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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살부터 의사 생활-134화 (134/257)

134화 제2장 공공의 적(4)

텅!

곡반 위로 환자의 폐 우상엽(오른쪽 윗부분)이 떨어졌다.

방금 막 제거한 우상엽에는 2센티 크기의 종양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메스로 조심스럽게 종양만을 따로 잘라 냈다.

이 하찮은 쌀알 같은 것이 온몸으로 퍼져 사람을 죽인다니…….

절제한 종양을 보고 있자니.

문득 인간이란 참 위대하면서도 무력한 존재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종양을 검체 봉투에 넣어 스크럽 간호사에게 전달한 후 나는 제2 보조 업무를 계속했다.

‘역시 대단하시단 말이지.’

무려 3년 동안 은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60대를 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양 교수의 수술 솜씨는 탁월했다.

영민한 두뇌는 수술 순서와 금기 사항을 철통으로 지키고 있었다.

정교한 손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처치를 실시하고 있었다.

회귀한 나라고 해도 당장 양 교수보다 수술을 더 잘할 수는 없었다.

양 교수의 능력에 감탄하는 것과 별개로 나는 양 교수를 뛰어넘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물론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야만 내 삶이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생에서 마땅히 받아야 할 영광을 받지 못해서 그럴까(강태섭이 내 신수술을 훔쳐 갔다).

아니면 전생에서 쓰레기 취급을 오래 받았기 때문일까.

기왕이면 나는 내 실력을 뽐내면서 타인의 인정과 존경도 받고 싶었다.

아마 내 바람은 이루어질 것이다.

나는 남 부끄러울 것 없는 정도(正道)를 걷고 있었으니까.

앞으로 마주칠 악을 물리칠 힘도 가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실력이 다가 아니란 말이지.’

좁아지는 미간과 깊어지는 이마의 주름.

오랜만에 스승과 마주한 것도.

오랜만에 스승과 수술대 앞에 선 것도 다 좋은데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바로 오전 회의였다.

의국 식구들이 보는 앞에서 과장과 양 교수는 팽팽한 신경전을 벌였다.

대외적으로 큰 소리를 내며 다툴 만큼 둘 사이가 좋지 않다는 뜻이었다.

만약 과장이 된 내 후배가 업무 방식과 업무 실적으로 나를 압박한다면 내 기분은 어떨까.

아마 처참하고 끔찍할 것이다.

양 교수 역시 그런 기분을 맛보고 있을 테고.

과장과의 갈등이 좀 더 심해지면 양 교수가 흉부외과를 떠나지 않을까.

나는 그런 염려를 감출 수 없었다.

드디어 만난 스승과 헤어져야 한다니…….

앞으로도 스승에게 배워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너답지 않게 딴생각을 하고 있구나.”

양 교수의 지적에 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솔직히 잡념에 빠졌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을 줄 알았다.

지금은 간간이 수술 도구만 건네주는 상황이었으니까.

“녀석, 놀라기는. 아까부터 반응이 한 박자씩 느리던데.”

양 교수는 내 속이라도 읽은 것처럼 말을 덧붙였다.

제아무리 회귀한 흉부외과의라도 나는 아직 양 교수의 손바닥 안이었다.

“죄송하겠습니다. 딴생각 말고 집중하겠습니다.”

“환자를 앞에 두고 딴생각하는 외과의는 수술방에 들어올 자격이 없어.”

“…….”

“네가 환자라면 그런 사람에게 수술을 받고 싶겠니?”

“아닙니다.”

“네가 수술대에 누워서 네 생명을 맡길 수 있는 외과의. 그게 네가 되어야 할 외과의다.”

“명심하겠습니다.”

양 교수의 따끔한 가르침을 나는 뼛속 깊이 새겼다.

수술방에서는 오로지 수술만 환자만 생각해야 한다는 근본을 잠시 잊고 말았다.

이 정도 업무는 잡생각을 하면서도 처리할 수 있다는 교만 탓이리라.

업무 태도를 지적을 받은 이후로

나는 오로지 수술에만 집중했다.

확실히 집중을 하니 이전과는 처치 속도와 정밀함이 대폭 상승되었다.

스으으윽.

나는 sponge stick을 손에 쥐고 환자의 오른쪽 폐를 전방으로 젖혔다.

폐가 젖혀지자 드러나는 종격동과 흉막과 하폐인대.

내가 폐를 젖힌 사이 허성호의 도움을 받은 양 교수가 해당 기관들을 절제하기 시작했다.

가장 큰 종양이 위치한 우상엽은 이미 절제했지만.

좁쌀만 한 미세 종양은 우상엽 근처에 넓게 퍼져 있었다.

