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살부터 의사 생활-135화 (135/257)
  • 135화 제2장 공공의 적(5)

    환자의 우폐동맥에서 뜻하지 않는 출혈이 발생하면서 비상 상태가 터졌다.

    우선 환자의 바이탈이 걷잡을 수 없이 추락했다.

    그로 인해 스태프들은 본래 수술 순서를 진행하지 못하고 응급 처치를 하기 바빴다.

    환자를 살리기 위해 스태프들 모두는 필사적이었다.

    수술 중 사망한 환자와 함께 수술실을 나오는 것만큼 죄책감이 느껴지고 비참한 일은 없으니까.

    그 상태에서 보호자에게 환자의 사망을 알리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일은 없으니까.

    양 교수의 신속한 지시와 정교한 봉합술.

    거기에 내 임기응변이 더해져 수술은 잘 마무리되는 것처럼 보였다.

    잠시 결찰(묶어 두다)해 둔 우폐동맥을 다시 개통했을 때 봉합사는 혈류의 압력을 잘 견뎌 주었다.

    재출혈이 발생할까 봐 벌벌 떨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한시름 덜었네.’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던 나.

    수술은 그렇게 잘 마무리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하늘은 사제 간의 첫 실전 수술을 곱게 끝내주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또다시 짓궂게 찬물을 끼얹고 말았다.

    H.A(Heart Arrest, 심장마비)가 발생한 것이다.

    삐이이이.

    삐이이이.

    환자 감시 장치가 날카로운 기계음을 퍼뜨렸다.

    위아래로 요동치던 환자의 심전도 그래프는 어느새 바닥을 쳤다.

    나를 포함한 모두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믿음이는 에피네프린 1앰플 IV 중심 정맥관으로 삽입하고 제세동기 준비하렴.”

    “…….”

    “성호는 나랑 빨리 갈비뼈 절개를 하자 꾸나. 우리 둘이 같이 작업하면 3개 정도는 금방 할 수 있어.”

    “네? 죄송합니다만 갑자기 왜 갈비뼈 절개를…….”

    “설명할 시간이 없어. 곧 알게 될 거야.”

    백전노장답게 양 교수는 당황하지 않고 역할에 맞는 오더를 내렸다.

    환자에게 주사를 투여한 뒤

    제세동기 충전을 기다리며 양 교수 쪽을 바라보았다.

    환자의 심장이 멎었는데 흉부 압박을 해야지 왜 갈비뼈 절개 따위를 하고 있는가.

    어떤 의사들은 그런 의문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방금 전 허성호가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내가 집도의라도 양 교수와 같은 판단을 했을 것이다.

    개흉술을 이미 실시한 상황이라면.

    흉부 압박보다 개흉 심장 마사지의 효과가 더 좋기 때문이다.

    ‘스승은 진짜 제대로 만났단 말이지. 이것도 복이야.’

    이렇게 위급한 상황에서도 환자에게 더 나은 처치를 생각할 줄 안다는 점이 양 교수의 장점이었다.

    양 교수와 함께하면서나 역시 이 장점을 흡수할 수 있었고.

    환자의 심장마비로 다시 한번 뒤집힌 수술실.

    발등에 불이 떨어져 다급해진 스태프들.

    크고 작은 출혈이 발생하고 뒤이어 환자의 심장이 멎은 최악의 상황이었지만

    나는 침착하기 위해 애를 썼다.

    내가 당황한다고 환자가 살아날 수 있다면 나는 백 번이라도 당황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럴 리 없고 그런 적도 없었다.

    외과의는 물길에 휩쓸리는 사람이 아니라 물길에서 중심을 잡아야 하는 사람이었다.

    회귀한 내가 이 자리에 있으니까.

    나보다 경험 많고 능력 있는 양 교수가 곁에 있으니까 환자는 무사할 것이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날 것이다.

    나는 그런 밝은 미래를 등대로 삼았다.

    “됐다!”

    양 교수가 평소답지 않게 환호성을 질렀다.

    절제한 갈비뼈 사이로 손을 집어넣고 심장을 직접 마사지하기 시작했다.

    힘 조절이 중요한 작업이기에 양 교수의 얼굴은 다시 딱딱하게 굳었다.

    이마엔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펼치는 노장의 헌신은 눈물겨웠다.

    하지만 환자를 살리고 싶은 마음.

    수술의 성공시키고 싶은 마음이라면 나 역시 스승에게 지고 싶지는 않았다.

    “제세동기 150J 충전됐습니다. 다들 옆으로 비켜 주세요.”

    “오냐.”

