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화 제3장 응급 아닌 응급(5)
무려 2년 만에 그리운 아파트 단지에 돌아왔다.
주변에 신축 아파트가 많이 생긴 탓에 가족이 사는 아파트는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대세에서 멀어진 복도식이었고, 페인트는 드문드문 벗겨졌으며 주차 공간도 부족했다.
하지만 아무렴 상관없었다.
집값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치솟아 나를 만족시켰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이 아파트가 가진 상징성이었다.
아파트는 내 유년 시절 추억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곳이었다.
우리 가족이 전생과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점을 뚜렷하게 나타내는 장소였다.
‘그런 때도 있었는데.’
나는 기억의 바다에서 옛 추억 하나를 건져 내고 피식 웃었다.
바로 인형 눈 꿰매기였다.
아파트 매입에 필요한 돈을 보태려고 나는 열심히 인형 눈을 꿰맸었다.
어머니의 직장 대출.
아버지의 소설 수익.
이 두 가지가 아파트를 살 수 있었던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기는 했다.
하지만 내가 번 돈도 아파트 매입에 1, 2할 정도의 지분은 있지 않았을까.
터벅, 터벅.
추억에서 빠져나와 나는 걷기 시작했다.
단지에 들어서서 엘리베이터에 오른 뒤 집 앞에서 내렸다.
초인종을 누르자 ‘누구세요?’라고 묻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깜짝 휴가를 얻은 데다가 가족을 깜짝 놀래켜 주고 싶은 마음에 나는 아무 소식 없이 집에 왔다.
“접니다.”
나는 일부러 굵은 목소리를 내고 인터폰의 시야도 벗어났다.
“저라고 말하면 어떻게 알아요? 얼굴이라도 보여 주셔야죠.”
“저라니까요.”
“이 사람 정말 답답하네. 계속 이런 식이면 신고합니다.”
“저라니까요, 믿음이.”
나는 그제야 인터폰 앞에 섰다.
철컥.
도어락이 풀리고 현관문이 열렸다. 놀란 어머니가 두 손으로 입을 가린 채 현관 앞에 얼어 있었다.
“크… 큰아들. 이 시간에 무슨 일이니?”
“파견 나가기 전에 깜짝 휴가를 받아서요.”
“잘됐구나. 반갑고 어서 들어오렴.”
“네.”
나는 어머니를 꼭 끌어안아 준 뒤 거실로 들어갔다. 거실은 2년 전 방문했을 때와 비교해서 딱히 변한 게 없었다.
그럼에도 집은 사무치게 낯설었다.
수련 기간 동안 워낙 집에 오지를 못했으니까.
어느덧 집보다 당직실과 수술실이 더 익숙하고 친근해진 나였다.
“혹시 안 좋은 일이 있는 건 아니지?”
어머니는 나를 반가워하다가도 곧 걱정을 감추지 못했다. 내가 집에 돌아온 경위가 아무래도 부자연스러워 보였던 모양이다.
나는 어머니가 오해하지 않게 사정을 잘 설명했다.
이후 어머니는 나를 소파에 앉혔다. 작업 중인 아버지를 거실로 불러오고 과일 간식을 준비하셨다.
“아버지 건강하게 잘 지내셨죠?”
“오냐, 큰아들. 오랜만에 얼굴을 보니까 좋구나.”
나는 아버지와도 감격의 포옹을 나누었다.
어머니가 예전에 비해 변한 것이 없다면 아버지에겐 꽤 많은 변화가 있었다.
살이 찌기 시작한 것이다.
날카로웠던 턱선도, 홀쭉했던 뱃가죽도 사라진 지 오래였다.
아버지의 몸 곳곳은 이제 살집으로 인해 넉넉하고 완만한 곡선을 그렸다.
“저도요. 근데 체중이 어떻게 되세요?”
“만나자마자 체중 이야기하는 건 반칙 아니니?”
“반칙이 아니라 규칙이죠. 속이지 말고 말씀해 주세요.”
나는 초반부터 아버지를 강하게 압박했다.
전생에 불안정성 협심증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였다. 체중 관리, 혈압 관리, 혈당 관리는 필수였다.
아버지의 체중이나 건강 검진 상의 각종 검사 수치가 올라갈 때마다.
아버지보다 내가 더 스트레스받는다는 걸 아버지는 아실지 모르겠다.
“으음, 82킬로 정도 될 거란다.”
“82킬로면 제대로 관리 하셔야 해요.”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버지의 키가 170센티라는 점을 감안하면 아버지는 상당한 비만이었다.
