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살부터 의사 생활-77화 (77/257)
  • 77화 제1장 인턴을 향해서(2)

    오전 교양 수업은 심리학의 이해였다.

    교수님의 언변이 유쾌한데다가 수업 내용까지 알차서 내가 좋아하는 시간이었다.

    내가 교양으로 심리학을 선택한 이유.

    당연히 의사로서 사람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하고 싶어서였다.

    의사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이지만 그 본질은 사람을 대면하는 서비스업이 아닌가.

    의술뿐만이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더 성숙했을 때 나는 한 단계 높은 서전이 될 것이다.

    다양한 심리학 개념들을 소개하는 오늘.

    내가 유심히 기억해 둔 이론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고슴도치의 딜레마, 나머지는 일 중독이었다.

    고슴도치의 딜레마는 추운 날씨에 두 마리의 고슴도치가 있는데.

    서로 가까이 붙어 따뜻하게 있고 싶지만 가시에 찔려 접근할 수 없다는 이론이었다.

    고슴도치의 딜레마는 전생의 나를 설명해 주는 이론이었다.

    다른 사람과 친밀해지고 싶지만 상처받을까 두려워 머뭇거리던 나를.

    가시에 찔리지 않고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최적의 거리.

    애석하게도 과거의 나는 그 거리를 알지 못했다.

    일 중독은 지금의 나와 관련된 용어였다.

    일을 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초조하고, 자신의 가치가 떨어지는 느낌이 생기는 것 말이다.

    회귀한 이후 나는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아왔다.

    손톱만큼의 시간도 낭비하는 것을 참지 못했다.

    유치원 때 바느질을 하고.

    초등학교 때 영어 말하기, 듣기 공부를 하고.

    고등학교 때는 복싱 학원을 다니고 전생에서 엉킨 인연을 풀기 위해 발버둥 치고 등등.

    미래에 다가올 비극적인 사건을 막기 위해 현재의 나는 항상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됐다.

    다양한 활약을 하며 얻는 뿌듯함은 물론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순탄치 않고 괴로웠던 것 또한 사실이었다.

    ‘확실히 개념이 중요하긴 중요하단 말이지.’

    고슴도치의 딜레마와 일 중독.

    이 두 가지 개념을 알고 있으면 이를 토대로 쉽게 나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정보를 토대로 고쳐야 할 방향도 설정할 수 있고.

    앞으로 심리학 수업에서 얻는 다양한 개념들은 내가 환자와 동료들을 이해하는 데 밑거름이 되지 않을까.

    “설마 도서관에 간다고 하지는 않겠지?”

    수업이 끝나자 옆자리에 앉은 신철우가 가자미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사실 도서관에 갈 생각이 맞았다.

    이번 주말까지 양순재가 내준 논문을 읽고 요약문을 제출해야 하니까.

    하지만 심리학에서 일 중독이란 개념을 좀 더 명확하게 배웠기 때문일까.

    나는 내게 숨 쉴 구멍을 내 주고 싶었다.

    미래의 나를 위해 현재의 나를 언제까지나 희생할 순 없었다.

    “안 가, 오늘은.”

    “오, 웬일이래? 오늘은 해가 남쪽에서 떴던가?”

    “북쪽이었던 것 같은데?”

    “짜식, 너스레 떨기는. 점심 먹긴 애매하니까 그 전에 농구나 한 게임 하자. 농구 할 줄 알지?”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너보다 두 배는 더 잘할걸?”

    나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복싱뿐만 아니라 중고등학교 때 축구며 농구며 운동을 자주 했으니까.

    “그 패기 마음에 든다. 하지만 내 고등학교 별명이 마이클 철우였단 사실은 몰랐을 거다. 반코트 10점, 점심 내기 콜?”

    “콜.”

    학교 운동장으로 향하는 동안 신철우는 내게 초콜릿을 건넸다.

    물론 나를 애정해서 주는 건 아니었다.

    신철우는 빈 시간에 틈틈이 초콜릿이나 사탕을 먹는 버릇이 있었다.

    “근데 너, 단 음식을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니냐? 이러다가 이 다 썩겠다.”

    나는 우물우물 초콜릿을 씹으며 물었다.

    “뇌를 쓰기 전에는 포도당을 먹어 줘야 돼. 뇌는 포도당을 에너지로 사용하거든.”

    신철우가 처음으로 초콜릿을 먹는 이유를 밝혔는데, 그 이유가 황당했다.

