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화 제3장 심장으로(5)
외래에서 소아 심장 진료를 보며 집도도 하고 있는 조교수 박원필.
레지던트 3년 차 고정민.
두 명의 스태프와 나는 별관으로 이동 중이었다.
4월 중순의 하늘은 푸르고 맑았다.
구름은 어디로 갔는지 다 숨었고, 바람 한 점 불지 않았다.
헬기를 타고 날아가기에 좋은 날씨였다.
일기 예보에 따르면 오늘 저녁까지 기상이 나빠지는 일은 없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하늘마저 정화의 수술이 잘되기를 기도해 주고 있다고 믿었다.
심장을 적출하기 위해 이동한다고 해서 특별히 챙겨야 할 물건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필요한 물건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내 손에 들린 심장 보관용 특수 아이스박스.
“너 수전증 있거나 다한증 있는 거 아니지?”
앞서가던 고정민이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의 시선이 아이스박스를 들고 있는 내 손에 머물렀다.
“네, 없습니다.”
“지금은 괜찮은데 심장 적출하고 나면 정신 바짝 차려라. 전후 좌우 살피고, 걸음 조심하고.”
“명심하겠습니다.”
나는 사뭇 비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동시에 엄청나게 중요한 일.
그 모순적인 일이 바로 내가 맡은 일이었다.
적출된 심장을 운반하는 일 말이다.
심장의 무게가 300그램이고.
아이스박스의 무게가 3킬로이니 둘을 더한다고 무게가 급격히 늘어나는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박스를 드는 일 자체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박스를 놓치거나 떨어트리는 실수가 발생한다면?
그 결과는 치명적이었다.
기증자와 수혜자와 의료 스태프 전체가 피눈물을 흘리게 된다.
소중한 심장 이식 수술의 기회를 아주 허망하게 날려 버릴 테니까.
실제로 드물지만 해외에서 비슷한 사례가 발생한 적이 있었다.
적출한 심장을 든 스태프가 바닥에 미끄러지면서 박스를 손에서 놓치고 만 것이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었다는 후일담이 들려왔지만 타인에게 찾아온 축복이 우리에게도 온다는 보장은 없었다.
축복은 찾아오는 것이지 붙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
“…….”
헬기장으로 향하는 내내 별다른 대화는 없었다.
처리해야 하는 일이 워낙 중요했던 데다가 필요한 정보는 출발 전에 이미 나눴기에.
별관에 도착한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까지 이동했다.
두두두두.
이·착륙장에는 벌써 헬기가 도착해 있었다.
프로펠러가 회전할 때마다 거센 바람과 고막이 찢어질 듯한 소음이 들려왔다.
그러고 보니 나도 헬기를 타는 건 이번 생이 처음이었다.
그동안 쭉 헬기를 타고 온 환자를 치료하기만 했을 뿐.
회귀를 한 나의 인생은 어쩐지 점점 더 화려하고 웅장해지고 있었다.
“하… 죽겠네.”
박원필이 고개를 숙인 채 혼잣말을 던졌다.
자칫 프로펠러 소리에 묻혀 못 들을 소리를 나만 들은 것 같았다. 고정민은 아무 생각이 없어 보였다.
“교수님,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나는 교수에게 다가가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
“과장님 앞에서는 말씀을 못 드렸는데, 고소 공포증이 있어서 말이야. 벌써부터 다리가 떨리는군.”
공포스러운 상황이 되자 박원필이 의외로 속내를 쉽게 고백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박원필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 것 같기도 했다.
‘이것도 하나의 암시인가?’
수술이 실패할 것을 알았기에 나는 사소한 정보 하나 쉽게 넘길 수가 없었다.
고소 공포증이 있는 박원필.
헬기에서 내린 그가 심장을 적출하던 도중 구토 및 어지럼증으로 실수를 한다?
충분히 펼쳐질 수 있는 시나리오였다.
다만 이 문제는 내가 어떻게 해결할 도리가 없다는 게 문제였다.
박원필이 심장 적출을 할 때 최대한 유심히 지켜보다가 실수를 하지 않도록 막는 것이 최선일 듯싶었다.
“여러분, 빨리 오세요!”
우리가 옥상 출입구 앞에서 머뭇거리자 헬기 기장과 부기장이 크게 손짓을 했다.
나는 고정민과 박원필을 부축하며 헬기로 이동했다.
부기장의 지시에 따라 조끼와 헬멧 등을 착용했다.
