는 채혈을 허수현은 두 번 만에 성공했다.
출발이 불안했다.
더군다나 나는 허수현이 잔뜩 긴장해서 손을 파르르 떠는 것을 목격하고 말았다.
마치 전생의 나처럼.
“내 앞에서 하려니까 부담되니? 조금 떨어져서 볼까?”
나는 미안한 마음에 오른팔을 들어 볼을 긁적거리려고 했다.
그저 순수하게 허수현의 실력을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허수현이 처치를 못한다고 해서 혼내거나 꾸짖을 생각은 없었다.
허수현에게 부담을 줄 생각도 아니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허수현이 발작이라도 일으킬 것처럼 몸을 움찔거렸다.
난 그저 볼을 긁을 생각으로 팔을 들어 올렸는데 행동이 조금 과했던 것이다.
“뭐야? 내가 너 잡아먹는 귀신이라도 되니?”
“아… 아닙니다. 어제 잠을 못 잤더니 헛것이 보인 것 같습니다.”
“그래?”
나는 가자미처럼 눈을 가늘게 떴다. 의심의 눈초리를 허수현에게서 거두지 않았다.
별것 아닌 헤프닝.
그냥 웃고 넘어갈 일.
내일이면 분명 잊을 것이고, 일주일 뒤에는 아예 떠올릴 수조차 없을 하찮은 일.
허수현과의 그런 사소한 리액션에서 나는 용인 의국에 깊게 드리운 어둠을 보았다.
이거 예상보다 문제가 심각할지도?
“기력이 허한데, 보약이라도 한 첩 지어 줄까?”
나는 일단 우스갯소리로 상황을 넘겼다.
“아… 아닙니다. 하루 쉬면 좋아질 거라서…….”
“넌 아까부터 다 아니라고 하네? 아니라는 대답을 안 하면 입안에 가시가 돋니?”
“아… 아닙…….”
허수현이 또 ‘아닙니다.’라고 대답하려다가 버퍼링에 걸렸다. 이에 곁에 있던 간호사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수현이 성격이 원래 이래요?”
나는 능글맞게 간호사에게 화살을 돌렸다.
누구나 마찬가지다.
상사가 곁에 있을 때와 없을 때 성격이 달라지는 것은.
나는 허수현의 원래 성격이 궁금했고, 간호사라면 어느 정도 괜찮은 대답을 줄 수 있으리라.
“수현 선생님이요? 엄청 재미있는 선생님이죠. 저희한테도 엄청 잘해 주시고.”
“그 정도는 아… 아닙…….”
앵무새처럼 ‘아닙니다.’를 반복하다가 멈춘 허수현.
허수현의 얼굴은 어느새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 * *
30분간 병동을 돌며 처치하다가 당직실로 돌아왔다.
처치만 놓고 봤을 때 허수현의 점수는 70점이었다.
흉관삽입술(Thoracostomy)
흉강천자(Thoracentesis)
중심정맥관삽입(Central line insertion) 등등.
1년 차 술기를 기억하고 2년 차 술기도 충분히 소화한 상태였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허수현이 긴장을 잘하는 타입이라는 것이었다.
처치를 할 때마다 허수현의 손은 안쓰럽게 떨렸으며 눈동자는 불안하게 진동했다.
긴장만 덜하다면 의국의 허리 역할을 톡톡히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후로 나는 당직실을 찾아오는 레지던트들과 일일이 통성명을 나누었다.
그리고 그들을 쫓아다니며 실력을 눈대중으로 평가하고 채점했다.
‘확실히 메롱이긴 하네.’
레지던트들의 실력을 전반적으로 확인하고 나니 한숨이 터졌다.
허수현을 제외하면 나머지 레지던트들의 처치 실력은 평균 이하였다.
이런 친구들을 데리고 수술방에 들어가는 교수들이 불쌍할 정도였다.
하지만 마냥 이 친구들을 매도할 건 아니었다.
이 친구들의 솜씨가 왜 유난히 본원보다 떨어지는지 그 원인을 찾아서 해결하는 것이 나의 목표였다.
“모일 사람은 다 모였지?”
나는 일렬로 늘어선 1, 2년 차 레지던트들을 훑었다.
내 집합으로 모인 이는 총 4명이었다.
당직 근무 중인 1년 차 1명과 수술방에 들어간 3년 차 1명을 제외하고 말이다.
악역은 아직 등장하지 않았지만 이만하면 충분히 극을 이끌어갈 수 있는 숫자였다.
“네, 치프.”
“내가 용인에 파견 온 이유에 대해서는 다들 알 거야.”
나는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내가 용인에 온 목적.
내가 용인에서 하려는 일에 대한 것들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적당히 예열을 마친 나는 본론에 들어갔다.
“비록 반나절이지만 내가 본 의국은 개판이었다. 의국이 개판이라면 너희는 개겠지.”
나는 레지던트들의 자존심을 깎아내리며 일일이 눈을 마주쳤다.
그들은 하나같이 눈을 내리깔고 내 시선을 피했지만.
졸지에 개와 비교를 당하고 풀 죽은 모습이 가슴 아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당장 필요한 것은 충격 요법이었다.
“나는 솔직히 용인 의국이 공포 영화의 무대인 줄 알았어. 너희 같은 모지리들 손에 환자의 목숨이 달려 있다니…….”
“…….”
“그것만큼 무서운 게 또 있을까? 안 그래? 허수현, 대답해 봐.”
“맞… 맞습니다.”
나는 한참 매섭게 채찍을 휘두르다가 당근을 내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너희를 원망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 엄밀히 말하면 너희들도 피해자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피해자라는 단어에 몇몇 레지던트가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았다.