따라서 좁쌀 종양이 침범한 폐 근처의 기관들까지 일일이 절제를 해 줘야 했다.

종양이 주변으로 더 퍼져 나가지 않도록.

그런데 순조롭게 진행되던 수술이 그때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위치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혈관 분지에서 급성 출혈이 발생했던 것이다.

꽤 큰 혈관이 터졌을까.

시야가 금방 빨갛게 물들었다.

수술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할 수준이었다.

비록 서로의 표정은 보지 못했지만, 말 한마디 나누지 않았지만 순간 우리는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이거 뭔지 몰라도 난리 났다.

이번 수술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겠다고.

싸늘한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내가 먼저 처치에 나섰다. 양손에 썩션을 쥐고 쏟아지는 핏물을 빨아들였다.

치이이이익.

핏물이 제거되면서 수술 시야가 다시 드러났다.

그렇다고 편하게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건 아직 출혈 부위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출혈 부위를 찾아 지혈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믿음이는 계속 썩션하고, 성호 너는 거즈로 우상폐 혈관 쪽에 거즈를 올려 봐.”

“네.”

지속되는 출혈 속에 펼쳐진 숨은 혈관 찾기.

근본적인 처치를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시간은 초조하게 흘러만 갔다.

환자는 60대였고, 폐암으로 몸이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져 있었다.

이렇게 문제가 터지고

수술 시간이 지연되는 것 하나하나가 치명적인 결과가 될 수 있었다.

나는 썩션을 하면서도 출혈 부위를 찾기 위해 눈에 불을 켰다.

아주 큰 혈관이 터졌다면 한 번에 위치를 찾았을 테지.

대정맥과 대동맥은 일단 배제하자.

혈관 위에 무작위로 올려놓은 거즈들의 어느 부분이 먼저 젖는지를 살피는 거야.

오감에 육감을 더한 관찰 끝에 나는 마침내 출혈 부위를 발견했다.

“우폐정맥의 한 분지가 터졌구나.”

‘우폐정맥의 한 분지가 터졌던 거야.’

양 교수의 혼잣말은 정확히 내가 혼자서 중얼거리던 말과 동시에 나왔다.

양 교수와 내가 동시에 문제의 혈관을 찾았다는 사실은 고무적이었다.

출혈 부위를 찾는 솜씨만큼은 내가 양 교수 레벨에 근접했다는 증거였으니까.

“교수님, 여기 있습니다.”

수술을 무사히 이어 갈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나는 양 교수에게 보비(전기소작기)를 건넸다.

치이이익.

양 교수가 보비로 우상폐 정맥을 소작하자 혈관은 곶감을 먹은 아이처럼 출혈을 뚝 그쳤다.

“건드리지도 않은 혈관이 터지다니… 이해할 수 없군.”

양 교수는 지혈한 혈관을 내려다보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나 역시 양 교수와 같은 의견이었다.

문제가 됐던 혈관은 현재 우리가 처치 중인 부분과는 거리가 꽤 있었다.

그러니 갑작스런 출혈이 당황스러울 수밖에…….

“교수님께서도 전혀 짚이는 곳이 없으십니까?”

“지금으로서는. 하지만 어쩐지 이번이 끝이 아닐 것 같다는 불길한 예…….”

양 교수는 내 질문에 차마 말을 다 잇지 못했다.

옛 속담대로 말이 씨가 됐을까.

그렇게 한시름을 덜었나 싶었건만 의술의 신은 우리에게 아까보다 더 큰 시련을 내렸다.

우폐동맥에서 뻗어 나가는 큰 혈관에 출혈이 발생했던 것이다.

찢어진 혈관 사이로 한 줄기의 붉은 핏물이 솟구쳐 올랐다.

솟구쳐 오른 핏물이 하필이면 내 쪽으로 튀어 수술 가운을 흠뻑 적셨다.

피가 튄 부분은 따뜻하면서도 축축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옷을 입은 채로 소변을 본 것처럼.

“교수님, 환자 바이탈이 많이 떨어집니다. 빨리 오더를 내려 주세요!”

환자의 상태를 체크하던 마취의가 처음으로 다급한 목소리를 냈다.

체온은 정상이나 다른 수치가 급속도로 떨어지고 있다고 했다.

혈압은 90mmHg/60mmHg.

맥박은 130회.

이미 한 번 정맥 출혈이 발생하고 그 여파가 잦아들기 전에 큰 동맥 출혈이 발생했기 때문일까.

잠잠하던 환자의 혈압이 곤두박질치고 맥박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기 시작했다.

수술실 분위기가 냉랭해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이 선생님은 헤파린 재서 가져다주세요. 그다음에는 수혈팩 쭉쭉 짜 주시고. 성호는 나랑 응급 봉합하자.”

