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제3장 심장으로(1)
“아이는 좀 어떤가요?”
403호 병실에 들어선 나는 곧바로 정화가 누워 있는 침실로 향했다.
걱정스런 눈빛으로 정화를 쳐다보고 있던 어머니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아까부터 숨을 헐떡거리고 있어요. 가슴이 답답한지 한 손을 가슴에 올려놓았고요.”
자식의 아픔을 제 몸의 아픔처럼 여기는 부모의 심정이 목소리에서 고스란히 느껴졌다.
부모 노릇을 한 적은 없지만 그 마음을 나는 알 것도 같았다.
전생에 없었던 내 동생, 사랑이가 아팠을 때 괴롭고 답답했던 느낌과 비슷하겠지.
30살의 젊은 나이에도 선천성 심장병을 앓고 잃는 자식을 간호하기 위해 병실에 갇혀 있는 보호자.
나는 그녀도 가엾고 안쓰러워 보였다.
“알겠습니다. 정화야, 어디가 제일 불편하니?”
나는 정화에게 고개를 숙이며 물었다.
정화는 6세의 여아였다.
확장성 심근병증으로 3살 때부터 줄곧 소아 흉부외과와 순환기 내과 신세를 지고 있었다.
확장성 심근병증이란 심부전[Heart Failure]의 일종이었다.
원인은 대부분 불명.
심장 근육이 비정상적으로 확장되는데, 정작 혈액순환은 제대로 되지 않아 심장의 기능이 떨어지는 질환이었다.
확장성 심근병증을 앓고 있는 정화가 더 오래 살 수 있는 방법은 현재로서는 심장 이식 수술밖에 없었다.
“선생님, 가슴이 콩콩 뛰어요. 숨쉬기도 불편해요.”
정화의 목소리는 정화 보호자의 목소리보다 차분했다.
하지만 눈동자에는 숨길 수 없는 공포가 서려 있었다.
부모의 걱정을 덜기 위해 억지로 두려움을 이겨 내는 척하는 정화의 모습.
그 모습에서 나는 하마터면 울컥 눈물을 쏟을 뻔했다.
“가슴 아픈 거랑 숨 쉬는 게 제일 불편해? 또 다른 건 없고?”
첫 질문을 시작으로 나는 꼼꼼하게 정화의 상태를 살폈다.
문진, 시진, 촉진, 타진, 청진의 순서를 따랐는데, 몇 가지 마음에 걸리는 정보들이 있었다.
온몸의 식은땀.
30분 간격으로 찾아오는 찌릿한 흉통.
현기증과 두통.
다시 측정한 혈압과 맥박에서 평균치를 웃도는 수치들 등등.
정화가 확장성 심근병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전생부터 길러 온 내 동물적인 감각은 정화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고 말하고 있었다.
“왜 아픈 건지 알아보고 치료해 줄게. 알았지?”
“네.”
“많이 아프면 간호사 선생님 바로 부르고.”
병실을 나온 나는 황급하게 당직실을 찾았다.
이틀 연속으로 당직 근무 중인 홍선아가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선배, 저 노티 좀 드릴게요.”
나는 홍선아의 어깨를 거칠게 흔들어 깨웠다.
마음 같아서는 내 욕심대로 오더를 내리고 싶었지만 인턴의 신분으로 그럴 수는 없었다.
병원에서 인턴이란 그저 시키는 일을 하는 도구에 불과했다.
“왜?”
“DCM(dilated cardiomyopathy, 확장성 심근병증)인 정화 아시죠?”
“간첩도 아니고 정화를 모를 수가 있나. 하아아암.”
홍선아가 하품과 기지개를 동시에 했다.
“정화가 지금 호흡곤란에 흉통을 호소하고 있거든요?”
“확장성 심근병증이잖아. 안타깝긴 하지만 그 정도는 달고 산다고 생각해야 해.”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에요.”
나는 방금 전 정화를 만나서 얻은 정보를 홍선아에게 전달했다.
대단하거나 극적인 변화가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착각이었다.
나의 꼼꼼한 노티를 듣고도 홍선아는 의외로 심드렁했다.
정화가 앓고 있는 병이 심각한 병이니 거기서 파생되는 증상이라는 것이다.
“믿음아, 환자를 걱정하고 생각하는 건 좋은데 말이야.”
홍선아가 아이를 타이르듯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계속했다.
