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제2장 네, 치프(2)
“교수님, 우측 폐 하엽에 출혈 소견이 있습니다.”
내 보고에 스태프들이 다시 한번 뒤집혔다.
아무도 원치 않았던 최악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수술 시간이 길어지면서 환자의 체력이 떨어지고, 그로 인해 일시적으로 바이탈이 떨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 경우 약물을 주입하고 수술을 잠깐 멈추면 바이탈이 회복된다.
하지만 바이탈 저하의 원인이 출혈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출혈을 막아야 했다.
“하필이면 종괴를 떼어 내려는 타이밍에 출혈이라니… 하늘도 무심하시지.”
“이거 수술 계속 진행해도 되는 겁니까?”
양 교수와 서인석이 심각한 목소리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아까 전 바이탈이 떨어졌을 때보다 분위기는 더욱 침울해졌다.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젠 흉강경을 계속할 수 있는지 자체가 의문시 되었으니까.
나 역시 심상치 않게 굴러가는 상황에 얼굴을 찌푸렸다.
흉강경 수술의 단점 중 하나는 출혈에 대처하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수술 시야가 워낙 좁은 데다가 흉강경 전용 도구로 출혈을 극복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흉강경 수술 중 출혈이 발생하면 곧바로 개흉술로 전환하곤 했다.
‘여기까지 와서 주저앉을 수는 없는데…….’
나는 엄습하는 절망감을 필사적으로 떨쳐 냈다. 내시경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흉강경 수술을 개흉수술로 바꿔 진행해야 한다면 오늘 수술은 마이너스였다.
15~20센티의 절개창.
거기에 3센티의 절개창 3개가 추가가 될 테니까.
당연히 회복 기간의 감소 및 흉터 완화 등의 효과도 기대할 수 없었다.
‘이 긴박한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건 회귀한 나뿐이야.’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며 나는 내 머릿속의 서랍을 뒤졌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답은 내 안에 있을 것이다.
“약물을 투여해도 바이탈이 제자리라… 그럼 사실 상태는 악화되고 있다고 봐야겠군.”
양 교수가 한숨을 섞어 가며 말했다.
“네, 저도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환자를 위해서는 개흉수술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우리의 욕심으로 환자의 생명을 앗아 갈 순 없지. 믿음아, 이제 개흉수술을 준비하자꾸나.”
“교수님, 제게 딱 5분만 주십시오.”
나는 양 교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내 눈은 오로지 모니터에만 고정되어 있었고, 손은 내시경을 움직이느라 분주했다.
필사적으로 출혈 부위를 찾는 중이었다.
“이제 미련 둘 필요가 없단다. 인정할 건 깔끔하게 인정하고 가야지.”
“아니요, 저는 인정 못하겠습니다. 교수님과 서 선생님, 그리고 허 선배까지 그동안 얼마나 고생했는데요.”
“…….”
“저는 모두의 고생이 저 위에 있는 사람들의 웃음거리로 전락하는 꼴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진심을 담아 이야기했다.
여기서 수술을 멈추는 건 너무 억울했다.
너무 비참하고 안타깝고 속상하고 분통이 터지는 일이었다.
그런 끔찍한 감정들을 맛보는 건 전생으로 충분하지 않았나.
나는 이제 속칭 꽃길만 걷고 싶었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꽃길만 걷기를 바랐다.
“출혈을 막는 건 고사하고 출혈 부위도 찾지 못할 거란다. 너도 논문들을 봐서 잘 알잖니.”
양 교수가 침착한 목소리로 나를 설득했다.
그 침착함이 사실상 흉강경 수술을 포기해서 나온 것임을 알기에 나는 가슴이 아팠다.
“그래도 방법이 있을…….”
나는 대답을 하다 말고 입을 꾹 다물었다.
방금 전 어떤 정보가 머릿속을 번뜩 스쳐 지나갔다.
샘 스미스 대처법.
전생의 내가 트럭 사고를 당하기 전쯤 봤던 논문이 떠올랐던 것이다.
샘 스미스 대처법이란 흉강경 수술에서 출혈이 발생했을 때.
개흉수술로 전환하지 않고 출혈을 막는 방법이었다.
당시 주목받는 논문이었지만 하필이면 그때의 나는 강태섭에 배신당한 직후였다.
의술에 의욕을 잃을 탓에 직접 펼쳐 보지는 못했다.
‘그래! 이거라면 희망을 걸어 볼 만하지!’
