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살부터 의사 생활-156화 (156/257)
  • 156화 제2장 네, 치프(1)

    ‘관객들은 다 모였구나.’

    수술 준비를 하던 중 나는 2층에 위치한 참관용 수술실을 올려 보았다.

    투명한 유리벽 뒤로 이 과장과 박 교수, 그리고 타 병원 흉부외과의들이 줄지어 앉아 있었다.

    보는 눈이 많다고 해서 초조하거나 긴장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힘이 날 지경이었다.

    나와 동료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을 오늘.

    지켜보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쾌감은 커질 것이다.

    “왜, 신경 쓰여?”

    같이 수술 준비를 하던 허성호가 내게 물었다.

    “아니요, 그냥 몇 명이나 왔나 싶어서요.”

    “신경 쓰지 마. 노력했던 대로만 하면 아무 문제 없을 테니까.”

    예상외의 전개에 나는 남몰래 웃었다.

    내가 허성호를 안심시키려고 했건만 허성호가 나를 안심시키려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최종 브리핑 때 내가 했던 연설이 의미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참관 소식을 처음 들을 때만 해도 벌벌 떨던 허성호였다.

    그랬던 허성호가 지금은 이렇게 의젓해졌으니 말이다.

    “그럼 오늘 수술은 선배만 믿고 갑니다?”

    “얼마든지.”

    그동안 연습한 짬밥이 있었기에 우리는 순식간에 수술 준비를 끝냈다.

    흉강경 세팅은 더 이상 예전처럼 복잡하고 번거롭지 않았다.

    일반 수술 준비와 별 차이가 없는 수준이었다.

    양 교수와 서인석이 도착하기 전에 나는 환자 상태를 한 번 더 점검했다.

    혈압, 맥박, 체온, 호흡수, 심전도 그래프 등등.

    환자의 상태는 그야말로 완벽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방심할 수는 없었다.

    우리가 지금까지 연습해 온 모형은 수술이 실패해도 죽지 않지만 사람은 달랐다.

    사람에게 집도한 수술이 실패하면 사람은 죽거나 평생 후유증을 앓게 된다.

    또한 외과의는 그 상처를 고스란히 짊어지고 살아야 했다.

    ‘괜찮아. 변수는 이미 내 머릿속에 있으니까.’

    나는 마지막으로 수술 중에 벌어질 수 있는 다양한 사건, 사고들.

    그리고 이 사건, 사고를 예방하고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쭉 훑었다.

    훑고 나니 자신감이 더욱 살쪘다.

    지이이잉.

    때마침 수술방으로 들어오는 양 교수와 서인석.

    두 사람은 각자의 위치에 선 뒤 참관용 수술실을 한 번 올려다보고 다시 수술대를 내려다보았다.

    나와 허성호와 비슷한 반응이었다.

    타 병원 흉부외과의들의 참관을 개의치 않는다는 반응.

    수술 시작 전부터 수술 성공 확률은 비약적으로 상승하고 있었다.

    “선생님, 마취 끝났습니다.”

    커튼 뒤에 있던 마취의가 마취 종료를 알렸다.

    우리 흉강경 팀은 서로 시선을 교환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함께한 시간과 함께 흘린 땀만큼 우리는 서로를 닮아 있었다.

    “믿음아.”

    양 교수가 담백하게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 환자가 옆을 보게 눕도록 만들었다.

    수술 부위인 우측 가슴 부분을 넓게 소독하고 그 위를 하얀 수술포로 덮었다.

    삐이이이.

    삐이이이.

    환자 감시 장치에서 규칙적인 기계음이 흘렀다.

    그림자가 들지 않은 무영등의 불빛은 오늘따라 유독 달빛처럼 하얗게 보였다.

    환자가 착용한 산소마스크에는 벌써부터 뿌연 김이 서려 있었다.

    “다들 고생 많았으니 긴말 않겠어요. 하던 대로만 합시다.”

    “네, 교수님.”

    “지금부터 1기 비소성 폐암 환자에 대한 흉강경 우 폐엽 절제술을 시작하겠습니다.”

    양 교수의 목소리가 은은하게 번져 나갔다.

    * * *

    모형이 아닌 환자에게 실시하는 첫 흉강경 수술.

    나를 비롯한 팀원들은 부담감을 떨쳐 내고 순조롭게 수술을 진행해 나갔다.

    우선 집도의인 양순재가 환자의 우측 가슴에 3개의 절개창을 만들었다.

    각 절개창의 폭은 고작 3센티밖에 되지 않았다.

    후측방 개흉 수술은 보통 15~20센티 폭의 단일 절개창을 만든다는 점과 크게 비교가 되는 부분이었다.

    양순재의 절개 후 내가 야무지게 다음 바통을 이어받았다.

    우선 절개창에서 새어 나오는 피를 닦았다.

