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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살부터 의사 생활-116화 (116/257)
  • 116화 제4장 남겨진 것(1)

    “뭐? 에크모를 사용해 보겠다고?”

    휴대폰을 들고 있는 박정렬의 목소리가 한층 커졌다.

    지금으로부터 10분 전, 박정렬은 심장 이식 적출을 위해 대구로 떠난 적출팀에게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기증자의 심장이 심정지를 일으켜 응급 처치를 받고 있다고 들었다.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것처럼 참담하고 끔찍한 기분이 몰려왔다.

    3살 때부터 확장성 심근병증으로 고생한 심정화.

    그 가여운 아이에게 이제야 새로운 삶을 줄 수 있겠다고 기대했다.

    그런데 이리도 갑작스럽게 심정지가 찾아오다니…….

    심정지를 일으킨 심장을 정화에게 이식하는 수술이 과연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이를 두고 수술을 준비 중인 스태프 사이에서 말이 많았다.

    일부는 아쉽지만 수술을 포기하는 게 좋겠다는, 강경한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그 때문일까.

    수술을 고집했던 박정렬마저 기세가 차차 꺾이고 있었다.

    정화에게 건강한 심장을 이식해 주고 싶었는데…….

    그게 불가능하다면 심장 수술을 안 하느니만 못한 게 아니냐.

    이런 생각이 자꾸 그를 괴롭혔다.

    고인가?

    스톱인가?

    깊어 가는 고민 속에 적출팀과 이식팀 스태프가 그의 결정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었다.

    제3의 길이 있으면 좋으련만.

    돌아가거나 도망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며 좋으련만

    잔인하게도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선택해야 했다.

    이쯤 되면 스태프의 의견을 묻는 일도 우스운지라 박정렬이 리더답게 결론을 내려야 했다.

    갈팡질팡하는 마음.

    얼마 남지 않은 짧은 심지처럼 타들어 가는 마음.

    박정렬이 마음의 길 속에서 헤맬 때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적출팀의 박원필 교수 전화였다.

    에크모를 사용해 기증자의 심장을 회복시키겠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싶었다. 겨울에 더위를 먹었나 싶었다.

    뇌사 기증자에게 굳이 에크모를?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봤더니 일리가 있었다.

    에크모란 기계 자체가 심장의 기능을 대신하는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에크모가 작동하는 동안.

    심장이 충분하게 휴식을 취한다면 심정지가 온 기증자의 심장도 빠르게 회복될 가능성이 높았다.

    어디까지나 이론상으로는.

    “최후의 방법으로 시도해 볼 수는 있겠지만… 아무래도 검증이 안 된 방법이라 우려가 되긴 합니다.”

    “…….”

    “특히 정화처럼 위독한 아이에게 검증되지 않은 방법을 쓰는 건 꺼림칙하죠.”

    박원필은 본인이 주장한 에크모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박정렬은 그 사실에 의문을 품었다.

    “지금 자네 입으로 자네 처치를 부정하는 건가? 그럴 거면 뭣 하러 내게 이야기하는 거지?”

    “그게… 사실은 에크모는 제가 아니라 이믿음 입에서 나온 겁니다.”

    “이믿음?”

    예상치 못하게 튀어나온 이름이 박정렬을 놀라게 만들었다.

    이믿음이라면 그가 전부터 눈여겨보고 있던 인턴이긴 했다.

    하지만 고작 인턴 주제에 에크모의 색다른 응용법을 떠올렸다는 사실은 믿기 힘들었다.

    수학으로 비유를 하자면.

    초등학생이 대학교의 수학 문제를 푼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네, 그냥 본인 생각인데 혹시나 도움이 될까 해서 말해 봤다고 합니다.”

    박원필이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교수님, 죄송하지만 슬슬 결정을 내려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기증자를 저희만 보고 있는 것도 아닌지라…….”

    박원필의 은근한 독촉에 박정렬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도 알았다.

    더 이상은 물러날 장소가 없다는 사실을.

    수술을 하든, 안 하든 딱 부러지게 결정한 뒤 뒤를 돌아보지 않고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마음이 가는 대로 가라.

    그리고 그 길을 선택한 것을 책임져라.

    그러면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다.

    수련하던 시절, 은사가 해 주었던 말을 되뇌며 박정렬은 입을 뗐다.

    “그쪽 병원 스태프에게 이야기해서 에크모 치료 시작해.”

    “저… 정말 에크모를 쓰실 겁니까?”