    나는 제세동기의 좌우 패들에 젤을 바른 뒤

    패들을 각각 환자의 우측 유두 아래와 빗장뼈 아래에 갖다 대었다.

    “150J shock!”

    쿵!

    패들에서 뿜어진 전류에 환자의 몸이 크게 들썩거렸다.

    하지만 심장 리듬은 쉽게 돌아올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래프는 여전히 바닥에 머물러 있었다.

    나를 포함해 다시 한번 어두워지는 스태프들의 얼굴.

    개흉 심장 마사지와 제세동기 사용이 함께 이뤄졌는데 효과가 너무 미미했던 것이다.

    “실망할 시간도 없어요. 계속합시다. 이 선생님, 에피네프린 1앰플 IV로 한 번 더 주세요.”

    양 교수의 지시와 함께 다시 막을 올린 심폐소생술.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다.

    양 교수는 개흉 심장마사지를.

    나는 제세동기 사용을.

    허성호는 환자의 호흡 관리를.

    스크럽 간호사는 약물 조절에 힘쓰며 환자를 살리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자라 온 환경도, 가치관도, 생김새도, 다 달랐지만 우리는 한마음 한뜻으로 뭉쳤다.

    오로지 환자를 살리겠다는 일념 하나로.

    스태프들의 집념과 끈기가 하늘에 닿았던 걸까.

    스태프들이 똘똘 뭉친 시너지가 빛을 발휘한 걸까.

    무려 15분의 사투 끝에 환자의 심장은 다시 뛰기 시작했다.

    띠이이이.

    띠이이이.

    죽은 듯이 누워 있던 환자의 심장 모니터가 위아래로 경쾌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한 것이다.

    ‘아…….’

    그제야 뱃속 깊은 곳에서 감격과 보람이 치솟기 시작했다.

    혼신의 노력을 다해서 사람을 살렸을 때만 느낄 수 있는 쾌감.

    이 쾌감은 고된 흉부외과 생활을 버틸 수 있게 해 주는 일종의 엔돌핀이자 세로토닌이었다.

    다들 지쳐서 말은 못했지만

    우리는 서로의 눈빛을 응시하면서 환자 생환의 기쁨을 나눴다.

    다행히도 심장마비가 우리가 넘어야 할 마지막 산이었던 모양이었다.

    종양이 있던 주변부.

    이를테면 기관지와 림프절 절제는 이후로 순조롭게 마무리되었다.

    응급 상황을 겪음에도 수술 종료 시간은 5시간 정도로 무난했다.

    환자의 경과 역시 무난하게 좋은 편이었다.

    “믿음이는 환자 중환자실에 옮기고 휴게실에서 잠깐 나 좀 보자꾸나.”

    “네, 교수님.”

    수술실을 나온 나는 착용하고 있던 가운과 마스크, 장갑 등을 훌훌 벗어 던졌다.

    환자가 누운 침상을 끌고 당당하게 수술방을 나왔다.

    비록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스승과의 첫 번째 합동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 * *

    “잘 마시겠습니다, 교수님.”

    나는 양 교수가 건넨 캔 커피를 건네받고 소파에 앉았다.

    딸칵!

    달달한 캔 커피를 단번에 비우자 당분과 카페인이 곧바로 효력을 발휘하는 것 같았다.

    녹초가 된 몸에 곧바로 활력이 도는 듯한 착각이 느껴졌다.

    맞은편 소파에 앉은 양 교수 역시 나처럼 커피를 쭉 들이켰다.

    평소엔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슈가 크래시.

    카페인이나 당분을 섭취한 후 찾아오는 극심한 피로감을 뜻하는 말인데

    양 교수는 슈가 크래시 때문에 평소 커피를 즐겨 마시지 않았다.

    슈가 크래시가 다음 수술에 영향을 줄 수도 있으니까.

    다만 오늘은 몸과 마음이 워낙 피곤하고 다음 수술 스케줄이 없어서 맘 편히 커피를 마시는 듯했다.

    ‘확실히 예전 같지는 않으시네.’

    수술 후 몇 년은 더 늙어 보이는 양 교수를 지켜보며 나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양 교수는 워낙 건강관리를 잘하는 사람이었다.

    균형 잡힌 식단으로 소식을 하며 일주일에 두세 번은 근력 운동도 했다.

    하지만 그런 양 교수조차 세월의 흐름은 벗어날 수 없었다.

    오늘 직접 수술을 해 보니 알 수 있었다.

    환자의 갑작스런 심장마비를 극복한 후 양 교수의 집중력과 수술 속도는 급속도로 떨어졌다.