    절개창에 포트(일종의 깔때기)를 씌웠다.

    포트는 수술 시야 확보, 수술 도구 진입로 확보 등에 사용하는 처치 도구였다.

    “믿음이가 먼저 진입하고, 그다음 내가 진입하지. 서 선생이 구조물을 잘 관리해 줘요.”

    “네, 교수님.”

    양 교수의 지시와 함께 본격적인 수술의 막이 올랐다.

    ‘전직 흉부외과 부교수의 능력을 보여 줄 때가 왔군.’

    나는 가볍게 목을 꺾고서 5mm 렌즈에 각도가 30도까지 돌아가는 내시경 카메라를 손에 쥐었다.

    이번 흉강경 수술에서 나는 눈이자 길잡이였다.

    그 역할의 중요성은 두말하면 입이 아플 지경이었다.

    “먼저 진입하겠습니다.”

    스으으윽.

    나는 포트 안쪽으로 깊숙하게 내시경 카메라를 집어넣었다.

    현 시야에서는 하얀 갈비뼈와 갈비뼈 사이에 드리운 어둠밖에 보이지 않았다.

    ‘확실히 답답하긴 하단 말이지.’

    나는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개흉 수술을 하면 수술 부위와 주변 부위까지 편하게 살펴볼 수 있었지만 흉강경 수술은 그렇지 못했다.

    요리로 비유하자면 도마에 얼굴이 닿을 것처럼 바짝 대고 칼질을 하는 느낌이랄까.

    ‘편안하고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나는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고 수술 부위인 폐의 우상엽(오른쪽 상단에 위치한 엽)으로 이동했다.

    카메라의 이동 속도는 전적으로 양 교수와 서인석에게 맞췄다.

    두 사람이 사용하는 수술 도구가 갈비뼈나 다른 장기 및 구조물에 충돌하지 않도록 시야를 확보하려 노력했다.

    이를 위해 나는 수술 도중 적극적으로 손목을 꺾었다.

    손목을 꺾는다는 것은 각도와 시야를 넓힌다는 것이었다.

    눈앞만 보는 게 아니라 주변의 좌우까지 살핀다는 것이었다.

    내가 가려운 곳을 긁어 주었기 때문일까.

    양 교수와 서인석의 이동 속도가 서서히 빨라졌다.

    잠시 후 내 인도로 양 교수와 서인석은 무사히 수술 부위까지 도달했다.

    모형으로 현시점에 도달하기까지 무려 20분이 걸렸거늘…….

    실전에서는 이를 절반 넘게 줄여 무려 7분으로 단축한 것이다.

    놀랄 만한 성과였다.

    “믿음아, 실전에서 네 실력이 더 돋보이는구나. 아주 훌륭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양 교수의 칭찬에 나는 흐뭇하게 웃었다.

    집도의의 마음은 집도의가 가장 잘 아는 법.

    나는 과거 내가 흉강경 수술을 집도할 때 보고 싶었던 수술 시야를 양 교수에게 그대로 펼쳤다.

    그러니 양 교수가 만족할 수밖에…….

    “서 선생도 잘 따라와 줬고, 성호도 어시스트 좋았고.”

    “…….”

    “이 기세를 몰아서 계속 나가 봅시다.”

    수술 부위에 도달한 후 시작된 폐엽 절제술.

    전쟁은 지금부터 시작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개흉 수술의 넓은 시야와 달리.

    내시경 카메라로 보는 좁은 시야로도 폐엽 절제술을 무탈하게 끝낼 수 있느냐.

    그것이 이번 수술의 핵심 포인트였다.

    양 교수가 정치질에 희생당해 쫓겨나는 꼴은 보고 싶지 않다.

    못된 음모를 꾸민 이 과장에게 통쾌한 반격을 하고 싶다.

    나는 잠시 잊었던 감정과 목표들을 되새김질하며 집중력을 날카롭게 가다듬었다.

    손의 감각을 예민하게 증폭시켰다.

    회귀한 흉부외과의가 진심으로 시야를 확보하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 주지.

    “흉막과 늑막 유착은 없습니다. 우상엽에 위치한 종괴 확인했습니다. 3x3센티 정도 되어 보입니다.”

    나는 내시경을 이용한 민첩한 손놀림으로 종양과 종양 주변을 비추었다.

    저 허연 조직이 바로 비극의 씨앗이자 죽음의 씨앗이었다.

    비소세포성 종양은 진행이 더딘 편이지만 방치할 경우.

    림프절을 침범하고 다른 장기로 전이될 위험이 있었다.

    “확인, 서 선생 스펀지 스틱으로 폐 좀 견인해 줘요.”

    “네, 교수님.”

    서인석이 스폰지 스틱으로 폐를 끌어당기자 그 뒤에 숨어 있던 폐동맥과 폐정맥, 기관지가 빼꼼 모습을 드러냈다.

