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화 제4장 남겨진 것(2)
2층 참관용 수술실.
자일리 병원의 흉부외과 스태프 두 명이 신원대병원 스태프의 심장 적출술을 굽어살피고 있었다.
한 명은 오늘 외래 진료가 없는 교수 이경민.
다른 한 명은 휴가를 낸 이재룡이었다.
“확실히 신원대학교 출신은 다르긴 다르네요. 솜씨가 아주 정교합니다.”
“그거야 당연하지. 저쪽은 환자가 줄을 섰고, 우리 쪽은 애걸해도 환자가 올까 말까니까.”
이경민이 신원대학교 스태프를 칭찬했으나 이재룡은 그 칭찬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수도권 대학병원으로 환자가 쏠리는 현상은 어제오늘 날이 아니었다.
심지어 쏠림 현상은 갈수록 가팔라지고 있었으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지방 병원이 받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지방의 흉부외과는 환자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실력을 키우고 싶어도 환자가 없어서 실력을 키울 수 없는 악순환에 빠져 있었다.
“우리 애들도 환자만 많이 보면 저 정도는 할 수 있어.”
“그런 것도 없지는 않겠지만, 저 친구들은 특히 유별나지 않습니까?”
이경민은 이재룡과는 또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그는 수련 환경을 떠나서 신원대학교 적출팀 스태프의 자질과 재능 자체를 눈여겨보았다.
“아까 이야기를 들어 보니까 신원대학 쪽에서 조교수 1명, 레지던트 3년 차 1명, 인턴 1명이 왔다고 하더군요.”
“심장 적출을 하는데 레지던트하고 인턴을 데리고 왔다고? 신원대학교 사람들, 제정신인가?”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거겠죠. 그만큼 인력이 부족하다는 뜻도 되겠고요.”
대답을 마친 이경민의 시선이 인턴 이믿음에게 머물렀다.
그가 특히 주목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인턴 이믿음이었다.
날짜를 감안하면 2개월 근무를 다 채우지도 못한 인턴이 집도의를 보조하고 있다?
그것도 일반 수술도 아닌 소아 심장 적출 수술을?
그것도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 온 것처럼?
이믿음은 심장 이식 수술 자체를 통달한 것처럼 보였다.
지혈이 필요할 때는 혈관 겸자를, 굵은 조직을 절단할 때는 메이요 시저(Mayo Scissors)를 건넸다.
중간중간 절개창을 세척하거나.
피를 빨아들이거나.
거즈를 사용하는 자잘한 처치 또한 예술이었다.
얼핏 들리는 이야기로는 기증자가 심정지를 일으켜 급하게 응급 처치를 하던 당시.
에크모를 사용하자고 주장한 사람이 이믿음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이 녀석이 말로만 듣던 천재인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 정도로 우수할 수 있지?
이믿음의 압도적인 실력에 이경민은 압도당해 버렸다.
이믿음 같은 똘똘한 인재가 자기 밑에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욕심도 품었다.
환자가 됐든, 스태프가 됐든 병원은 사람이 자산이 되는 곳이니까.
“집도의 옆에서 어시스트하는 친구는 나도 마음에 드는군. 어시스트가 빠릿빠릿하면서도 꼼꼼하단 말이지.”
이재룡 역시 이믿음의 어시스트 능력을 알아보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낭중지추.
주머니 속의 송곳은 숨겨도 튀어나오기 마련이었다.
“뭐가 어찌 됐든 다행 아닙니까? 기증자의 심정지도 잘 처리했고, 수술도 무사히 진행 중이니까요.”
“…….”
“박정렬 교수라면 심장 이식 마무리도 잘 지을 테고요.”
“암, 그렇고말고. 박 교수라면 걱정할 것 없지.”
두 사람은 한시름을 덜고 참관용 수술실을 떠나려고 했다.
혹시나 모를 응급 상황에 대비해서 심장 적출술을 지켜보고 있었다.
무난하고 평화롭게 적출술이 끝나고 있으니 더 지켜볼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교… 교수님, 큰일 났습니다.”
레지던트 한 명이 황급하게 참관용 수술실로 뛰어 들어왔다.
“왜? 응급 환자라도 왔어?”
“아니요, 지금 심장 적출을 하는 신원대학교 팀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뭔 소리야? 우리가 계속 수술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레지던트의 급박하면서도 괴상한 이야기에 이경민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사실은…….”
레지던트의 말을 끝까지 듣고서 이경민은 입술을 벌린 채 헛바람을 토해 냈다.
기증자의 심정지보다 더한 악재가 터지고 말았다.
* * *
심장 적출술은 고작 40분 만에 종료되었다.
