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살부터 의사 생활-100화 (100/257)
  • 100화 제5장 소아 다 됐어요(5)

    “준비 끝났지?”

    집도의 자리에 위치한 박정렬이 눈으로 레지던트들을 훑었다.

    그의 눈빛은 전생의 내가 기억하는 것처럼 매서웠다.

    대부분의 외과의가 그렇듯 박정렬도 호랑이 스타일이라고 들었다.

    수술실 바깥에서는 동네 아저씨처럼 푸근하다가도 수술실에만 들어오면 야수로 돌변하는 스타일 말이다.

    박정렬이 등장하면서 수술실 분위기가 한층 서늘해진 것을.

    레지던트들이 한층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어렵지 않게 알아차렸다.

    만약 내가 어시스트 도중 실수를 하거나 굼뜬 행동을 한다면 어떤 끔찍한 사고가 펼쳐질지 알 것도 같았다.

    “네, 바로 들어가셔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건 네 생각이고.”

    오창석의 대답에 박정렬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환자 감시 장치와 미란이의 상태를 꼼꼼하게 확인했다.

    그런데 그러던 박정렬의 화살이 갑자기 나를 향했다.

    “너, 새로 온 수술방 어시스트지?”

    조금, 아니 퍽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

    집도의가 수술방 어시스트를 신경 쓰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네, 교수님.”

    “오늘 수술받는 환자 브리핑 좀 해 봐라.”

    집도의의 질문에 고개를 떨어트리는 오창석과 하상태.

    내가 대답을 못할 거라고 확신하는 기색이었다.

    나는 소아 흉부외과 오전 컨퍼런스에 참여하지 않은 채로 느지막한 아침에 인턴 교대를 했으니까.

    하지만 말이다.

    두 사람의 걱정과 달리 나는 환자의 정보를 속속들이 꿰뚫고 있었다.

    소아 흉부외과 수술의 대가 박정렬.

    그의 수술을 코앞에서 보고 어시스트 할 기회를 얻었는데 그 기회를 멍청하게 놓칠 순 없었다.

    당연히 예습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환자의 이름은 이미란. 일주일 전 흉통 및 호흡곤란으로 응급실 내원.”

    “…….”

    “카디악(심장) 에코와 ECG(심전도), 흉부 엑스레이 검사를 통해 승모판 역류를 동반한 심방중격결손 진단을 받았습니다.”

    나는 차분하게 브리핑을 이어 나갔다.

    교수 앞이라고 긴장하거나 두려워할 이유는 없었다.

    시험에 벌벌 떠는 학생은 공부를 하지 않은 학생이다.

    충분히 공부를 한 학생은 오히려 시험을 기대하게 된다.

    ‘차라리 잘된 건지도…….’

    청산유수의 언변을 뽐내면서 나는 오히려 상황을 즐겼다.

    호랑이 타입의 집도의는 어시스트가 실수나 잘못을 저지르면 지독하게 꾸짖는다.

    하지만 그런 단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반대로 어시스트가 똑 부러지게 처치를 잘한다면?

    간이며 쓸개도 다 내놓을 것처럼 잘해 주기도 한다.

    의대 시절 양 교수가 나를 아끼며 돌봐 주었던 것처럼.

    “그나마 똘똘한 놈이 들어와서 다행이군. 저번 달에 어시스트 했던 인턴은 완전히 맹탕이었는데 말이지.”

    내 브리핑을 듣고서 박정렬이 만족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아무리 인턴이라고 해도 자기가 어시스트 하는 환자가 어디가 아픈지, 왜 수술을 받아야 하는지는 알고 있어야 하는 거다. 내 말이 틀리니?”

    “아니요, 당연한 말씀입니다.”

    “그건 그렇고, 너 이름이 뭐지?”

    “이믿음입니다.”

    “그래, 이믿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지금처럼만 해. 기본만 해도 어디서 욕은 먹지 않으니까.”

    “네, 명심하겠습니다.”

    내 대답과 함께 승모판 역류를 동반한 심방중격결손 수술의 막이 올랐다.

    과연 미란이는 건강을 되찾을 수 있을까.

    박정렬은 과연 얼마나 멋진 수술 솜씨를 보여 줄까 등등.

    수많은 질문에 대한 대답이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 * *

    삐이이이. 삐이이이.

    환자 감시 장치가 토해 내는 건조한 기계음.

    드레싱 카트 위에 놓인 수술 도구들이 덜그덕거리는 소리.

    수술대 위에서 그림자 없는 빛을 쏟아 내는 무영등.