등대를 발견한 선원처럼 나는 기대에 부풀었다. 흉강경 팀의 항해는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나는 잽싸게 현 상황과 샘 스미스 대처법의 적응증을 대입해 보았다.
제일 중요한 것은 누가 뭐래도 출혈량이었다.
출혈이 심하면 샘 스미스 대처법이라 해도 개흉을 피할 수 없었다.
이만하면 괜찮을 것 같은데?
지금까지의 눈대중으로 확인한 출혈량은 대략 20CC 정도 되었다.
샘 스미스 대처법에 상한선이 100CC라는 걸 감안하면 넉넉한 출혈량이었다.
“교수님, 개흉을 안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좋은 방법이 떠올랐습니다.”
“진심이니?”
“네, 흉강경 팀을 꾸릴 때부터 저를 믿어 주시기로 하셨죠? 이번에야말로 저를 믿으셔야 할 때입니다.”
나는 처음으로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 양 교수를 바라보았다.
이제 칼자루는 양 교수에게 넘어갔다.
양 교수가 나를 믿어야만 흉강경 수술은 재개될 수 있었다.
‘교수님, 제발 저를 믿어 주세요.’
갈등하는 양 교수를 지켜보며 나는 속으로 간절하게 부르짖었다.
양 교수가 나를 신뢰하는 것과는 별개로 상황은 좋지 않았다.
이대로 시간이 지체되면 출혈이 길어지면서 바이탈은 더욱 추락할 것이다.
뒤늦은 개흉을 한다고 해도 그때는 환자의 경과를 장담 못할 수도 있었다.
즉, 양 교수 입장에서는 나를 믿는 것보다 개흉수술로 전환하는 것이 더 안전한 것이다.
“휴, 외과의라면 과감할 줄도 알아야지.”
“교수님, 그럼…….”
“그래, 일단 갈 수 있는 데까지 가 보자꾸나. 개흉을 하는 타이밍은 늦어질지 몰라도 개흉 수술 자체는 빨리 끝낼 수 있으니까.”
“감사합니다.”
가까스로 기회를 얻은 나의 눈빛은 180도 변했다.
샘 스미스 대처법을 펼치기도 전에 나는 이미 흉강경 수술의 해피엔딩을 보았다.
* * *
내시경의 각도가 30도로 좁은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스으으윽.
나는 일사천리로 내시경 카메라를 움직였다.
내 머릿속에는 폐의 해부학적 지도가 펼쳐져 있었으며 목적지의 좌표마저 입력되어 있었다.
지형을 이해하고 목적지까지 알고 있다면 여행은 쉬울 수밖에 없었다.
“출혈 부위는 이곳입니다.”
나는 자신 있게 폐의 하엽 중에서도 왼쪽 부분을 내시경으로 비추었다.
폐동맥에서 가지처럼 쭉쭉 뻗어 나가는 말단 장소.
즉, 모세혈관들이 위치한 곳에서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수술 중 폐압 상승으로 인해.
크기가 작고 탄력성이 떨어지는 모세혈관에서 출혈이 발생했던 것이다.
샘 스미스는 이것을 압력 출혈이라고 불렀다.
출혈량이 30CC 아래일 경우 모세혈관에서 빈번하게 발생된다고 논문에서 밝혔다.
“와! 믿음아, 너 정말 대단하구나. 이걸 어떻게…….”
잠자코 있던 서인석이 크게 감탄했다. 양 교수도 내색은 안 했지만 기뻐하는 눈치였다.
허성호는 나를 바라보며 눈으로 씽긋 웃었고.
한편 나는 이 영광을 영국의 흉부외과의 샘 스미스에게 돌렸다.
그의 탁월한 관찰력과 끈기 있는 연구가 우리 흉강경 팀을 구했다.
“출혈 부위는 잘 찾았다만, 문제는 지금부터 아니니?”
양 교수가 침착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미 예상하고 있던 질문이라 딱히 놀랄 이유는 없었다.
“지금 수술 중인 부위는 우상엽이고 출혈 부위는 우하엽이란다. 수술 도구가 닿지를 않아.”
“아주 간단한 해결법이 있습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우하엽에 절개창을 하나 더 만들면 됩니다. 절개창은 3개 정도가 가장 적합하지만 출혈이 발생한 이상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그럼 바로 시작하자꾸나.”
모세혈관에 발생한 출혈을 막기 위해 응급 처치가 시작되었다.
