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살부터 의사 생활-113화 (113/257)

113화 제3장 심장으로(3)

“아니, 과장님. 대체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정화의 치료를 맡고 있던 박정렬이 펄쩍 뛰며 물었다.

그것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확장성 심근병증을 앓고 있는 정화가 건강해질 수 있는 유일한 기회는 심장 이식 수술뿐이었다.

심지어 몇 년을 기다려도 차례가 온다고 장담할 수 없는 심장 기증자가 코앞까지 나타났다.

그런데 수술을 미루자고?

과장의 예상치 못한 말에 의도를 알 수 없어 나는 혼란스러웠다.

과장의 머릿속에 들어가 보고 싶을 만큼.

“선아 브리핑 들었지? 아이 몸 상태가 썩 좋지 않아. AMI(Acute myocardial infarction, 급성 심근경색)에서 회복된 지 얼마 안 됐다고.”

“…….”

“그런 아이가 이식 수술을 잘 버틸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과장이 반문하자 기세등등하던 박정렬조차 한순간 말문을 잃었다.

이번에도 나는 박정렬과 같은 기분이 되었다.

크게 한 방 먹은 기분.

과장의 지적은 틀리지 않았다.

심장 기증을 받았다는 사실에만 집중한 탓에 나와 박정렬은 중요한 사실을 놓치고 있었다.

이식 수술을 받을 정화의 상태 말이다.

급성 심근경색에서 회복 중인 정화의 체력과 면역력 등은 밑바닥일 게 분명했다.

그 상태에서 무려 6시간의 수술을.

그것도 인공 심폐기를 사용하는 고난이도 수술을 버틸 수 있을까.

나는 선뜻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었다.

‘하늘도 참 심술궂구나.’

내 입가에 쓰디쓴 미소가 걸렸다.

정화에게 심장 기증자를 보내 주고, 그 직전에 급성 심근경색을 앓게 만들다니.

나는 오랜만에 하늘을 원망했다.

“하지만 수술을 미룬다는 뜻은 수술을 하지 말자는 뜻과 같지 않습니까?”

박정렬이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심장 이식을 기다리는 환자는 정화뿐만이 아닙니다. 하루라도 빨리 결정하지 않으면 차례가 넘어갈 겁니다.”

“…….”

“당연히 다 알고 하는 소리네.”

과장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정화의 수술을 포기하자고 말하는 과장의 마음도 편치 않아 보였다.

“하지만 당장의 욕심에 사로잡혀 아이가 위험할 바에는 좀 더 길게 보는 게 낫지 않겠나?”

“길게 본다고요? 그 말에는 오류가 있습니다.”

박정렬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조건에 맞는 기증자가 언제 나타날지 알고 기다립니까?”

“…….”

“더군다나 한 번 차례가 넘어가면 뒤로 밀리지 않습니까? 과연 그때까지 정화가 버틸 수 있을까요?”

과장과 박정렬의 난상 토론이 진행되면서 회의실 분위기는 팽팽해졌다.

둘 중 누구도 자기 의견을 굽히지 않았으므로 언쟁은 그칠 줄을 몰랐다.

‘확실히 어려운 문제야.’

두 사람의 의견 충돌을 지켜보고 있으니 나도 고민이 깊어졌다.

문제는 서로의 가치관이 충돌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가치관에는 옳고 그름이 없으므로 정화의 현재 상태를 중요시하는 과장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컨디션이 좋지 못한 정화에게 수술 일정을 몰아붙이다가 정화가 사망한다면?

정화를 살리려고 했던 수술로 정화를 죽이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정화의 미래 상태를 중요시하는 박정렬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조건에 적합한 심장 기증자가 또 나타난다는 보장이 있을까.

과연 정화가 언제 진행될지 모르는 다음 이식 수술 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

놀랍게도 이번 안건의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수술을 받거나.

수술을 포기하거나.

문제 해결을 위한 선택이 무조건 둘 중 하나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었다.

안타깝게도 비수술적 치료 등의 제3의 길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 곤란하단 말이지.’

전생의 나조차 이런 딜레마는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결론을 내리는 게 쉽지 않았다.

