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살부터 의사 생활-80화 (80/257)
  • 80화 제1장 인턴을 향해서(5)

    “하아… 하아… 하아…….”

    호흡이 거친 만큼 발걸음도 거칠었다.

    나는 지하 1층 주차장부터 지하 3층 주차장을 달리며 주변을 살폈다.

    그렇다.

    환자가 쓰러져 있을 곳으로 내가 추정한 장소는 바로 주차장이었다.

    환자가 주차장에서 쓰러졌다고 하면 응급실로 후송되는 시간이 늦어졌다는 사실이 어느 정도 납득이 되었다.

    병원 바깥이나 병원 내부에 비하면 주차장에 있는 사람은 극도로 적기 때문이다.

    주차장 중에서도 나는 시야가 잘 닿지 않는 사각지대를 중점적으로 살폈다.

    환자를 찾는 내 눈빛은 아마 필사적이었을 것이다.

    환자가 무슨 병으로 쓰러졌는지 나는 여전히 몰랐다.

    하지만 후송이 늦은 탓에 후유증을 앓았다고 하면 응급 질환일 게 분명했다.

    환자의 경과는 내 손에 달렸다고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니 초조하고 쫓기는 느낌이 들 수밖에…….

    1, 2층에서 허탕을 친 나는 기진맥진한 발걸음으로 3층으로 내려갔다.

    체감상으로는 그리 오래 달리지 않은 것 같은데 온몸이 땀에 절어 있었다.

    앞머리는 힘없이 축 처졌고, 잘 다렸던 양복과 와이셔츠는 형편없이 구겨졌다.

    그래도 환자를 살릴 수 있다면 이 정도는 감내할 만했다.

    “찾았다!”

    나도 모르게 감격한 목소리가 튀어나온 장소.

    그곳은 지하 3층 주차장 외곽이었다.

    고급 승용차 운전석 옆에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이 쓰러져 있었다.

    승용차 양옆으로 덩치 큰 SUV가 세워져 있던 데다가 그 앞에 기어를 풀어놓은 자동차 한 대가 서 있었다.

    가뜩이나 장소도 외진 데다가 시야각까지 최악이었다.

    환자 발견이 늦었던 건 당연했다.

    아니, 오히려 발견이 됐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기어가 풀린 차를 살짝 밀어내고 나는 쓰러진 환자에게 다가갔다.

    환자를 발견한 것은 절반의 성공이었다.

    응급 처치를 시도하고 환자를 응급실로 데려가야만 완벽한 성공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저기… 괜찮으세요?”

    나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환자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쓰러져 있던 환자가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환자의 눈동자가 똑바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환자는 의식이 또렷했다.

    환자가 주차장에 쓰러졌을 거라고 예측한 내 추리.

    그 추리를 실현시킨 튼튼한 두 다리가 큰 역할을 해낸 것이다.

    “수… 숨쉬기가 너무…….”

    노인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졌는데 한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고 있었다.

    노인은 무언가를 더 말하고 싶어 하는 듯했으나 입술만 들썩거렸다.

    특이할 만한 점이라면 노인이 뭔가가 아쉽다는 듯 계속 자동차를 응시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호흡이 제일 불편하세요? 또 다른 건요?”

    “…….”

    가쁜 호흡과 통증으로 차마 입을 떼지 못하는 노인을 살피며 나는 고민에 빠졌다.

    대체 노인을 괴롭히고 있는 질환의 정체는 무엇일까.

    증상으로만 보면 급성 심장마비의 전조 단계인 것 같기도 하고.

    과호흡 증후군과 얼추 겹치는 증상이 있고.

    노인이 지속적으로 기침을 하며 호흡 곤란을 호소하는 걸 보면 ARDS(급성 호흡 곤란 증후군)을 배제할 수 없고.

    일단 노인을 업고 응급실로 뛰자.

    결론을 내리고 노인에게 바짝 다가가던 나는 듣고야 말았다.

    쌔애애액.

    쌔애애액.

    환자의 거친 호흡 속에 희미하게 숨겨진 천명음을.

    천명음이란 기도가 좁아진 환자가 숨을 쉴 때 쌕쌕 또는 갸르릉 또는 그르렁, 하고 특이한 호흡음을 내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기도나 기관지 등의 호흡기 계통에 문제가 있다는 뜻인데…….

    ‘아… 그래서 자동차 쪽을 보고 있었구나.’

    그제야 흩어졌던 퍼즐들이 제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환자는 천식 발작으로 쓰러진 것이었다.

    가쁜 호흡과 흉통, 천명음.

    이 세 가지는 천식 발작 환자들이 드러내는 전형적인 증상들이었다.

    “잠깐 빌리겠습니다.”