정중흉골 절개술 이후
상대정맥, 대동맥, 폐동맥, 하대정맥 순으로 혈관을 자르는 것이 심장 적출술의 요지였다.
단, 이때 좌심방은 일체 손을 대지 않아야 했다.
‘이 정도면 만족스럽네.’
어시스트가 끝날 무렵 나는 뿌듯함을 느꼈다.
조교수와 레지던트 3년 차, 마지막으로 인턴.
이 세 명의 열약한 조합으로 심장 적출술을 펼친다면 최소 2시간 정도는 필요했다.
그런데 내가 실력 봉인을 해제한 채 어시스트를 하자 그 시간이 대폭 단축되었다.
심장 적출 시간의 단축.
이는 심장 이식 수술의 성공률을 높여 주는 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었다.
수술이 빨리 끝나면 빨리 끝날수록 심장의 부담이 덜하기 때문이다.
기증자의 심장은 심정지로 한 번의 우여곡절을 겪었다.
거기에 수술 시간의 연장으로 인공 심폐기 사용까지 길어진다면 또 다른 문제가 터질지도 몰랐다.
“믿음아, 너 인턴 맞니? 치프가 어시스트 하는 것보다 네가 하는 게 훨씬 나은 것 같다?”
수술이 마무리될 무렵 박원필 교수가 혀를 내두르며 물었다.
고정민도 말만 안 했을 뿐이지 아까부터 내게 감탄만 하고 있었다.
“그게… 의대 다닐 때부터 양 교수님께 특별 과외를 받았습니다.”
“…….”
“개인 병원 수술실에서 집도 연습도 해 봤습니다.”
나는 의대 시절에 겪었던 수련 과정을 짧게 요약해서 전달했다.
“아… 최근에 흉부외과에 복귀하신 양순재 교수님 이야기하는 거지?”
“네.”
“양 교수님이 어린 제자를 키우고 있다는 소문이 돌긴 했는데… 그게 너였구나. 그렇다면 어느 정도 말이 되는데, 그래도 놀랍구나.”
박원필은 한동안 내 칭찬을 늘어놓았다.
어시스트가 워낙 출중해서 수술 시간이 대폭 줄었다는 것이다.
칭찬을 마다할 사람은 없는지라 나 역시 기뻤다.
전생과는 달리 정화를 무사히 살릴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더 기뻤다.
비록 다른 때보다 고생을 하긴 했지만 이번에도 정해진 운명을 바꾸는 데 성공했구나.
내 회귀는 헛된 것이 아니었구나.
“조심해서 옮겨. 떨어트리면… 알지?”
“네, 교수님.”
박원필이 내게 기증자의 심장을 건넸다.
작고 붉은 심장.
굵직굵직한 혈관이 잘려 있지만 아직은 건강하게 요동치고 있는 심장.
우리는 이 소중한 심장을 얻기 위해 헬기를 타고 대구까지 날아왔다.
그리고 이 소중한 심장은 몇 시간 뒤 정화의 가슴에서 새로운 보금자리를 얻게 될 것이다.
나는 박원필이 건넨 심장을 조심스럽게 아이스박스에 담았다.
냉동 및 충격 완화 포장재를 확인한 뒤 박스를 닫았다.
턱.
“다들 고생했다. 돌아가자, 집으로.”
박원필의 나지막한 한마디에 나는 괜히 가슴이 울컥했다.
* * *
기증자와 수혜자.
신원대학교 병원 스태프와 자일리 병원 스태프.
서로 다른 입장에 처한 사람들이 써 내려간 감동의 드라마는 채 몇 분도 지속되지 못했다.
수술 복장을 후련하게 벗어 던지고 수술실을 나왔더니, 예상치 못한 날벼락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기, 아무래도 돌아가실 때 다른 교통편을 알아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갑자기 기상 악화가 돼서 헬기가 못 뜨게 됐어요.”
현지 스태프의 말에 우리는 망부석처럼 그 자리에 굳었다.
분명 기상청의 일기 예보는 오늘 하루 종일 날씨가 맑다고 했다.
헬기를 타고 오는 동안 우리는 특별한 징후를 느끼지도 못했고.
그런데 갑자기 기상 악화라고?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나는 허겁지겁 창가 쪽으로 이동했다.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이 펼쳐지고 있었다.
호수처럼 맑았던 하늘이 어느새 잿빛으로 변해 있었고, 창문을 살쩍 열어 보니 가운이 휘날릴 만큼 강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나는 변해 버린 날씨를 원망하며 하늘을 노려보았다.
하늘은 끝내 정화를 죽일 생각이란 말인가.