“출발합니다.”
두두두두두.
안전 장비 착용이 끝나자 헬기가 하늘을 날았다.
프로펠러의 소음은 여전했으며 헬기 내부의 진동은 더욱 심해져 가만히 있어도 몸이 떨릴 정도였다.
고도가 높아지자 서울의 도심 풍경이 장난감처럼 앙증맞게만 보였다.
고정민은 신기하다는 듯 창밖을 내려다보았으며.
박원필은 좌석 등받이에 허리를 기댄 채 눈을 꼭 감았고.
나는 그런 박원필의 안색을 살피고 있었고.
박원필이 심장 적출 수술의 구멍이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물씬 풍겼지만 그를 탓할 수는 없었다.
심장 이식 수술이 워낙 급하게 잡혔던 데다가.
오늘 수술 스케줄이 없는 사람은 공교롭게도 박원필뿐이었다.
이런 급박하고 여유 없는 상황에서 박원필이 고소 공포증 때문에 심장 적출을 못하겠다고 말할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일이었다.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없어도 해야 하는 것.
그것은 외과의가 타고난 숙명 중 하나였다.
‘일단 위험 요소 하나는 파악했어. 모르고 맞는 것보단 알고 얻어맞는 게 나을지도 모르지.’
정화의 소아 심장 수술이 실패하는 이유.
그 이유를 적은 리스트에 나는 박원필의 이름을 올리고 해결 방안을 골똘히 모색했다.
생각에 빠지자 헬기 내부의 소음이 들리지 않았다.
* * *
확실히 하늘의 길은 땅의 길보다 빨랐다.
우리는 심장 기증자가 대기 중인 대구의 한 병원 근처까지 순식간에 날아갔다.
차창 아래로 보이던 산과 바다는 사라지고 어느새 도심의 풍경이 하나둘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드디어 결전의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헬기는 기증자가 있는 병원 인근의 초등학교 운동장에 착륙했다.
우리는 미리 대기 중이던 병원 엠뷸런스를 타고 기증자의 병원으로 이동했다.
“교수님, 괜찮으십니까?”
“이제부터 괜찮아지겠지.”
내 걱정 섞인 질문에 박원필이 힘겹게 대답했다. 헬기에서 내리고 난 다음에는 그나마 기운을 차린 모습이었다.
전생처럼은 안 될 거니까.
현장에 내가 있으니까.
기증자의 병원으로 이동하는 내내 나는 속으로 그런 말을 되뇌었다.
수술 성공을 위해 내 자신에게 거는 주문이었다.
병원에 도착한 우리는 이쪽 흉부외과 스태프의 안내를 받아 수술실로 이동했다.
대구 자일리 병원은 거점 병원으로 흉부외과를 갖추고 있는, 몇 안 되는 곳이었다.
“간단하게 설명부터 드리겠습니다.”
이동하는 중 현지 스태프에게 환자에 관한 브리핑을 들었다.
기증자의 이름은 권혜미.
정화와 같은 6세 여아로 교통사고로 인한 뇌사에 빠졌다고 했다.
만취한 운전자가 혜미의 가녀린 몸뚱이를 들이받아 버린 것이다.
뇌사 판정을 받은 지는 3개월째.
혜미의 부모는 눈물을 머금고 아이의 회복 가능성을 포기했다.
대신 그 가능성을 다른 아이에게 물려주기로 결정했다.
바로 장기 기증을 통해서.
“정말 다행입니다. 이렇게 나이와 성별과 혈액형이 다 들어맞기란 쉽지 않은데. 정말 기적 같은 일이네요.”
설명을 마친 현지 스태프가 감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 역시 동감하는 바였다.
그래서 수술을 미루지 말고 바로 진행해야 한다는 쪽으로 투표를 했고.
하지만 수술에 성공하기 전까지 내 주장은 옳은 것이 아니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은 단 하나뿐.
바로 결과였다.
수술 후 정화가 건강하다면 내 판단은 옳은 것이다.
하지만 수술 도중이나 수술 후에 문제가 생기면 내 판단은 그른 것이 된다.
인간의 인생이 삶과 죽음으로 나뉘어 있는 것처럼 흉부외과 수술도 두 가지로 나뉘어 있었다.
성공과 실패.
그 중간에 애매한 제3 지대 따위는 없었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수술실에 들어서자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터진 분위기였다.