“이제 소설이나 글 관리만 하지 말고 몸 관리도 하셔야 해요.”
“그래야지. 그런데 아빠도 좀 억울한 점이 있단다.”
아버지가 답답하다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분명 예전하고 비슷하게 먹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 살이 더 찌는 느낌이란 말이지.”
“나이가 들면서 기초 대사량이 떨어져서 그래요. 쉽게 말하면 나잇살이죠.”
“나잇살을 나이테 같은 개념으로 받아들이면 안 되겠니? 그럼 이게 다 경험과 연륜이 될 텐데.”
아버지가 본인의 뱃살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소설가다운 화법에 나는 허탈하게 웃었다.
아무리 나라도 아버지를 말빨로 감당하는 건 역부족이었다.
“본질을 흐리지 마세요. 다음에 제가 올 때까지 최소 5킬로는 빼셔야 해요. 아셨죠?”
“흠흠, 알았단다.”
“어휴, 큰아들이 잔소리해 주니까 엄마 속이 확 풀리네. 작은아들놈은 맨날 아빠 편만 들고 말이야.”
어머니가 쟁반을 식탁에 내려놓으며 한마디 했다.
과일을 곁들이면서 시작된 세 가족의 대화는 화목하고 편했다.
나는 모처럼 활짝 웃는 얼굴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의국에서 나누는 대화들은 기본적으로 무겁고 사무적이고 화가 껴 있었다.
병원 성격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환자는 고통스러워하거나 죽어 가는 도중이고.
보호자는 신경이 예민할 대로 예민하거나 잔뜩 우울한 상태고.
스태프들은 산더미처럼 쌓인 업무에 시달리고 있었다.
의사소통을 하는 각 주체의 상태가 영 좋지 못한 것이다.
그러니 대화가 병원 바깥처럼 정상적으로 돌아갈 리 없었다.
‘내가 이 정도였나?’
부모님에게 지난 병원 생활을 들려 드리는 도중 나는 깜짝 놀랐다.
내 가슴 저 깊은 곳에 퇴적된 감정들이 의외로 많았기 때문이다.
양 과장 은퇴에 대한 아쉬움.
용인 흉부외과 파견 생활에 대한 기대감과 불안감.
남겨진 후배들에 대한 걱정 등등.
쉴 새 없이 떠들다가 시계를 봤더니 무려 1시간이 지나 있었다.
어쩐지 아까부터 목이 따갑더라니…
“죄송해요. 제가 너무 제 이야기만 떠들었네요.”
나는 부끄러운 마음에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집에 들어올 때만 해도 가족의 안부를 잔뜩 물어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막상 대화를 시작하니 내 이야기로만 1시간을 채웠다.
이기적인 대화를 했다는 죄책감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무슨 소리니? 엄마는 큰아들 이야기를 잔뜩 들을 수 있어서 좋았는데?”
어머니는 활짝 웃으며 나를 다독여 주었다.
아버지는 좀 더 교훈 섞인 대답을 해 주었다.
“힘들 때는 힘들다고 주변에 말하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단다.”
“…….”
“꼭 얼굴을 보지 않아도 되니까 앞으로 힘든 일이 있으면 우리한테 자주 전화하려무나.”
“…….”
“단, 아빠가 다이어트를 너무 열심히 안 해서 속상하다는 말만 빼고.”
아버지의 이야기는 평소처럼 익살맞은 농담으로 마무리되었다.
덕분에 무거웠던 분위기가 훌훌 풀렸다.
부모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더욱더 열심히 내 이야기를 했다.
의국에서는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화제들을 입에 올리고.
의국에서는 누구에게도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들을 부모님께 꺼내 보여드렸다.
날 것의 나를 다 토해 내고 나니 온몸이 후련했다.
마치 다시 태어난 사람처럼.
내 솔직한 감정과 생각들을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 감정과 생각들을 온전히 들어 줄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시간을 거슬러 회귀를 했어도 나는 아직 배울 게 많은 아기였다.
* * *
그 날 오후 6시,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부모님께 실컷 병원 투정을 부리다가 점심을 먹은 뒤 정신없이 잠만 잤던 것이다.
모처럼 방해 없이 푹 잔 덕분일까.
몸이 아니라 세포 단위로 개운해진 느낌이었다.
한동안 침대에 멍하니 걸터앉아 있던 나는 휴대폰을 확인했다.
놀랍게도 병원에서 전화가 와 있었다.
흉부외과라는 특성 탓에 바짝 긴장부터 하는 몸.
