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제1장 커튼 콜(1)
나는 박정렬이 절개한 좌심방을 견인기로 벌리면서 미란이의 심장을 살폈다.
광학 현미경을 보지 않더라도 파악할 수 있는 정보들은 있었다.
‘부디 별일이 없었으면 좋을 텐데…….’
심장을 육안으로 살피면서 나는 미란이의 무사 회복을 기원했다.
2살이면 아직 인생에 뿌리도 못 내리고 잎도 못 틔운 나이였다.
승모판 역류를 동반한 ASD(심방중격결손)에 걸려 수술을 받는 것도 억울하거늘…….
수술 중 사고로 사망하는 일은 더욱 비참하고 끔찍한 일이 아닌가.
회귀한 나는 더 이상 그런 비극을 보고 싶지 않았다.
영화나 소설은 다 해피엔딩이길 바랐고, 병원에서 퇴원하는 환자는 모두 건강해져서 다시는 병원에 오지 않기를 바랐다.
‘어디 보자.’
2살 미란이의 심장은 2살 미란이의 몸뚱이처럼 앙증맞았다.
손바닥에 올려도 공간이 남을 듯했다.
문제는 ASD(심방중격결손)으로 인한 우심방 비대였다.
ASD란 좌심방과 우심방을 가로막는 벽에 구멍이 뚫린 것이었다.
이때 좌심방의 혈류가 우심방으로 역류하면서 우심방의 역할 부담이 커진다.
동시에 우심방의 크기마저 커진 것이었다.
심장 근육이 커지고 강해지면 좋은 것 아닌가.
마라톤 선수도 심장 근육이 발달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누군가는 그런 의문을 가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도 상황과 케이스에 따라 해석이 달랐다.
일반적으로는 심장 근육이 비정상적으로 커지면 반대로 심장의 기능과 능력은 떨어지기 마련이었다.
‘우심방 비대가 심한 걸 보니 구멍이 10mm 이상이고 여러 개인가 보네.’
“초음파 검사할 때보다 환자 상태가 더 안 좋아졌다. 결손 구멍이 13mm인 데다가 구멍도 3개에서 5개로 늘었어.”
광학 현미경을 보며 진행한 박정렬의 브리핑이 내 예측과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물론 그렇다고 기쁘진 않았다.
불행을 예측하는 것 자체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중요한 것은 닥친 불행을 예방하고 해결하는 일이었다.
“이믿음.”
박정렬이 중후하고 비장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네, 교수님.”
“지금까지 잘하긴 했지만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시야 확보 잘해라. 네가 힘을 빼서 시야가 가려지는 순간… 알지?”
“명심하겠습니다.”
“창석이랑 상태는 더 말이 필요 없을 걸로 안다. 그럼 수술을 계속하지.”
박정렬이 상황을 정리하고 수술 도구를 손에 쥐었다.
소아 수술의 대가답게 그는 스태프들을 다루는 기술 또한 수준급이었다.
이런 스킬은 나도 배워 두면 좋을 것 같았다.
앞으로 진행하는 수술 단계의 중요성을 각인시켜 주고 혹시 닥칠지도 모르는 주의 사항을 경고하는 일.
사소하지만 전생의 나는 못했던 일 말이다.
전생에서 내 수술의 정확도와 속도가 어느 순간 정체됐던 이유.
그 또한 아마 스태프들을 관리하는 능력의 부재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나 혼자 백날 노력하고 달려 봐야 성장할 수 있는 데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기에.
박정렬의 지휘와 함께 수술은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수술 도구를 요청하거나 처치를 요청할 때만 대화가 오고 갈 뿐.
그 이외엔 단 한마디도 오고 가지 않았다.
동시에 박정렬의 수술에 차차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인공 심폐기를 사용하는 시간이 늘어나면 그 시간만큼 환자의 회복이 길어지고, 신체의 부담까지 늘어난다.
흉부외과에서 OPCAB(무인공 심폐기 관상동맥 우회술)을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고.
‘대가(大家)도 이건 어쩔 수 없는 건가?’
전생에 흉부외과 부교수였던 나는 박정렬이 긴 수술 시간에 부담을 느끼고 초조해하고 있음을 금방 알아차렸다.
눈과 손은 거짓말을 못하니까.
하지만 박정렬은 놀랍게도 그 초조함과 긴장을 수술로 승화를 시키는 것처럼 보였다.
“Pledget(수술용 섬유조직) 3x3.”
“상태야, 이쪽은 Amplatzer(심방중격 결손을 막는 그물망)를 써야겠다.”
“여기선 모스키토(겸자) 좀 쓰자.”