    박정렬의 급진적인 의견에 박원필이 깜짝 놀란 목소리로 되물었다.

    “물에 빠졌으면 지푸라기라도 잡아야지. 임상 데이터는 없지만 이론상으로 봤을 때 치료 기전에 타당성은 충분하고.”

    “…….”

    “에크모 치료하고 심장이 정상화되면 곧바로 적출 수술에 들어가도록.”

    박정렬은 세부적인 지시를 내리고 통화를 끊었다.

    “…….”

    “…….”

    회의실에서 통화를 엿듣고 있었던 스태프들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저 박정렬의 눈치만 살필 뿐이었다.

    -이거 잘하는 거 맞습니까?

    -우리 제대로 가는 거 맞습니까?

    …라고 스태프들의 눈은 그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잘난 박정률이라고 해도 이번만큼은 자신의 선택을 장담할 수 없었다.

    상황이 워낙 급박하고 배배 꼬여 버렸으니까.

    고심 끝에 에크모와 심장 수술을 선택한 박정렬.

    그는 가까운 의자에 털썩 앉아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자신이 책임져야 할 것들을 묵묵히 기다리기 시작했다.

    * * *

    “이야, 진짜 효과가 있는 모양인데?”

    박원필이 수술실에 들어갔다가 나오면서 한마디 했다.

    박원필의 혼잣말에는 단어와 논리가 듬성듬성 빠져 있었지만 나는 그 속에 숨은 것들을 전부 읽어 낼 수 있었다.

    (에크모가 별 효과가 없을 줄 알았는데), 이야 진짜 (심정지에) 효과가 있는 모양인데?

    아마 이런 느낌 아니었을까.

    ‘당연히 효과가 있지. 몇 년 뒤에 다 검증이 될 정보인데.’

    에크모의 활용법을 200퍼센트 알고 있는 나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자세히 따져 보면 나와 스태프들은 똑같이 긴장하고 있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달랐다.

    스태프들은 에크모의 안정성을 걱정했으며.

    나는 수술이 중단될 것을 걱정했다.

    결과적으로 현재까지 해피엔딩으로 향하고 있긴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1시간 전.

    박원필의 전화를 받은 박정률이 에크모 사용과 수술 강행 의지를 밝혔다.

    기쁘게도 내가 의도했던 시나리오대로 수술이 진행된 것이다.

    이에 박원필이 현지 스태프에게 에크모 사용을 권했다.

    “에크모를요? 뇌사 심정지 환자에게요?”

    현지 스태프들 역시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에크모가 필요한 이유를 대자 납득하며 에크모 치료를 시작했다.

    그렇게 30분이 지나고, 1시간이 지나고.

    기증자의 심장 상태는 빠른 속도로 회복되었다.

    마치 심정지를 겪은 적이 없었던 것처럼.

    심초음파와 심전도, 혈액 검사상에서 어떠한 이상 수치가 발견되지도 않았다.

    길고 길었던 기다림 속에서 간신히 심장 적출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믿음, 너 모처럼 한 건 했다? 인턴이 에크모를 알고, 끝내주는 에크모 응용법까지 떠올리고?”

    박원필이 희죽 웃으며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처음에는 에크모 사용에 회의적인 그였지만 결과가 좋으니 생각이 바뀐 모양이었다.

    그새 나를 칭찬하는 걸 보면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박원필이 모자라거나 줏대가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이 시대에 심장 회복을 위해 에크모를 사용하는 일은 없었으니까.

    본래 새로운 시도에는 불신과 저항이 따르기 마련이었으니까.

    “그냥…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 그 운으로 심장 적출까지 깔끔하게 끝내고 복귀하자. 들어와.”

    우리는 나란히 수술실로 입장한 뒤 수술 준비에 나섰다.

    벅. 벅. 벅.

    베타틴 용액이 묻은 뻘건 솔로 손가락과 팔뚝을 문질렀으며 수술 가운과 수술 장갑, 마스크, 루뻬(광학안경) 등을 차례대로 착용했다.

    지이이잉.

    수술방 문이 열리고 천장에서 소독 가스가 뿜어졌다.

    에어샤워까지 마치고 난 후에야 우리는 수술방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서울에서 대구까지 헬기를 타고 날아온 다음.

    또 초조하게 1시간가량을 기다렸다가 간신히 심장 적출술을 할 수 있게 된 상황.

    그 길고 고된 과정 때문에 오히려 나는 독기를 품었다.

    지나온 모든 것을 물거품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

    ‘할 수 있어, 분명히.’

    나는 스스로를 다독였다.

