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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살부터 의사 생활-166화 (166/257)
  • 166화 제4장 파견(1)

    사랑이와 10분 가까이 대화를 나누었다.

    그동안 나는 사랑이의 가슴 두근거림이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가슴이 주로 두근거리는 시간대는 어떻게 되는지 등등을 물었고, 사랑이는 성실하게 대답을 했다.

    심계항진을 앓은 지는 대략 열흘째.

    시간대는 보통 저녁 7시 넘어서라…….

    나는 간신히 얻은 단서들로 추리를 시작했지만 마땅히 건져 낸 사실은 없었다.

    진단을 하기엔 정보들이 너무 적었고, 파편적이었다.

    “지금은 좀 어때?”

    “저녁 식사하기 전까지는 좀 힘들었거든? 가슴이 두근거리고 살짝 어지럽기도 하고. 지금은 괜찮아.”

    “잠깐 기다려 봐.”

    나는 내 방에서 의료함을 가지고 돌아왔다.

    가족을 진료하기 위해 만든 나만의 의료함.

    의료함을 열어 나는 사랑이의 체온을 재고 혈압을 재고 맥박을 측정하고 무려 청진기까지 사용했다.

    “숨 천천히 쉬어.”

    상의를 젖힌 사랑이의 가슴에 청진기를 대고 나는 청각에 집중했다.

    청진기는 심초음파의 역할을 일부 대신할 수 있었다.

    심장의 구조에 문제가 생기면 특이하거나 비정상적인 심장음이 들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진에 바이탈 체크, 청진기까지 사용했음에도 사랑이의 가슴이 두근거리는 이유는 오리무중이었다.

    깜깜무소식이었다.

    ‘별일이 아니긴 할 텐데…….’

    솔직히 사랑이 심장에 큰 문제가 있을 가능성은 낮았다.

    증상이 급성인 데다가 심장병을 앓기엔 나이가 너무 어렸다.

    보통 심장 질환은 중년 이상에게 많이 발생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혈관은 탄력을 잃고 지방이 쌓여 혈액 순환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좀처럼 사랑이 걱정을 멈출 수 없었다.

    사랑이는 내 사랑하는 동생이었으니까.

    동생의 아픔은 내 아픔이었으니까.

    게다가 가슴 두근거림, 즉 심계항진은 내 트라우마 중 하나였다.

    불안정성 협심증을 앓다가 돌아가신 전생의 아버지의 첫 증상이 가슴 두근거림이었기 때문이다.

    분명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부터였을 것이다.

    심계항진을 호소하는 환자가 있으면 내 가슴도 덩달아 덜컥 내려앉았던 게.

    “형, 나 괜찮은 거야?”

    사랑이가 본인 상태를 궁금해하며 물었다.

    하긴, 그동안 내가 이것저것 물어보기만 했을 뿐.

    똑 부러진 대답을 한 적이 없으니까.

    벌컥!

    때마침 곤란하게도 부모님까지 사랑이 방에 난입했다.

    사랑이가 어디 아픈 거 아니냐며 걱정하기 시작했다.

    조심한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내가 구급함 들고 이동하는 걸 봤던 모양이었다.

    나와 사랑이는 일이 커졌음을 직감했다.

    “요새 사랑이가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해서요.”

    나는 솔직하게 사실을 털어놓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를 때는 진실을 말해라.’는 조언을 따라서.

    사랑이와 부모님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나는 차분하게 생각에 빠졌다.

    집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문진을 통해 이런저런 정보를 얻어 냈으며 바이탈 체크를 통해 사랑이에게 별 이상이 없음을 확인했다.

    남은 건 병원에 가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병원에서 검사한다고 정말 사랑이의 병명을 진단할 수 있을까.

    팔팔한 나이에 혈관 문제도 없을 테고, 심장 구조상의 문제도 없을 텐데?

    사랑이의 심장 두근거림에는 말이다.

    분명 병이 아닌 다른 요인이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나는 짐작했다.

    “사랑아, 요새 진짜 스트레스받는 거 없지?”

    사랑이와 부모님의 대화에 내가 불쑥 껴들었다.

    “진짜 없어. 하늘에 맹세코. 내신 성적도 좋고 수능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어.”

    “…….”

    “친구랑 다툰 것도 아니고 친구들한테 괴롭힘을 당하는 것도 아니고.”

    심리적인 요소를 병인에서 완벽히 제거한 후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짧지만 깊었던 고뇌 끝에 드디어 나는 답을 찾아냈다.

