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화 제1장 날실과 씨실(3)
“하… 우리 진짜 잘할 수 있을까?”
곁에서 걷던 허성호가 걱정스러운 목소리 말했다.
현재 시각 밤 11시.
나와 허성호는 수술실로 이동 중이었다.
응급 수술이 있는 건 아니고, 흉강경 수술팀이 결성된 이후로 첫 실기 연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겠지만 점점 잘하게 되지 않을까요?”
“물론 그렇겠지만 남은 시간 안에 수술을 완성하는 건 힘들어 보인단 말이지.”
허성호는 속앓이를 쉽게 멈추지 못했다.
다른 의국 스태프들의 의견과 생각도 허성호와 다르지 않았다.
모두가 입을 모아서 말했다.
미국에서 막 유행하는 선진 수술인 흉강경 폐엽 절제술.
이것을 40일 만에 소화한다는 것은 무모하다고.
나도 비슷한 생각이긴 했다.
안 그래도 고난이도 수술인데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습득하는 게 가능할까 의문이었다.
하지만 나를 여기까지 몰고 간 건 상황이었다.
40일 내에 흉강경 수술을 완성하지 못하면 양 교수는 지방 분원으로 쫓겨날 것이다.
스승이 정치질의 희생양이 됐다는 사실도.
더 이상 스승 밑에서 의술을 배울 수 없다는 사실도, 나는 두고 볼 수 없었다.
세상에는 무모해 보여도 해야 하는 일이 있는 법이지.
무모한 일은 성공하기 힘들지만 성공하면 대가는 더 큰 법이지.
마인드 컨트롤을 하는 사이 수술실에 도착했다.
우리는 스크럽을 하고 수술 가운, 마스크, 장갑 등을 착용했다.
모형으로 실습한다고 해서 필요한 복장을 갖추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외과의에게 감염 방지는 숨쉬기처럼 자연스러워야 했다.
지이이잉.
에어 샤워가 끝난 후 열린 수술방 문.
우리는 가장 먼저 수술대로 다가갔다.
수술대 위에는 미국 대학병원에서 들여온 흉강경 수술 도구들이 놓여 있었다.
내시경 카메라, 포트, 자동 봉합기, 겸자 소작기 등등.
“드디어 이 비싼 아가들이 왔네. 이것들이 내 연봉보다 높다면서?”
“그냥 높은 게 아니라 최소한 다섯 배는 높죠.”
“크… 이런 걸 보면 과장님도 통이 참 크시다는 말이지.”
“글쎄요… 전 잘 모르겠네요.”
이 과장이 값비싼 흉강경 도구들을 마련해 준 이유야 뻔했다.
양 교수를 쳐 내려는 시꺼먼 속셈 때문이었다.
이 정도 자금 지원을 받아 가며 신수술을 연구했는데 수술 완성에 실패했다?
그러면 양 교수는 지방 분원이 아니라 집으로 쫓겨날 것이다.
“너 과장님 싫어하지?”
허성호가 대뜸 돌직구를 던졌다.
마스크 위로 드러난 허성호의 눈빛이 투명했다.
“네, 별로라고 생각해요. 저는 양 교수님을 존경하고 좋아합니다.”
“나도 똑같아. 지켜보고 있으면 왠지 양 교수님을 응원하고 싶다고 할까. 힘들겠지만 같이 잘해 보자.”
“잘 부탁드립니다, 선배.”
“오냐.”
우리는 끈끈한 대화로 전우애를 나눴다.
허성호를 제2 보조로 선택한 나의 선구안은 틀리지 않았다.
허성호는 솔직했고, 약자의 편에 설 줄 알았으며 불의에 분노할 줄도 알았다.
의과의로서의 자질도 평균 이상이었다.
그래서 허성호는 황은우와 함께 오래오래 의국 생활을 하고 싶은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야, 이거 은근히 빡세네?”
“그러게요. 설명서를 봐도 뭐가 뭔지…….”
우리는 흉강경 수술 도구를 세팅하는 데 꽤 애를 먹었다.
새로운 문물(?)이 낯설고 불편했던 것이다.
전생의 나 역시 인턴이나 레지던트들이 준비한 흉강경만 써 봤지 직접 세팅을 한 적은 없었다.
그래서 허성호와 마찬가지로 허당 짓을 잠깐 했다.
“휴, 이 정도면 되겠네요.”
나는 30분 내내 굽혔던 허리를 간신히 폈다.
수술 도구를 용도 별로 분리해 놓고, 기곗값을 세팅하고, 기계와 수술 도구를 연결하고 등등.
흉강경 수술은 준비부터가 만만치 않았다.
“준비가 이 정도면 본 수술을 얼마나 어려우려고 이러냐.”