“환자에게 너무 감정 이입을 해도 문제야. 그러다 보면 사소한 증상까지 대단한 걸로 보이게 되고 검사나 처치가 과해진단 말이지.”
“…….”
“그만큼 다른 환자에게 쏟아야 할 관심도 줄어들고. 내 생각에는 좀 더 follow up(경과 관찰) 하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홍선아가 선배답게 결론을 내렸지만 나는 그녀의 결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의 결론에 동의할 수도 없었다.
정화의 몸속에서, 더 정확히 말하면 심장에서 무언가 불길한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덮어놓고 방치하자니 납득할 수가 없었다.
물론 홍선아의 지적처럼 사소한 질환을 대단한 질환으로 착각하는 것도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대단한 질환을 사소한 질환으로 착각하는 것도 문제였다.
정화에 관해서라면 나는 후자가 맞다고 자신했다.
따로 떼어 놓고 보면 별것 아닌 증상들이 하나로 뭉쳐졌을 때의 파괴력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정화를 이대로 방치했다간 걷잡을 수 없는 사건이 터질 것이다.
“그럼 선배, ECG(심전도)랑 혈액 검사 정도만 하는 거 어때요?”
“굳이? 하게 되면 어차피 네 일인데?”
“일이면 일이니까 해야죠. 그러려고 병원에서 월급 받는 거니까요.”
“주말이라 좀 쉬게 해 주려는 건데… 선배의 바다 같은 마음을 우리 후배가 몰라주네.”
홍선아는 결국 백기를 들고 심전도와 혈액 검사 오더를 냈다.
나는 심전도실에서 이동용 심전도를 챙겨 정화가 있는 병실로 복귀했다.
우선 채혈부터 하고 정화의 몸에 심전도 전극을 붙였다.
아직도 통증 호소하고 있음에도.
피를 뽑고 이상한 기계가 피부에 닿았음에도 정화는 또래답지 않게 태연한 모습을 보였다.
어렸을 때부터 병원 신세를 졌으니 채혈이며 심전도는 이골이 났겠지.
어린 나이에 불가피하게 철이 들어 버린 정화.
정화의 모습은 내게 기특하기보다는 안쓰러워 보였다.
본디 봄에 피어야 할 꽃이 혼자 겨울에 피어나 혹독한 추위를 견디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정화와 심전도 기계를 번갈아 응시하며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렸다.
정화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확실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정화에게 닥칠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느냐였다.
부디 응급 수술을 해야 할 정도는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지이이잉.
판독지가 출력되어 나오는 소리가 내 상념을 깨트렸다.
나는 위아래로 요동치는 판독지를 살피며 미간을 좁혔다.
김용 교수의 조언에 따라 심전도 판독지를 통째로 암기하는, 무식하면서도 경이로운 방법으로 공부 중인 나였다.
그 덕분에 판독지의 몇몇 부분만 봤음에도 정화의 심장에 어떤 이상이 발생했는지 알 수 있었다.
확장성 심근병증으로 인한 우심실 비대.
‘이건 당연히 나와야 하는 거고. 이건…….’
송곳처럼 날카로운 T파를 확인한 순간 내 얼굴이 돌처럼 굳었다.
이건 급성 심근경색의 징조였다.
* * *
“하아…….”
심정화의 처방을 입력하면서, 홍선아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선배로서 이렇게 체면이 안 서고 부끄러운 일이 또 있을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이믿음의 노티는 사실 대단히 중요한 것이었다.
그 노티 때문에 급하게 심전도와 혈액 검사를 진행했으며 그 결과 심정화가 급성 심근경색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만약 이믿음이 제대로 노티를 하지 않았다면?
그녀처럼 환자의 증상을 별것 아닌 것처럼 여겼다면?
상황은 말도 못하게 심각해졌을 것이다.
홍선아는 분명 지금처럼 컴퓨터 앞에 앉아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사치를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는 H.A(Heart Arrest, 심장마비)로 의식을 잃었을 테고.
병동은 한바탕 난리가 났을 테고.
그녀와 이믿음은 흉부 압박을 하고 앰부백(공기 주머니)을 짜면서 응급실로 달려가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이만하면…….’
처방을 다 입력하고 홍선아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불행 중 다행이라는 생각에 온몸의 긴장이 풀렸다.
이믿음의 활약으로 다행히 큰 문제는 터지지 않을 듯했다.
