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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살부터 의사 생활-132화 (132/257)

132화 제2장 공공의 적(2)

“환자분, 수술방으로 이동하겠습니다.”

803호 병실로 들어간 나는 한 남자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남자의 이름은 윤민기.

올해로 66세가 되는 환자는 폐암 3A기에 접어들었으며 오늘 양 교수에게 수술을 받기로 되어 있었다.

3A는 외과적 수술이 그나마 의미 있는 단계였다.

“콜록, 콜록.”

환자는 마른기침을 연신 터뜨렸다. 마치 기침으로 대답을 대신하겠다는 것처럼.

곁에 있는 아내가 등을 두드려 주어도 환자의 기침은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기침으로 고통스러워하는 환자를 지켜보는 내 마음 또한 편치 않았다.

사실 기침 감기만 걸려도 일상이 피곤하지 않는가.

막아도, 막아도 터져 나오는 기침 때문에 목은 건조하고 따가워진다.

퉁퉁 부은 목 때문에 말하는 것도 고통스럽다.

그런데 환자는 그보다 심한 기침을 몇 개월 전부터 달고 살아왔다.

그것도 약물로도 조정이 힘든 수준의 기침을.

폐암으로 얼마 안 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함께.

만약 내가 의사가 아닌 환자의 입장이라면 어땠을까.

나 역시 온전한 정신을 지키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봐요, 선생님.”

앙상한 가지처럼 마른 환자가 대뜸 물었다.

그의 절실한 눈빛을 보고 있자니 짐작 가는 것이 있었다.

수술을 하면 살 수 있습니까?

산다면 얼마나 살 수 있습니까?

…라고 물어볼 것 같아서 나는 미리 대답을 준비해 두었다.

평소 화통한 환자의 성격을 생각하면 돌려 말하기보다는 직설적으로 말하는 게 좋겠지.

“네, 말씀하세요.”

“수술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담배 딱 한 대만 피우면 안 될까?”

뜻밖의 부탁에 허를 찔린 나는 잠시 말문을 잃었다.

“으이구. 이 양반아, 그게 지금 의사 선생님 앞에서 할 소리예요?”

“부탁은 해 볼 수 있잖아? 그리고 어차피 죽을 거면 피우고 죽는 게 나을 수도 있고.”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못 차렸어. 이러다가 저승사자한테도 담배 빌리겠어. 응?”

“죄송하지만 담배는 안 됩니다.”

나는 환자의 부탁을 딱 잘라 거절했다.

흡연이 수술 전·후의 회복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근거를 들었다.

“선생이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그러셨나요? 저도 환자분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는데 여기가 병원이고 또 수술 전이니까요.”

“…….”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나는 어느새 합류한 병동 보호사와 함께 환자가 누운 침상을 끌고 수술방으로 향했다.

수술 전까지 담배를 원했던 환자를 나는 한심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 같아서는 담배를 사서 그의 손에 쥐어 쥐고 싶었다.

목숨이 걸린 수술이 코앞이라면 담배 한 대에 기대는 것쯤은 눈감아 줄 수도 있는 것 아닐까.

수술방으로 이동하는 내내 환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눈을 감은 채 두 손을 가슴 위에 올렸다.

그 모습은 긴장과는 거리가 먼,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수술이 잘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인지.

이미 살 만큼 살았다고 생각하는 것인지는 나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평소 환자의 성격을 생각하면 후자가 가깝지 않을까 추측만 할 수 있을 뿐.

“의사 양반, 의사 양반은 담배 안 피우지?”

환자가 감았던 눈을 뜨며 지그시 물었다.

“네, 안 피웁니다.”

“내가 봤을 때 의사 양반은 피워야 할 것 같던데? 술도 못 마시는데 그 지긋지긋한 생활을 어떻게 버티려고?”

수술을 앞둔 환자가 갑자기 나를 위로하니 기분이 묘했다.

“같이 다니는 선생은 담배 피우는 것 같더만.”

환자는 손태호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확실히 손태호는 흡연자였다.

흡연자로서 50여 년을 보낸 환자에겐 손태호에게서 나는 담배 연기조차 그리웠을지 모르겠다.

“이 양반이 아까부터 자꾸 픽픽 헛소리를 해대네. 담배 때문에 당신이 이 지경이 된 거 몰라요?”

“무슨 소리야? 나는 담배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 있었던 거라고.”

환자는 오히려 상식과 반대되는 이야기를 펼쳤다.

문득 그의 괴상한 논리가 궁금해지는 나였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시죠?”

“부모도 없고 막일 판을 구르던 내가 의지할 데라곤 담배밖에 없었단 말이지.”

“…….”

“담배에도 기댈 수 없었으면 나는 벌써 죽었어.”

듣고 보니 환자의 말도 어느 정도 일리는 있었다.