    코를 찌르는 소독약 냄새.

    수술실이 전해 주는 오감에 나는 모처럼 흠뻑 취해 있었다.

    내가 가장 빛날 수 있는 곳,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곳, 내가 가장 필사적인 곳.

    나의 전장이자 안식처 등등…….

    수술실은 내게 다양한 의미를 가진 곳이었기에 한마디로 정의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이제 와서 인생을 돌이켜 보면 수술실로 돌아오기까지 참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러니 지난 삶의 궤적들이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이믿음, 체스트 드레싱(흉부 소독).”

    “네, 교수님.”

    나는 박정렬의 지시에 따라 미란이의 앞가슴을 소독하고 방포를 덮었다.

    그런데 지시를 따르던 중 불쑥 의문이 고개를 쳐들었다.

    내가 집도의였다면 박정렬과 다른 오더를 내렸을 텐데…….

    박정렬의 오더에는 선뜻 이해하기 힘든 구석이 있었다.

    “교수님, 주제넘지만 무엇 하나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말해 봐.”

    “환자에게 정중흉골절개를 하시는 건지 궁금합니다.”

    내 질문이 재미있다는 듯 박정렬의 눈이 웃었다.

    정중흉골절개란 명치 근처를 세로로 절개한 뒤 양옆으로 벌리는 절개법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흉부외과의가 수술을 하면 다 정중흉골절개를 하는 걸로 착각하곤 한다.

    아마 드라마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왜? 너라면 어떻게 했을 것 같은데?”

    “측방 개흉술을 하면 절개 부위가 작고 회복도 더 빠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는 소신껏 의견을 펼쳤다.

    내가 집도의였다면 무조건 측방 개흉술을 펼쳤을 것이다.

    환자의 경과를 보나 미용적인 측면을 보나 측방 개흉술로 얻을 수 있는 이점이 많았다.

    물론 측방 개흉술을 하면 내가 좀 더 힘들긴 하겠지만.

    “어디서 공부 좀 한 모양이구나. 측방 개흉술을 들먹이는 걸 보면.”

    박정렬이 코웃음 치며 말을 이었고, 나는 귀를 쫑긋 세웠다.

    대체 나와 그는 왜 의견이 달랐던 걸까.

    “이믿음, 너는 수술 후를 걱정하는 모양인데 더 중요한 건 수술을 펼치는 지금 이 순간이다.”

    “…….”

    “수술이 엉터리인데 수술 후에 경과가 좋으면 무슨 소용이지?”

    “제 말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저는 단지…….”

    해명을 하려 했으나 박정렬이 내 말문을 가로챘다.

    “상황에 따라서는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다는 소리다. 단순 심방중격결손이었다면 나도 측방 개흉술을 했겠지.”

    “…….”

    “하지만 환자는 승모판 역류를 동반한 심방중격결손이야. 그걸 잊으면 안 된다.”

    “…….”

    “측방 개흉술로 승모판 성형, 제대로 할 수 있겠어?”

    박정렬의 지적에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가장 중요한 걸 놓치고 있었던 사람은 다름 아닌 나였다.

    듣고 보니 미란이를 위한 최적의 절개법은 정중흉골절개였다.

    정중흉골절개로 탁 트인 시야를 확보해야 승모판 역류도, 심장중격결손도 확실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

    [회복의 미세한 우세와 흉터 감소]

    측방 개흉술이 주는 이점에 나는 지나치게 매몰되어 있었다.

    수술은 당연히 성공하는 것이니 수술 이후까지 고려하는 절개 방법이 최선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오만이자 오판이었다.

    나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았을 뿐.

    정작 달을 보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던 것이었다.

    ‘역시 소아 흉부외과의 대가는 다르단 말이지.’

    나는 속으로 박정렬의 식견에 탄복했다.

    과연 대가란 남이 보지 못한 것을 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

    소아 흉부외과를 수련과로 삼은 내 선택은 과연 헛되지 않았다.

    오늘 같은 방식으로 박정렬의 지식과 노하우를 흡수하게 된다면 나는 분명 한 차원 더 높은 수준의 흉부외과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제 판단이 틀렸던 것 같습니다. 바쁘신데 괜히 수술을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나는 순순히 백기를 들었다.

    하지만 백기를 들었음에도 마음은 가볍고 기뻤다.

    “아니, 아주 잘했다. 녀석,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드는데?”

    의외로 박정렬은 나를 칭찬했다.

    “오창석, 하상태.”

    “네, 교수님.”

    “너희 둘 다 이 친구 좀 본받아. 배우는 사람이면 자고로 의심하고 질문을 던질 줄 알아야지.”

