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살부터 의사 생활-118화 (118/257)
  • 118화 제4장 남겨진 것(3)

    난폭하게 도로를 질주하는 앰뷸런스의 내부는 혼란스러웠다.

    직선 도로를 달릴 때는 그나마 괜찮았지만 커브를 틀 때는 차체가 심하게 요동쳤다.

    응급 환자에게 사용할 구급함이며 각종 기계 장치가 흔들리거나 바닥에 떨어지곤 했다.

    위이이잉.

    위이이잉.

    사이렌의 목청은 줄어들 줄 몰랐고 타이어의 발놀림은 갈수록 빨라졌다.

    교통 법규를 지키는 모범생 같은 차량들이 달리는 도로 위에서, 엠뷸런스는 한 마리의 야생마였다.

    “이거 아슬아슬하게 안 될 것 같은데?”

    고정민은 손목에 찬 시계를 확인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현재시간은 오후 2시 30분.

    KTX를 타야 하는 가장 가까운 역까지 도착해야 하는 시간은 3시 3분.

    스태프에게 남은 시간은 대략 33분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33분마저 온전한 시간은 아니었다.

    역에 도착해서 티켓을 발행하고 승강장까지 가는 시간을 뺀다면 33분이 아니라 23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구조사님, 시간 맞춰서 갈 수 있을까요?”

    고정민은 노파심에 10분 전에 물었던 질문을 한 번 더 물었다.

    “어… 처음 이야기한 것보다 조금 더 일찍 도착할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제시간에는 못 갈 것 같아요.”

    “…….”

    “그래도 해 볼 수 있는 데까지는 해 보겠습니다.”

    쿵!

    구조사의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고정민은 앰뷸런스 차량 옆면에 머리를 부딪쳤다.

    때마침 구급차가 커브 길에 들어선 것이다.

    구조사도 최대한 빨리 도착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게 느껴져 고정민은 뭐라 말도 못했다.

    묵묵하게 고통을 참아 냈다.

    “구조사님은 계속 안 된다는데 우리, 대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고정민은 체념하듯 중얼거리며 맞은편에 앉은 이믿음을 바라보았다.

    이믿음은 아이스박스를 제 자식처럼 끌어안은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의 혼잣말을 못 들었는지, 못 들은 척하는 건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런 녀석이 인턴 2개월 차라니… 도무지 말이 안 된단 말이지.’

    고정민도 그렇고 조수석에 탄 박원필도 그렇고.

    두 사람은 알게 모르게 이믿음에게 많은 부분을 의존하고 있었다.

    수술이 끝난 후 기상 악화로 헬기가 뜨지 못했던 상황.

    최악으로 치달아 사고가 마비된 상황에서 두 사람을 주도적으로 이끈 사람은 바로 이믿음이었다.

    이믿음은 금방 당황한 감정을 추슬렀다.

    KTX 열차 스케줄을 살피고, 앰뷸런스 배차를 확정하고, 곧바로 심장 이송 계획을 세웠다.

    선택과 행동이 동시에 번개처럼 이루어진 것이다.

    이믿음이 아니었으면 아마 고정민과 박원필은 아직도 자일리 병원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왜냐고?

    주체적인 판단을 할 수 없어 본원의 연락을 하염없이 기다렸을 테니까.

    그리고 그 시간은 아깝게 버려졌으리라.

    ‘이번에는… 이 녀석도 안 되겠지?’

    고정민은 희망의 끈을 붙들고 있는 손아귀 힘이 점점 약해지고 있는 것을 느꼈다.

    에크모를 사용하자는 아이디어로 기증자의 심장을 회복시키고.

    수술 중 탁월한 어시스트 솜씨를 뽐내며.

    재빠른 판단력으로 심장 이송을 지휘한 이믿음.

    고정민은 그런 이믿음이 한 번 더 활약해 주길 기대했지만 현실적으로 활약은 불가능했다.

    그 어떤 위인이나 능력자도 시간을 늘릴 수는 없으니까.

    “선배, 잠깐 아이스박스 좀 들어 주실래요?”

    “어? 어.”

    생각의 고치에서 빠져나온 이믿음이 아이스박스를 건넸다.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변태를 한 것인지 이믿음의 눈빛과 목소리가 좀 전과 달랐다.

    “왜? 아직 해 볼 게 남아 있어?”

    고정민은 아이스박스를 품에 끌어안으며 물었다.

    “네, 진짜진짜 최후의 수단이요. 이게 안 통하면 저도 정말 어쩔 수 없을 것 같아요.”

    “최후의 수단이 뭔데?”

    “그건… 지금부터 보여드릴게요.”

