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제5장 40년 만의 귀환(3)
병원 인근 고깃집.
뜨겁게 달아오른 불판 위로 고기들이 올라갔다.
치이이익, 빗소리처럼 청량한 소리가 퍼지고 군침 도는 고기 냄새가 사방으로 퍼졌다.
빈자리를 찾기 힘든 만큼 식당은 붐볐다.
그리고 딱 그만큼 흥겹고 소란스러웠다.
나와 김요한도 고깃집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식사와 대화를 나눴다.
우리는 의사 고시에 합격한 직후에 만났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오랜만에 보는 것은 아니었는데, 그래도 할 말이 많았다.
어쩌면 친구란 시답지 않은 주제로 오랜 시간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인지도 몰랐다.
목적을 가지고 만나는 것이 아니라 만나는 것 자체가 목적이니까.
대화를 하는 내내 나는 의식적으로 긴장하려고 애썼다.
요한이의 건강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아서.
요한이가 그 사실을 내게 숨기려고 하는 것 같아서.
‘확실히 문제가 있긴 있는 것 같은데…….’
대화가 길어질수록 의혹은 깊어져만 갔다.
요한이는 말을 하는 도중 이따금 미간을 찌푸렸다.
페이스메이커가 삽입된 가슴에 손을 얹기도 했다.
이렇게 요한이가 무의식 중에 보이는 표정과 행동들은 흉통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건강한 사람이 흉통을 느낀다면 걱정을 덜하겠지만 요한이는 특별했다.
희귀 증후군인 브루가다 증후군을 앓고 있었다.
요한이를 향한 내 걱정이 곱절로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난 배부르니까 많이 먹어.”
요한이가 내 쪽으로 고기를 밀었다.
“아는 사람한테 들었는데, 인턴 때랑 레지던트 1년 차 때가 제일 힘들다며?”
“…….”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잔다던데. 당분간 고기 생각 안 나게 실컷 배 채워.”
요한이는 손수 내게 쌈까지 사서 내밀었다.
친구가 싸 준 쌈을 외면할 수는 없었기에 받아 들고 입에 넣었다.
나는 쌈을 먹으며 나를 안쓰럽게 쳐다보는 요한이를 바라보았다.
세월이 무상하다는 말을 이런 때 쓰는 건가.
틈만 나면 그림 그리기에 몰두하던 아이.
친구가 없어서 말도 없었던, 외로운 아이.
그 아이가 이제는 미대를 졸업하고 어엿한 디자이너가 되어 대기업에 취직했다.
그동안 별 탈 없이 잘 성장해 준 요한이가 나는 너무 고마웠다.
내 손을 거쳐 새 삶을 얻은 사람이 행복하게 지내는 것만큼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없었으니까.
“요한아.”
“응. 왜?”
“날 너무 불쌍하게 쳐다보는 거 아니냐? 마치 고기 처음 먹는 사람처럼.”
“그렇게 보였어? 그랬다면 좀 심했네.”
내 농담에 요한이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지원이한테는 연락했어?”
요한이가 화제를 돌렸다.
김지원은 유치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나와 껌딱지처럼 붙어 다니던 친구였다.
내가 의대 진학 후 숨 가쁜 나날을 보내고.
김지원도 배우로서 바빠지면서 자연스럽게 사이가 멀어졌다.
얼굴을 보기는커녕 문자나 통화마저 생존 신고하듯 가끔 주고받는 정도였다.
하지만 김지원과 사이가 멀어진 것을 나는 오히려 다행이라 여기고 있었다.
김지원이 원하는 것들을 해 줄 자신이 없었기에.
“아니. 배우니까 공개적인 장소에서 만나긴 부담스럽기도 하고, 스케줄 문제도 있을 테고.”
“그건 다 핑계지. 지원이를 보고 싶지 않다는.”
“핑계?”
“만날 의향이 있으면 일단 연락부터 해 봐야 하는 거 아니야? 연락도 안 해 보고 단정 짓는 건 만날 생각이 없다는 거잖아.”
요한이의 날카로운 지적에 나는 뜨끔했다.
요한이의 말대로 나는 그저 김지원을 만나는 게 부담스러워서 변명을 한 건지도 몰랐다.
김지원이 보고 싶었다면 전화라도 한 통 하는 것이 응당 옳았다.
