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제3장 심장으로(2)
드르르륵.
나는 문을 열고 병실 안으로 들어가 정화의 상태를 살폈다.
흉통과 호흡 곤란으로 고통스러워하던 정화는 전보다 안정되어 보였다.
구겨졌던 표정은 펴졌으며 벌어진 입술로 앓는 소리도 내지 않았다.
편안해 보이는 정화의 모습에서 나도 편안함을 되찾았다.
타인의 건강과 행복을 진심으로 빌어 줄 수 있는 직업이 얼마나 될까.
그 분류에 들어가는 몇 안 되는 직업이 의사였다.
“보호자분, 잠깐 저랑 이야기 좀 하실까요?”
졸고 있던 정화가 깨지 않도록 보호자만 따로 복도에 불러냈다.
갑작스러운 호출 탓에 보호자는 놀란 것이 반, 걱정이 반인 것처럼 보였다.
병원에서 발생하는 급작스러운 사건은 불행일 확률이 더 높으니까.
“혹시 정화 상태가 더 나빠졌나요? 급하게 수술이라도 받아야 하나요?”
보호자가 먼저 선수를 쳤다.
“아니요, 안 좋은 이야기가 아니니까 긴장하실 필요 없어요. 제가 전해 드릴 말은 오히려 좋아하실 소식입니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보호자에게 심장 기증자가 나타났다고 말했다.
팔로 4징후군으로 수술을 받고.
순환기 내과의 약물 치료로 호전이 없는 정화가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방법은 심장 이식 수술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10분 전.
기적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정화보다 나이가 1살 많은, 혈액형이 같은 뇌사 상태의 소아가 나타난 것이다.
소아의 부모는 깊은 고민 끝에 자식의 장기를 기증하기로 했다.
정화에게 성큼 다가온 기적의 뒤편에는 한 부모의 희생과 눈물이 있었던 것이다.
“생각만큼 기쁘지 않으신가 보죠?”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환희에 빠질 거라는 기대와 달리 보호자의 태도는 미지근했다.
기쁜 것 같기도 하고, 슬픈 것 같기도 하고.
한마디로 정의 내릴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게… 실감이 잘 안 나네요. 갑자기 수술 중에 정화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고, 치료비 걱정도 되고.”
“…….”
“사람이라는 게 참 간사하죠? 심장 이식, 분명 오래전부터 바라 왔던 일인데 말이에요.”
정화의 보호자가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녀의 고백과 달리 나는 그녀가 딱히 간사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가족의 병수발을 오래 하다 보면 어떤 좋은 일이 생긴다고 해도 회의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더 아픈 것처럼.
더 많은 희망을 품고 있다가 좌절하면 더 아프기 때문이다.
즉, 절망의 통증은 희망의 크기에 비례한다.
어쨌거나 보호자는 간사한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의 감정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내보일 만큼 강인하고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
전생에서 나는 이런 보호자들을 좋아해서 잘해 주려고 노력했다.
나와 함께 병마(病魔)와 싸우는 동지니까.
정화 보호자의 정반대편에는 병마가 아닌 의사와 싸우는 보호자가 존재했다.
“걱정되시는 건 골백번 이해합니다. 제가 보호자 분이라도 그랬을 텐데요.”
나는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흔들리는 그녀의 마음을 지탱해 주는 게 나의 역할이었다.
“하지만 정화 조건에 맞는 심장 기증자를 찾는 게 하늘의 별 따기라는 건 보호자 분도 잘 아실 겁니다.”
“…….”
“앞으로 몇 년을 더 기다려야 할지 몰라요. 최악의 경우 기증자가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고요.”
“…….”
“그러니까 걱정이 되고 두려운 마음이 드신다고 해서 물러서시면 안 됩니다.”
수술비가 걱정이 될 경우 사회 사업팀에서 지원을 요청할 수 있다.
원무과에 이야기하면 일시불이 아니라 월납으로 지불이 가능하다 등등.
나는 보호자에게 몇 가지 현실적인 조언을 했다.
내 조언에 보호자는 금방 기운을 되찾은 듯 보였다.
“선생님 말씀을 듣고 나니 위로가 되네요. 사랑이 아픈 것도 치료해 주시고 이렇게 좋은 말씀도 해 주셔서 감사해요.”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는 보호자.
나도 그녀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대화가 끝난 뒤 보호자가 병실로 돌아갔다.
무슨 미련이 남았는지 나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 망부석처럼 서 있다가 정화의 병실 앞으로 이동했다.