    이믿음이 황급하게 구급차 바닥을 뒤지다가 손에 쥔 것은 휴대폰이었다.

    * * *

    “혹시 역무청장님과 통화를 할 수 있을까요?”

    “…….”

    “네, 신원대학교 흉부외과 의사인데요. 심장 이식이 끝나고 심장을 이송하는 과정에서 기상에 문제가 생겨서요.”

    “…….”

    “급하게 역으로 가는 도중인데 시간을 못 맞출 것 같습니다.”

    나는 현재 목적지로 하고 있는 도시 철도역에서 민원을 담당하는 직원과 통화를 하고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통화라기보다는 내 일방적인 하소연이라고 보는 게 더 확실하겠지만.

    “네, 알겠습니다.”

    역무청장을 바꿔 주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잠시 기다렸다.

    통화가 끊어지는 것도 시간을 소모하는 일이었기에.

    나는 한 손으로는 휴대폰을 꽉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안전 바를 꽉 쥐었다.

    “네 마음은 알겠는데, 그게 정말 될 것 같아?”

    나를 지켜보고 있던 고정민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철도역에서 우리 때문에 열차 시간을 늦춰 주겠냐고. 열차를 이용하는 승객이 얼마나 많은데.”

    “…….”

    “배차 간격 밀리면 그쪽에서도 큰일 나잖아.”

    내가 진행 중인 계획에 고정민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고정민과 의견이 같았다.

    단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한 번 더 필사적으로 손을 허우적거리는 것일 뿐.

    내 계획은 단순했다.

    도시철도에 전화해서 KTX 열차의 출발 시간을 5분만 늦춰 달라는 것이었다.

    운전 중인 구조사와 면밀하게 계산을 해 본 결과.

    오후 3시까지는 어떻게든 역에 도착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적인 답변을 받았다.

    3시 3분에 출발하는 열차가 3시 8분 정도로 늦춰진다면 말이다.

    발권을 하고 미친 듯한 속도로 달려서 열차를 탈 수 있지 않을까.

    현 상황에서 심장 이송을 제시간에 해낼 수 있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어 보였다.

    물론 내 욕심대로 계획이 진행될 거라고 믿지는 않았다.

    내가 하려는 일이 내 욕심 바깥에 있기 때문이다.

    현장은 수술실이 아닌 철도역이었으므로 외과의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그래도… 할 수 있는 건 해 봐야지.’

    나는 약해 쓰러지려는 희망을 간신히 일으켜 세웠다.

    어떻게 해서든 정화를 죽이려고 하는 운명에게 멋지게 한 방을 날리고 싶었다.

    네가 그렇게 방해해도 나는 꿋꿋이 한 아이를 살려 냈다고.

    -전화 바꿨습니다. 역무청장 김혜미입니다.

    중후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에 나는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혔다.

    “소식은 전해 들으셨을 거라 생각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

    “3시 3분 서울로 향하는 KTX의 출발 시간을 5분만 늦춰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이식받을 심장을 2년 동안 병상에서 기다린 한 아이가 있습니다. 그 아이의 목숨과 미래가 달려 있는 일입니다.”

    -…….

    “단 5분이면 그 아이의 목숨을 살릴 수 있습니다. 단 5분이면.”

    -딱한 사연은 잘 알겠어요. 저도 그 아이가 꼭 수술을 받고 건강해지길 바라고 있답니다. 하지만 의사분께서 부탁한 그 5분은 승객들에게도 무척 중요해요.

    역무청장이 처음으로 힘겹게 운을 뗐다.

    우리의 상황은 이해한 듯했으나 부탁을 들어주는 데는 주저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열차 지연으로 생긴 문제와 민원들은 결국 내가 아닌 역무청장을 향할 것이다.

    즉, 내 부탁을 들어주었다가 그녀가 문책이나 면책을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인 것이다.

    그래서 더 강한 화법을 사용할 수가 없었다.

    “승객들에게 방송으로 양해를 구하는 건 어떨까요? 사정을 설명하고 사람을 살리는 5분이라고 방송을 내보내면 승객분들도 너그럽게 이해해 주지 않을까요?”

    나는 역무청장이 피해를 덜 볼 수 있는 방 안을 제시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죠. 시간에 예민한 승객분들도 있으니까요. 저희 쪽에서 일을 해 보시면 아실 거예요. 별의별 승객들이 다 있다는 거.

    역무청장의 철벽 화법에 나는 숨이 턱 막혔다.

    그녀의 심정과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음에도 답답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정화를 살려야 하는데…….

    정화를 살리고 싶은데…….