    “…….”

    “시키는 대로 따라 해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알았어?”

    “네, 교수님.”

    박정렬이 윗 연차 레지던트를 깎아내리고 나를 추켜세우는 바람에 괜히 나만 곤란해졌다.

    나 때문에 오창석과 하상태가 혼나는 그림이 만들어졌으니까.

    다만 이것은 박정렬뿐만이 아니라 호랑이 타입 서전의 공통적인 문제점이기도 했다.

    수술할 때 위아래, 물불 안 가리는 성미 말이다.

    “10번 블레이드.”

    수술 전 처치가 끝나자 본격적인 수술의 막이 올랐다.

    박정렬은 카리스마를 뽐내며 수술을 진두지휘했다.

    오페라의 지휘자 같은 모습이었다.

    나 역시 모든 감각을 총동원해서 어시스트에 나섰다.

    물론 거창한 각오만큼 할 일이 많고 중요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수술방에서 인턴이 하는 보조 업무는 크게 3가지로 분류할 수 있었다.

    하나는 견인기로 시야 확보.

    둘째는 혈액 등의 썩션.

    셋째는 봉합사 컷팅.

    업무 난이도는 낮았지만 그 역할은 약방의 감초였다.

    그래서 집도의와 어시스트들의 수술 분위기와 흐름을 어느 정도 내 손으로 조절할 수 있었다.

    전생에 흉부외과 의사였던 지식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나는 빈틈없는 어시스트에 나섰다.

    정중흉골절개 후 확보한 수술 시야는 내 입으로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완벽했다.

    썩션 타이밍은 끝내줬으며.

    박정렬이 심방결손이 있는 부위를 봉합하면 최적화된 길이를 남기고 매듭을 잘라 냈다.

    너 뭔데?

    너 왜 이렇게 잘하는 건데?

    오창석과 하상태, 심지어 박정렬까지.

    세 사람은 이따금 그런 의미가 담긴 눈빛으로 나를 훔쳐보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웃으며 이렇게 말하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았다.

    ‘저는 전생에 흉부외과 부교수였습니다.’라고.

    세 사람이 내게 감탄하는 것과 별개로 나는 내 목표를 착실하게 이뤄 나갔다.

    박정렬의 수술을 온몸으로 흡수해 나갔다.

    맨 처음 박정렬의 정중흉골절개술에 의문을 품었던 것처럼.

    나는 수술 중 다양한 부분에서 의문을 품고 질문을 던졌다.

    저기서는 왜 저런 처치를 했는지.

    여기서는 왜 이런 처치를 했는지 등등.

    TV 예능 프로그램을 보듯이 수동적으로 수술을 보지 않고 능동적으로 관찰을 했더니 얻을 것이 산더미였다.

    가르치는 스승만큼이나 배우는 사람의 태도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나는 새삼 깨닫게 되었다.

    “지금부터 다들 긴장해. 가장 중요한 부분이니까.”

    박정렬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그의 말대로 수술은 클라이막스를 향해 치닫고 있었다.

    이전까지의 처치는 모두 준비 단계였을 뿐이었다.

    오로지 지금 이 순간을 위한.

    “기사님, 인공 심폐기 연결은 문제없습니까?”

    “네, 문제없습니다. 진행하십시오.”

    내 질문에 인공 심폐기 기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인공 심폐기가 정상적으로 연결되자 미란이의 심장은 작동을 멈췄다.

    심장의 역할은 인공 심폐기가 대신하고 있었다.

    인공 심폐기를 쓸 정도로 오늘 수술은 만만한 수술이 아니었다.

    수술을 한 수 배우는 입장인 내게는 더 좋은 일이었지만.

    스으으윽.

    박정렬의 손에 들린 10번 블레이드가 미란이의 좌심방을 갈랐다.

    지금 이 내가 나서야 할 차례!

    나는 양손에 쥔 심방 리트랙터(견인기)로 미란이의 갈라진 좌심방을 좌우로 벌렸다.

    힘이 너무 세면 심장 조직에 손상이 가고, 힘이 너무 약하면 수술 시야가 모자란다.

    그래서 최적의 접점을 찾기 위해 애썼다.

    “오케이, 잘하고 있다. 조금만 버텨.”

    박정렬이 나를 다독이며 광학 현미경으로 심장을 살폈다.

    그런데 그는 좀처럼 광학 현미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어떻게 하자는 말도 없이 침묵만 지켰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하고 나 역시 미란이의 심방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대체 무슨 문제가 터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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