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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살부터 의사 생활-91화 (91/257)
  • 91화 제4장 통쾌한 일격(1)

    대학 병원에서는 다양한 방송이 안내된다.

    그중에서 코드라는 것이 있는데, 이 코드 뒤에 붙는 단어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코드 블루는 심정지 환자 발생.

    코드 레드는 화재.

    코드 블랙은 지진 등의 재난 사고 등등.

    그중 가장 많이 접하는 코드는 단연 지금 방송에서 나온 코드 블루였다.

    코드 블루가 발생하면 해당 장소 인근에 있던 의사들이 우르르 몰려가 심폐소생술을 해야 했다.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몰아쉬며 도착한 채혈실.

    의식을 잃고 쓰러진 50대 여성에게 간호사가 흉부 압박술을 실시하고 있었다.

    채혈을 대기 중이던 환자들은 긴장한 얼굴로 CPR을 지켜보고 있었고.

    채혈실의 분위기는 살얼음 위를 걷는 듯 위태롭고 팽팽했다.

    “선생님, 교대하시죠. 기관 삽관도 해야 할 것 같은데 필요한 도구 좀 가져다주시겠어요?”

    “아, 네.”

    간호사와 자리를 바꾼 나는 환자의 명치 부근에 깍지 낀 손바닥을 올려놓고 힘차게 압박했다.

    퍽! 퍽! 퍽!

    역삼각형의 형태를 띤 어깨와 팔.

    굽어지지 않고 쭉 펴진 팔로 흉부 압박을 하자 환자의 몸 전체가 들썩거렸다.

    가슴 압박 30회.

    기도를 확보한 후 실시하는 인공호흡 2회.

    ‘이거 만만치 않은데?’

    내 이마에 지렁이 주름이 생겼다.

    심폐소생술을 1사이클 실시하고 맥박 및 호흡 등의 환자 평가를 실시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다.

    단순 부정맥보다는 심근경색이나 협심증.

    더 나아가서는 관상동맥 증후군까지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잡생각은 그만하자. 일단 환자부터 살리고 봐야지.’

    나는 구슬땀을 흘리며 CPR을 계속했다.

    화재가 났으면 불부터 끄는 것이 우선 아니겠는가.

    화재의 원인을 밝히는 것은 그다음의 일이었다.

    “믿음이냐? 오래 한 것 같은데 교대하자.”

    채혈실을 찾은 다른 과 인턴이자 동기가 CPR 교대를 제안했다.

    혼자 5사이클을 책임졌던 나는 순순히 자리를 내주었다.

    잠깐 사이에 온몸과 옷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계주에서 질주한 것처럼 호흡이 가빠졌다.

    CPR을 할 때마다 느끼는 건 사람을 살리는 일이 참으로 어렵다는 것이었다.

    죽음과 삶은 동전의 양면이라 언제든지 뒤집힐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CPR만큼 의사의 초심을 되찾게 해 주는 응급 처치 법도 없었다.

    그래서 CPR이란 한마디로 냉수마찰이었다.

    ‘넌 의사고 사람의 생명을 책임지는 사람이야.’라고 차갑게 일깨워 주는.

    “선생님, 기관 삽관 세트 챙겨 왔어요.”

    채혈실을 떠났던 간호사가 기관 삽관 세트, AED(자동 심장 충격기), 스트레쳐 카를 끌고 돌아왔다.

    그때까지도 환자는 좀처럼 의식을 되찾지 못했다.

    -가지고 있는 처치 도구로.

    -채혈실 내부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처치를 실시한다.

    -일단 환자의 심장부터 뛰게 한 뒤 응급실로 보낸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은 뚜렷했다.

    코드 블루 방송이 나간 지 5분 정도 지난 덕분일까.

    채혈실에는 방송을 듣고 달려온 의사가 나를 포함 총 6명 정도 되었다.

    공교롭게도 그중 대다수가 인턴이자 동기들이었고, 딱 한 명만 레지던트였다.

    레지던트의 이름은 최호섭.

    순환기 내과의 치프 레지던트.

    갈매기 눈썹에 말수가 과묵한 사람.

    내 순환기 내과 인턴 점수를 평가할 사람.

    “지호야, 넌 제세동기를 맡아 줘. 진호부터 세영이까지는 흉부 압박을 3사이클씩 교대로 펼쳐 주고.”

    “…….”

    “명수는 나 기관 삽관하는 거 도와주고.”

    나는 재빠르게 역할 분담부터 했다.

    사람이 많다고 처치가 꼭 빠르고 효과적인 건 아니었다.

    적재적소에 인원이 배치되지 않으면 다수가 소수보다 효율이 떨어질 수도 있었다.