    삐비빅!

    나는 노인의 머리맡에 놓인 차 키를 손에 쥐고 차 문을 열었다.

    조심스럽게 차 안으로 들어가 운전석과 보조석 사이에 위치한 수납함에서 손바닥 절반만 한 작은 기계를 꺼냈다.

    노인이 그토록 애타게 찾던 물건이 바로 이것이었다.

    기관지 이완제.

    노인이 사용하는 이완제는 ㄴ 자 형태로 가장 대중적인 분사 흡입기였다.

    기관지 이완제를 확인함과 동시에 팽팽했던 내 긴장감도 이완되기 시작했다.

    ‘이제 감이 오네.’

    나는 확장제를 챙기면서 노인에게 벌어졌을 사건을 재구성해 보았다.

    나이가 있었기에 노인은 아마 건강 검진 등을 통해 본인이 천식이라는 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진료를 통해 받은 기관지 이완제를 휴대하고 있는 게 당연했다.

    노인은 기관지 확장제를 차에 놓고 진료를 보기 위해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때마침 천식 발작이 터지고.

    다급하게 차로 돌아가던 노인은 자동차 앞에서 발작 기운을 이기지 못해 쓰러진다.

    이것이 내가 구성한 이번 사건의 전모였다.

    “이거 찾으시는 거 맞죠?”

    내가 분사 흡입기를 들고 노인에게 다가가자 노인의 눈빛이 밝게 빛났다.

    그 눈빛만으로도 나는 내 판단이 옳았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천천히 들이마시고, 숨 참으시고, 숨 내뱉으세요.”

    나는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노인이 기관지 이완제 흡입하는 것을 도왔다.

    그렇게 잇달아 두 차례의 흡입을 마친 뒤.

    다행히도 노인의 상태는 처음보다 많이 누그러졌다.

    당장이라도 넘어갈 것 같았던 호흡이 잠잠해지고 표정도 온화해졌다.

    나는 그제야 마음을 편안히 놓을 수 있었다.

    노인을 살리기 위한 내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뿌듯하기도 했다.

    ‘확실히 전생의 내가 아니야. 앞으로도 나는 많은 것들을 바꿀 수 있어.’

    그런 믿음이 가슴 깊숙한 곳에서 샘솟기 시작했다.

    환자가 쓰러진 위치를 알아챈 눈썰미.

    환자의 증상을 읽고 내린 정확한 진단.

    눈썰미와 진단력을 동시에 발휘해서 찾아낸 기관지 이완제.

    엄청난 활약은 아닐지라도 이번 사건에는 회귀한 내가 성장했다는 증거들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아마 인턴이 되고 레지던트가 되어도 내 활약은 계속되리라.

    “휴, 자네 덕분에 살았어. 자네가 아니었다면 꼼짝없이 주차장에서 객사할 뻔했군.”

    여유를 되찾은 노인이 감사 인사를 전했다.

    노인의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심한 천식 발작이 몇 분간 지속되면 환자는 호흡 곤란으로 사망할 수 있었다.

    전생의 노인이 이번 발작으로 죽지는 않았다고 들었으니 아마 뒤늦게 후송되어 뇌에 대미지를 받지 않았을까 싶었다.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요. 몸은 좀 어떠세요?”

    “이제 숨은 쉴 만해. 잠깐만 더 쉬면 혼자서 걸을 수도 있겠어.”

    “무리하시면 안 됩니다. 괜찮으시면 제가 응급실까지 모셔다드릴게요.”

    “고맙네. 기왕 신세를 끼치게 됐으니 한 번 더 부탁하지.”

    “힘 빼고 편하게 업히세요.”

    나는 부축하는 대신 노인을 업었다.

    본과 생활로 바쁜 와중에도 일주일에 2회 이상의 운동은 빼먹지 않았다.

    내 체력과 지구력은 그 어떤 의사와 비교해도 꿀리지 않는 수준이었다.

    노인을 찾느라 벅찼던 숨도 이제 많이 가라앉아 있었고.

    “그나저나 쓰러진 나를 용케도 발견했군. 앞에 주차된 차 때문에 나를 보기 힘들었을 텐데.”

    “본 건 아니고 신음 소리 같은 것이 들려서 가 봤습니다. 운이 좋았던 셈이죠.”

    나는 즉흥적으로 둘러댔다.

    회귀한 나의 첫 번째 무기는 해박한 의학 지식이요, 두 번째 무기는 1살부터 쌓아 온 말빨이었다.

    입싸움만 한다면 원수 강태섭과 맞붙어도 결코 뒤지지 않을 것이다.

    “허허, 하늘이 자네를 내게 내려 준 모양이군. 아직 죽지 말라고. 자네는 여기 병원 직원인가?”