인성이 못된 레지던트나 간호사를 처리하는 것과 이번 정화의 수술 문제는 결이 전혀 달랐다.

어느 쪽이 더 괴롭고 어렵냐고 하면 당연히 후자였다.

정답이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좋아, 그럼 이렇게 결정하자고.”

결론 없이 지지부진한 다툼 속에서 과장이 새로운 제안을 내놓았다.

의국원들의 투표를 통해 정화의 심장 이식 수술 여부를 결정하자는 것이었다.

* * *

형광색 포스트잇이 의국원들의 손을 거치고 있었다.

의사 결정을 위해 펼쳐지는 전대미문의 투표를 나는 신선하게 느꼈다.

의국 분위기가 좋으면 이렇게 투표를 할 수도 있구나.

전생의 흉부외과에서는 강태섭이 결정하면 모두가 무조건 따라야 했는데 말이다.

이번 생에서 나는 흉부외과의 분위기를 소아 흉부외과처럼 바꿔 보고 싶다는 욕심을 품었다.

‘이제 결정을 해야겠지?’

포스트잇을 만지작거리던 나는 이내 볼펜을 쥐었다.

수술 필요, 라고 적었다.

박정렬과 의견을 같이한 것이다.

위험이 완벽하게 제거된 수술이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외과의는 위태로운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고 나는 믿었다.

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조건에 맞는 기증자가 언제 또 나타날까.

그때까지 정화가 버틸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 대답을 적고 슬쩍 주변을 살펴보니 다양한 의견이 존재했다.

기권도 있었고, 수술을 미루자는 표도 제법 되었다.

어느 한쪽으로 의견이 쏠리지 않아 막상막하의 싸움이 펼쳐질 것 같았다.

“야, 넌 빨리도 결정했다?”

곁에 앉은 김준호가 부럽다는 눈빛을 보내며 말을 걸었다.

“평소에 생각해 놓은 가치관이 있으니까.”

“둘 중 어느 쪽인데?”

“네가 결정해야지. 내 의견에 물드는 건 바람직하지 않아.”

“어허, 모르는 소리를. 길 잃은 사람에겐 등대나 나침반이 필요하다는 거 몰라?”

김준호가 모처럼 찰떡같은 비유를 했다.

그래서 나는 수술을 강행하는 쪽을 선택했다고 알려 주었다.

김준호의 포스트잇에 수술 필요, 라는 글씨가 적혔다.

“지금부터 심정화 환자의 심장 이식 수술에 대한 찬반투표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치프의 진행에 따라 표 집계가 시작되었다.

수술 필요 한 표.

수술 반대 한 표.

치프가 포스트잇에 적힌 의견을 호명할 때마다 홍선아가 보드에 바를 정(正) 자를 표시했다.

과연 의국원들의 민심과 선택은 어느 쪽으로 기울었을까.

내 입장에선 대통령 선거보다 지금 치르고 있는 선거가 더 긴장되었다.

“외과는 외과인가 보다. 수술 진행하겠는데?”

김준호가 개표를 지켜보며 한마디 했다.

과연 김준호의 말대로 초반에는 수술을 하자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표 차이가 무려 2배 가까이 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초반에 연 표들이 우연치 않게 뭉쳐 있었던 모양이었다.

개표 중·후반부가 되자 수술 반대 의견이 쏟아져 나왔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예측불허의 상황.

급기야 한 표가 남은 상황에서 양쪽의 득표수가 동률로 같아졌다.

나는 손에 땀을 쥔 채 치프의 입가에 시선을 고정했다.

수술이 필요하다는 내 의견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 의견대로 정화가 수술을 받았으면 하는 욕심까지 부정할 수는 없었다.

나는 여전히 정화가 수술을 했으면 좋겠다.

“마지막은…….”

치프의 표정에서 불쑥 안타깝다는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치프의 선택은 알 수 없었지만 치프의 선택과는 다른 의견이 나왔다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평소 치프 성향이면 수술을 찬성할까, 반대할까.

워낙 중요한 일이 걸려서 있어서 그런지 그 짧은 순간에도 머리가 핑핑 돌아갔다.