모처럼 휴가 나왔다는 사실을 알리고 어떻게든 보자고 하던가, 나중에 만날 약속이라도 잡았어야 했다.
“지원이 은근히 네 연락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라.”
요한이가 부추기는 통에 괜히 휴대폰에 한 번 더 눈길이 갔다.
때마침 고깃집 TV에서 틀어 놓은 드라마에 김지원이 등장하기도 했다.
드라마 속 김지원은 내 기억 속 김지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화장과 복장이 조금 더 세련되었을 뿐.
나는 휴대폰을 손에 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간단하게 2차 하러 가자.”
* * *
요한이와 찾은 2차 장소는 편의점 앞 테이블이었다.
오랜만에 만남이라고 해도 요한이를 길게 붙잡아 둘 순 없었다.
내일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할 테니까.
현재 시간은 밤 8시 30분.
30분 정도 더 이야기를 하다가 9시 정시에 보내 주면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나는 편의점에서 구입한 캔 맥주 두 병과 마른안주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생각보다 훨씬 쌀쌀하다? 더 빨리 일어나야 할지도 모르겠어.”
4월 말의 밤공기는 날카롭고 차가운 구석이 있었다. 캔 맥주를 손에 쥐면 손이 시렸다.
“쌀쌀하긴 네가 더 쌀쌀하지. 지원이한테 끝까지 연락 안 하게?”
요한이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김지원이 나를 연모하고 있다는 건 알았으나 우리 사이가 가까워지는 편이 김지원에게는 오히려 상처가 될 것이다.
나는 김지원이 원하는 것을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었다.
“살다 보면 가슴에 묻고 살아가는 것도 하나쯤 있어야 하는 법 아니겠냐?”
“참나, 인생 다 산 노인네처럼 말하네. 그럼 나중에는 나도 묻어 버릴 거냐?”
“안타깝게도 너까지 묻을 힘은 없어.”
나는 농담을 하고 캔 맥주를 홀짝거렸다.
회포를 풀고 추억을 나누는 건 이 정도면 충분했다.
지금부터는 내가 궁금한 것을 파헤쳐야 할 시간이었다.
요한이는 왜 몸이 좋지 않으면서 좋다고 거짓말을 했을까.
“요한아, 너 어디 아프지?”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내가? 난 괜찮은데?”
요한이는 마른안주를 만지작거리며 내 시선을 회피했다.
거짓말을 할 때 눈을 내리까는 버릇은 이번에도 여지없었다.
이렇게 본인은 까맣게 모르는 본인의 버릇을 알아보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친구라는 존재일 것이다.
“괜찮은 척하지 말고 속일 걸 속여. 아까 만날 때부터 얼굴 찡그리고 가슴에 손 얹고 난리도 아니었으니까.”
내 송곳 같은 지적에 요한이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딴에는 아픈 티를 잘 감췄다고 착각한 모양이었다.
“마음이 아픈 사람은 티나 안 날 때도 있지만 몸이 아픈 사람은 반드시 티가 나.”
“그런가?”
요한이가 체념한 표정으로 내 눈을 마주 보았다.
드디어 마음의 문이 열린 듯했다.
“너 모처럼 휴가 얻어 나왔잖아. 괜히 내가 아픈 걸 이야기해서 네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어.”
요한이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병원에서 환자 보는 것도 지긋지긋할 텐데… 병원 밖에서, 그것도 친구라는 놈이 진찰을 해 달라고 하면 끔찍할 것 같더라.”
요한이의 배려심을 충분히 이해했지만 동시에 답답한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흉통은 요한이의 건강을 넘어선 생명에 직결된 문제였으니까.
“그런 생각은 앞으로 두 번 다시 하지 마. 친구라면 힘들 때 기대야지.”
“…….”
“건강하거나 일이 잘 풀릴 때 곁에서 하하호호 웃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으니까.”
“네가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그래서 더 감추고 싶었던 건데.”
요한이가 캔 맥주를 벌컥벌컥 마셨다.
친구니까 기대도 좋다는 게 내 의견이었고.
친구니까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는 게 요한이의 의견이었다.
우리는 국민학교 때부터 함께 자랐지만 생각하는 부분은 꽤 달랐다.
“그랬으면 애초에 들키지를 말았어야지.”
“그건 인정.”