오전에 품었던 내 추측이 맞다는 징후였다.
추측이 맞았음에도 마냥 기쁘지 않은 것은 왜일까.
마음 한구석에서 나는 내 추측이 차라리 틀리기를 바라고 있었던 걸까.
지금은 나조차 내 속을 알 수 없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법. 너희들이 개판이라는 건 너희 위에 있던 4년 차와 3년 차가 개판이었다는 뜻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
“너희 짤린 4년 차하고 3년 차에게 자주 맞았지?”
송곳으로 쑤시듯, 나는 결정적인 질문으로 1, 2년 차 레지던트들의 가슴을 찔렀다.
용인 의국이 개판인 이유.
나는 그것을 3, 4년 차의 폭력과 학대에서 찾았다.
아까 허수현의 처치를 지켜볼 때였다.
내가 손을 올리자 허수현은 지레 겁을 먹고 과장되게 몸을 움찔거렸다.
이는 전생에서 학대 아동들을 진료했을 때 나왔던 반응이었다.
그 당시 수상함을 느낀 나는 다른 레지던트들에게도 비슷한 행동을 해 봤다.
곧 드러난 놀라운 사실.
다른 레지던트들도 허수현처럼 팔을 들어 올린다거나, 목을 움츠리는 등의 방어적인 움직임을 보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단 하나뿐이지 않은가.
레지던트 간의 폭행과 학대.
의료계는 일반적인 직군보다 위계질서와 서열이 엄격한 곳이었다.
그래서 선배가 후배에게 얼차려를 주거나 신체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의사 간의 폭행과 폭언이 뉴스의 단골 소식이 될 정도로.
‘하필이면 그게 용인이었을 줄이야.’
회귀 후 새롭게 알게 된 사실에 나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안 그래도 외상센터 병원이라서 응급 환자 살피기도 힘든 후배들이었다.
그런 후배들이 선배들의 폭력까지 감당하면서 실력을 키워야 한다?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후배들에게 드리워진 폭력의 굴레만 벗겨 내도 후배들의 실력은 급속도로 상승하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믿었다.
“4년 차는 병원에 없고, 이제 너희 선배는 3년 차 장경철뿐인데… 장경철이 아직도 너희를 때리니?”
내 질문에 동요한 것도 잠시, 레지던트들은 다시 입에 자물쇠를 채웠다.
장경철을 보호하겠다는 듯.
진실을 말하면 배반자 취급을 받는다는 듯.
피해자가 가해자를 감싸는 모습은 나를 더욱 가슴 아프게 했다.
“허수현.”
“네, 치프.”
“장경철이 아직도 너희를 때리냐고 물었잖아. 대답 안 할래? 파견 왔다고 해서 내가 만만해 보여?”
“아… 아닙니다.”
“그럼 대답해.”
“저희는 장 선배에게 단 한 번도 맞은 적이 없습니다.”
허수현은 끝끝내 장경철을 감쌌다. 다른 레지던트들도 한 명씩 추궁했지만 똑같은 반응이 돌아왔다.
용인 후배들에 대해 느끼고 있는 안타까움이 차차 장경철에 대한 분노로 바뀌어 갔다.
도대체 장경철이라는 놈은 후배들을 어떻게 다뤘단 말인가.
“아직 뭘 모르나 본데, 너희들이 이실직고해야 장경철을 쫓아낼 수 있다.”
“…….”
“내가 도와줄 테니까 다 같이 용기를 내. 안 그러면 이 지옥 같은 생활은 절대 끝나지 않아.”
나는 목청을 높이고 신경질을 내며 발을 들었다.
앞에 서 있는 허수현의 정강이를 가볍게 건드렸다.
잔인한 행동이지만 하고 싶지 않았던 행동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것이 내 마지막 충격 요법이니까.
“아으으윽!”
과연 허수현이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며 한쪽 무릎을 바닥에 꿇었다.
의사끼리 학대를 할 때는 바지 때문에 잘 드러나지 않는 정강이를 걷어차곤 한다.
그래서 건드려 본 것인데 바로 반응이 온 것이다.
나는 내친김에 허수현의 바지통을 무릎까지 걷어 올렸다.
과연 허수현의 정강이에 시퍼런 멍이 있었다.
멍이 드러나자 당황한 허수현이 재빠르게 바지통을 내렸다.
다른 레지던트들은 잽싸게 허수현의 멍을 못 본 척했다.
본인들의 학대 사실을 일사불란하게.
또 일사천리로 감추는 모습을 보고 나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이 정도 했으면 한두 명은 나를 따를 법도 한데.
후배들을 구하려는 내 편은 단 한 명도 없고, 다들 가해자인 장경철 편을 들고 있었다.
이쯤 되면 내가 악당이고 장경철이 선역 아닌가.
그런 오해가 생길 정도였다.
드르르륵.
그런데 때마침 등장하는 악당 장경철.
그는 운동선수처럼 키가 크고 체격이 좋았다. 장경철은 좁쌀 눈으로 집합한 후배들을 살피다가 내게 시선을 고정했다.
“분원에서 온 믿음 선배죠? 선배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흉강경 팀 소속으로 엄청 활약하셨다던데.”
“알랑방귀 뀌지 말고 묻는 말에만 대답해. 이 상처 어떻게 설명할 거냐?”
나는 반강제로 허수현의 파란 정강이를 드러낸 뒤 물었다.
장경철의 대답이 가관이었다.
“뻔한 거 아니겠어요? 넘어져서 다쳤겠죠. 안 그래? 수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