사람 인(人)은 두 사람이 서로에게 기댄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라는데, 환자는 사람 대신 담배에 기대왔던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내가 의사 선생한테 담배를 권한 건 아니야. 살면서 기댈 만한 걸 찾으면 좋겠다고 말한 거지.”

“…….”

“공부를 못한 무식한 나지만 그것 하나만큼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거든.”

“그런 거라면 괜찮습니다. 저는 담배 말고 이미 기댈 게 있거든요.”

“그게 뭔데?”

“환자분이 폐암 수술을 받고 건강을 되찾는 것입니다. 퇴원하시고 잘 지낸다는 소식을 전해 들으면 더 좋겠네요.”

나는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몸과 마음이 허물어져 가는 환자를 떠받치면서 오히려 나는 역설적으로 환자에게 기대 왔다.

말하자면 뒤로 기대는 게 아니라 앞으로 기대는 느낌이랄까.

환자에게 기대는 버릇.

그러니까 환자에게 감정 이입하거나 환자에게 정성을 다하며 내 괴로움을 잊는 이 방법은 전생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누누이 말하지만 전생의 나는 폐급 레지던트였다.

선배에게는 갈굼을 당하고, 후배에게는 무시를 당했다.

위아래로 기댈 데가 없던 나는 윤민기가 담배에 기댔던 것과 달리 환자에 기대게 되었다.

알고 보면 딱하고 불쌍한 사연이지만 이 버릇은 오히려 의사라는 내 직업에 날개를 달아 주었다.

환자를 위하면 위할수록 의사는 더 강해지기 마련이었다.

환자를 생각하는 의사가 처치나 처방, 나아가서는 수술을 설렁설렁할 수 있을까.

기억이 정확하다면 내가 폐급을 청산하고 수전증을 고친 것도 환자에게 기대면서부터였으리라.

“진심인가 보네? 묻자마자 바로 말이 튀어나오는 걸 보면. 보통 사람은 없는 말을 할 때는 약간 뜸을 들이기 마련이거든.”

“제가 진심인 걸 아셨으면 건강하게 회복하셔야 합니다.”

“노력해 볼게요.”

대화를 나누는 사이 도착한 수술방.

환자와의 정(情)은 잠시 내려 두고 의사로서 필요한 이성을 꺼내야 할 시기였다.

* * *

벅. 벅. 벅.

소독대 앞에서 나는 베타딘 용액이 묻은 솔로 팔뚝과 손바닥과 손등을 문질렀다.

수술방 근무를 많이 한 티가 이제 슬슬 나고 있었다.

손에 습진이 생기고, 껍질이 까지고, 굳은살이 생기고 있었던 것이다.

외과의가 천직인 내게는 영광스러운 상처라고 할 수 있겠지만.

스크럽(수술 전 소독)을 끝낸 뒤엔 수술 장갑, 루빼(광학 안경), 마스크, 가운 등을 착용하고 수술실로 들어갔다.

지이이잉.

수술실에 들어서기 무섭게 서늘한 공기가 살갗을 스쳤다.

긴장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실제로 수술실은 바깥보다 온도가 낮은 편이었다.

보통 20~23도를 유지하는데, 균의 번식을 억제하기 위해서였다.

삐이이이, 삐이이이.

환자는 수술대에 누워 있었고, 환자 감시 장치는 이미 연결되어 있었다.

나는 감시 장치의 모니터를 뚫어져라 살폈다.

체온 36.1도.

혈압은 130mmHg/85mmHg.

맥박은 97회.

심전도 그래프상의 특이점은 보이지 않았다.

혈압과 맥박이 평소 측정한 값보다 높았지만 크게 걱정할 수준은 아니었다.

수술 전이라 환자가 긴장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말이다.

“윤민기 환자분 맞으시죠?”

“네.”

“오늘 폐암 수술받으시는 거 맞죠?”

“네.”

환자와 다소 불필요해 보이는 문답을 나눈 뒤 나는 환자의 입원 팔찌까지 살폈다.

혹시라도 환자가 뒤바뀌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타임아웃을 철저하게 실시한 것이다.

기본적인 절차를 마치고.

나는 본격적인 수술 전 세팅에 나섰다.

스크럽 간호사와 수술 도구에 필요한 처지 도구들, 이를테면 혈관겸자, 포셉, 켈리 등을 챙기고.

다양한 크기의 거즈와 소독용 솜, 봉합사 등등의 소모품도 챙겼다.

“선생님은 어제 근무한 선생님이랑 딴판이네요?”

같이 작업 중인 간호사가 눈을 치켜뜨며 말을 걸었다.

“네? 어떤 점에서요?”

“어제 근무한 선생님은 약간 허둥지둥하는 느낌이 있었거든요. 소변줄 꽂는 거랑 중심정맥관 삽입이 어려웠나 봐요. 그래서 수술방에 늦게 왔고, 무슨 수술 도구를 챙겨야 하는지도 잘 모르더라고요.”