급성 심근경색이 진행되고 CPR을 실시했다면 심정화의 심 기능은 더욱 떨어졌을 것이다.
그녀가 생각하는 최악의 사태 말이다.
그런데 그 전에 병을 알아내고 순환기 내과에 컨설턴트(협진)를 신청했다.
-PCI(경피적 관상동맥 중재술)까지 필요한 상황은 아닙니다. 약물 치료를 하면서 경과를 보면 될 것 같아요.
…는 희망적인 소식을 협진 온 레지던트에게 들었다.
이후 내과에 알려 준 대로 처방을 전부 입력한 홍선아였다.
응급 상황을 겪고 난 직후라서 그럴까.
잠에 취해 몽롱하던 의식과 정신이 찬물을 얻어맞은 것처럼 확 깨어났다.
홍선아는 냉장고에서 캔 커피를 꺼내 마시며 내일 있을 케이스 스터디 자료를 준비했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게 소아 흉부외과의 일이었다.
드르르륵.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이믿음이 당직실로 복귀했다.
표정이 밝은 걸 보아하니 심정화의 상태가 많이 호전된 모양이었다.
“방금 ECG하고 왔는데요, 심장 리듬이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제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아요.”
“어, 응.”
홍선아는 차마 이믿음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상황이 발생하기 전 이믿음에게 했던 말들이 머릿속을 떠다녀 그녀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환자에게 너무 감정 이입을 해도 문제야. 그러다 보면 사소한 증상까지 대단한 걸로 보이게 되고 검사나 처치가 과해진단 말이지.
선배다워 보이고 싶어서 했던 말이 부메랑처럼 돌아와 그녀의 가슴을 때렸다.
맞은 자리가 아팠다.
그래도 이번 사건을 모른 척 넘어갈 수 없는 노릇.
그녀는 용감하게 말을 꺼냈다.
“아까는 내가 너무 바보 같았어. 진심으로 사과할게.”
“아니에요, 선배가 착각할 만도 하죠. 정화 간호기록지 보니까 하루에도 몇 번씩 흉통하고 호흡곤란 호소하더라고요.”
“진료 전에 간호기록지도 봤었니?”
“당연하죠. 기본이니까.”
이믿음이 진찰 전 간호기록지를 볼 만큼 치밀하고 꼼꼼하다는 점.
자신이 왜 오진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이미 알고 있다는 점.
그 두 가지 때문에 홍선아는 이믿음을 더더욱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고작 2개월 차 인턴이 이 정도 눈썰미와 판단력이라고?
그게 말이 돼? 그게 가능해?
순환기 내과에서 일하는 선배가 이믿음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어쨌거나 나야말로 환자 관리에 너무 안일했던 것 같아. 타성에 젖었다고 해야 하나?”
“…….”
“주말이고 모처럼 여유가 났는데 네가 검사 때문에 왔다 갔다 하는 것도 싫었고.”
홍선아는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전했다.
감정의 응어리를 빨리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그것이 더욱 커져 자신을 괴롭힌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선배 마음 다 이해해요. 저도 뭐랄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검사를 해 보자고 말씀드린 거고요.”
“혹시나가 아니라 확신했던 눈빛이었던데?”
홍선아는 지금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정화에게 심전도와 혈액 검사를 해 보자고 주장하던 당시 이믿음의 날카로운 눈빛을.
그런 눈빛은 자신의 주장에 확고한 믿음이 있을 때만 내보일 수 있는 눈빛이었다.
“그랬던 건가요? 전 잘 모르겠는데.”
“어쨌거나 네 덕분에 한숨 돌렸다. 정화한테 문제 생겼으면 나 박 교수님한테 왕창 깨졌을 텐데.”
“그럼 오늘 간식은 선배님이 사시는 겁니까?”
“사시 말고 낚시는 안 될까?”
그녀의 농담에 이믿음이 배를 붙잡고 깔깔 웃었다.
얼마 전부터 느낀 것이지만 그녀와 이믿음의 유머 코드는 찰떡궁합이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잡담을 나누는데 당직실에 전화가 걸려 왔다.
“소아 흉부외과입니다.”
-여기 장기 이식센터인데요…….
당연히 응급실 전화일 줄 알았건만 뜻밖의 장기 이식 센터에서 연락이 왔다.
그것도 평일이 아닌 느지막한 주말 오후에.
심상치 않은 기색을 읽은 홍선아는 자세를 고쳐 잡았다.
“네, 무슨 일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