    우왕좌왕하다가 해야 할 일을 빼 먹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는 과거 고난이도 수술까지 집도해 본 내가 있었다.

    나는 친구들을 오합지졸로 만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시작해 볼까?’

    기관 세트를 챙긴 나는 환자의 머리 위쪽에 자리를 잡았다.

    우선 환자의 머리를 젖혀 기도부터 확보했다.

    환자의 입 속으로 후두경을 삽입한 뒤 산소 튜브를 삽관할 위치를 잡았다.

    이후 탐침을 제거하고 커브에 공기를 주입해 압력을 확인했다.

    그 모든 과정에서 나는 침착하고 빠른 손놀림을 선보였다.

    전생의 인턴 시절.

    나는 내 처치로 환자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에 휩싸였지만 현생은 아니었다.

    현생의 나는 반대로 내 처치가 있어야만 환자가 살아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니 감정에 동요 없이 신속하면서도 꼼꼼한 처치를 할 수밖에 없었다.

    “백 밸브 마스크.”

    “여기 있어.”

    나는 환자의 입 밖으로 튀어나온 산소 튜브에 백 밸브 마스크를 결합했다.

    “명수야, 산소 주머니 좀 짜 줘.”

    정명수가 산소 주머니를 짜며 환기를 하는 동안.

    나는 목에 걸고 있던 청진기를 착용하고 환자의 가슴에 대었다.

    후우우욱.

    후우우욱.

    양쪽 폐음이 정상으로 들렸다.

    산소 튜브가 식도가 아닌 기도로 제대로 삽입되었다는 증거였다.

    OPCAB(무인공심폐기 관상동맥 절제술)을 펼쳤던 내가 기관 삽관에 실패한다면 그게 더 우스운 일이겠지만.

    “다들 물러서!”

    제세동기를 연결한 지호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감전될 위험이 있었기에 모두가 순간적으로 환자와 거리를 두었다.

    쿵!

    [심장 리듬 비정상. 다음 제세동을 위해 충전을 시작합니다.]

    기계음과 다시 시작되는 CPR.

    동기들과 나는 각자 맡은 역할을 다하며 15분간 사투를 벌였다.

    다행히 환자는 가까스로 의식을 차렸다.

    파르르 떨리던 눈꺼풀이 들리면서 환자의 눈동자가 보였다.

    환자의 팔다리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환자를 확인하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의사만이 느낄 수 있는 뿌듯함을 만끽했다.

    죽음이라는 바다에 빠진 사람을 삶이라는 육지로 건져 내는 것이야말로 의사가 존재하는 이유가 아닐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삽관한 기관과 제세동기 전극을 제거한 뒤 나는 환자를 스트레쳐 카에 눕힌 뒤 응급실을 찾았다.

    급성 심장마비로 쓰러진 환자였다.

    제대로 된 치료는 어차피 순환기 내과에서 받아야 했다.

    * * *

    응급실로 이동해서 각종 검사를 받은 심장마비 환자가 다시 내 손에 맡겨졌다.

    나는 환자가 누운 스트레쳐 카를 밀며 혈관 조영실로 향하고 있었다.

    심전도 검사에서 환자는 심근경색을 오랫동안 앓았던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비정상적인 Q파를 보였다.

    EMR(전자의무기록) 확인 결과.

    과거 우리 병원에서 관상동맥 중재술을 받았던 이력도 있었다.

    노티(Notify의 줄임말, 환자 보고) 결과 관상동맥 중재술을 다시 펼쳐야 한다는 지시가 내려왔다.

    그래서 나는 환자를 조영실로 옮기는 중이었다.

    “고마워요, 선생님. 선생님 덕분에 살았어요.”

    “제 아내를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환자와 보호자가 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들이 전한 감사에 나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환자나 보호자에게 감사 인사를 듣는 건 의외로 자주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나는 돈을 지불하고 서비스를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환자 및 보호자가 많았다.

    개중에는 의사가 최선을 다해 치료했음에도 결과가 좋지 않으면 의사 때문에 오히려 경과가 나빠졌다며 몰아붙이는 사람도 있었다.

    환자와 보호자를 기만하고 이용하는 의사가 있는 것처럼.

    의사를 불신하고 악의 축으로만 규정하는 환자와 보호자도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멘토 서 교수님이 내게 해 준 말씀은 신랄하기 그지없었다.

    -직업에는 귀하고 천한 것이 없다.

    -다만 인성에 귀하고 천한 것이 있을 뿐이다.

    서 교수님의 명언에 따르면.

    의사와 환자 사이에 놓인 근본적인 갈등은 사실 인성인지도 몰랐다.

    “아니에요. 제가 할 일을 했을 뿐인데요. 시술받으시고 이따가 병동에서 뵙겠습니다.”

