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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살부터 의사 생활-146화 (146/257)
  • 146화 제5장 한번 붙어 보자(1)

    눈앞에 있는 환자가 수술 중 사망한다는 사실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의식이 있을 때를 기준으로 한다면

    지금 내가 보고 있는 환자의 모습이 마지막 모습이 될 테니까.

    제 명을 다하지 못하고 떠난 환자들은 언제나 나를 괴롭고 슬프게 한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환자들이 있었다.

    바로 유정해처럼 수술 중 사망하는 환자였다.

    전생의 아버지가 무인공 심폐기 관상동맥 우회술을 받다가 돌아가셨으니까.

    침통한 눈빛으로 수술방을 나오는 수술의들.

    그 뒤를 따르는, 볼록하게 솟아오른 하얀 방포.

    대기실에서 아버지의 사망 선고를 듣던 때의 충격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안경을 쓴 환자의 딸 보호자가 살갑게 인사를 건넸다.

    “아, 네. 안녕하세요.”

    나는 넋을 놓고 있다가 간신히 인사에 화답했다.

    유정해의 보호자와 딱히 친분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단지 활발하고 사교성이 좋아서 내게 아는 척을 해 준 것일 뿐이었다.

    “제가 어머니 간병하다가 가끔 선생님을 보는데요, 엄청 바빠 보이더라고요.”

    “…….”

    “고생하시는데 이거라도 드세요.”

    그녀가 선물용 과일 쥬스를 내밀었고 나는 순순히 쥬스를 받았다.

    짧은 동작 중에 마주한 그녀의 눈은 사슴처럼 맑고 고 왔다.

    유정해 환자의 죽음보다 그녀의 서러운 울음을 먼저 기억했던 것 그 때문인 것 같았다.

    이번 생에는 부디 저 눈에 다시 눈물이 터지지 않아야 할 텐데…….

    “잘 마시겠습니다. 잠깐 어머님 상태를 보러 왔고요, 수술 전에 다시 오겠습니다.”

    “근데 선생님.”

    돌아서는 나를 보호자의 목소리가 붙잡았다.

    “저희 어머니 정말 괜찮겠죠? 수술 동의서도 쓰고 설명도 다 들었는데 갑자기 불안해져서.”

    “글쎄요. 아마 큰 문제는 없…….”

    나는 습관적으로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문득 전생의 한 장면이 기억났다.

    -선생님이 별문제 없을 거라고 했잖아요! 과장님이 수술하는 거라고 실패할 확률도 없다고 했잖아요.

    유정해 사망 후 수술 대기실이 아닌 병동에서 다시 마주친 보호자는 나를 질책하고 원망했다.

    하지만 내겐 그녀를 책망할 권리가 없었다.

    그녀에게 희망과 확신을 심어 준 사람은 바로 나였으니까.

    자업자득이자 자승자박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 사건을 계기로 수술의 성공률에 대해 함부로 입을 놀리지 않았던 걸로 기억했다.

    “수술이 끝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모든 스태프가 환자분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겁니다.”

    “어머니를 부탁드려요. 선생님.”

    “네.”

    나는 공손하게 고개 인사를 하고 병실을 벗어났다.

    두 시간 앞으로 성큼 다가온 비극에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 * *

    수술방에 들어가기 전까지 나는 손태호와 교대로 병동 일을 했다.

    응급으로 동맥혈 채혈 검사를 하고, 드레싱을 하고, 검사 동의서를 받고, 관장도 하고, 흉관도 관리하고 등등.

    루틴 잡을 처리하는 내내.

    내 머릿속은 온통 곧 있을 관상동맥 우회술로 가득 차 있었다.

    유정해가 왜 수술 중에 사망했는지 기억을 더듬었던 것이다.

    하지만 기억 속의 수술은 희미하고 형태가 모호했다.

    아무리 해마를 혹사시켜도 유정해가 죽는다는 사실, 보호자가 울며 나를 원망했다는 사실 외에는 떠오르는 게 없었다.

    ‘하긴, 40년도 더 된 일이니까.’

    나는 뒤늦게 기억에서 힌트 얻는 것을 포기했다.

    아무리 중요한 일과 사람이라도 결국 나중에는 잊히고 만다.

    남는 것은 그때 느낀 감정의 잔해뿐.

    나는 이번 사건을 해결할 열쇠가 회귀한 나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전생의 나는 까막눈의 인턴이라서 수술 보조를 했음에도 수술이 왜 실패했는지 몰랐다.

    하지만 이번 생의 나는 달랐다.

    이미 전생에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거치고 회귀한 노련한 흉부외과의였다.