“수술 찬성 의견입니다. 그래서 총 9표를 얻은 찬성 의견이 총 8표를 얻은 반대 의견을 제쳤습니다.”

수술 찬성이 극적인 승리를 거두자 의국원들의 희비가 극명하게 갈렸다.

물론 나는 기쁜 쪽이었다.

기다리는 것은 내과에 더 어울리는 미덕이었다.

외과에 적합한 미덕이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돌진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수술을 기다리는 것보다 수술을 하는 편이 더 나으리라.

“1표 차이로 수술을 하게 됐네? 이거 왠지 내 손으로 결과를 정한 느낌이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라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김준호가 수술 반대를 택했다면 수술은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더니, 맞는 말이네. 잘했어.”

“형님을 감히 곤충 따위에 비유해? 확 표를 물러 버릴까?”

“왜 그러십니까? 준호 형님. 제가 실수로 입방정을 떨었으니 너그럽게 용서해 주세요.”

“흠흠, 이제 좀 정신을 차렸네.”

우리는 피식 웃으며 농담을 주고받았다.

투표가 끝나면서 뜨겁게 달아올랐던 회의실의 분위기가 차차 식어 갔다.

잠시 후 회의가 끝나고 오전 회진이 시작되었다.

정화의 병실에 도착했을 때.

과장이 정화의 보호자에게 의국에서 있었던 투표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수술을 찬성하는 의견과 수술을 반대하는 의견이 있었다.

우리는 수술을 하자는 결론을 내렸는데, 보호자는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제가 뭘 알겠어요. 선생님들께서 고민해서 내린 결론을 따라야죠. 부디 정화를 잘 부탁드립니다.”

보호자가 수술에 동의하면서 수술은 운명처럼 다가왔다.

황급하게 잡힌 수술 날짜는 무려 내일 오후.

지금으로부터 30시간이 지난 후였다.

* * *

정화의 수술이 결정된 당일.

나는 수술방 어시스트를 하고 있었지만 내 머릿속에는 정화의 이식 수술에 관한 정보로 넘쳐 났다.

내 예상이 맞다면 전생의 정화는 아마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전생의 내가 소아 심장 이식 수술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수술에 성공했다면 매스컴이나 병원 내에서 그 소식을 만천하에 퍼트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화의 이식 수술은 단순히 실패했던 것일까.

아니면 아예 오늘 있었던 수술 찬반 투표에서 패배해서 수술조차 받아 보지 못한 걸까.

어느 쪽이 전생의 정화에게 일어났던 일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다만 중요한 건 정화의 이번 생에 나라는 변수가 끼어들었다는 점이었다.

그렇다면, 정화가 살아날 가능성이 있다면 그건 아마 나의 개입에서 비롯될 확률이 높았다.

그래서인지 나는 정화의 생존에 커다란 책임감과 부담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정화가 맞이할 엔딩은 나만 알고 있고, 나만 막아 낼 수 있었기에.

그래서 어시스트를 하는 내내 심장 이식 수술에 대한 전생의 정보들을 끄집어내고 분석하고 분류하느라 바빴다.

‘시대가 확실히 무섭긴 하네.’

두뇌를 풀가동하던 나는 문득 현재 시점이 2005년이라는 점이 너무 안타까웠다.

2021년을 기준으로 대한민국의 심장 이식 수술의 성공률은 얼마나 될까.

보통 사람들은 50퍼센트도 높다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 성공률은 놀랍게도 95퍼센트에 달했다.

의학 기술 및 서전들의 기술 발전으로 엄청나게 안전한 수술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때쯤이면 3세대 인공 심장 이식 수술도 많이 펼쳐지곤 했다.

다만 그것은 먼 미래의 일.

현재 시점에서 심장 이식 수술의 성공률은 대략 30~50퍼센트 사이였다.

소아 심장 이식 수술이라면 성공률은 좀 더 야박해질 테고.

머리만 복잡했던 수술 어시스트가 끝난 뒤.

나는 곧바로 병동으로 복귀했다.

아동 학대를 일삼던 난폭한 간호사 하수진은 쫓겨났지만 정화의 이식 수술이라는 새롭고도 어려운 숙제가 나를 찾아왔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