먼저 환자의 우하엽에 4번째 절개창이 만들어졌다.
나는 여전히 내시경으로 출혈 부위를 비췄고.
양 교수는 출혈이 발생한 모세혈관들을 보비(전기소작기)로 지졌다.
치이이익.
고열에 타들어 가는 혈관.
하얀 연기가 피싯 피어오르다가 그쳤다.
소작만으로 출혈을 완전히 정복할 수는 없었기에 자동 봉합기가 2차로 투입되었다.
찰칵, 찰칵.
자동 봉합기가 터진 혈관을 옥죄면서 출혈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혹시나 몰라서 출혈 부위 주변을 샅샅이 뒤졌지만 역시 특별한 이상은 없어 보였다.
삐이이이.
삐이이이.
위험 수위를 오르내리던 바이탈도 그때쯤에는 평화를 되찾았다.
벼랑 끝까지 몰렸던 흉강경 수술이 드디어 정상 궤도에 오른 것이다.
모두의 노력이 물거품으로 흩어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나는 감격했다.
“참 나, 이게 되는구나. 역시 천재는 천재네. 이런 변수를 즉흥적으로 대처하다니.”
“믿음이 네 덕에 정말 큰 고비를 하나 넘겼구나. 이제야 숨을 쉴 수 있겠어.”
“야. 잘했다, 진짜!”
서인석, 양 교수, 허성호가 쏟아 내는 칭찬을 나는 기꺼이 즐겼다.
최후의 최후까지 흉강경을 포기하지 않았던 끈질김.
그 끈질김으로 떠올린 전생의 흉강경 출혈 처치법.
나는 칭찬을 받아 마땅할 활약을 펼쳤다.
물론 제일 중요한 순간 믿어 준 양 교수.
함께 피땀을 흘리며 수술을 지금까지 이끌어 준 서인석과 양 교수에게 나도 감사함을 느끼고 있었다.
세 사람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테니까.
“자, 들뜬 마음은 가라앉히고 다시 수술에 집중합시다. 수술이 끝난 후에 기뻐해도 늦지 않아요.”
양 교수는 집도의답게 스태프들의 멘탈을 관리했다.
이어지는 흉강경 수술은 일사천리였다.
사기를 되찾은 우리 네 사람은 그 누구도 말릴 수 없었다.
내가 제공하는 수술 시야는 완벽하고 철두철미했다.
처치를 하는 양 교수의, 서인석의 손놀림에도 빈틈이 없었다.
내시경 처치 도구가 길쭉해서 위화감이 들고 감각도 잘 전해지지 않을 텐데…….
일반 수술 도구를 사용하는 것처럼 능숙한 손놀림을 보였다.
허성호는 수술 도구를 제때제때 준비해서 건네는 한편.
약물 투여, 내시경 기계 관리, 소모품 관리 등을 철저하게 해냈다.
‘이게 바로 팀 수술인가?’
전생에서는 미처 맛보지 못한 팀 수술의 매력을 나는 지금 이 순간에 처음으로 맛보았다.
그 맛은 중독될 것처럼 달콤했다.
말이 없어도 뜻이 통하는, 이 황홀한 느낌.
일심동체의 느낌을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까.
종양이 위치한 우 상엽 제거.
인근 기관지와 림프절 박리 등등.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출혈을 겪은 후 우리 팀의 처치 속도는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빠르고 정교해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수술은 끝나 있었다.
찰칵!
마지막 절개창을 꿰맨 봉합사를 자르는 경쾌한 소리.
“이것으로 비소세포성 폐암 1기 환자에 대한 흉강경 수술을 마치겠습니다.”
양 교수가 마지막 절개창을 닫으면서 흉강경 수술은 대망의 막을 내렸다.
문득 참관용 수술실을 올려다보니 참관을 온 의사들이 기립해서 박수를 치고 있었다.
박수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나는 소리가 들리는 듯도 했다.
동시에 그동안 고생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치면서 뱃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뿌듯함인지.
다행이라는 안도감인지.
이 과장에게 한 방 먹일 수 있게 됐다는 통쾌함인지.
벅차오르는 성취감인지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 느끼는 감정의 정체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흉강경 수술은 대성공했으며 환자는 건강했고, 양 교수는 말년에 대한민국 최초의 흉강경 수술 성공이라는 위대한 업적을 이뤘다.
모든 것이 내 계획대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