    궁금한 게 많은지 노인이 또 질문을 던졌다.

    “직원은 아니고 곧 직원이 될 것 같습니다. 의사 인턴 지원자인데 오늘 면접이 있거든요.”

    “면접? 면접이 있으면 빨리 가 봐야 하는 것 아닌가? 괜히 나 때문에 시간을 빼앗긴 건 아니고.”

    내가 걱정하던 노인이 반대로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

    기구하게도 상황이 180도 바뀐 것이다.

    ‘아슬아슬하려나?’

    나는 손목에 찬 시계를 확인하고 시간을 가늠해 봤다.

    면접 시작 시간이 오후 2시.

    현재 시간은 오후 2시 15분.

    내 면접 번호표는 63번이고, 5인 면접이 5분이라고 가정하면…….

    내 면접 시간은 오후 2시 30분.

    노인을 응급실에 데려다주고 면접장으로 뛰어가면 가까스로 시간을 맞출 수 있을 듯했다.

    ‘아무렴 상관없으려나?’

    시간은 촉박했으나 의외로 내 마음은 촉박하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보험이 내 등 뒤에 업혀 있기 때문이다.

    천식 발작으로 쓰러진 노인.

    그는 오늘 면접을 보는 면접관인 응급의학과 교수의 아버지였다.

    [교수님의 아버님이 응급실에 실려 오셔서 깜짝 놀랐다니까? 진짜 간 떨어지는 줄 알았다고. 병원 근처에서 쓰러지셔서 다행이었지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

    응급의학과 인턴을 돌던 중.

    1학년 레지던트 선배에게 들었던 말을 나는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면접을 보던 응급의학과 교수가 전화를 받고 급하게 면접실을 나갔던 것도.

    그런데 면접관 아버지의 목숨을 살려 준 내가 면접에서 떨어진다?

    그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즉, 나는 노인도 구하고 면접에서 떨어지지도 않을 것이다.

    “면접보다 어르신을 구하는 게 먼저 아니겠습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허허, 우리나라 의사들이 다 자네 같은 생각만 가졌으면 좋겠군.”

    노인이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사실 내 아들놈이 여기 병원 교수거든? 생명의 은인이 면접에서 떨어지는 꼴을 볼 수 없으니 내가 닿는 데까지 힘을 써 보겠네.”

    “그러실 필요까지는 없는데…….”

    “제발 나를 배은망덕한 인간으로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군. 학생, 이름이 뭔가?”

    “이믿음입니다.”

    나는 일부러 한발을 뺐다가 못 이긴 척 이름을 말해 주었다.

    “이름부터 근본이 있구먼. 전화번호도 불러 보게.”

    노인은 휴대폰을 꺼내 내 이름과 전화번호를 메모했다.

    아들인 교수에게 전화해서 내가 면접에 합격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것이었다.

    노인까지 내 뒤를 봐주겠다고 하니 그저 든든할 따름이었다.

    이로써 응급의학과 교수와 새로운 인연도 맺을 수 있으리라.

    그러고 보면 전생의 나도 참 바보 같았지.

    시련을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은 결국 사람에게서 나온다는 걸 그때는 왜 몰랐을까.

    “네가 아들놈한테 잘 말할 테니까 너무 걱정 말고, 면접 잘 보게.”

    “…….”

    “성격이 딱 부러진 걸 보면 내가 굳이 걱정 안 해도 잘할 것 같지만 말이야.”

    “어르신도 치료 잘 받으십시오.”

    노인과 헤어진 나는 면접장으로 번개처럼 달렸다.

    달리는 도중 휴대폰을 확인해 보니

    면접 때문에 무음으로 해 놓은 휴대폰에 신철우와 남초롱, 권아름의 전화와 문자가 수십 통이나 쌓여 있었다.

    잠깐 볼일이 있다고 나갔던 내가 면접이 시작될 때까지 나타나지 않았으니 걱정이 될 수밖에…….

    전생에는 가지지 못했던 친구들의 관심과 걱정이 나는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야, 대체 지금까지 어디서 뭐를 한 건데? 연락도 하나 안 받고 제정신이야?”

    엘리베이터를 나오자마자 엘리베이터 앞에서 대기 중이던 신철우가 속사포로 나를 볶아 댔다.

    신철우 곁에 있던 권아름도 한마디 거들었다.

    “미안, 면접 끝나면 다 설명할게.”

    “빨리 가 봐. 초롱이가 면접만 보게 해 달라고 통 사정 중이니까.”

    “고맙고 미안하다.”

    나는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면접장을 향했다.

    지금쯤이면 어르신의 전화가 교수에게 가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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