    사랑이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원인을.

    깨달음을 얻고 나니 어두웠던 마음에 한 줄기 광명이 비추었다.

    애초부터 너무 어렵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었는데…

    “사랑아, 지금 당장 병원에 가자.”

    “그 정도까지는 아니에요, 엄마.”

    “주차장에 내려가서 시동 걸어 놓을게.”

    “아빠, 진짜 괜찮다니까요!”

    부모님과 사랑이가 뜨겁게 실랑이를 벌일 때 내가 나섰다.

    이 상황을 정리할 수 있는 사람은 흉부외과의뿐이었다.

    “병원까지 갈 필요 없어요. 병원에 간다고 해서 원인을 찾을 수도 없고요.”

    “그게 무슨 말이니?”

    “형.”

    아버지와 어머니 사랑이가 동시에 나를 쳐다보았다.

    내 자신만만한 화법에 호기심을 드러냈다.

    “사랑이가 다시 두근거림을 느끼게 만들어 볼게요. 원인을 아니까 재현할 수 있어요.”

    * * *

    이믿음은 가족에게 잠깐 기다리라고 말한 뒤 방에서 나갔다.

    그런 이믿음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이사랑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형은 대체 무슨 생각이지?’

    방금 전까지만 해도 형은 그의 가슴이 왜 두근거리는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그런데 갑자기 그 이유를 알았다며 자신의 심장 두근거림을 재현하겠다며 홀연히 방을 떠났다.

    놀랍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한 행동이었다.

    “아무리 믿음이가 똑똑해도 진단이 가능할까? 아픈 이유를 알려면 제대로 된 검사 결과 같은 게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내 생각도 그래. 무슨 민간요법 같은 걸 쓰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부모님이 형의 행동을 추측하기 시작했다.

    이사랑 역시 부모님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체했을 때 손가락을 따는 정도의 치료를 해 주지 않을까 싶었다.

    집에서 할 수 있는 치료라는 게 애초에 대단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괜히 큰일을 만들었네, 가만히 있을걸.’

    이사랑은 멋쩍은 표정으로 볼을 긁적거렸다.

    까닭 없이 심장이 불안할 정도로 심하게 쿵쾅거리고.

    때로는 현기증까지 느껴 그는 얼마 전 혼자서 동네 내과를 찾았다.

    심전도 검사와 가슴 엑스레이 촬영 결과 큰 이상이 없다고 했다.

    수험생이라서 긴장과 스트레스가 심한 모양이다.

    …라고 의사는 별것 아닌 것처럼 이야기했다.

    의사가 별거 아니라고 했으니 별거 아닌 것처럼 생활했으면 됐을 텐데…

    그걸 형에게 고백하는 바람에 이런 큰 사달이 나고야 말았다.

    자신을 진단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형.

    모처럼 온 식구가 모인 자리에서 자신을 걱정하기 바쁜 부모님.

    가족을 여러모로 불편하게 만든 것 같아 이사랑은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이 상황이 빠르게 마무리되기를 바랐다.

    터벅, 터벅.

    가까워지는 형의 발소리.

    이사랑은 부모님과 함께 문 쪽을 바라보았다.

    잠시 자리를 비웠던 형은 돌아오면서 믹스 커피를 챙겨 왔다.

    손에 든 커피잔에서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었다.

    엥? 이게 뭐람?

    심장이 두근거리는 이유를 알려 주겠다고 하더니 왜 믹스 커피를 타 왔지?

    형의 돌발 행동이 이사랑은 당황스럽기만 했다.

    “일단 마시고 30분 정도 시간을 보자.”

    “커피랑 내 심장이 뛰는 거랑 무슨 상관인데?”

    “마셔 보면 알아.”

    형이 피식 웃으며 커피잔을 내밀었다.

    이사랑은 영문을 모르면서도 형이 주는 커피라 일단 마셨다.

    그런데 이게 웬걸?

    30분 정도 지나자 정말 가슴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약간의 현기증마저 느껴졌다.

    최근 이사랑이 불안해했던 증상이 완벽하게 재현된 것이다.

    “진짜 형 말대로네? 커피 마시니까 심장이 또 뛰어.”

    이사랑은 놀라워하며 질문을 던졌다.

    “이거 대체 왜 그런 거야?”

    “사랑이 네가 카페인에 민감해서 그래.”