“네, 교수님.”

양 교수의 분주한 오더 속에는 내가 할 일만 쏙 빠져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를 무시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를 200퍼센트 신뢰해서였다.

양 교수가 말하지 않은 나머지 처치들은 전부 내 차지라는 뜻이었으니까.

양 교수가 내 업무의 반경을 느슨하게 풀어 주었기에 나도 내 실력을 완전히 드러내기로 했다.

딸칵!

나는 우선 클램프(혈관겸자)로 출혈이 발생한 우폐동맥의 상부를 마치 빨래 집기로 잡듯이 잡았다.

혈관 상부를 조이면 그 아래로는 피가 거의 흐르지 않는다.

즉, 지혈 효과가 있었다.

나는 포셉으로 거즈 한 뭉텅이를 움켜잡은 뒤 출혈 부위 위에 얹어 놓았다.

그리고 적당한 힘을 담아 눌렀다.

혈관 겸자를 사용한 것이 간접 지혈법이라면 거즈를 이용한 지혈법은 직접 지혈법이었다.

“이 선생님. 헤파린(항응고제) 준비됐나요?”

“네, 지금 가요.”

“헤파린 IV 믹스하고 나서 디곡신(강심제, 심장을 빨리 뛰게 하는 약물)도 같이 IV 믹스해 주세요.”

나는 양 교수가 급해서 잊어버린 디곡신 오더까지 추가했다.

1차적인 지혈 처치를 했음에도 환자의 혈압은 아직도 급격하게 떨어져 있었으니까.

‘조금만 더 버텨 주세요. 수술 끝나고 퇴원하실 때 담배 한 대 맛있게 하셔야죠.’

직접 지혈을 하는 도중 나는 환자의 얼굴 쪽을 슬쩍 응시했다.

방포에 덮여 환자의 얼굴은 볼 수 없었다.

비록 의식은 없더라도 그 역시 우리와 함께 병마(病魔)와 싸우고 있다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직 준비가 덜 됐나?’

초조함을 느끼며 나는 양 교수와 허성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때마침 양 교수의 손에 니들홀더와 봉합사가 들렸다.

동맥출혈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혈관 봉합술이 펼쳐지려는 것이다.

나는 우폐동맥의 찢어진 부위를 압박하고 있던 거즈를 뗐다.

내 처치가 빨랐고, 이어서 들어간 헤파린이 효과를 발휘한 덕분에 출혈량은 눈에 띄게 줄었다.

찢어진 혈관에서 미세한 피가 찔끔찔끔 새어 나올 따름이었다.

“성호야, 혈관 안 튕기게 잘 잡고 있어야 한다. 동맥이라 힘이 좋다.”

“네, 교수님.”

끼기기긱.

니들홀더로 바늘침을 쥔 양 교수가 혈관 봉합술에 나섰다.

이제 수술의 성패는 양 교수의 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교수님이라면 당연히 잘 해내시겠지. 그러니까 나만 잘하면 돼.’

나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양 교수의 봉합술에 온 정신을 집중했다.

치이이익.

찢어진 부위에서 흘러나온 피가 봉합 부위의 시야를 가리면 생리 식염수로 세척했다.

양 교수가 지은 매듭을 적당한 길이로 자르기도 했다.

고도의 집중으로 인해 땀이 번지는 양 교수의 얼굴을 거즈로 닦아 주기도 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이 역시 매우 보조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였다.

극도로 중요한 순간 땀방울이 눈에 들어가 수술을 그르치는 경우가 있었으니까.

‘역시 교수님이란 말이지.’

나와 허성호의 안정적인 보조를 받으면서 양 교수는 꼼꼼하고 빠르게 혈관을 봉합했다.

혈관의 찢어진 길이는 대략 7밀리미터 정도였는데.

혈관 봉합술의 특성상.

봉합이 잘못되면 오히려 혈관이 터져 더 큰 참사가 발생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양 교수의 봉합술은 침착하기만 했다.

매듭을 짓기 전까지 눈 한 번 깜빡거리지 않는 놀라운 집중력과 인내력을 보였다.

의대에서 수련을 받던 시절 내가 존경하던 모습 그대로였던 것이다.

이 모습의 양 교수님이라면 봉합에 실패할 리 없었다.

모두가 숨죽인 가운데 미세 봉합사로 총 여덟 개의 땀이 만들어졌다.

딸칵!

나는 우폐동맥 혈관 윗부분을 묶고 있던 혈관겸자를 과감하게 풀었다.

다시 통하기 시작한 피.

양 교수가 봉합한 부위는 혈류의 압력을 잘 견디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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