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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살부터 의사 생활-130화 (130/257)
  • 130화 제1장 리턴(5)

    802호 병실에서 도현신 환자와 마주했다.

    그는 교통사고 당시 운전대에 가슴을 부딪치면서 갈비뼈 골절과 심근좌상을 입었다.

    그 탓에 진통제를 사용 중임에도 심한 흉통과 호흡 곤란을 호소했다.

    “선생님, 제 아들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어머니로 보이는 보호자가 내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야심한 새벽 벼락처럼 찾아온 아들의 사고 소식에 병실로 달려온 어머니는 아들의 건강부터 걱정했다.

    가슴 찡한 장면이었다.

    “흉관 삽관술이라는 처치를 실시할 겁니다. 아드님 가슴에 피가 차고 있어서 그걸 빨아들이는 처치죠.”

    “…….”

    “처치를 끝낸 후에 경과를 지켜볼 겁니다. 너무 염려하실 상태는 아니니 마음 편하게 가지세요.”

    “애가 이렇게 아파하는데 어떻게 제 마음이 편해요?”

    내 화법이 거슬렸는지 보호자의 목소리에 불쾌함이 담겼다.

    내 뜻을 오해하고 착각한 것은 억울하지만 그녀의 심정은 백번 이해했다.

    아들이 아파 죽겠다는데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부모가 몇이나 되겠는가.

    “보호자분이 호들갑을 떤다면 환자분이 더 겁먹고 불안해하지 않을까요?”

    “그건…….”

    설명을 들은 보호자는 말끝을 늘일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본인이 내게 지나치게 날카로웠다는 걸 인지한 분위기였다.

    “다른 뜻 없이 그런 의미에서 말씀드린 겁니다.”

    보호자를 진정시킨 나는 흉관 삽관을 준비했다.

    우선 환자를 침상 등받이에 기대앉은 환자를 똑바로 눕게 만들었다.

    침상 옆에 놓인 드레싱 카트에서 필요한 물품만 빼서 정리했다.

    황은우는 나를 보조하기 위해 내 근처에 서 있었고.

    나를 지켜보는 황은우의 눈빛은 물가에 아이를 내놓은 부모처럼 불안해 보였다.

    응급 환자에게 실시하는 삽관이나 천자는 자칫 잘못했다간 환자의 상태를 악화시키거나 죽일 수도 있는, 양날의 검이었기 때문이다.

    기도 삽관 중 기도가 훼손된 케이스.

    요추천자 중 환자가 사망한 케이스.

    흉관 삽관의 실패로 혈흉 제거가 늦어져 환자의 폐가 찌그러진 케이스 등등.

    하지만 응급이라고 해서 인턴이 처치를 못하도록 배제할 수는 없었다.

    인턴도 응급 상황을 경험하면서 더 강해져야 했으니까.

    콜록, 콜록.

    처치 도구를 세팅하는 동안 환자는 이따금 기침을 했다.

    기침의 여파로 흉통을 느끼고는 얼굴을 찌푸리고 신음을 흘렸다.

    ‘여기서 첫 번째로 꼬였지.’

    나는 전생의 악몽을 떠올리곤 착잡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전생에서 흉관 삽관이 실패한 이유.

    그것은 바로 기침 때문이었다.

    흉관 삽관을 하는 도중 환자가 자주 기침을 했던 것이다.

    처치 도중 환자가 기침을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자연히 몸이 들썩거리기 마련이었다.

    그로 인해 당시 나는 카테터로 연신 환자의 엄한 부위를 찌르고 말았다.

    심리적인 스트레스로 발생한 수전증과 환자의 기침이 환장의 콜라보레이션을 이뤄 낸 것이다.

    이날을 기점으로 나는 사람 잡는 의사라는, 치욕적인 별명을 얻게 되었다.

    “선배, 환자분 기침이 너무 잦은데요? 덱스트로 매트로판(기침 제거제) IV(정맥주사)로 주고 처치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럴 시간이 없을 것 같은데?”

    황은우가 속삭이듯 말하며 환자를 쳐다보았다.

    그가 걱정하는 대로 환자의 상태는 시시각각으로 악화되는 중이었다.

    환자의 얼굴에 식은땀이 흐르자 보호자가 수건으로 환자의 얼굴을 닦아 주는 장면까지 연출되었다.

    하지만 나는 기침 제거제 사용을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기침 반사는 의지만으로 막을 수 없었다.

    환자가 다쳐서 자제력과 인내력을 잃은 상황이라면 더더욱.

    “환자가 기침을 한다면 설령 선배가 처치한다고 해도 실수가 나오지 않을까요?”

    “하… 곤란하네. 기다리는 것도 불안하고, 처치를 강행하는 것도 불안하니, 원.”