    헬기를 타고 에크모까지 사용해 가며 간신히 구한 심장을 허혈된 상태로 본원에 들고 가야 한단 말인가?

    나는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저는 제 선택을 역무청장님께 강요할 수 없습니다. 제가 청장님께 말도 안 되는 부탁을 드리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

    “하지만 아무리 매몰찬 승객분들이라도 정화의 이야기를 전해 듣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기꺼이 자신의 5분을 내 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

    “생명을 구한 5분, 천 명이 일으킨 기적. 이런 감동 실화가 현실에서 꼭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

    “세상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하고 잔인한 사건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동화처럼 따뜻한 이야기도 일어나기 마련이니까요.”

    -…….

    “부디 저희 스태프와 환자의 마음을 헤아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긴 연설을 마친 나는 역무청장을 대답을 기다렸다. 무겁고 긴 침묵 속에서 승낙 사인은 좀처럼 나오질 않았다.

    하지만 NO라는 대답이 바로 나오지 않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만족했다.

    설득 초반에는 열차 지연을 시킬 수 없다고 딱 잘라 말했던 역무청장이었으니까.

    “더 이상 부담 드리고 싶지 않으니 통화를 끊겠습니다. 그럼, 이만.”

    나는 먼저 통화를 종료했다.

    세상에는 세 가지 종류의 일이 있다.

    첫째,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일.

    둘째, 내 손으로 할 수 없고 남의 손으로도 할 수 없는 일.

    셋째, 내 손으로는 할 수 없지만 남의 도움을 받으면 할 수 있는 일.

    이번이 바로 세 번째 케이스였다.

    화살은 이미 내 손을 떠나 역무청장과 3시 3분에 탑승할 승객들을 향해 쏘아졌다.

    화살이 과녁에 닿을지, 안 닿을지는 하늘만이 알 것이다.

    * * *

    역무청장실.

    김혜미는 이로 손톱을 물어뜯으며 청장실 내부를 빙빙 돌았다.

    돌다가 시계를 보고 돌다가 다시 손톱 물어뜯기를 반복했다.

    불청객처럼 찾아온 의사들의 전화가 그녀의 마음을 흔들었다.

    기상 악화로 헬기가 뜨지 못하게 되었다.

    KTX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야 하는데 시간을 맞추려면 3시 3분행 열차를 꼭 타야 한다.

    그런데 3시 3분까지 도착할 수 없으니 열차의 출발 시간을 늦춰 달라는 것이었다.

    기존 스케줄대로 열차를 운행하느냐.

    요청받은 대로 5분을 지연시키느냐.

    두 가지 선택지 앞에서 김혜미는 자신이 햄릿이라도 된 것처럼 처절하고 절박한 심정을 느꼈다.

    “청장님, 병원 쪽 사연은 가슴 아프지만 그렇다고 열차 시간을 늦추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보고를 하러 온 부 역무청장 권용광이 의견을 냈다.

    “뭐가 어찌 됐든 책임은 저희가 져야 되는 거 아닙니까? 승객 민원이 곧장 상부로 간다고 친다면… 어휴. 저는 상상도 하기 싫습니다.”

    권용광이 진저리를 치며 말했다.

    “그 사람들은 자기 일이 아니라서 편하게 말하는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얼마나 절박했으면 이런 부탁을 했겠어? 내가 도시 철도에서 일한 지 30년이 됐는데 이런 경험은 처음이란 말이지.”

    “청장님, 마음 약해지시면 안 됩니다. 독하게 생각하세요. 다른 사람 배려하다가 내가 피해를 입는 세상입니다.”

    권용광이 작정한 듯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물론 그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속 편할 것이다.

    열차는 평소대로 출발할 것이며 민원이나 문책 따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테니.

    하지만 가슴속에 존재하는 무언가가 그녀를 자꾸 괴롭혀댔다.

    그것은 한 생명의 목숨을 자신이 빼앗을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일까?

    생명에 대한 존경심일까?

    인간은 본디 착하게 태어났다는 성선설의 발로일까?

    긴 고민 끝에 김혜미는 방송 장치 쪽으로 다가갔다.

    “청장님, 장난치시는 거죠? 설마… 아니겠죠?”

    “덮어놓고 안 된다고 하지 말고 시도라도 해 보자. 일단 양해는 구해 보고 민원이 하나라도 들어오면 그때는 원래 스케줄대로 출발하는 거야.”

    “그거 좋은 생각 같습니다. 병원 쪽 제안을 거부할 명분도 생기니까요.”

    권용광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그녀는 아아, 목을 풀고 마이크를 켰다.

    병원에서 그녀에게로 넘겨졌던 바톤이 이제 승객들을 향해 전해지려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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