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살부터 의사 생활-155화 (155/257)
  • 155화 제1장 날실과 씨실(5)

    “사실 제가 양 교수님을 위해 멋진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오전 컨퍼런스가 끝날 무렵 이 과장이 운을 뗐다.

    이 과장의 눈은 흉강경 스태프들을 훑었으며 이 과장의 입가에는 야비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나는 불길함을 지울 수 없었다.

    이 과장이 양 교수에게 선물을 준비했다는 것은 고양이가 쥐를 위해 선물을 준비했다는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한마디로 말도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흉강경 수술을 집도하는데 관객이 없어서야 되겠습니까?”

    “설마 그 말뜻은…….”

    “네, 양 교수님이 생각하는 그게 맞습니다. 수술할 때 다른 병원 흉부외과의들이 참관을 올 겁니다.”

    “…….”

    “일성 대학교 병원 과장님도 오시고요. 대부분 이름만 대면 알 법한 뛰어난 교수님들이시죠.”

    ‘당신다워. 끝까지 야비한 술수를 쓰는구나.’

    나는 남몰래 이 과장을 노려보았다.

    집도의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채 다른 병원 흉부외과의가 수술을 참관하게 한다?

    여기엔 흉강경 팀의 멘탈을 흔들겠다는 노골적인 의도가 담겨 있었다.

    어떤 일이든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누군가 내 일거수일투족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불편하고 불쾌하고 긴장되는 건 말이다.

    “이 과장, 이번 건 너무 심한 건 아닌가?”

    나 대신 양 교수가 버럭 화를 냈다.

    순두부처럼 순한 양 교수조차 분노를 참지 못할 만큼 이 과장이 간사한 수를 썼기 때문이다.

    “참관이라는 건 말이야. 수술이 완성됐을 때나 하는 거라고.”

    “…….”

    “그런데 우린 모형으로 연습하다가 이제 첫 실전을 치른단 말이지. 이런 상황에서 내 동의도 없이 참관을 허용하면 어떻게 하나?”

    “아휴, 왜 그러십니까? 폐·식도 파트의 대가인 교수님인데… 수술은 당연히 성공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 과장이 느물거리는 목소리와 태도로 응수했다.

    이 과장의 말은 꼭 양 교수의 실력을 믿는다는 것처럼 들렸기에 양 교수는 뭐라고 더 반박을 하지 못했다.

    내 직급이 레지던트만 아니었다면

    양 교수 대신 이 과장을 말빨로 묵사발을 만들었을 텐데…….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그리고 이제 와서 시간을 비워 둔 분들께 참관 취소를 알리는 것도 예의가 아니겠죠.”

    “…….”

    “저는 양 교수님을 믿으니 그대로 참관을 진행하겠습니다.”

    이 과장의 정리로 끝난 오전 컨퍼런스.

    나를 제외한 흉강경 스태프들은 바짝 긴장한 모습이었다.

    * * *

    오전 10시.

    수술이 한 시간 남은 시점에서 오늘의 주인공 흉강경 팀이 회의실에 모였다.

    수술에 앞서 최후의 브리핑을 하기 위해서였다.

    “우리 허락도 없이 참관 신청을 받고, 심지어 수술 당일에 참관 소식을 알려 줬네?”

    제2 보조 허성호가 기가 찬다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 정도면 명백히 엿 먹으라는 거 아니야?”

    “그러게요. 엿도 보통 엿이 아니라 엄청 큰 엿이네요. 며칠은 두고 먹어야 할 정도로.”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캔 커피를 홀짝거렸다.

    이 과장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적수였다.

    혹시라도 흉강경이 성공할 것을 대비해 나조차 예상치 못한 함정을 준비해 두었다.

    그리고 그 함정은 제대로 효과를 발휘 중인 것처럼 보였다.

    흉강경 팀 스태프들의 멘탈이 와장창 무너졌으니까.

    하지만 천하의 이 과장조차 계산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나의 존재였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평범한 레지던트가 아니라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거치고 회귀한 흉부외과의라는 점이었다.

    이 과장이 흉강경이 실패할 거라 자신하는 것 이상으로.

    나는 흉강경이 성공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비유하자면 흉강경 수술이 대세가 되는 먼 미래를 보고 온 나는 네비게이션이었다.

    양 교수, 서인석, 허성호는 출력 좋은 스포츠카였다.

    모형을 이용한 연습 환경은 뻥 뚫린 고속 도로였다.

    그렇다면 연습 기간이 짧은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우리의 방향은 옳았고, 최고의 스펙을 갖춘 차를 이용해 전속력으로 달려왔다.

