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살부터 의사 생활-114화 (114/257)

114화 제3장 심장으로(4)

그 날 저녁.

정규 수술 스케줄을 마친 나는 정화의 병실로 향하고 있었다.

돌이켜 보면 정화가 내일 심장 이식 수술을 받는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어제저녁 갑자기 걸려 온 이식 센터의 전화.

오늘 아침 수술 찬반을 놓고 벌인 투표 등등.

심장 이식 수술은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 엄청난 속도감에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다.

“선생님, 컴퓨터 좀 쓸게요.”

“그럼요. 얼마든지.”

김빛나에게 허락을 구한 나는 스테이션에 앉아 정화의 차트를 확인했다.

제일 먼저 확인한 자료는 역시 검사 기록지였다.

검사 결과가 좋지 않으면 수술은 필연적으로 미뤄질 수밖에 없을 테니까.

심전도, 심초음파, 심장 CT, 심장 조영술.

이식 수술을 앞둔 정화는 하루에만 받을 수 있는 검사라는 검사는 다 받았다.

검사 결과에 대해서 말하자면 조금 애매했다.

확장성 심근병증이 한 달 전에 비해 다소 심해졌다.

급성 심근경색으로 받은 대미지 또한 아직 남은 것처럼 보였다.

우심방이 0.4mm만큼 더 비대해졌고 부정맥 발현 빈도가 늘어났으니까.

그렇다고 수술을 못할 정도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일단 다행이라고 봐야겠지.’

검사 결과를 확인한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화의 몸 상태가 최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걱정하기보다는 수술을 진행할 수 있을 만큼 건강하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내가 지켜본 박정률 교수라면 이번 수술을 충분히 소화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그럼 대체 어디에 문제가 있었던 거지?’

수술 성공을 위한 그림이 착착 맞아떨어지는 가운데.

나는 다시 한번 의문과 의혹을 제기했다.

이런 전개라면 전생의 정화 수술이 실패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럼 전생에 나는 왜 수술 성공 소식을 듣지 못했을까.

투표 결과 때문에 수술 자체를 못하게 된 걸까.

아니면 박정률조차 손을 쓸 수 없는 응급 상황이 터지고 만 걸까.

그 원인을 알지 못해 나는 오늘 하루 종일 가슴이 답답했다.

“선생님, 듀티(근무) 때 정화 어땠어요?”

“얌전하게 잘 있었어요. 흉통이나 호흡 곤란을 호소하지도 않았고요.”

“그럼 다행이네요.”

“다른 환자보다 정화가 특히 더 신경 쓰이시나 봐요?”

김빛나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정화의 상태가 현재 병동에서 가장 안 좋기 때문이라고 했다.

잘못하면 정화가 내일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은 일부러 꺼내지 않았다.

그것은 오로지 나만 알고 있어야만 하는 비밀이었다.

“정화도, 정화 어머님도 얼마나 답답하겠어요. 나들이도 가고 싶을 텐데 몇 달째 병원 신세만 지고 있으니…….”

나는 정화 모녀의 마음을 헤아리며 한마디 덧붙였다.

의사야 병원이 직장이라서 붙어 있다고 환자와 보호자는 그렇지 않았다.

치료에 대한 기약 없이 몇 달씩 병실 생활을 지다 보면 삶의 의욕이 꺾이기 마련이었다.

고문 수준으로 가혹한 일이었다.

병원 밥은 맛이 없고.

보호자까지 포함해서 12명이 한 병실에 살을 맞대고 지내야 하며.

즐길 거리가 없어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잠깐의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김빛나가 운을 뗐다.

“이 선생님은… 정말 대단하세요.”

“갑자기요? 왜요?”

“아직까지 환자와 보호자에게 감정 이입을 하고 있잖아요. 저는 많이 무뎌졌거든요.”

김빛나가 자책하는 기색을 보였으나 그건 김빛나의 잘못이 아니었다.

병동에 있는 환자 모두에게 감정 이입을 한다면 김빛나의 마음이 견디지 못할 테니까.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만 나는 의식적으로 환자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노력을 많이 할 뿐이었다.

환자 입장에서 생각하는 의사가 양질의 수술을 집도 및 개발하고 환자 관리를 더 잘하기 때문이다.