    “환자는 제가 계속 모니터링 하고 있을게요. 상태가 더 악화된다면 그때는 기침 반사를 무시하고라도 삽관하는 건 어때요?”

    나는 최대한의 절충안을 내놓았다.

    전생을 거슬러 왔던 간에.

    이미 교수급 실력을 갖췄던 간에.

    현재의 나는 인턴에 불과했다.

    독단적인 결론을 내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윗사람의 비위를 살살 맞춰 가며 내 뜻에 따르도록 만드는 게 최선이었다.

    “으음… 지금으로서는 그게 제일 낫겠네. 네 말대로 진행하자.”

    마침내 황은우의 지시가 떨어졌다.

    내 제안을 그럴듯하게 느꼈던 모양이었다.

    불행 중 다행인 상황.

    이제 전생에서 경험했던 끔찍한 비극은 피할 수 있으리라.

    잠시 후 기침 제거제가 정맥으로 투여되었고, 나와 황은우는 환자의 경과를 유심히 살폈다.

    산발적으로 터지던 환자의 기침 빈도는 줄고, 기침 강도는 약해졌다.

    다행히도 혈흉의 진행도는 그리 극심하지 않았다.

    그랬다면 기침 제거제의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릴 수조차 없었을 테니까.

    그렇게 찾아온 흉관 삽관의 타이밍.

    “믿음아, 이 환자 그냥 내가 삽관할게. 넌 지켜만 봐.”

    황은우는 스스로 삽관하겠다며 내 앞을 가로막았다.

    평소와 다른 변수가 발생해서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것 같았다.

    하지만 황은우에게 삽관을 맡길 수 없는 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첫째로 내가 황은우보다 삽관을 백배는 더 잘하고 백배는 더 빨리 할 수 있었다.

    둘째로는 황은우의 업무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서였다.

    첫 번째 이유는 차마 입 밖으로 낼 수 없으니 나는 두 번째 이유를 밀고 나가기로 했다.

    “저를 못 믿으시면 선배만 힘들어져요.”

    “그게 무슨 뜻인데?”

    “저를 못 믿고 제 일을 선배가 대신하면 결국 선배의 할 일이 늘어나는 거잖아요.”

    “…….”

    “그러면 저는 저대로 인정을 못 받아서 답답하고, 선배는 선배대로 고생해서 괴롭지 않을까요?”

    “…….”

    “그러니까 최선의 방법은 선배가 저를 믿어 주는 겁니다.”

    내 차분한 설득에 황은우는 감탄한 듯 살짝 입을 벌렸다.

    1살 때부터 어른들을 설득하기 위해 메스 대신 갈아 온 혀였다.

    그 위력은 평범한 사람이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청산유수네, 청산유수. 알았어, 내가 졌다. 눈 딱 감고 믿어 줄 테니까 어디 한번 잘해 봐라.”

    “네, 선배.”

    잠깐의 입씨름을 마치고 나는 곧바로 흉관 삽관에 들어갔다.

    착!

    황은우의 도움을 받아 착용한 수술 장갑이 손바닥에 쫀쫀하게 달라붙었다.

    활짝 열린 환자의 가슴 앞섬을 나는 베타딘 용액이 묻은 솜으로 넓게 소독했다.

    미리 재 놓은 리도카인(국소 마취제) 주사기로 삽관할 부위를 부분 마취했다.

    기침 제거제의 효과가 발휘되고 있었기에 처치를 망설일 이유 따위는 없었다.

    처치에 실패할 이유 따위도 없었다.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전생의 오명을 지우고 말 것이다.

    “선배, 10번 블레이드요.”

    나는 황은우에게 받은 메스로 환자의 4번과 5번 갈비뼈 사이를 가로로 절개했다.

    3센티 정도 되는 절개창에서 붉은 피가 꿀렁, 하고 한 차례 흘러나왔다.

    거즈로 피를 닦은 후 나는 절개창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삽관할 장소인 흉막강의 위치를 대략적으로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문제가 없음을 확인한 나는 황은우에게 흉관을 받았다.

    하지만 건네받은 흉관이 24F임을 확인하고 미간을 찌푸렸다.

    24F짜리 흉관은 직경이 작아서 주로 기흉에 사용되기 때문이다.

    혈흉에 사용하는 흉관은 32~40F짜리로 직경이 넓어 혈액을 충분하게 배출할 수 있었다.

    황 선배, 이런 식이면 곤란합니다.

    기침 제거제를 사용해도 삽입할 흉관이 작으면 일을 두 번 해야 하잖아요.

    “선배, 흉관이 너무 작은데요? 34F 정도였으면 좋겠습니다.”

    “아… 미안. 보통 기흉 환자가 더 많다 보니까 무의식적으로 24F를 챙겼다.”

    본인의 실수를 민망해하며 황은우가 34F짜리 흉관을 건넸다.