    나는 첫 실전이라고 해도 우리의 수술이 성공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커피 마셔도 괜찮겠어? 화장실 가고 싶어질 텐데?”

    “화장실 생각이 나기 전에 수술이 먼저 끝날 걸요?”

    “얼씨구, 집도는 양 교수님이 하는데 자신감은 네가 넘친다?”

    “그만큼 교수님을 믿으니까요.”

    허성호와 잡담을 나누는 사이 양 교수와 서인석이 회의실로 들어왔다.

    이어서 흉강경 수술의 최후 브리핑은 허성호가 맡았다.

    환자의 현재 상태, 수술 전 처치 과정, 수술 과정의 복습 등등.

    이번 수술 대상은 모형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점.

    다른 원의 뛰어난 흉부외과의들이 갑작스레 참관을 하게 됐다는 점.

    이 두 가지로 인해 브리핑 분위기는 축 가라앉아 있었다.

    “이상으로 브리핑을 마치겠습니다. 혹시 추가로 하실 말씀 있는 분 계십니까?”

    허성호의 의례적인 질문에 내가 손을 들었다.

    그러자 다들 의외라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브리핑 도중 질의응답으로 충분히 의사소통을 했는데 또 무슨 할 말이 있냐는 표정이었다.

    할 말이야 당연히 있지.

    브리핑보다 더 중요한 정보가.

    나는 목을 풀고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저는 알고 있습니다. 양 교수님이 지난 한 달간 집에 들어가지 않고 병원 근처 숙소에서 숙식을 해결한 것을.”

    “…….”

    “저는 알고 있습니다. 서 선생님이 흉강경 연습으로 몸을 혹사하다가 화장실에서 코피 흘렸던 것을.”

    “…….”

    “저는 알고 있습니다. 허 선배가 흉강경 도구를 당직실까지 가져와서 이름과 용도를 외우고 또 외웠다는 것을.”

    “…….”

    “저는 알고 있습니다. 제가 꿈속에서까지 내시경 카메라를 들고 수술 시야를 찾아다녔다는 것을.”

    나는 오늘이 오기까지 각각의 스태프들이 해 온 절실한 노력들을 일일이 읊었다.

    남몰래 흘렸던, 그래서 오로지 나만이 알고 있던 땀방울을 공유하게 만들었다.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동질감과 전우애를 느끼게 만들도록.

    과연 내 말은 효과가 있었다.

    다들 서로가 노력한 것을 뒤늦게 알아채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또한 저는 알고 있습니다. 이번 수술이 반드시 성공할 거라는 걸.”

    나는 스태프들의 얼굴을 찬찬히 훑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저는 차라리 오늘 수술에 참관 온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기로 했습니다.”

    “…….”

    “수술이 반드시 성공한다고 하면 이 기쁨을 나눌 관객이 있는 편이 더 좋지 않겠냐는 생각에서였습니다.”

    나는 참관에 대해서도 내 의견을 덧붙였다.

    참관을 긴장해야 할 것이 아닌 기뻐해야 할 것이라는 쪽으로 프레임을 변화시킨 것이다.

    “저는 마지막으로 양 교수님과 서 선생님, 허 선배, 그리고 저를 믿겠습니다. 이상입니다.”

    내가 말을 마치자 다들 감동을 받은 표정을 지었다.

    그중에서도 감수성이 풍부한 양 교수는 울컥했는지 가운 소매로 눈물을 훔치기까지 했다.

    “흠흠, 막내 믿음이가 브리핑 마무리를 잘해 준 것 같습니다.”

    양 교수가 헛기침하며 말을 이었다.

    “다들 해산하고 20분 후에 수술방 앞에서 봅시다.”

    양 교수와 서인석이 떠나면서 회의실에는 나와 허성호만 남았다.

    “마지막에 한 말 조금 감동이었다? 근데 뭐야, 어렸을 때 웅변이라도 했어?”

    “웅변까지는 아니고 예전에 이런 걸 잘하는 분을 알고 지냈거든요. 옆에서 눈칫밥으로 배웠어요.”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동료들의 감정선을 자극해서 똘똘 뭉치게 하는 이 수법의 주인공은 놀랍게도 강태섭이었다.

    내가 개발한 신수술법을 감쪽같이 삼키고.

    나를 지방 분원으로 내치고.

    나아가 나를 몰락의 구렁텅이로 빠트린 원수 말이다.

    전생에서 강태섭의 별명은 강벨스였는데, 나치 독일의 전설적인 선동가인 괴벨스에서 따온 것이었다.

    강태섭의 주특기를 설마 내가 사용할 줄이야.

    뭐, 강태섭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감정을 조종했고.

    나는 모두를 응원하기 위해 감정을 고조했으니 차원이 완전히 다르긴 했지만.