    정화 심장 수술은 본궤도를 몇 번 벗어났지만 이내 곧 제자리를 찾았다.

    변수인 나의 존재 때문이었다.

    이식 수술의 찬성과 반대가 나뉜 상황에서 나와 김준호가 각각 한 표를 행사하며 수술이 속행되었다.

    뇌사자의 심장이 심정지를 일으켰지만 에크모로 회복되었다.

    무엇보다 가장 불안했던 요소인 박원필 역시 지금은 듬직해 보였다.

    헬기에서 내린 직후.

    바로 수술을 했다면 그는 고소 공포증의 후유증으로 적출 도중 실수를 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본의 아니게 수술이 1시간 미뤄지면서 박원필은 본래 컨디션을 되찾았다.

    즉, 더 이상 심장 적출술을 가로막을 장애물이 없는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완벽한 심장 이식 수술을 위해 결승점으로 골인하는 것뿐이었다.

    “바로 진행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심장 상태는 안정적이고요. 마취도 확인했습니다.”

    “네, 고생 많으셨습니다. 나머지는 맡겨 주시죠.”

    인사와 함께 현지 스태프와의 교대가 이루어졌다.

    박원필은 집도의 위치에.

    고정민은 제1 보조의 위치에.

    나는 박원필 곁에서 박원필을 보조하는 제2 보조의 역할을 맡았다.

    박원필은 현지 스크럽 간호사가 돕게 되었다.

    본격적인 수술에 앞서 우리는 수술대에 누운 아이에게 묵념하는 시간을 가졌다.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로 뇌사에 빠진 아이.

    그 숭고한 희생으로 다른 아이들에게 희망이 되어 줄 아이에게 애도를 표했다.

    이윽고 스크럽 간호사가 수술 부위를 소독하고 방포를 덮었다.

    수술 준비 완료였다.

    “지금부터 뇌사자에 대한 심장 적출술을 시작하겠습니다. 10번 블레이드.”

    박원필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수술실에 퍼졌다.

    나는 스칼펠에 10번 블레이드를 끼워 박원필에게 건넸다.

    무영등을 반사하며 메스가 날카로운 빛을 흩뿌렸다.

    스으으으윽.

    메스가 수술포 사이로 드러난 환부 위를 미끄러졌다.

    살갗이 동물 가죽처럼 부드럽게 찢어지면서 붉은 핏방울이 맺혔다.

    심장 적출을 위해 펼쳐진 절개술은 정중흉골 절개술이었다.

    가슴 중앙에 세로로 절개창을 내고 이를 좌우로 벌려서 수술 시야를 확보하는 절개술이었다.

    위이이잉.

    위이이잉.

    피부와 근막 절개를 마치자 복숭아뼈 같은 흉골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고정민을 도와 전기톱으로 흉골을 반으로 갈랐다.

    사방으로 뼛가루가 튈 때는 이리게이션(세척)을 하기도 했다.

    흉골 절개를 마친 뒤에는 리트랙터(견인기)를 좌우로 벌려 피부에 고정했다.

    적출은 아직까지는 순조롭고 무난했다.

    아마 수술이 끝날 때까지도 이 분위기가 지속될 것이라고 나는 믿었다.

    박원필은 실력 있는 서전이었고.

    고정민도 적출팀에 호출을 받을 만큼 감각이 있는 레지던트였다.

    나야 비록 인턴의 탈을 썼다만 심장 및 폐·식도외과의 교수급 지식과 솜씨를 가진 사람이고.

    적출이 무사히 끝난다면 바톤은 본원에 있는 이식팀에게 넘어갈 텐데…….

    그쪽은 박정률이 있어서 안심이었다.

    심장 내과와 잘 상담해서 면역 거부 반응만 잘 억제할 수 있다면 정화는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으리라.

    지금까지 고생을 많이 했으니 지금부터는 좀 편안히 갔으며 좋으련만…….

    “기사님, 인공 심폐기 좀 연결해 주세요.”

    “네, 갑니다.”

    내 부름에 대기 중이던 인공 심폐기사가 수술대 앞으로 다가왔다.

    쿵!

    드르르륵.

    인공 심폐기사가 인공 심폐기를 연결하자 묵직한 소음이 수술방을 뒤덮었다.

    “슬슬 속도를 내지. 이믿음, 지금부터는 너도 정신 바짝 차려.”

    “네, 교수님.”

    나는 씩씩하게 대답하며 박원필이 다음에 사용할 혈관 겸자를 미리 준비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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