잠깐 사이에 정화의 아버지가 병실에 도착해 있었다.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사내는 정화에게 인형을 선물하고 아내에겐 지갑을 선물했다.
오늘이 월급날이었던 모양이었다.
남자 보호자의 깜짝 선물로 병실에 퍼져 나가는 화목.
내 눈에는 그 화목이 똑똑하게 눈에 보였다.
저 세 가족의 단란하고 행복한 미래를 지켜 주고 싶다고 나는 욕심을 부렸다.
아마도 그게 내가 회귀한 이유일 테니까.
전생에 살리지 못했던 수많은 사람을 살려 내는 것.
‘잠깐, 그러고 보니…….’
전생의 기억을 더듬던 나는 이윽고 불쾌한 기분에 휩싸였다.
전생의 나는 수련하는 내내 소아 흉부외과에서 근무한 적이 없었다.
따라서 정화 가족의 미래, 정화 가족이 맞이할 결말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런데 말이다.
머리를 조금만 굴려 보니 그 결말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었다.
2005년도에 펼치는 소아 심장 이식 수술.
이 당시의 소아 심장 이식 수술의 성공 확률은 30퍼센트 정도였으며 그 케이스도 희귀했다.
정화의 수술이 성공했다면 분명 매스컴에서 이슈가 되었을 것이다.
병원 잡지에도 소식이 실렸을 것이고, 소문이 급속도로 퍼지면서 전생의 나도 그 소식을 들어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생의 인턴 시절, 나는 소아 심장 이식 수술이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었다.
점점 뚜렷하게 다가오는 미래.
오한이 들 정도로 냉혹한 현실에 나는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내 추측이 맞다면 정화의 심장 이식 수술은 실패할 것이다.
* * *
다음 날 오전 6시.
나는 김준호와 함께 병실을 나눠서 루틴 잡을 펼치고 있었다.
동맥혈 채혈을 하고, 검사 동의서를 받고, 드레싱을 하는 동안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생각이 있었다.
바로 어제부터 나를 괴롭혀 온 정화의 심장 이식 수술에 관한 것이었다.
대체 심장 이식 수술은 왜 실패로 돌아갔을까.
의료 스태프의 실수가 있었던 걸까.
심장 이식의 기술력이 아직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기증자의 심장에 문제라도 있었을까.
심장 이식이 실패한 이유를 찾는 일은 무척 복잡하고 어려웠다.
수술 과정 자체가 만만치 않고, 그 과정에서 변수가 많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회의할 때 정리해야겠네.’
나는 잠시 생각과 고민을 미뤄 두기로 했다. 당장 눈앞에 있는 환자들의 처치에 집중하기로 했다.
차분하게 병실을 돌던 나는 곧 정화의 병실에 도착했다.
“정화야, 몸은 좀 어때?”
“좋아요, 헤헤.”
정화가 인형을 품에 꼭 앉은 채 밝게 웃었다.
상태가 호전되었는지 어제 맞고 있던 링거는 제거되어 있었다.
표정도 한결 밝았다.
“인형 예쁘네?”
“아빠가 어제 선물로 줬어요. 어제가 제 생일이었어요.”
“그랬구나. 선생님이 생일 축하도 못했네. 미안.”
나는 정화에게 말을 걸면서 ABGA를 실시했다.
내 태도와 말투가 워낙 자연스러웠기에 정화는 주사를 맞는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주사 자국이 난 곳에 알콜솜을 대줄 때야 채혈이 된 걸 알 정도였다.
“정화야, 선생님이 늦게라도 정화 생일 선물을 사 주고 싶은데, 뭐가 갖고 싶어?”
“저는… 포로로 가방이요. 건강해지면 유치원에 가져갈래요.”
“선생님이 이번 주 안으로 가방 사 줄 테니까 엄마, 아빠 속 썩이지 말고 아플 때는 용감하게 이겨 내야 한다? 약속할 수 있어?”
“네!”
“선생님, 안 그러셔도 되는데.”
정화의 보호자가 미안해했지만 나는 괜찮다며 웃어 보였다. 정화와 새끼손가락을 걸어 약속했다.
그 약속은 정화를 위한 것이지만 동시에 나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반드시 정화가 건강하고 무사하게 수술을 끝마치고 내 선물을 받도록 하겠다는.
남들은 절대 갖지 못하는, 회귀라는 기적을 선물 받은 나였다.
회귀를 했으면 회귀를 한 값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심장 이식 수술 중 변고를 당할 정화를 살려 내는 일이야말로 내가 회귀한 값을 톡톡히 치르는 일이 될 것이다.