“혜미 환자에게 심정지가 왔습니다. 급하게 응급 처치 중이에요.”
“네? 뇌사 환자에게 심정지가요?”
현지 스태프가 깜짝 놀라 되물었다.
놀란 건 나와 박원필, 고정민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셋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서로의 표정을 살폈다.
뇌사 환자의 심정지는 지극히 드문 케이스였다.
문제는 심정지를 일으킨 기증자의 심장을 수혜자에게 이식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는 것이었다.
심장 이식 수술의 목적 자체가 본래 건강한 심장을 이식하고 이식받는 것이었으니까.
“말도 안 돼, 오늘 아침에 한 검사에서 아무 이상도 없었는데. 죄송하지만 잠깐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현지 스태프가 수술 복장과 스크럽을 하고 수술방으로 뛰어들어 갔다.
“교수님, 제가 박정렬 교수님께 연락드릴까요?”
“내가 직접 할게.”
박원필이 착잡한 표정으로 수술실을 나와 휴대폰을 들었다.
나와 고정필도 그의 뒤를 따라 그의 모습만 뚫어져라 응시했다.
“세상에, 이건 또 무슨 경우야? 기껏 헬기 타고 날아왔더니 기증자 심장이 문제네.”
“…….”
“아무래도 마(魔)가 낀 것 같다.”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정화의 수술이 실패하는 이유가 박원필의 컨디션 때문이라 생각하고 있었거늘, 의외의 복병이 하나 더 숨어 있었다.
설마 기증자 쪽에서 문제가 터질 줄이야.
‘방법이 없는 건 아닌데…….’
나는 이식 수술이 중단될까 봐 전전긍긍하며 박원필을 바라보았다.
심정지를 겪었던 환자의 심장을 이식하는 건 분명 위험한 일이었다.
2005년도의 흉부외과 상식으로는.
하지만 나중에는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탄생하고야 말았다.
‘그것’을 사용하면 심장의 회복을 도울 수 있었다.
나는 슬슬 내가 나서서 이 상황을 정리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교수님, 박정렬 교수님께서는 뭐라고 하시나요?”
나는 통화를 끊은 박원필에게 다가가 물었다.
뜻밖의 비보를 들은 박원필의 표정은 밤하늘처럼 어두웠다.
“빨리 회의를 진행하고 답변을 주신다고 하더구나. 본원 쪽에서도 섣불리 결론을 못 내리는 모양이야.”
“제가 감히 교수님께 이런 말씀을 드려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에크모를 사용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에크모?”
“네, 원리상 에크모를 사용하면 환자의 회복이 빨라지지 않을까 싶어서요.”
나는 차분하게 설명에 나섰다.
에크모는 체외막 산소 공급 장치라 불리는 기구로, 훗날 메르스 치료에 사용되면서 그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다.
환자와 연결 시 에크모는 환자의 심장과 폐의 기능을 대신해 준다. 그만큼 환자의 폐와 심장이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 주는 것이다.
전생의 나 역시 에크모의 덕을 톡톡히 봤다.
정화와 비슷한 케이스.
그러니까 기증자의 심장에 문제가 생겨서 수술 진행이 가로막혔던 케이스를 무사히 해결했다.
문제는 미래에서는 당연한 해결책이 현시점인 2005년에서는 상당히 급진적인 의견이라는 점이었다.
뇌사 환자에게 급성 심정지가 왔다고 에크모를 사용한다?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였다.
“발상 자체는 나쁘지 않은걸?”
박원필이 납득이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심장 회복을 위한 에크모 사용은 먼 미래에 교과서처럼 여겨질 테니까.
“확실히 해 볼 만한 시도이긴 한데, 아직 검증이 안 됐다는 게 문제 같구나. 우리가 에크모 효능을 검증하기 위해 이 자리에 온 것도 아니고.”
“수술이 목적이라면 수술에 필요한 일은 물불 가리지 않고 다 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박원필의 심사를 건드리지 않는 한에서 에크모 사용의 정당성을 최대한 어필했다.
정화를 살리고 혜미를 살릴 수 있는 길은 이것뿐이었다.
“정 꺼림칙하시다면 교수님이 박정률 교수님께 말씀이라도 한 번 드려 봐주시면 안 될까요?”
“에크모에 관해서?”
“네, 부탁드립니다.”
나는 에크모 설득의 방향을 박정률로 틀었다.
열혈 닥터 박정률이라면 신기술을 펼치는 데 망설임이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