    약간의 잡음과 실수가 있었지만 나는 평정심을 되찾고 흉관 삽관에 박차를 가했다.

    절개창 사이로 34F짜리 흉관을 망설임 없이 쑤셔 넣은 것이다.

    툭!

    흉관이 흉막강을 통과하면서 느껴지는 촉감이 손에 고스란히 전해졌다.

    자칫 삽관 방향을 잘못 잡으면 간, 횡격막, 비장에 열상(찢어지는 상처)이 생길 수 있지만

    내겐 그런 불상사가 일어날 리 없었다.

    “어때? 잘 들어간 것 같아?”

    황은우가 나보다 나를 더 걱정하는 목소리로 물었다.

    “네, 잘 끝났습니다. 마무리할게요.”

    몇 가지 주의 사항을 점검한 뒤 나는 흉관이 삽입된 장소 주변을 봉합했다.

    그 위에 거즈를 덧대고 반창고로 고정했다.

    철철철.

    배액관과 배액통을 연결하자 배액통으로 검붉은 피가 흘러넘쳤다.

    환자에게 후유증이 생기지 않는 시간 안에서 처치가 신속하게 이루어졌던 것이다.

    폐의 압력이 줄어들면서 환자는 한결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진작 이랬어야 하는 건데.’

    응급으로 실시한 흉관 삽관을 무사히 마치고 전생의 치욕마저 갚고 나니 마음이 날아갈 듯 후련했다.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 왔는지, 아마 다른 사람들은 까맣게 모르리라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 내가 앞으로 해내야 할 일에 대한 신호탄에 불과했다.

    앞으로 나는 더 많은 사람을 살릴 것이다.

    좋은 사람은 곁에 두고, 사악한 인간들을 쳐 내면서 우리 병원의 흉부외과에 존재하는 병폐들을 제거할 것이다.

    “처치 한번 깔끔하다, 깔끔해. 걱정한 내가 바보 같았네.”

    조마조마하게 나를 지켜보던 황은우가 그제야 웃음을 되찾았다.

    그는 씽긋 웃으며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다 선배가 절 믿어 주신 덕분이죠.”

    “네 이름이 믿음인데 널 안 믿고 배기겠니? 앞으로도 지금처럼만 해라.”

    “네, 선배.”

    “손태호.”

    황은우가 갑자기 손태호를 찾았다.

    나는 그제야 손태호가 등 뒤에서 내 처치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루틴 잡을 혼자 다 끝내고 시간이 남았던 모양이었다.

    “흉관 삽관 잘됐는지 확인해야 하니까 이 환자 엑스레이 촬영하고 와라.”

    “알겠습니다.”

    “믿음이는 나랑 컨퍼런스 준비하고.”

    그렇게 나는 주변 사람들이 전생의 나를 업신여기게 만들었던 사건을 무사히 해결하고 병실을 떠났다.

    내 마음속 앙금 하나가 사라졌다.

    * * *

    ‘나 따위는 그냥 침상이나 나르라는 건가?’

    손태호는 투덜거리며 환자가 누운 침상을 엑스레이실로 옮기고 있었다.

    레지던트 1년 차가 자신과 이믿음을 차별하는 것이 손태호는 불쾌하고 언짢았다.

    인턴이 응급 환자에게 흉관 삽관을 한 번에 성공했다?

    물론 대단한 일이다.

    처치를 한 사람이 이믿음이라는 사실은 많이 아니꼽지만.

    하지만 그와 별개로 오늘 오전 병동의 루틴 잡을 도맡아서 한 건 그였다.

    원래라면 이믿음과 손태호가 나눠서 해야 할 일을 손태호 혼자 다 했던 것이다.

    왜냐고?

    이믿음이 흉관 삽관 때문에 한 병실에 계속 붙잡혀 있었으니까.

    둘 중 누가 더 힘들었냐고 따지면 당연히 손태호였다.

    이믿음은 병실 한 곳에서 단 한 명의 환자를 봤고.

    손태호는 수십 군데의 병실을 돌면서 수십 명의 환자를 봤으니까.

    그런데 더 고생한 자신이 엑스레이 촬영까지 맡게 되니 짜증이 안 날래야 안 날 수가 없었다.

    손태호는 이 메스꺼운 기분의 원인을 전부 이믿음의 탓으로 돌렸다.

    의대 시절부터 이믿음만 엮였다 하면 몸이 힘들거나 재수가 옴 붙는 사건이 터지곤 했으니까.

    저 얄미운 녀석을 어떻게든 손봐 주고 싶다.

    저 녀석의 몰락을 속 시원하게 지켜보고 싶다.

    이믿음을 구렁텅이로 끌어내린다면 분명 이민호도 자신을 더 신뢰하게 될 텐데.

    엑스레이실로 향하는 동안 손태호는 생각이 많아졌다.

    이것도 결국은 다 이믿음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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