심장 이식 수술을 얼마나 더 괴롭혀야 속이 후련하단 말인가.
“야… 이건 안 되겠는데?”
내 곁으로 다가온 고정민이 날씨를 확인하고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네가 포기하면 끝이야. 정신 차려, 이믿음.’
좌절에 빠진 것도 잠시뿐.
나는 금방 용기와 기운을 되찾았다.
이번 수술의 유일한 변수는 나였으므로 변수인 내가 행동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됐다.
심술궂은 하늘이 정화를 데려가도록 허락하지 않으리라.
“소방청에 연락해 보신 거죠? 헬기는 정말 안 되는 겁니까? 20, 30분 정도 있다가 날씨가 잠잠해지면 뜰 수도 있잖아요.”
나는 현지 스태프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소방청에서 말하길 기상 악화가 당분간 계속될 거라고 하더라고요.”
“…….”
“헬기가 뜨려면 최소한 서너 시간은 지나야 할 거라고…….”
죄 없는 현지 스태프가 미안해하며 알고 있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그럼 어쩔 수 없네요. 다른 방법을 찾는 수밖에…….”
나는 깔끔하게 헬기를 포기했다.
아이스박스에 담긴 심장은 적출한 시점으로부터 4시간 안에 수혜자에게 이식이 되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심장에 허혈이 생기면서 이식을 하더라도 제 기능을 못할 확률이 컸다.
헬기를 못 탄다면 앰뷸런스랑 KTX를 이용하는 것밖에 도리가 없다는 건데…….
“저기, 컴퓨터 좀 써도 될까요?”
“물론이요. 이쪽으로 오세요.”
나는 현지 스태프와 함께 수술실로 복귀했다.
날씨를 보며 망연자실하고 있던 고정민도.
본원과 통화 후 잠깐 대기하라는 전화를 받은 박원필이 어느새 내 쪽으로 합류했다.
기껏 적출한 심장을 본원으로 이송할 수 없는 상황.
우리의 표정은 어두웠고, 우리의 분위기는 무거웠다.
“이믿음, 뭐하게?”
“일단 가장 가까운 KTX역 시간표를 확인할 생각입니다.”
고정민의 질문에 나는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 나갔다.
“엠뷸런스를 타고 가장 가까운 KTX 역으로 이동한 다음, 서울에 도착해서 다시 앰뷸런스를 타고 본원에 도착하는 게 가장 빠를 것 같습니다.”
“헬기를 못 타면 그게 제일 낫긴 하겠네.”
박원필이 내 주장에 힘을 보태 주었다.
“그럼 서울로 가는 KTX 노선 중에 제일 빠른 게 언제인지 확인해 봐.”
“네.”
나는 홈페이지에 접속한 뒤 해당 노선을 검색했는데, 서울로 가는 가장 빠른 노선이 30분 뒤에 있었다.
“선생님, 앰뷸런스 타고 역까지 가는 데 얼마나 걸릴까요?”
“미친 듯이 밟아도… 30분 안에는 못 갈 것 같은데요?”
현지 스태프의 말이 내 뒤통수를 묵직하게 때렸다.
우리는 30분 뒤에 출발하는 KTX를 반드시 타야 했다. 그래야만 4시간 안에 본원에 심장을 전달할 수 있었다.
“교수님, 일단 이동해야 할 것 같습니다. 미친 듯이 밟는 게 아니라 미쳐서 밟으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요?”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구나. 가자.”
박원필이 내 의견에 동의하면서 결론이 났다.
KTX 표를 예매함과 동시에 우리는 번개처럼 본관 1층으로 달려갔다.
대기 중이던 앰뷸런스에 몸을 싣고 가장 가까운 KTX역으로 향했다.
“구조사님, 무조건 3시 3분까지 도착해야 합니다. 죄송한데 신호 무시하고 막 밟아 주세요.”
“그렇게 해도 시간은 못 맞출 것 같은데요? 날씨가 안 좋아서 도로에 차도 많아서…….”
운전 중인 응급 구조사 역시 현지 스태프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여정이 쉽지 않을 것임을 전했다.
하지만 어쩌랴.
심장을 제시간에 운반하기 위해서는 단 하나의 방법밖에 없는 것을.
“무리한 부탁이라는 거 알지만 최대한 노력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위이이이잉.
사이렌 소리와 함께 도로를 질주하는 앰뷸런스에 가속도가 붙었다.
커브를 돌 때마다 몸이 안과 바깥으로 극심하게 쏠릴 지경이었다.
1초가 아쉬운 상황에서 나는 기증자의 심장이 담긴 아이스박스를 힘껏 품에 안았다.
시간에 쫓긴다 한들 우선순위를 잊을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