파견이 결정되고 휴식 중인 내게 전화를 걸었다?
의국에서 심상치 않은 사건이 터졌다는 불길함을 지울 수 없었다.
“어, 하늘아 무슨 일인데?”
-후배는 수술하고 환자 보느라 생고생 중인데 집에서 쉬고 있으니까 좋죠?
남하늘이 농담조로 물었다.
“뭔가 오해를 하는 모양인데, 난 고생하는 네 몫까지 대신해서 휴식 중이란다. 오늘은 평소보다 덜 피곤하지 않았니?”
나도 농담으로 응수했다.
집에 와서 아버지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아버지 특유의 익살 화법이 내게도 밴 것 같았다.
-크크크, 오늘은 혀가 좀 풀렸네요.
“그건 그렇고, 왜 전화했는데?”
-긴장 푸세요. 대단한 건 아니니까.
남하늘이 전한 소식에 나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제 내가 직접 집도했던 대동맥 박리 환자의 보호자가 나를 보고 싶어 했단다.
수술을 무사히 끝마쳐 줘서 고맙고
환자를 이송시키려고 떼를 썼던 것에 대해 사과하고 싶다고 했단다.
-파견 가서 못 본다고 하니까 전화번호라도 알려 달라고 하던데, 어떻게 할까요?
“너한테 보호자분 이야기 다 전달받았다고, 나도 감사했다고 전해 드려.”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당연한 일을 하고서 과한 감사 인사를 받는 건 부담스러웠다.
그리고 감사를 한다면 내가 보호자에게 하는 게 더 옳았다.
보호자는 결국 내 의견을 따라 주었다.
환자에게 필요한 건 이송이 아니라 당장의 수술이라는 내 의견을 믿어 주었다.
보호자가 귀를 닫은 벽창호였다면 어땠을까.
환자는 다른 병원으로 이송 갔을 것이다.
이송 도중 또는 수술실로 가는 도중 사망했겠지.
외과의는 수술방 안에서 환자를 살리고, 보호자는 수술방 바깥에서 환자를 살린다.
나는 이번 케이스를 통해 그런 깨달음을 얻었다.
남하늘과 통화를 마친 뒤 나는 금방 또 가족들과 저녁 식사를 했다.
다행히도 저녁 식사는 사랑이와 함께할 수 있었다.
전생에는 없었던, 이름처럼 사랑스러운 내 동생.
포켓몬 마스터를 꿈꾸던 사랑이는 어느덧 고3 수험생이 되어 있었다.
훌쩍 자란 머리는 이제 내 눈 밑까지 치고 올라왔다.
목소리는 굵직해졌으며 목 중앙에 울대뼈가 볼록 튀어나왔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아버지를 닮아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눈썹이 짙어졌다.
얼굴은 못 볼지언정 나는 한 달에 두 번 정도 사랑이와 통화했다.
그래서 사랑이에 대한 모르는 것이 없는 편이었다.
“믿음아, 더 먹어. 이제 겨우 한 그릇인데?”
“낮에 먹고 바로 잤더니 배가 덜 꺼졌나 봐요.”
나는 어쩔 수 없이 없이 수저를 내려놓았다. 갈비찜을 더 먹고 싶은 욕심이야 굴뚝같았지만 위장이 버티질 못했다.
저녁 식사가 끝난 후 나는 사랑이 방으로 이동했다.
사랑이와 전화로는 다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나눴다.
사랑이의 장래 희망이라든지.
연애 상담이라든지.
학교 생활의 고충이라든지 등등.
사랑이가 워낙 사교성이 좋고 구김살이 없었던지라 특별한 문제는 없어 보였다.
문제가 있는데 문제를 숨기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고.
덕분에 나는 한시름을 덜었다.
가족에 관한 것이라면 간간이 아버지 다이어트 정도만 신경 쓰면 될 것 같아서.
“형, 내가 부모님 걱정 안 시켜 드리려고 말을 아끼고 있었는데…….”
마음을 놓기 무섭게 사랑이가 은밀한 사연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나는 느슨해졌던 의식의 끈을 팽팽하게 조였다.
“나 요즘 따라 심장이 이유 없이 쿵쿵 뛰는 것 같아. 그럴 때마다 불안해 죽겠어. 인터넷에 검색하니까 부정맥일 수도 있다는데, 검사받는 게 좋을까?”
심장이 이유 없이 두근거린다는 사랑이의 말에 나는 턱을 쓸어내렸다.
감히 내 동생을 괴롭히는 증상의 원인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