    “성호야, 보비(전기소작기).”

    “안 그래도 미리 준비해 뒀습니다.”

    “잘했다.”

    치이이익.

    암 종양을 절제하기 전, 양 교수는 종양 주변 조직들부터 정리했다.

    시야의 범위 여부.

    사용할 수 있는 처치 도구의 제한이 있을 뿐.

    일반 개흉 수술 과정과 흉강경 수술의 과정은 동일했다.

    “믿음이가 모형 연습할 때보다 더 날아다니는 것 같습니다.”

    “나도 그래 보이는군.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모형 때보다 수술이 더 편한걸?”

    수술 도중 서인석과 양 교수가 나를 화제로 올렸다.

    그만큼 수술에 여유가 있었던 것이다.

    “믿음아, 혹시 연습 때는 대충한 거 아니니?”

    “그럴 리가요. 전 언제나 최선을 다했습니다.”

    양 교수의 장난 섞인 추궁을 나는 강하게 부인했다.

    아무리 모형이 정교하다고 해도 그 정교함에는 한계가 있었다.

    먼 훗날 3D 프린터로 제작하는 모형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렇다 보니 연습 때는 내가 두각을 나타낼 일이 없었다.

    모형에는 내시경 카메라로 비춰야 할 장기와 혈관, 뼈, 기관지 등등의 구조물이 빈약했으니까.

    짧은 잡담 후 이어지는 흉강경 수술.

    탄력을 받은 흉강경 팀은 어느새 한 몸이 되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허성호는 양 교수와 서인석에게 필요한 흉강경 도구를 미리미리 세팅해서 건넸다.

    나는 여전히 눈으로 활약했고.

    양 교수는 폐엽 절제술에 핵심 되는 처치들을 실행했으며 서인석은 양 교수를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우리는 연습이 아닌 실전에서 더욱 빛나고 있었다.

    그렇게 대한민국 최초의 흉강경 수술은 무난하게 성공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성공을 시기한 이 과장이 복통으로 응급실에 실려 갈 정도로.

    하지만 세상일이 그렇게 만만할 리 없었다.

    하늘은 흉강경 팀에게 다시 한번 혹독하고 짓궂은 시련을 내렸다.

    “교수님, 환자 바이탈이 계속 떨어집니다.”

    마취위의 다급한 바이탈 리포트에 수술방의 분위기가 변했다. 공기가 무섭고 차가워졌다.

    “혹시 수술 도중 무슨 문제라도 터진 겁니까?”

    “아니요, 아주 정상적으로 잘 진행 중입니다. 엽절제술하고 림프절 박리만 하면 끝나는 대요?”

    양 교수가 어리둥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당황한 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번 수술의 눈이었던 나는 내시경 카메라로 수술 부위 및 수술 주변 부위를 매처럼 날카롭게 살피고 있었다.

    하늘에 맹세코 단 한 번도 주의와 경계를 늦춘 적이 없었다.

    그런 내가 그 어떤 징조를 읽지 못했거늘…….

    환자의 바이탈은 왜 갑자기 흔들린단 말인가?

    “혈압, 맥박 계속 떨어집니다. 최소한 강심제는 써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혈팩도 갈아 주고요.”

    “알겠습니다. 성호야, 디곡신 IV 믹스하고 수혈팩도 좀 갈아다오.”

    “네, 교수님.”

    예기치 못한 문제로 수술은 잠시 중단이 되었다.

    양 교수와 서인석은 심각한 얼굴로 환자의 바이탈이 떨어지는 원인에 대해 논의했다.

    나는 슬쩍 참관용 수술실을 올려다보았다.

    갑자기 수술이 중단되자 참관 중이던 흉부외과의들 역시 술렁이는 모습이었다.

    얼굴은 볼 수 없지만 이 과장은 지금쯤 신나서 난리가 나지 않았을까.

    양 교수님이 수술에 실패해서 망신당할 것을 잔뜩 기대하면서 말이다.

    ‘당신 마음대로 되지는 않아.’

    나는 내시경을 다시 손에 쥐었다.

    내시경을 포트에 삽입한 후 지금까지 살피지 않았던 다른 부위까지 넓게 살피기 시작했다.

    혈압과 맥박이 떨어진다는 사실은 출혈을 시사할 가능성이 가장 컸다.

    그것도 내시경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부위에서.

    갈비뼈 사이를 헤집고 손목을 기괴하게 꺾어 가며 나는 출혈점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것은 이번 수술의 눈인 내가 해내야 하는 일이었다.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폐엽 절제술에서 출혈 빈도가 가장 높은 혈관은?

    흉강경으로 시야 확보가 어려운 혈관은?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대답하며 야무지게 손을 움직였다.

    그렇게 우측 폐 하엽 부근에 도착했을 때였다.

    모니터 속 흉강에 실 줄기처럼 가느다란 핏줄기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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