허성호가 질렸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시작이 반이라고 하잖아요. 벌써 반이나 왔습니다, 선배.”
“그럼 시작을 두 번 하면 끝이게?”
“정확히 알아보셨네요.”
“으이구, 네가 너 때문에 못 산다, 못 살아.”
내 익살맞은 대답에 허성호가 유쾌하게 웃었다.
이처럼 나는 흉강경 팀에 있으면서 종종 농담으로 분위기를 띄웠다.
흉강경 수술의 난이도.
급박한 수술 완성 날짜 등등.
팀원들을 괴롭히는 문제가 많아서였는데, 나는 그럴 때마다 분위기 메이커를 자처했다.
분위기란 바꿔 말하면 사기였다.
참고로 내 짧은 생각으로는 외과의에게 수술 솜씨 다음으로 중요한 게 사기 관리였다.
병사가 전쟁터에 나갔다.
그런데 적에게 패배할 것 같아 위축되어 있으면 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당연히 그럴 리 없었다.
즉, 사기란 한 사람의 잠재력을 온전하게 끌어 주는 중요한 촉매제였다.
사기가 충천한다고 해서 불가능한 일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가능한 일이 불가능해지는 참사는 막을 수 있었다.
지이이잉.
절묘한 타이밍에 양 교수와 서인석이 수술방으로 들어왔다.
한 명은 전생의 내 멘토.
다른 한 명은 현생의 내 멘토였다.
존경하고, 존경하던, 존경하고 있는 두 사람이 나란히 입장하는 모습이 내겐 퍽 장관이었다.
걱정 마세요.
이번 생에는 내가 당신들을 양지로 이끌겠습니다.
* * *
모형을 이용한 첫 실전 흉강경 수술의 막이 올랐다.
먼 미래라면 3D 프린터 기술을 이용해 사람의 혈관과 근육마저 재현한 모형을 만들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 거기까지는 바라는 건 언감생심이었다.
그래도 우리 수술팀이 사용하는 모형은 현시점 최고의 수술 모형이었다.
CPR 교보재인 애니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정교했다.
“모형 앞인데도 벌써 긴장되는군.”
집도의 자리에 선 양 교수가 모형을 내려다보며 혼잣말을 했다.
다른 사람들도 양 교수와 비슷한 반응이었다.
허성호는 다리를 떨었으며 서인석은 이를 딱딱딱 부딪치고 있었다.
슬슬 분위기 메이커인 내가 나서야 하나?
“제가 교수님보다 더 긴장한 것 같습니다.”
“응? 그게 무슨 뜻이니.”
“저는 아까부터 모형이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하마터면 타임아웃까지 할 뻔했습니다.”
“믿음아, 너무 멀리 갔다.”
“이 녀석, 또 허풍은…….”
허성호와 서인석이 웃으며 내 농담을 받아 주었다.
양 교수도 말은 안 했지만 긴장이 한결 풀린 듯했다.
‘그래, 이 정도는 분위기는 되어야지.’
비록 레지던트이긴 하지만 나는 스스로를 이번 수술의 선장이자 지휘자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팀원 중에 흉강경 수술을 해 본 사람은 회귀한 나뿐이었다.
그러니 내가 컨트롤 타워가 되어야 했다.
“이제 시작하자꾸나.”
“네, 교수님.”
나는 반듯하게 누운 모형을 측와위(옆을 바라보고 눕는 자세)로 변경시켰다.
베타딘 용액으로 모형의 우측 가슴을 소독하고 그 위에 방포를 덮었다.
수술 전 준비 과정은 순조로웠다.
일반적으로 실시하는 개흉 수술보다 오히려 쉽고 간단했다.
이윽고 모형의 우측 가슴에 세 개의 절개창이 뚫렸다.
절개창에 수술 도구를 집어넣고 수술을 펼치는 것이 흉강경 수술의 핵심이었다.
“각자 맡은 역할 명심하고, 모형이라고 방심하지 말고.”
“네, 교수님.”
양 교수의 당부와 함께 본격적인 실습의 막이 올랐다.
집도의인 양 교수는 첫 번째 절개창에서 핵심 처치를.
제1 보조인 서인석은 두 번째 절개창에서 처치 보조를.
제2 보조인 허성호는 양 교수의 보조 및 전반적인 흉강경 기구 관리를.
제3 보조인 나는 세 번째 절개창에서 내시경 카메라를 손에 쥐고 수술 시야를 감당했다.
본래라면 내가 내시경 카메라를 쥐는 일은 불가능했다.
흉강경 수술에서 내시경 카메라는 집도의의 눈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면 집도의의 눈을 누가 감히 레지던트에게 맡기겠는가.
하지만 나는 양 교수를 설득해 시야 확보하는 일을 맡았다.