    형은 카페인 민감증에 대해 설명했다.

    카페인에 대한 민감도는 사람마다 다른데, 민감도가 높은 사람은 가슴 두근거림, 현기증, 구역질을 호소할 수 있다고 했다.

    설명을 듣고서야 이사랑은 아하 싶었다.

    최근 독서실에서 에너지 드링크 바쿠스를 먹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분명 바쿠스에도 카페인이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문제가 해결된 것 같았던 타이밍에 또 다른 의문이 머리를 스쳤다.

    형의 설명대로라면 한 가지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 있었다.

    “나 예전에는 커피 마셔도 괜찮았는데? 갑자기 왜 이렇게 된 거야?”

    “체질이 변하기도 하거든. 못 마시던 사람이 잘 마시게 되는 경우도 있고, 그 반대도 있을 수 있고.”

    형의 설명에 이사랑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모든 수수께끼와 매듭이 풀린 느낌이었다.

    그는 심장에 병이 있었던 게 아니었다.

    단지 카페인의 부작용 때문에 심장이 두근거렸던 것뿐이었다.

    이사랑이 카페인을 병인으로 의심하지 못했던 건 체질이 변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고.

    “역시 형이야. 카페인 때문이었으면 정말 병원에서 검사해도 말짱 꽝이었겠네.”

    “믿음이 네가 커피를 들고 올 때부터 엄마도 눈치챘단다.”

    “아빠도.”

    한바탕 소동이 끝난 후 부모님이 방으로 돌아갔다.

    다시 형과 단둘이 방에 남았을 때 이사랑은 형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현했다.

    형이 그를 챙겨 준 것은 비단 오늘뿐만이 아니었다.

    자신과 관련된 일이라면 불구덩이에라도 뛰어들 자세로 임하는 게 형이었다.

    오늘만 해도 마찬가지였다.

    얼마 전 진료를 봐줬던 내과의처럼, 형은 별일 아니라며 그를 안심시킬 수도 있었다.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 보자며 간단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형은 그러지 않았다.

    자신이 아픈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고민하고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끈질긴 집념으로 마침내 원인을 찾아냈다.

    형은 존경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자 그를 한 없이 사랑해 주는 사람이었다.

    “사랑아.”

    형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응, 왜?”

    “앞으로는 아프거나 힘든 일이 있으면 나나 부모님한테 바로바로 이야기해.”

    “그건… 잘 모르겠어. 그러면 나 때문에 형이나 부모님까지 힘들어지니까. 오늘만 해도 그랬고.”

    “힘들 때 서로 기대라고 가족이 있는 거야. 다른 사람에게 기댄다는 게 부끄러운 일도 아니고.”

    형이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사실 형도 너한테 많이 기대고 있어.”

    “형이 나한테?”

    형의 고백에 이사랑은 적잖이 놀랐다.

    형이 자신에게 기댄다는 느낌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힘들 때 너나 부모님 생각을 많이 하거든. 네 앞에선 멋진 형이고 싶고 부모님 앞에서는 멋진 아들이고 싶으니까.”

    “칫, 뭐야. 그건 기대는 게 아니잖아.”

    형의 대답이 불만족스러워 이사랑의 입술이 댓 발 나왔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구나. 다른 사람에게 직접 도움을 받아야만 기대는 게 아니야.”

    “…….”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될 때가 있으니까. 나중에 너도 알게 될 거란다.”

    형이 빙그레 웃었다.

    그 미소에 담긴 의미를 이사랑은 반 정도만 알 것 같았다.

    그 의미를 완전히 깨닫게 되면 나도 진짜 어른이 되는 걸까.

    “푹 쉬고 내일 보자. 앞으로 카페인 음료를 가려서 먹고.”

    “응. 고마워, 형. 사랑해.”

    “나도.”

    형이 떠난 후 이사랑은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꿈에서 다시 만난 형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 * *

    1박 2일의 휴가는 즐거웠다.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더욱 뜻깊었다.

    하지만 황금 같았던 시간들은 이내 손가락 틈으로 빠져나가 사라져 버렸다.

    나는 어느새 용인 신원대학교 병원 정문 앞에 서 있었다.

    높고 세련된 건물 위로 태양이 걸렸고, 그 아래로 출근하는 직원들이 북새통을 이루었다.

    병원 외관을 훑던 나는 출근하는 직원들의 대열에 섞여 걷기 시작했다.

    오늘은 용인 파견 1일 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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