    주된 원인은 당연히 노쇠일 것이다.

    “믿음아, 날 너무 안쓰럽게 쳐다보는 것 아니냐?”

    내 시선을 읽어 낸 양 교수가 피식 웃으며 물었다.

    “죄송합니다, 교수님. 하지만 교수님이 지치신 걸 보는 제 마음이 편치 않아서요.”

    “그래도 어쩔 수 없지. 내가 피곤해야 너희들이 덜 피곤할 테니까.”

    양 교수는 새삼 흉부외과의 현실을 개탄했다.

    양 교수가 잠정 은퇴를 했던 6년 동안 흉부외과는 변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지원자가 없어서 기존에 있던 인력들만 맷돌처럼 갈리고 있다고.

    “괜히 저 때문에 교수님이 고생하시는 것 같습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양 교수가 맘 편한 교수직을 관두고 살벌한 현장으로 돌아온 것은 나 때문이었으니까.

    “그런 생각은 곤란해. 자기의 인생은 자기가 선택하는 거란다.”

    차분하게 말을 잇는 양 교수.

    “물론 내가 복귀한 건 네가 성장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고 싶어서란다. 하지만 그런 마음조차 결국은 내가 먹은 것 아니겠니?”

    “…….”

    “영민한 너라면 무슨 뜻인지 알 거라 믿는다.”

    “…….”

    “더 중요한 건 믿음이 너 때문에 내가 힘들었던 게 아니라 오히려 편했다는 점이지.”

    양 교수는 이번 수술에서 내가 펼친 활약을 치켜세웠다.

    내가 수술 도구를 능숙하게 건네 수술 시간을 단축했고.

    썩션이나 이리게이션(세척).

    봉합사를 적당한 길이로 자르기.

    그리고 시야 확보와 약물 투여 등의 보조적인 처치를 완벽하게 해내서 수술이 훨씬 쉬웠다고 전했다.

    양 교수가 쏟아 내는 칭찬에 나는 몸 둘 바를 몰랐다.

    본래 양 교수는 칭찬에 인색한 편이었다.

    말은 안 했지만 내가 거만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그러니까 날 동정하는 건 그만두거라. 알겠지?”

    “…네, 교수님.”

    양 교수가 전한 진심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제야 돌덩이가 얹힌 것처럼 묵직했던 가슴이 가벼워졌다.

    소중한 사람 간의 엉켜 버린 감정을 푸는 열쇠는 결국 솔직한 고백이다.

    나는 양 교수에게 의술 말고 또 다른 교훈을 얻었다.

    “교수님, 저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말해 보거라.”

    “수술 도중 환자 상태가 왜 그렇게 갑자기 악화됐는지 알고 싶습니다.”

    나는 휴게실로 오는 내내 나를 괴롭혔던 질문을 던졌다.

    환자에게 생긴 갑작스러운 출혈과 심장마비의 원인이 무엇일까.

    그것이 궁금했던 것이다.

    양 교수나 허성호, 내가 수술 도중 실수를 한 것도 아니거늘…….

    환자는 왜 갑자기 천당과 지옥을 오고 갔을까.

    그 원인을 안다면 앞으로 같은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예방할 수 있으리라.

    “내 생각에는…….”

    양 교수가 내 호기심을 자극하며 뜸을 들였다.

    “폐의 우상엽에 위치한 종양 때문에 폐혈관이 약해진 게 아닐까 싶구나.”

    “…….”

    “더군다나 환자의 나이가 있다 보니 약화 정도는 더욱더 심해졌겠지.”

    “그러면 이런 환자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합니까?”

    “그걸 내가 말해 주면 재미없지. 네 스스로 답을 찾아보거라.”

    양 교수가 씨익 웃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의대 시절부터 나를 괴롭혔던, 양 교수의 전매특허인 질문 던지기였다.

    정답보다 중요한 건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남이 떠먹여 준 정답보다 자신의 발로 가시밭길을 헤쳐 얻은 오답이 더 소중하다.

    양 교수는 그런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내 입장에서는 그런 면이 가끔 답답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잠시 생각하고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허허, 그 어려운 문제를 이 자리에서 바로 답할 생각이니?”

    양 교수가 놀란 듯 눈을 치켜떴다.

    하지만 나는 스승이 내준 숙제를 미뤄 둘 생각이 없었다.

    쇠뿔은 단김에 빼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주먹에 턱을 괸 채

    나는 내가 알고 있는 폐·식도외과 지식의 심연 속으로 깊게 빠져들어 갔다.

    회귀한 짬밥이 있어서일까.

    어렵지 않게 정답을 끄집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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