의대 시절부터 쌓아 온 천재 이미지 덕분에 양 교수를 설득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저만 믿고 따라오세요.
제가 왜 수술 시야를 확보하겠다고 했는지 금방 알게 될 테니…….
“내시경 카메라 투입하겠습니다.”
나는 10mm 렌즈에 30도 각도로 움직이는 내시경 카메라를 세 번째 절개창에 넣었다.
모니터를 바라보면서 거침없이 내시경을 움직였다.
스으으윽.
6번과 7번 늑골 사이를 미꾸라지처럼 통과해 종괴가 있다고 가정한 우상엽을 향해 돌진했다.
‘역시 손은 전생 때와 비슷한 수준이란 말이지.’
내시경을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자신감이 붙었다.
모니터를 바라보면서 손을 움직이는 일은 쉽지 않았다.
눈과 손이 따로 노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이 낯설고 어색하고 불편한 감각 때문에 내시경 수술에 적응 못하는 외과의도 꽤 많이 있었다.
손이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것도 모자라 수술 시야까지 30도로 제한되어 버리니까.
하지만 나는 전생에 내시경으로 심장 수술을 집도한 경험이 많았다.
내시경 카메라를 사용하는 것도.
모니터의 좁은 시야를 견디는 것도 익숙했다.
“교수님, 우상엽 종괴 위치에 도달했습니다.”
나는 단거리 주파를 하는 속도로 종괴가 있는 곳까지 단번에 수술 시야를 뚫었다.
나름 만족한 처치였다만 왜인지 팀원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뭔가 황당하다는 눈빛이랄까.
“믿음아.”
“네, 교수님.”
“혼자서만 심하게 과속했구나. 난 이제 늑골에 들어와 있는데?”
양 교수의 지적에 나는 얼굴을 붉혔다.
아무래도 너무 신을 낸 모양이었다.
* * *
결론부터 말해서 첫 번째 흉강경 실습은 엉망진창이었다.
시야 확보를 맡은 나를 제외하고 다른 스태프들은 실수를 연발했다.
개흉술에 익숙했던 사람들이 흉강경으로 급하게 체질을 변화하다 보니 문제가 생겼던 것이다.
첫째는 양 교수의 문제였다.
개흉 수술의 대가인 양 교수지만 흉강경 전용 수술 도구를 쥐었더니 실력이 곤두박질쳤다.
전기소작기로 엉뚱한 부위를 지지는가 하면.
손이 헛나가 종양을 잘라 내는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졌다.
낯설고 어색한 흉강경 전용 도구.
그로 인한 손의 힘 조절과 방향 조절의 실패가 주된 문제점이었다.
둘째로 서인석 또한 특유의 빠릿빠릿한 처치를 하지 못했다.
그는 감각이 느껴지지 않아 답답하다고 호소했다.
흉강경 수술은 특성상 수술 도구를 짧게 잡을 수 없었다.
긴 투관침 끝에 매달린 수술 도구를 수술 부위까지 접근시켜 사용해야 했다.
손과 수술 도구의 거리가 멀기에 처치 중인 혈관의 감촉이나 탄력, 민감도를 세심하게 확인하기 힘든 것이다.
수술 부위를 촉지하면서 수술의 감을 잡는 서인석에게 흉강경 수술은 상극이었다.
허성호라고 형편이 나을 리 없었다.
양 교수에게 엉뚱한 수술 도구를 건네면서 수술 시간을 까먹기 일쑤였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
3시간에 걸친 실습이 끝난 후 팀원들은 자신감을 잃은 듯 보였다.
개흉을 했다면 완성도 높은 수술을 단시간에 해냈을 거라며 탄식하기도 했다.
풀 죽은 팀원들을 나는 위로하고 응원했다.
지금도 충분히 잘했다며 앞으로 더 잘할 수 있다고 기운을 북돋웠다.
빈말이 아니고 사실이었다.
실습 첫날 흉강경의 완성도가 처참한 건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흉강경이 쉬웠으면 국내에서도 벌써 흉강경 유행이 불었을 테니까.
첫날 합을 맞춰 본 것치고 팀원들은 충분히 선방했다.
나는 거기서 가능성을 발견했던 것이다.
첫 실습 후 우리는 일주일에 세 번씩 모형 실습을 치렀다.
실습이 없는 날은 개인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웠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흘렀다.
투박했던 처치는 정교해졌고.
서로의 호흡은 퍼즐 조각처럼 딱딱 맞아떨어졌으며.
실습 도중 탄식하거나 스스로 자책하는 소리도 차차 사라져 갔다.
우리 넷은 한마음으로 같이 성장하고 있었다.
그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찾아온 1월 29일.
그날은 대한민국 최초의 흉강경 폐암 절제술이 집도되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