“그럼 전부 실토할 준비는 되셨나?”
내 말에 요한이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시작된 문진의 시간.
나는 귀를 쫑긋 세운 채 요한이의 이야기를 들었다.
요한이가 몸의 이상을 느낀 것은 3주 전부터였다.
언제부터인가 왼쪽 가슴과 옆구리가 따끔거리고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다고 여겼지만 통증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저번 주에는 일에 집중하는 것조차 괴로운 수준이 되었다.
요한이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마음에 병가를 쓰고 대학병원을 찾았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하고 말았다.
브루가다 증후군이 학계에 발표되기도 전에 브루가다 증후군의 심각성을 알아본 심장내과의 대가 강동욱 교수.
강동욱 교수마저 요한이가 호소하는 흉통의 원인을 못 찾았던 것이다.
흉부 엑스레이와 혈액검사.
심전도와 폐 CT 등의 검사를 펼쳤음에도 딱히 도드라지는 결과물이 없었던 것이다.
요한이의 통증과는 별개로 검사 결과는 전부 정상이었다.
“강 교수님이 보름 정도만 더 지켜보다가 정밀 검사를 위해 입원하자고 하시더라.”
“…….”
“당연히 입원해야 하는 건 아는데 회사 눈치가 보여서 미치겠어.”
까맣게 탄 속내를 털어놓으면서 더 답답해졌을까.
요한이가 맥주를 한 번 더 들이켰다.
그런 요한이의 애타는 마음을 내가 모를 리 없었다.
대다수의 직장인은 몸이 아파도 약국 약이나 파스 따위로 통증을 견뎌 낸다.
병원에 진료 보러 갈 시간을 따로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아프다고 하면 상사나 동료들은 꾀병 취급하기 일쑤였다.
아픈 사람보다 그 사람이 빠져서 생기는 업무의 공백을 더 걱정하기도 했다.
요한이 역시 같은 이치로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육체적인 고통과 더불어 직장 내에서 가해지는 정신적인 압박과 스트레스 말이다.
‘강 교수님이 못 잡아냈다면 곤란한데…….’
요한이의 이야기를 듣고서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주치의가 강동욱 교수고 이미 웬만한 검사는 실시해서 이상이 없다고 판명된 상황.
이제 와서 내가 요한이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있을까.
의심과 의문이 안 든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약해지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전생에 지방 분원으로 파견을 나갔을 때 요한이와 비슷한 사례를 경험한 적이 있었던 것 같았다.
미궁에 빠졌던 환자의 흉통.
그 흉통의 정체는 전혀 뜻밖의 질병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괜히 내 신세 한탄만 해서 미안. 말하다 보니까 갑자기 울컥하는 바람에.”
“나도 아까 고기 먹을 때 하소연 많이 했다. 이제 피장파장이야.”
나는 자책하는 요한이를 다독여 주었다. 아픈 건 죄가 아니라 서러운 것이었다.
“어쨌거나 내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자.”
“왜? 지금부터가 제일 중요한데?”
“입원해서 검사받으면 뭐라도 나오겠지. 너까지 괜히 나 때문에 머리 싸매고 고생할 필요 없어.”
“입원 안 해도 될지 몰라. 검사도 더 안 받아도 될지 모르고.”
“엥? 진짜?”
요한이가 놀란 토끼 눈이 되었다.
그럴 만도 했던 것이 강동욱 교수조차 밝히지 못했던 흉통의 원인을 내가 알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이 친구가 속고만 살았나. 잠깐 상의 좀 들쳐 봐.”
“갑자기 여기서?”
“불편하면 화장실로 가자. 10초 정도만 확인하면 되니까.”
나는 반신반의하는 요한이를 끌고 상가 화장실로 이동했다.
이윽고 요한이가 제 손으로 상의를 들쳐 올렸고, 나는 요한이의 맨살을 유심히 살폈다.
혹시나는 결국 역시나로 밝혀졌다.
요한이의 흉통은 역시 심장에 이상이 생겨서 발생한 것이 아니었다.
강동욱 교수가 진찰을 하고 검사를 했음에도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데도 다 이유가 있었다.
“요한아.”
“왜? 뭐 보이는 게 있어?”
“몸 걱정은 좀 덜해도 되겠다. 회사 눈치도 안 봐도 될 것 같고.”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