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제1장 커튼 콜(4)
“지금부터 만들어야지. 가능하면 골탕 먹이는 것보다 더 강한 방법으로.”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맑은 물을 진흙탕으로 만드는 데 필요한 것은 미꾸라지 한 마리였다.
그리고 소아 흉부외과의 미꾸라지는 바로 하수진이었다.
레지던트에게는 어찌 행동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인턴 및 동료 간호사, 환자를 대하는 하수진의 태도는 밑바닥이었다.
전생을 통해 예측한 그 무엇보다 끔찍한 재앙.
그것은 김빛나가 아마도 하수진의 태움 때문에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김빛나를 위해서라도 나는 하수진을 제거할 필요성을 느꼈다.
없는 것보다는 낫다.
차라리 없는 게 낫다.
모순처럼 보이는 두 가지의 속담 중 하수진에게 어울리는 속담은 후자였다.
하수진은 병동에 있는 것보다 병동에서 사라지는 게 백번 나았다.
내가 그렇게 만들 것이다.
“오늘 같이 근무하면서 특이한 점은 없었어?”
“특이한 점은 모르겠고, 성깔은 더러운데 일은 괜찮게 하는 것 같더라.”
“또?”
“또? 으음… 아이들이 하수진 말은 기가 막히게 잘 듣더라고. 병동의 말썽꾸러기들도 하수진 앞에서는 순한 양이야.”
설명을 계속하는 김준호.
김준호가 전해 준 정보는 하수진이라는 인간의 업무 스타일과 성격에 대한 스케치를 할 수 있는 정보였다.
그것만으로도 가치는 충분했지만 실수나 비리를 폭로할 만큼 결정적이지는 않았다.
하수진을 처리하는 데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한 듯싶었다.
* * *
다음 날 오전.
소아 흉부외과에서 보내는 첫 번째 아침이 밝았다.
나는 부스스한 몰골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심전도 공부와 소아 흉부외과 수술 복습으로 2시간 밖에 못 잤다.
수면 시간이 부족해서 그런지 눈을 뜨고 일어났음에도 개운한 기분이 손톱만큼도 없었다.
오히려 몸이 더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비몽사몽한 상태에서 나는 욕실로 이동해 씻기부터 했다.
씻는 와중에도 어제 공부한 것들을 복습했다.
회귀라는 기적을 선물 받은 내가 아닌가.
성인 심장과 폐·식도.
소아 심장과 폐·식도.
흉부외과의 모든 영역에서 정점을 찍겠다는 목표를 한시라도 손에서 놓아선 안 됐다.
그것이 회귀자의 숙명이자, 운명이자, 책임이자, 도리라고 나는 생각했다.
세면을 마치고 나오니 당직실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는 홍선아와 김준호가 보였다.
나는 김준호만 조심스럽게 깨웠다.
현재 시각은 오전 5시 45분.
인턴이 루틴 잡(일정 시간마다 반복적으로 해야 하는 업무)을 시작하기까지 15분이 남은 시점이었다.
“어우, 죽겠다. 잠을 못 자게 하는 게 왜 고문인지 알 것 같아.”
김준호가 당직실을 나오며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했다.
“잠깐 서 있어 봐.”
나는 오늘따라 유난히 힘들고 피곤해하는 김준호의 어깨를 주물러 주었다.
사실 마사지 자체에 치료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가 내 몸 상태가 호전되기를 바라고 있다는 점.
스킨십으로 따뜻한 정을 나눈다는 점이 마사지 속에 담긴 참 의미였다.
‘앞으로 10년 정도 남았으려나?’
나는 먼 미래에 발의되는 전공의 법을 떠올렸다.
전공의 법이란 과로에 시달리는 전공의 및 인턴들을 위해 제정된 법이었다.
법은 전공의의 근무시간을 주당 대략 80시간으로 정하고 연속 근무 36시간 초과 금지, 유명무실했던 연차 사용 등등을 보장했다.
시행 초기에는 잘 지켜지지 않았지만 2020년대부터는 많은 병원이 전공의 법을 지키려 노력한 걸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와 김준호는 전공의 법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우리의 시대는 2015년이 아니라 2005년이니까.
참고로 나의 저번 주 주당 근무시간은 154시간이었다.
매일 고작 2시간밖에 잠을 자지 못했던 것이다.