“환자나 보호자 말고 제게 감정 이입을 하는 건 어때요? 저 지금 엄청 배고픈데.”

“뭐예요, 그게.”

내 농담에 김빛나가 피식 웃었다.

처치실에 들어갔다가 나오며 챙긴 간식을 내 가운 주머니에 넣어 주었다.

“이제 좀 든든하세요?”

김빛나의 말에 나는 대답 대신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 * *

‘언제 퇴근하시려나?’

병동 루틴 잡을 마치고 당직실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밤 7시부터 켜져 있었던 회의실의 불이 밤 11시가 되도록 켜져 있었다.

내일 정화의 심장 이식 수술을 하는 스태프들이 밤늦게까지 회의를 하고 있던 것이었다.

저렇게 열정적인데, 저렇게 노력 중인데도 결국 수술이 실패한다는 사실을 나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렇다면 말이다.

이번 수술의 유일한 변수이자 미지수인 내가 뭔가를 해내는 것밖에 도리가 없을 것이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각오가 깊어지던 도중 화장실에서 나오는 정화의 보호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인사에 나도 고개 숙여 화답했다.

“아직 안 주무셨어요?”

“네, 잠이 안 와요. 수술을 받는 건 정화인데 괜히 제가 더 긴장이 돼서…….”

보호자가 뜸을 들이다가 가까스로 말을 이었다.

“그런 일은 있으면 안 되겠지만 혹시라도 수술이 잘못되면요, 정화 얼굴을 실컷 보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잖아요?”

“…….”

“할 수 있는 한 정화를 최대한 제 눈에 담아 두고 싶기도 하고.”

보호자의 고백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이런 게 바로 자식밖에 모르는, 자식을 가슴에 묻고 사는 어머니의 마음이겠지.

그녀를 위로할 말을 찾지 못해서 나는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보호자분도 너무 걱정 마시고 푹 주무세요.”

고민한 것에 비해서 턱없이 초라하고 판에 박힌 말이 나왔다.

하지만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양질의 치료야말로 의사가 환자와 보호자에게 건넬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니까.

“아 참, 선생님 말씀 듣고 사회 사업팀 가서 상담받았어요. 수술비 문제는 어떻게든 해결될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천만에요.”

보호자와 헤어지고 난 뒤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당직실로 돌아갔다.

오늘 당직은 홍선아의 동기인 2년 차 강승진이었다.

“교수님들 아직 회의 중이지?”

“네, 문 앞에서 잠깐 엿들어 봤는데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던데요?”

“교수님들이 병동에 있으니까 괜히 신경 쓰이네. 야식 먹는 것도 눈치 보이고.”

“그러게요.”

나는 강승진 옆에 앉아서 퇴원 처방 오더를 입력했다.

정규 수술 스케줄이 꽉 차 있었던 날이라 밀린 처방이 꽤 많았다.

타다다닥.

키보드를 두드리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처방 입력을 끝내고 소아 심장 이식 수술을 공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코앞으로 다가온 정화의 소아 심장 이식 수술.

이 수술에서 내가 변수가 되는 방법은 사소한 지식이라도 하나 더 머릿속에 욱여넣는 것이었다.

혹시라도 누군가가 수술 중 중요하거나 사소한 부분을 놓친다면.

그 부분을 내가 바로잡아 줄 수 있을 테니까.

“야, 살살 좀 해라. 그러다가 키보드 부서지겠다.”

“죄송합니다.”

“나한테 사과할 건 없고, 굳이 사과를 한다면 키보드한테 해야겠지. 키보드가 폭행죄로 너를 고소할 수도 있으니까.”

강승진의 능청맞은 대답에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소아 흉부외과는 이런 게 좋았다.

선배가 쓸데없이 후배에게 기강을 잡지 않는다는 점.

학교에서처럼 편하게 대해 준다는 점.

무엇보다 김슬기 같은 쓰레기 선배가 한 명도 없다는 점.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대부분 일이 아니라 같이 일하는 사람 때문에 퇴사를 결심하곤 한다는데…….

소아 흉부외과는 그 반대였다.

같이 일하는 사람은 좋은데 일 자체가 너무 혹독하고 고통스러워서 그만두는 경우 말이다.

“선배, 믹스 커피 한 잔 타 드릴까요?”