    지이이잉.

    때마침 가운 주머니에 넣어 둔 콜폰이 몸을 떨었다.

    병동 콜이었다.

    “선배, 저 스테이션에 가 볼게요.”

    “오냐.”

    회의실을 벗어나는 나는 병동 복도를 가로질렀다.

    바닥을 쳤던 흉강경 팀의 사기를 끌어 올렸으니 이제 이 과장에게 멋지게 한 방 먹이는 일만 남았다.

    * * *

    참관용 수술실.

    수술실 입구에 서 있던 과장 이진영은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수술실로 들어오는 타 병원 흉부외과의들을 맞이하기 바빴던 것이다.

    ‘더할 나위 없이 최고의 무덤이 되겠군.’

    이진영은 속으로 음흉하게 웃었다.

    흉강경 수술을 참관하러 온 흉부외과의들은 전원 대학병원 출신이자 교수급이었다.

    양순재가 수술에 실패할 경우 그 소문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퍼져 나갈 것이다.

    그렇다면 말이다.

    아마 병원에서 양순재를 내쫓기 전에 본인이 쪽팔려서 먼저 사표를 쓰지 않을까.

    의술에 관해서는 콧대가 하늘처럼 높은 양순재였으니까.

    양순재가 사표 쓸 상상을 하니 벌써 흐뭇한 이진영이었다.

    “과장님. 총 20분, 손님들 전원 다 오셨습니다.”

    박성진이 그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한 명도 빠지지 않고 다 왔다는 말이지? 확실히 빅 이벤트이긴 한 모양이야.”

    “당연한 관심 아니겠습니까? 우리나라에서 처음 실시하는 흉강경 수술인데요.”

    “최초로 실시하는 수술이자 최초로 실패하는 수술도 되겠지.”

    이진영은 껄껄 웃으며 속삭이듯 말했다.

    말년에 노망이라도 들었던 건지 양 교수는 갑자기 흉강경 수술에 도전하겠다고 했다.

    그것도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고작 40일 안에.

    미국에서도 오랜 검증을 거친 후 이제야 유행하는 흉강경 수술이었다.

    그런데 그런 흉강경 수술을 그 짧은 시간에 완성한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였다.

    이진영은 알아서 본인 무덤을 파 주는 양순재가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나저나 과장님은 정말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응? 무슨 뜻이지?”

    “다른 병원 의사들이 수술을 참관하게 만들 생각은 어떻게 하신 겁니까?”

    “아… 그거? 별거 아니지. 사람을 진심으로 미워해 보면 말이야, 머릿속에 그 사람을 골탕 먹일 생각밖에 안 떠오르기 마련이거든.”

    “…….”

    “조금 포장하자면 궁즉통, 그러니까 궁하면 곧 통한다고 볼 수 있겠어.”

    “과연 과장님이십니다. 이번에 또 배웠습니다.”

    “인생이란 원래 배울 게 천지지. 양 교수가 나가떨어지고 자네가 부교수가 된다면 또 배울 게 있을 거야.”

    이진영은 박성진의 어깨를 두드리고 맨 앞자리에 앉았다.

    그가 앉기 무섭게 여기저기서 질문이 쏟아졌다.

    흉강경 수술의 연습 기간은 어떻게 되느냐.

    양 교수는 어떤 논문을 보고 공부했느냐.

    어시스트들의 구성은 어떻게 되느냐 등등.

    쏟아지는 질문에 이진영은 얼굴 한 번 구기지 않고 유쾌하게 대답했다.

    이 자리는 오로지 그를 위한 파티 장소였으니까.

    “이번 수술 평소 양 교수님답지 않은 결정인데요? 너무 졸속입니다. 이 과장님께서 말리셨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일성대학교 흉부외과 과장 정규철이 불쑥 대화에 껴들어 이진영을 힐난했다.

    정규철의 지적에 이진영은 처음으로 평정을 잃을 뻔했다.

    하지만 금세 모략가의 기질을 발휘하며 질문을 받아넘겼다.

    “저야 당연히 목숨을 걸고 뜯어말렸죠. 하지만 수술에 관해서라면 어디 제 말을 들을 분입니까?”

    “글쎄요, 이 과장님이 우리들을 부른 이유가 불순해 보이는 건 단지 저뿐입니까?”

    이 자리에서 오로지 정규철만이 이진영의 의도를 꿰뚫어 보고 있었다.

    생긴 건 곰인데 눈치는 여우란 말이지.

    나중에 협회장이 되면 너부터 솎아 주마.

    이진영은 속으로 칼날을 갈다가 급하게 화제를 돌렸다.

    “스태프들이 들어오는군요. 수술에 집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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