    지금의 나라면 수술이 실패하는 이유를 충분히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이유를 알 수 있다면 수술 실패도 막을 수 있겠지.

    결국 이번 사건도 결판은 수술실에서 나는 것이다.

    병실에서 심전도 검사를 하고 돌아가는 길.

    나는 유정해의 보호자가 준 오렌지 쥬스를 단번에 들이켰다.

    전생에 받지 못했던 쥬스가 새콤달콤했다.

    이 과장의 관상동맥 우회술까지 또는 유정해 환자의 사망까지 남은 시간은 이제 1시간.

    벽시계를 확인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술 전에 처리해야 할 일이 있었다.

    바쁜 스케줄 때문에 잠시 미뤄 뒀지만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일 말이다.

    드르르륵.

    당직실로 복귀하자 황은우가 처방을 입력 중이었다.

    1년 차가 없어 2년 차와 1년 차의 일을 혼자 도맡고 있는 모습은 여전히 측은해 보였다.

    황은우 옆에서 손태호가 퇴원 처방을 넣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괘씸한 놈, 이젠 네 차례다.’

    나는 손태호를 노려보며 바득바득 이를 갈았다.

    지금 당장 처리하려는 일이란 바로 손태호를 손봐 주는 일이었다.

    간호사 희롱 유도 사건.

    나와 황은우의 이간질.

    나를 골탕 먹이기 위해 손태호는 간사한 계략을 두 번이나 짰다.

    이젠 그동안 받은 치욕을 돌려줄 때가 되었다.

    “선배.”

    “왜?”

    “저 배가 아파서 그런데 화장실에 좀 갔다 오겠습니다.”

    “네가 언제부터 내 허락 맡고 화장실 갔냐? 마음대로 하세요.”

    황은우가 빈정거리는 말투로 대답했다.

    손태호의 이간질이 성공한 것처럼 아직도 연기를 하는 것이다.

    지금쯤이면 깜빡 잊을 법도 한데 확실히 기억력이 좋단 말이지.

    “…네.”

    일부러 풀 죽은 목소리로 대답한 나는 그 길로 성형외과 병동을 찾았다.

    낯선 복도를 통과해 거침없이 휴게실로 진입했다.

    의대 동기의 첩보대로 휴게실에는 이민호 혼자 있었다.

    녀석은 지하 매장 커피 전문점에서 파는 커피를 홀짝거리는 중이었다.

    성형외과도 이래저래 바쁜 걸로 아는데

    이민호는 인턴 신분임에도 무척 거만하고 여유로워 보였다.

    -민호 그 새끼, 큰아버지가 병원 진료부원장이다 보니까 벌써부터 상전 노릇 하더라. 그 뭐야, 여우가 호랑이 뒤에 서서 위세를 부린다는 말 있잖아.

    -호가호위! 그래, 딱 그 꼬라지라니까. 그래서 지금 성형외과 분위기 개판 났어.

    이민호과 회의실에 있다고 알려 준 동기는 이민호의 짝턴이면서 동시에 나와 친분이 두터웠다.

    동기는 이민호의 위치를 전해 주면서 현재 성형외과의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것도 알려 주었다.

    “네가 여긴 무슨 일이지?”

    이민호가 아니꼽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마치 내가 녀석의 왕국을 침범한 것이 불쾌하다는 것처럼.

    이민호를 마주하는 것이 껄끄러운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피할 수 없는 볼일이 있어서 찾아왔을 뿐, 나도 가능하면 이민호의 낯짝을 보고 싶지 않았다.

    “뭐, 소소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나는 능청맞게 대답하며 이민호의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반어법인가? 네가 소소한 일로 나를 찾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그럴지도 모르겠네. 나한테는 사소한 일이 네게는 중요한 일일 수도 있으니까.”

    “본론부터 말해라. 조금 있으면 어시스트 들어가야 하니까.”

    “비싸게 굴지 마. 어시스트 스케줄도 마음만 먹으면 쨀 수 있는 게 너잖아?”

    내 지적에 이민호가 씨익 웃었다.

    본인이 가진 권력을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에 흡족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게 웃을 일이고 만족을 느껴야 하는 일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긴, 이민호도 마찬가지겠지.

    환자에게 정성을 다하는 나나 양 교수님 같은 부류가 이해 불능인 것은.

    “내 짝턴이 손태호인 건 알고 있지?”

    “물론.”

    “그런데 손태호가 네 편이 아니라 내 편인 건 알고 있어?”

    나는 이민호에게 슬쩍 거짓 정보를 흘렸다.

    손태호가 나와 황은우 사이를 이간질한 것처럼.