개인 공부 때문에 수면을 포기한 부분도 있었지만 다른 인턴들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많이 자 봐야 나보다 한 10~15시간 정도 잤으면 많이 잤을까.
“ABGA 힘들면 말해. 형님이 도와줄 테니까.”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다. 안 되는 환자들은 한 번에 몰아서 부탁할게.”
나와 김준호는 병동 환자를 반으로 나눠서 루틴 잡을 실시했다.
ABGA를 하고, 드레싱을 하고, 수술 동의서를 받고, 수술 예정인 환자에게 소변줄을 꼽고 등등.
전생의 흉부외과 교수였던 나에게 루틴 잡은 식은 죽 먹기였다.
완전체인 나를 괴롭힐 수 있는 건 오로지 진상 환자와 보호자뿐인데…….
이상하게도 소아 흉부외과에서는 진상 환자나 보호자와 시비가 붙은 경험이 없었다.
진상들이 김준호 쪽에 가 있어서 그런 걸까.
“수호야, 잠깐 선생님 좀 볼까?”
나는 한 병실에 들어가 4세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안녕하세요.”
보호자가 먼저 인사를 하자 인사성이 바른 수호도 고개를 숙였다. 잠이 덜 깬 눈으로 인사하는 모습이 퍽 귀여웠다.
“선생님이 금방 검사 하나만 할게. 수호가 건강해졌는지 확인하는 거야.”
“네.”
동맥혈 채혈을 위해 수호의 팔을 걷던 나는 깜짝 놀랐다.
수호의 팔 상완부 쪽에 파란 멍 자국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아이와 멍.
두 단어를 조합했을 때 펼쳐질 수 있는 상황들은 대부분 불쾌한 것들이었다.
아동 학대, 구타, 괴롭힘 등등.
그러므로 나는 수호의 멍 자국을 결코 모른 척할 수 없었다.
“수호야, 여기 팔은 왜 다쳤어?”
“정말이네? 수호야, 팔 왜 다쳤니?”
보호자 역시 멍 자국을 확인하고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넘어졌어요.”
수호는 나와 보호자가 아닌 창가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시선을 회피하는 행동은 내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언제 어디서 넘어졌는데?”
내가 물었다.
“어제 복도에서요. 아침에요.”
“무슨 소리니? 어제 엄마랑 오전 내내 병실에 있었잖아.”
“그… 그럼 오후 같아요.”
보호자에 의해 거짓말이 들통 나자 수호는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말을 바꿨다.
4살이면 거짓말에 익숙할 나이는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잠깐만.
혹시 보호자가 수호를 학대해 놓고 시치미를 떼고 있는 걸까.
아동 학대의 대부분은 부모나 친척 같은 혈연관계에서 발생하니까.
문득 떠오른 가설은 합리적인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가설 확인을 위해 나는 한 가지 실험을 시도했다.
채혈할 때 환자의 팔에 묶는 고무줄을 보호자에게 묶어 달라고 부탁했다.
“이 정도야 충분히 할 수 있죠.”
보호자는 손쉽게 수호의 팔에 고무줄을 묶었다.
그동안 나는 수호의 표정을 세심하게 살폈다.
보호자가 수호의 멍 자국을 만든 장본인이라면.
보호자가 상습적으로 수호를 학대한다면.
수호는 보호자의 손길을 두려워하거나 잔뜩 긴장할 테니까.
‘불행 중 다행이네.’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보호자가 수호의 팔에 고무줄을 묶을 때 수호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일단 보호자는 용의선상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짙어지는 의문.
매일 붙어 있는 보호자가 아니라면 대체 누가 수호를 멍들게 했을까.
수호가 정말 넘어졌을까?
눈을 못 마주치고 대답도 어설픈 걸 보면 넘어졌다고 보긴 힘들 것 같은데…….
혹시 면회를 온 사람들이나 병실에 있는 다른 환자나 보호자가 범인인 걸까.
용의자가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생각할 것도 많아졌다.
“보호자분, 잠깐 저랑 대화 좀 하실까요?”
“네, 얼마든지요.”
채혈을 무사히 마친 나는 병실 바깥 복도로 보호자를 불러냈다.
수호 팔뚝에 있는 멍 자국이 의심스럽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그러면서 최근 수호와 지내면서 특이점이 있었는지 물었다.
“특이할 만한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저희 수호가 장난기가 많고 소란스러운 편이거든요.”
“그런데요?”