정화 병실을 떠나고 이어지는 루틴 잡을 20분 만에 끝났다.
김준호와 당직 근무 선 홍선아를 도와 오전 컨퍼런스를 준비했다.
회의실 책상과 의자를 닦고.
빔 프로젝트를 설치하고.
자리마다 입원 환자 및 수술 스케줄이 인쇄된 유입물을 책상 위에 깔아 두고 등등.
준비를 마치고 나니 20분 정도 여유가 생겼다.
나는 휴대 중인 수첩을 꺼내 심장 이식 수술 도중 일어날 수 있는 사건 사고를 전부 적어 내려갔다.
예상치 못한 출혈.
면역 거부 반응.
심장 크기 차이로 인한 봉합의 어려움.
수술 중 감염.
인공심폐기의 갑작스러운 고장.
정화의 갑작스러운 바이탈 악화.
기증자 심장의 기능 부전 등등.
막연하게 머릿속으로만 걱정하던 것을 적어 놓으니 의외로 마음이 편해졌다.
보이지 않는 것은 무찌를 수 없지만 보이는 것은 무찌를 수 있으니까.
집요하고 독하게 문제점을 적어 내려간 나는 이후 그 문제점을 해결할 방안을 다시 적기 시작했다.
덕분에 나는 심장 이식 수술 실패의 원인을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정화의 심장 이식이 실패하는 이유.
거기에는 최소 두 가지 이상의 복잡한 문제가 엉켜 있다.
소아 심장 수술의 대가 박정률마저 어찌할 수 없는, 돌발적이면서도 치명적인 문제가 터진다.
나는 고민 중에 알아낸 두 가지 사실에 동그라미를 쳤다.
이것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파헤칠 수만 있다면 정화의 심장 이식 수술은 분명 성공하리라.
조금 과장해서 정화 수술의 성패는 내 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왜냐고?
이식 수술의 변수가 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가 무언가를 하지 않는다면 정화의 수술은 전생대로 진행되어 결국 실패하고 말 것이다.
그러니 수술의 성패가 내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시간이 촉박한 게 문제란 말이지.’
나는 얼굴을 찌푸린 채 턱을 쓸어내렸다.
심장 기증자를 찾는 게 하늘의 별 따기일 뿐.
심장 이식 수술 자체는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진행된다.
당장 내일 심장을 척출하기 위해 기증자의 병원에 갈 수도 있었다.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았으므로 나는 뇌세포를 학대하고 또 학대했다.
뇌가 비명을 지를 땐 커피로 다스렸다.
뇌가 정화의 심장 이식 수술이 실패한 원인을 대령할 때까지.
나는 단란한 세 가족이 웃음을 되찾고 병원을 떠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야, 너 뭐 잘못 먹었어? 왜 세상에 모든 고뇌를 짊어진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냐?”
옆자리에 앉은 김준호가 농담을 건넸다.
“그냥 생각할 게 좀 있어서.”
“인턴이 생각은 무슨… 시키는 일만 잘하면 되지.”
“나도 제발 너처럼 속 편하게 살면 좋겠다.”
“뭐라고? 이게 잘해 주니까 형님한테 기어오르네? 따끔하고 매콤한 맛 좀 보여 줘?”
김준호와 몸으로 툭탁거리는 사이 레지던트와 펠로우, 교수들이 하나둘 회의실 자리를 채웠다.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시작된 오전 회의.
치프의 진행에 따라 입원 환자 브리핑부터 시작되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나는 허리를 꼿꼿하게 펴며 느슨했던 마음을 다잡았다.
2년 차 홍선아가 본인이 맡고 있는 환자들의 상태를 보고 노티하기 시작했다.
평소 성격대로 똑소리 나게 브리핑하던 그녀의 입에서 곧 정화의 이름이 나왔다.
정화가 어제 급성 심근경색의 전조 증상을 보여 순환기 내과 협진을 통해 약물 치료를 진행했다는 소식.
또 이식 센터에서 심장 기증자가 나타났다는 소식을 알렸다.
기증자 소식에 가장 반색한 것은 당연히 소아 심장 수술의 대가 박정렬이었다.
무력하게 지켜보기만 했던 정화를 드디어 수술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박 교수. 심정화 환자 수술, 미루는 게 어때요?”
소아 흉부외과 과장의 한마디에 회의실이 싸늘해졌다.
상상도 못했던 과장의 멘트에 나조차 당황했다.
이건 내 시나리오에 없던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