    나는 이민호와 손태호를 이간질할 계획이었다.

    당한 수법을 그대로 돌려주는 것이다.

    다만 나의 이간질과 손태호의 이간질은 차원이 다를 것이다.

    1살 때부터 키워 온 나의 모사꾼 기질은 손태호 따위가 쫓아올 만한 게 아니었으니까.

    이민호라는 든든한 방주에서 버림받은 후 손태호가 느낄 절망은 얼마나 클까.

    나는 그런 달콤한 상상을 하며 작전을 계속했다.

    “고작 그딴 헛소리를 하려고 나를 찾아왔나?”

    이민호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헛소리인지 아닌지는 더 들어 보면 알겠지. 난 너희들이 내게 했던 더러운 짓을 다 알고 있으니까.”

    “…….”

    “첫째는 간호사를 희롱하게 만들어서 평판을 떨어트리는 거고, 둘째는 나와 2년 차 선배를 이간질시키는 거 맞지?”

    “…….”

    “점쟁이도 아니고 이걸 내가 어떻게 알고 있을까?”

    나는 약 올리듯 말하며 이민호를 쳐다보았다.

    본인들의 작전을 내가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사실에 이민호는 퍽 놀란 눈치였다.

    “전부 손태호에게 들었다는 이야기인가?”

    “그렇지, 손태호는 아마 너한테 작전이 실패했다고 말했을 거야. 하지만 작전은 실패한 적이 없어. 왜냐고? 손태호는 애초에 작전을 실행한 적이 없으니까. 손태호는 사실 내 편이니까.”

    나는 기존에 있던 사실을 일부러 철저하게 왜곡했다.

    이민호가 손태호를 불신하다 못해 결국 손절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내가 이민호를 찾은 목적이었다.

    내 연기는 아직 순조로웠지만 넘어야 할 산은 몇 개 더 있었다.

    벌써부터 마음을 놓아선 안 됐다.

    “확실히 네 말에 일리는 있어. 손태호가 본인 입으로 말을 하지 않은 이상, 네가 이렇게까지 구체적으로 계획을 알고 있는 건 불가능하니까.”

    “…….”

    “하지만.”

    “하지만?”

    “네가 나를 찾아와서 굳이 이런 말을 하는 의도를 모르겠군. 손태호가 첩자라는 사실을 내게 밝힐 이유가 있나? 첩자라면 계속 곁에 두고 이용하는 게 이득일 텐데?”

    과연 이민호는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았다.

    손태호가 첩자라면 왜 더 이용하지 않고 자신에게 그 사실을 고백하냐고 따져 물었다.

    “그 이유는 단순해.”

    나는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미리 준비해 두었다.

    “난 너랑 다르니까. 친구를 첩자로 삼고 싶지 않으니까.”

    “친구 간에도 서열이 있고 역할이 있다. 너 같은 인간은 절대 이해 못하겠지만.”

    “맞아, 그래서 지금도 네가 이해 못할 행동을 하고 있는 거야. 난 이득보다 정의와 공정을 좋아하니까.”

    이민호는 나를 마냥 정의로운 인간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내게 모사꾼 기질이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점을 이용해 손태호를 험담하기 시작했다.

    이민호 일당이 생각하는 내 공정한 성격.

    현재 진행형으로 펼쳐지는 뛰어난 연기.

    내가 이민호 일당의 계획을 전부 꿰뚫고 있다는 사실.

    이 세 가지가 합쳐지자 이민호의 표정이 미세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대화의 주도권이 내게 넘어온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간질의 결정타를 선사했다.

    손태호라는 인간이 마땅히 가질 수밖에 없는 마음속 어둠을 건드린 것이다.

    “태호는 오래전부터 너한테 열등감을 느꼈다고 하더라. 네가 무시하는 발언을 자주 해서 모멸감도 느꼈고.”

    “…….”

    “그 와중에 너랑 맞서는 나를 보면서 내게 조금씩 마음이 기울었다더라. 흉부외과에서 짝턴으로 활동하면서 그런 마음이 더 깊어졌고.”

    “…….”

    “그래서 그런지 너희 계획을 다 나한테 알려 줬어. 앞으로 나를 돕겠다는 말도 했고.”

    나는 할 말을 적당히 끊은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은 너무 길어도 좋지 않았다.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말을 길게 하는 건 보통 사기꾼이니까.

    이민호를 속이기 위해서는 딱 이 정도 대화면 충분했다.

    “난 모르겠으니까 알아서 해.”

    이민호 마음에 돌을 던져 놓고 나는 유유히 휴게실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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