“요즘 들어 수호가 많이 얌전해진 느낌이랄까. 그밖에 다른 이야기는 없는 것 같아요.”
“말씀 감사합니다. 당분간 수호를 잘 관찰해 주세요.”
보호자에게 당부의 말을 전한 뒤 나는 다음 병실로 이동했다.
병동 안에서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었다.
* * *
슬픈 예감과 불행한 예감은 틀리는 일이 없었다.
병실을 돌면서 나는 수호와 비슷한 멍 자국이 있는 아이를 두 명 더 발견했다.
세 아이의 멍 모두 치료 중에 발생하는 종류의 멍이 아니었다. 인위적인, 그리고 외적인 충격으로 발생한 멍이었다.
보호자들의 패턴도 한결같았다.
그들 역시 오늘에서야 멍을 발견했으며 아이에게 위해를 가한 흔적은 없었다.
한 명도 아닌 세 명의 어린 피해자.
자신이 멍든 이유를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하는 어린 피해자.
병동 돌아가는 꼴이 심상치 않았기에 나는 불안함을 느꼈다.
아동 학대 사건이 이대로 방치되면서 곪아 버리고 급기야 터져 버린다면 소아 흉부외과 병동 자체가 크게 흔들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피해는 환자와 보호자는 물론이요 의료 스태프까지 고스란히 받게 된다.
“김준호, 잠깐만.”
컨퍼런스와 회진이 연달아 끝난 뒤 나는 김준호를 회의실로 따로 불렀다.
“병동 콜 들어왔어. 빨리 말해.”
김준호가 초조한 듯 다리를 떨며 말했다.
“다른 건 아니고 너, 근무할 때 하수진을 꼼꼼히 관찰해 봐.”
“뭐야? 스토킹이라도 하라는 소리?”
“거의 그런 느낌으로 하면 좋지. 뭔가 수상을 행동을 하는 것 같으면 휴대폰 동영상으로 찍어 놓고.”
“그건 너무 막 나가는 거 아닌가?”
“아닐 수도 있어.”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컨퍼런스와 회진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수호를 비롯한 아이를 학대한 사람이 대체 누구인지를.
여려 사람들을 떠올리고 지우기를 반복한 끝에 최종적으로 남은 사람은 바로 하수진이었다.
내가 하수진을 결정적으로 의심하게 된 근거.
그 근거는 어제 옥상에서 김준호와 나눈 대화 속에 있었다.
-또? 으음… 아이들이 하수진 말은 기가 막히게 잘 듣더라고. 병동의 말썽꾸러기들도 하수진 앞에서는 순한 양이야.
공교롭게도 오늘 팔뚝에 멍이 들어 있던 아이들은 모두 성격이 활발한 아이들이었다.
부모들도 아이들이 소란스러워서 제제를 자주 했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보호자가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하수진이 아이들을 조용하게 만들려고 팔뚝을 꼬집었던 것은 아닐까.
병실 칸막이를 쳐서 다른 환자 및 보호자의 시선을 가린다면.
아이가 아파서 소리를 지르면 처치 중인 것처럼 연기를 한다면.
감촉같이 아이를 학대할 수 있었다.
하수진의 밑바닥 인성을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시나리오였다.
“에이, 설마 그렇게까지 했을까? 간호사 짬도 5년 차던데.”
내 주장에 김준호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논리적인 비약이 너무 심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의견을 입 밖으로 낸 시점부터 나는 내 의견의 정당성을 80퍼센트 이상 확신하고 있었다.
물증만 찾으면 게임 오버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리 자극적인 드라마나 영화도 현실은 못 따라오는 법이지. 왜인 줄 알아?”
“아니?”
“드라마나 영화는 만드는 사람이 필터링을 하는데 현실은 그런 게 없거든. 진짜 야생은 현실이야.”
나는 앞으로 병원 안팎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사건, 사고들을 많이 알고 있었다.
그런 사건, 사고들에 비하면 하수진이 딱히 급발진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튼 잘 부탁한다. 난 수술방에 있어서 하수진을 감시 못하니까.”
“…….”
“어제 말한 것처럼 이번 건으로 하수진 골탕 먹이면 좋은 거 아니겠어?”
“겸사겸사 그것도 괜찮겠네. 콜.”
회의실을 나와 병동 복도를 가로지르던 중.
나는 스테이션에서 근무 교대 중인 하수진을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