ASD가 검사 때 확인한 것보다 심각했음에도.
예상치 못한 결과에 당황했음에도 박정렬의 지시와 처치는 오히려 꼼꼼하고 빨라졌다.
나는 전생에서 박정렬을 오히려 과소평가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너무 뚫어지게 쳐다보는 거 아니니?”
심방중격결손의 구멍 3개를 잇달아 메운 박정렬이 내게 물었다.
“그게… 교수님은 정말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어떤 점에서?”
“상황이 더 나빠졌는데 더 빠르고 꼼꼼하게 활약하시는 모습에 감탄만 나옵니다.”
나는 진심을 표현했다.
누군가 존경하는 써전이 있냐고 물어보면 첫째로는 양순재 교수, 그다음으로 당당하게 박정렬 교수를 꼽아도 될 만큼.
“그게 바로 마음가짐의 차이란다. 힘든 일이 닥쳤을 때 그걸 불행이라고 생각하면 주저앉고 싶어지지.”
“…….”
“하지만 힘든 일이 오히려 나를 성장시켜 주고 내 한계를 뛰어넘게 만들어 주는 하나의 계기라고 생각하면 말이다.”
“…….”
“즐거운 마음으로 극복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겠니?”
뜻밖의 조언이 가슴을 울렸다.
아무래도 나와 박정렬을 가르고 있었던 결정적인 차이는 수술 솜씨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위기 상황을 인식하고 다루는 마음가짐에 있었던 모양이었다.
박정렬의 조언을 뼈와 가슴에 새긴 채 나는 어시스트를 계속했다.
양손을 써서 견인기를 좌우로 벌리게 되면서 할 일은 처참할 정도로 줄어들었다.
남는 손이 없으니 썩션을 할 수도 없었고, 가위로 봉합사를 자를 수도 없었다.
하지만 견인만 하는 것도 생각만큼 나쁘지는 않았다.
온전히 수술에 집중할 수 있었으니까.
수술을 암기함과 동시에 박정렬의 처치 등을 꼼꼼히 따져 보고 질문도 던져 볼 수 있었으니까.
순환기 내과의 다음 행선지로 소아 흉부외과를 택한 것은 과연 신의 한 수였다.
박정렬의 수술을 보고 배우는 것만으로도 성인 흉부외과 수술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직접 소아 수술까지 감당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생이란 본디 얄궂은 생물이었다.
순조로웠던 수술에 찬물을 끼얹었던 것은 한 통의 전화였다.
띠리리리리~
수술 도중에 걸려 온 내선 전화.
당연히 수술 업무의 비중이 가장 낮은 내가 전화를 받게 되었다.
내 자리는 스크럽(수술실 안에서 수술을 직접 돕는 간호사)가 대신했다.
“3번 로젯 이믿음입니다.”
전화를 연결하면서부터 나는 초긴장 상태였다.
병동에서 수술 중인 스태프들에게 내선 전화를 건다?
이는 병동이나 응급실에서 커다란 사건이 터졌다는 증거였다.
-믿음이니? 나 선아야.
“네, 선배.”
-지금 응급실에 6세 여자아이 T.A(교통사고)로 실려 왔거든? 학교 앞에서 과속 차량에 치었어. 갈비뼈 골절에 심장눌림증에 상태가 말도 못해.
2년 차 홍선아가 다급하게 설명한 결론은 이랬다.
응급 환자 수술 어시스트가 부족하니 우리 쪽 인원을 한 명 빼 달라는 것이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다른 과에서 빌리든가, 스크럽 간호사를 한 명 더 쓰라고 해!”
박정렬에게 소식을 전했더니 버럭 소리부터 질렀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하는 격이었지만 나는 그의 심정을 십분 이해했다.
인공 심폐기를 사용하는 고난이도 수술을 진행하고 있는데 갑자기 스태프 한 명을 빼 달라?
집도의 입장에서는 흐름이 끊기고 맥이 빠지는 일이었다.
“선배, 그러면 교수님한테 말씀드리고 제가 그리로 갈까요?”
나는 조심스럽게 의견을 제시했다.
이 수술방에서 역할이 제일 미미한 사람은 나였다.
-진짜 미안한데, 넌 있어도 도움이 안 될 것 같아. 과장님이 직접 들어가는 수술이라서 최소 2년 차 이상이 어시스트를 해야 돼.
“…….”
-내가 들어가면 좋겠지만 당직실 지킬 레지던트가 한 명은 있어야 하고. 미치겠다, 진짜.
소아 흉부외과의 흉흉한 인력난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일이 터진 상황.
나는 다시 박정렬에게 보고를 했고, 박정렬은 울며 겨자 먹기로 2년 차 하상태를 과장이 수술하는 로젯으로 보냈다.