    “네, 선생님. 감사합니다.”

    대화를 나누며 도착한 혈관 조영실.

    조영실 전담 인턴 남초롱이 조영실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도 전적이 화려하네?”

    남초롱이 내게 다가와 귓속말을 했다.

    “무슨 뜻?”

    “환자 만드는 건 의대 다닐 때부터 믿음이 네 주특기였잖아. 이번에도 한 건 했다고.”

    내 기분을 풀어 주기 위해서인지 남초롱이 농담을 했다.

    하지만 그녀의 농담이 단순한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던 건 왜일까.

    회귀를 해서 미리 사건 장소를 찾아가는 건 둘째로 치고 말이다.

    내가 다른 의사들보다 사건 사고에 자주 휘말리는 것도 사실인 듯싶었다.

    전생이라는 축복을 얻었으니 그만큼 고생하라는 뜻인 걸까.

    “너까지 그러지 마. 나도 나름 조용하게 살고 싶은 사람이야.”

    “글쎄, 그게 잘될지는 모르겠지만. 수고.”

    남초롱과 헤어지고 병동으로 복귀하는 도중.

    나는 아까 경험한 코드 블루 상황을 복기해 보았다.

    전생에 흉부외과 부 교수였다는 걸 감안하면 내 활약이 그렇게 대단했던 것은 아니었다.

    CPR에 기관 삽관이야 의사라면 당연히 해내야 할 기본적인 처치였으니까.

    다만 동기들을 진두지휘했던 것만큼은 대견했다.

    과거의 나는 리더십이 없었다.

    윗사람의 비위를 맞추는 일은 그럭저럭 해냈지만 동기나 아랫사람을 통솔하는 데는 영 무능력했다.

    동기와 아랫사람들은 나를 믿지 않았고.

    내게 기대지 않았으며.

    나를 존중하지 않았다.

    슬프게도 그 모든 상황의 원인 제공을 했던 사람은 바로 나였고.

    하지만 이번 생에서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생각은 없었다.

    전생에서 사람이 곧 재산이자 무기라는 걸 뼈저리게 뉘우쳤으니까.

    “이믿음, 너 어디서 농땡이 치고 있었어. 콜폰 안 받냐?”

    당직실로 돌아가자 김슬기가 길길이 날뛰었다.

    내가 김슬기의 콜을 무시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성미 한번 고약하셔라.

    전생이 고약이었나?

    “심전도 검사하고 돌아오는 길에 코드 블루가 떠서요. CPR하고 검사하고 환자 조영실에 데려다주고 오는 길입니다.”

    “그럼 아까 현준이한테 노티한 게 너였어?”

    “네.”

    “진작 말을 하지. 다른 콜 없으면 내 어깨 좀 주물러 주라.”

    김슬기의 콜이 알고 보니 마사지 콜이라는 사실이 기가 막혔지만 나는 일단 김슬기의 어깨를 주물러 주었다.

    김슬기의 약점을 내가 무려 세 가지나 쥐고 있다는 사실을 김슬기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나를 마사기 기계로 이용하고 있는 김슬기가 그저 귀여워 보일 따름이었다.

    우리의 상황은 곧 역전될 것이다.

    드르르륵.

    때마침 문이 열리고 4년 차 의국장 최호섭이 모습을 드러냈다.

    “너희 뭐 하냐?”

    “슬기 선배가 어깨를 주물러 달라고 해서 주물러 주는 중이었습니다.”

    나는 대놓고 질러 버렸다.

    이에 김슬기가 제 어깨에 올라간 내 손을 탁 쳐 내며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성이 간사하다 보니 4년 차에게 찍히는 건 죽기보다 싫겠지.

    김슬기의 반응이 나는 그저 우스울 따름이었다.

    “김슬기.”

    “네, 치프.”

    “인턴한테 어깨 주무르라고 시키는 건 누구한테 배웠냐?”

    최호섭의 목소리에서 냉기가 폴폴 흘러나왔다.

    레지던트 4년 차는 군대로 치면 말년 병장이었다.

    그것도 전공의 고시 준비와 논문 준비로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활화산 같은 존재였다.

    나는 그 점을 알고 있었기에 일부러 김슬기를 엿 먹였다.

    내가 눈치 없는 인간이라고 김슬기가 누누이 말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그가 원하는 대로 눈치 없이 행동해 준 것이다.

    “그게… 요새 어깨가 안 좋아서 잠깐 부탁을 한 거였습니다.”

    “이믿음, 맞아?”

    “네, 어깨가 많이 안 좋으셨는지 콜까지 하시더라고요. 제가 더 자주 주물러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내 지극히 솔직한 답변에 김슬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갔다.

    처음 해 보는 고문관 코스프레, 이것도 은근히 할 만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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