“…….”

“근데 선생님은 정반대예요. 양 교수님이 좋아하는 수술 도구까지 다 알고 있는 것 같고.”

간호사의 말에 나는 웃음으로 답했다.

우선 나는 무늬만 인턴이고, 속은 교수였다.

손태호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실력자였다.

또한 양 교수와 사제 관계를 맺은 뒤 무려 4년 동안 수술방에서 함께 수련을 한 나였다.

양 교수의 수술 스타일을 가장 잘 이해한 사람이 있다면 바로 나일 것이다.

“선생님, 앞으로 수술방 근무만 하면 안 돼요? 할 일을 다 하고도 30분이나 남네?”

“안 그래도 자주 보게 될 겁니다. 저 흉부외과 전공할 거니까. 잠깐 쉬고 계세요. 제가 선생님께 콜할게요.”

나는 오늘 제1 보조를 맡은 레지던트 3년 차에게 연락해 수술 준비가 끝났음을 알렸다.

레지던트가 오기 전까지는 환자의 소변줄이 제대로 연결이 됐는지.

중심정맥관에는 별 이상이 없는지 등을 꼼꼼하게 살폈다.

드디어 스승과 꿈에 그리던 첫 수술을 하는 날이 찾아오지 않았던가.

만반의 준비를 갖출 필요가 있었다.

“벌써 수술 준비가 끝났다고?”

수술실에 먼저 들어온 사람은 레지던트 3년 차 허성호였다.

전생의 나는 허성호를 속으로 곰이라고 불렀다.

일단 키가 크고 덩치가 좋았으며 맡은 일을 우직하게 처리했기 때문이다.

전생의 나를 괴롭히지 않은, 몇 안 되는 인물이기도 했다.

하지만 무던한 성격임에도 허성호 역시 나처럼 의사 인생의 뒷맛이 썼다.

의국에서 터진 논문 조작 사건의 혐의를 혼자 뒤집어쓴 것이다.

논문 조작의 진범이 내 원수 강태섭이라는 것은 두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고 말이다.

‘허 선배와 함께라면 확률이 높아지겠지.’

강태섭을 물리치기 위해 나는 허성호와 연합 전선을 구축할 계획이었다.

허성호의 우직함이 강태섭에게 이용당하지 않고.

오히려 강태섭을 물리치는 데 사용된다면 강태섭도 퍽 고생하게 될 테니까.

“어디 놓친 데 있는 거 아니야?”

허성호의 이어지는 질문에 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제가 확인할 때는 없었습니다.”

“양 교수님이 평소에는 양처럼 순해 보여도 수술방에서는 사자나 다름없어.”

“…….”

“그리고 네가 실수하면 나까지 욕을 먹는단 말이지.”

허성호는 내가 한 수술 준비에 걱정을 표하면서 이것저것 살펴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꼬투리를 잡을 게 존재할 리 없었다.

왜냐고?

수술을 준비한 사람이 바로 나니까.

“잘했다. 이 정도면 완벽하네. 선생님, 환자분 마취 부탁드릴게요.”

“네.”

허성호와 같이 내려온 마취의가 환자를 전신 마취했다.

이제 양 교수만 도착하면 수술을 바로 시작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은우한테 이야기 들었는데… 너 흉부외과 전공할 거라면서?”

“네, 저는 오래전부터 흉부외과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마음은 기특하다만, 도망칠 거면 빨리 도망치는 게 좋을걸? 나는 도망을 못 쳐서 이러고 있는 거니까.”

허성호가 눈으로 웃으며 말을 이었다.

화제는 흉부외과에서 인턴을 유혹하는 방식에 관한 것이었다.

인턴 근무 마지막 날.

일부러 인턴을 수술방 어시스트로 세운다.

개흉술을 한 뒤 인턴이 환자의 심장을 손으로 만지게 한다.

「심장은 1분에 무려 4~6리터의 피를 뿜어내.

심장의 이 경이로운 펌프질 덕분에 우리가 살아 있을 수 있는 거야.

즉, 흉부외과는 생명의 중심과 신비를 탐구하는 과라고 볼 수 있지.

흉부외과에 수련하는 것도 뜻깊고 괜찮지 않겠어?」

“몇몇 감성적인 친구들은 이렇게 유혹하면 깜빡 넘어오지. 나처럼.”

허성호의 설명에 나 역시 웃고 말았다.

나도 똑같은 방식으로 영업을 당했고, 후배가 똑같은 방식으로 영업당하는 것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흉부외과가 레지던트 지원자에게 영업을 펼칠 필요 없이.

레지던트가 흉부외과에 줄을 서는 날은 과연 언제 올까.

그런 날이 존재하기는 할까.

불쑥 내 손으로 그런 상상 속 미래를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회귀한 나라면 그나마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흉부외과의 부흥을 이끌지는 못할지라도 부흥을 위한 토대는 닦아 놓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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