응급 수술을 과장이 직접 집도한다니 박정렬도 버틸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하상태가 떠나면서 수술은 일시적으로 멈췄고, 수술실 분위기는 바닥까지 가라앉았다.
거듭되는 악재는 스태프들의 기운을 빼앗기에 충분했다.
한편 무거운 침묵을 가장 먼저 깨트린 이는 집도의 박정렬이었다.
“앞으로 수술 시야 확보는 고 선생님이 해 주세요. 이믿음, 넌 제2 보조로 올라와라. 졸지에 제2 보조가 됐다고 해서 긴장할 필요 없어.”
“…….”
“넌 그냥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는 거야. 알았지?”
“네, 교수님.”
나는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박정렬은 내가 긴장한 줄 착각하는 모양인데, 천만의 말씀이었다.
나는 당장 1어시스트로 들어가도 아까운 인재였다.
소아 흉부외과에서는 실력 발휘를 하기보다는 뒤에서 조용히 공부에 힘쓸 생각이었거늘…….
아무래도 하늘은 내 활약을 원하고 있는 듯했다.
‘그렇다면 보여 주는 수밖에…….’
나는 가볍게 손목을 풀고 심호흡을 했다.
내가 제2 보조로 들어온 이상 수술 시간은 최소 1시간 이상 단축될 것이다.
* * *
‘뭐지? 이 친구는?’
박정렬은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믿음이 제2 보조로 올라온 뒤 수술의 흐름이 완전히 뒤바뀌어 버렸다.
수술 속도에 탄력이 붙고, 정교함은 배가 되었다.
고작 인턴이 제2 보조로 들어온 걸로 수술이 딴판이 될 수 있는 건가?
경험 많고 노련한 박정렬조차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그저 이 상황이 황당하고 신기하고 놀라울 따름이었다.
제2 보조의 역할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었다.
하나는 제1 보조에게 수술 도구를 건네는 것.
나머지 하나는 이리게이션(세척), 썩션, 거즈 및 소작기 등을 사용하며 수술의 핵심적인 요소가 아닌 부가적인 요소를 도맡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믿음은 두 가지 모두를 완벽하게 해냈다.
인턴답지 않은 환상적인 솜씨를 뽐내면서.
“여기 출혈 부위 결찰할 헤모스탯(혈관겸자)입니다.”
“좌심방 조직 고정시킬 클램프입니다.”
“고 선생님, 죄송한데 승모판 판엽 부분 시야 조금만 더 넓혀 주세요. 여기서는 결손 조직이 잘 안 보입니다.”
이믿음이 제1 보조인 오창석을 든든하게 돕고.
제1 보조인 오창석이 박정렬을 또 든든하게 돕고.
그렇게 선순환이 이루어지면서 수술은 오히려 2년 차 하상태가 있을 때보다 더 활기를 띠었다.
하지만 이믿음은 단진 오창석만 잘 도운 게 아니었다.
바이탈 사인 관리.
혈액 팩 및 헤파린 등의 약물 관리.
인공 심폐기 관리와 세척과 흡입, 거즈 사용까지.
수술의 세부적인 사항마저 조율해 나갔다.
이믿음의 믿음직한 어시스트 덕분에 박정렬은 더욱더 신이 나서 달렸다.
예상치 못하게 악화된 미란이의 상태와 그로 인해 심란했던 마음.
하상태를 빼앗기면서 찾아왔던 답답하고 짜증 났던 감정들.
그 모든 부정적인 번뇌를 떨쳐 버리고 수술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이런 무아지경에 빠져든 것이 얼마 만인가.
박정렬이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는 수술이 모두 끝나 있었다.
좌심방과 우심방을 막아 주는 벽에 존재했던 구멍들은 모두 메워졌다.
좌심방과 좌심실 사이에 위치한 판막인 승모판.
너덜너덜했던 승모판은 어느새 튼튼하게 재건되었다.
인공 심폐기를 사용한 장장 5시간의 수술.
그 역경과 고난을 이겨 내고 마침내 수술의 마침표가 찍힌 것이다.
이제 남은 일은 그 마침표가 잘 찍혔는지 확인하는 일뿐이었다.
“샐라인 인젝션 테스트(식염수 주사 검사) 실시하겠습니다.”
시키지도 않고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이믿음이 나섰다.
생리 식염수가 담긴 주사기를 각각 좌심방과 우심방에 쏘아 냈다.
수술이 성공적이라면 역류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초조하고 긴장된 마음으로 스태프 전원이 미란이의 심방을 확인했다.
모두의 고생을 축복하듯 역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