“좋지.”

강승진이 좋은 사람이다 보니 나도 강승진에게 잘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내 커피와 강승진의 커피를 타서 다시 자리에 앉았다.

달달한 믹스 커피를 홀짝이다 보니 기운이 났다.

역시 당과 카페인은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이었다.

“근데 너 운 좋다?”

강승진의 맥락 없는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요?”

“준호한테 이야기 못 들었어? 내일 준호가 적출팀으로 대구 내려가기로 했다. 너 오늘 당직이니까.”

“그렇군요. 저는 선배한테 처음 듣는 이야기라…….”

심장 이식 수술의 경우.

이식의 수혜를 받는 병원의 스태프가 기증자의 병원으로 이동한다. 기증자의 병원에서 심장을 적출한 뒤 다시 본 원으로 복귀해 그 심장으로 이식 수술을 펼친다.

“이동은 어떻게 하고요?”

“대구면 멀잖아. 당연히 헬기 타고 왔다 가야지.”

강승진은 본인이 헬기를 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너무 다행이라고 덧붙였다.

이동 수단까지 듣고 나니 수술이 코앞까지 왔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그런데 바로 그때…….

어떤 생각이 번개처럼 좌우의 관자놀이를 관통하고 지나갔다.

정화의 심장 이식 수술이 실패하는 이유 말이다.

어쩌면 적출팀에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에 실패한 것이 아닐까.

기증자의 심장을 적출하는 과정에서.

또는 적출한 심장을 운반하는 과정에서 말이다.

소아 수술의 대가인 박정률이 본원에서 집도 중 실수할 확률은 지극히 낮으니까 말이다.

처음에 그럴 수도 있겠다고 여겼던 생각이 점차 확신으로 굳어졌다.

분명 적출팀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적출팀에서 벌어진 문제가 정화의 심장 이식 수술을 실패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결론을 내리고 나니 내가 가야 할 길이 보였다.

“선배, 혹시 적출팀 멤버가 어떻게 되나요?”

“조교수님 한 분하고 3년 차 선배, 그리고 준호.”

“…….”

“교수님하고 3년 차 선배 모시고 수술방까지 들어가려면 준호 녀석, 반나절은 죽어날 거다.”

“근데 선배, 제가 적출팀에 들어가도 되나요?”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적출팀에 문제가 발생한다면 내가 적출팀 소속이 되어야 한다.

내가 없다면 전생에 벌어졌던 악몽과 비극이 고스란히 재현될 테니까.

“이믿음, 너 마조히스트니? 사서 고생하는 거 좋아해?”

“그런 건 아니고 헬기를 한번 타 보고 싶어서요.”

“가겠다면 말리진 않아. 준호한테 이야기해 봐. 지금 옥상에 있을 거야.”

“감사합니다, 선배.”

나는 황급하게 옥상을 찾았다.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던 미래에 한 줄기 광명이 찾아온 기분이었다.

그 광명은 적출팀을 향해 뻗어 있었고, 나는 내일 반드시 적출팀으로 출동해야 했다.

“김준호, 너 내일 헬기 타고 출동한다며?”

나는 다짜고짜 본론부터 꺼냈다. 그러자 김준호가 한숨 섞인 담배 연기를 뿜어냈다.

“왜? 놀리려고 왔냐?”

“너 놀려서 내가 얻는 이득이 뭐가 있다고. 형님이 희소식을 들고 왔으니까 잘 들어 봐.”

“뭔데?”

“내일 내가 너 대신 적출팀으로 출동해 줄게.”

“진짜? 이거 꿈 아니지?”

“아야야, 너 미쳤어?”

김준호가 본인의 볼이 아닌 내 볼을 꼬집었기에 한쪽 볼이 얼얼했다.

“이런 식이면 교대, 없던 걸로 한다?”

“장난이야, 장난. 하여간 진짜 고맙다. 안 그래도 나 고소 고포증 있거든. 너한테 이야기하고 교대를 부탁할 생각이었는데.”

“…….”

“네가 먼저 이렇게 말을 꺼내 줄 줄이야. 진짜 땡큐.”

신난 아이처럼 방방 뛰는 김준호.

그는 적출팀 막내로서 내가 내일 해야 하는 일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나는 김준호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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