    초콜릿이 맛있어서 아니라 뇌에 포도당을 공급하기 위해서라니…….

    ‘넌 4차원이 아니라 5차원쯤 되는 것 같다.’라는 말이 입 밖에서 튀어나오려는 것을 나는 간신히 참았다.

    -왜 그렇게 뇌 타령을 하냐고 물었지? 그거 사실 새 아버지한테 학대당해서 그런 거다.

    며칠 전 술자리에서 들었던 신철우의 안타까운 사연이 떠올랐다.

    괴로운 나날을 견디기 위해 자신이 경험하는 모든 것을 뇌의 자극으로 치부할 수밖에 없었던 신철우.

    신철우는 단순한 4차원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었다.

    살아남기 위해 4차원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비극의 인물이었다.

    회귀한 나라면, 신철우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된 나라면 그의 상처를 보듬어 줄 수 있지 않을까.

    “아 참, 그 소식 들었어?”

    “무슨 소식?”

    “몇 주 전에 아름이 초롱이랑 주점에서 술 마실 때 칼부림 사건 있었잖아.”

    “아… 그걸 까먹을 순 없지. 들은 거라도 있어?”

    나는 호기심을 느끼며 물었다.

    회귀를 한 뒤 내가 겪은 가장 처참하고 잔인한 사건이 바로 그 사건이었다.

    차가운 화장실 타일 바닥 위.

    과도에 난자당한, 과도가 가슴에 꽂혀 있는 피해자를 떠올리면 지금도 등골이 서늘했다.

    “피해자가 우리 학교 3학년 학생이란다. 신문 방송과라고 했나? 우리 산악부 동아리 선배가 피해자를 아는 모양이더라고.”

    “무사는 하데?”

    “어. 우리가, 정확히 말하면 너랑 네 지시를 받은 우리가 응급 처치했던 게 효과가 있었나 봐.”

    “휴, 다행이네. 아슬아슬하다 싶긴 했거든.”

    나는 긴장했던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을 이었다.

    “그럼 왜 그런 일을 당했는지도 알아?”

    “가해자가 피해자 선배의 여자 친구를 스토킹 했나 봐. 피해자 선배가 쫓아다니지 말라고 담판을 지으러 갔다가 참변을 당한 모양이다.”

    “미친놈이네. 칼도 애초에 준비해 간 것 같은데.”

    “내 말이 그 말이다. 빨리 잡혀서 감방에서 썩어야지.”

    대화를 나누면서 도착한 농구 코트.

    신철우가 락카에서 꺼낸 공을 통통 튕기기 시작했다.

    양손으로 번갈아 드리블하는 것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놀랐냐? 이 마이클 철우의 드리블 솜씨에?”

    내가 감탄한 기색을 보이자 신철우가 더욱 기고만장했다.

    신철우는 내친김에 다리 사이로도 공을 통과시켰다.

    V 자를 그리며 가랑이 사이를 통과하는 농구공.

    레그 쓰루 드리블이었다.

    간단하게 몸을 푼 뒤 우리는 10점 내기 농구를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게임은 나의 처절한 완패였다.

    마이클 조던의 한국계 먼 친척쯤 되는 마이클 철우를 감당하기에 내 실력은 한참 모자랐다.

    신철우의 날쌘돌이 같은 돌파를 나는 막을 재간이 없었다.

    드리블만 잘했으면 그나마 승산이 있었겠지만 신철우는 슛도 잘 쐈다.

    철렁.

    슛만 쐈다 하면 그물이 신명 나게 출렁거렸다. 백보드를 맞고 들어가는 경우도 드물었다.

    “하아… 하아… 밥 먹고 농구만 했냐?”

    나는 거친 숨을 내뱉으며 신철우를 쳐다보았다.

    날고 긴다는 마이클 철우도 이제는 퍽 지친 기색이었다.

    “뭐,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많이 좋아하지. 많이 좋아하니까 많이 잘하고 싶어졌고.”

    신철우의 말에서 나는 다시 한번 서글픔을 느꼈다.

    새아버지의 학대를 견디기 위한 신철우의 또 다른 도피처가 아마 농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어쨌거나 너랑 내 실력 차이를 감안했을 때 이번 게임은 너무 불공정했어.”

    “…….”

    “이번 공격에 내가 1점만 내도 내가 이기는 걸로 하자. 공격권도 내가 갖고.”

    “이거 완전히 날강도잖아? 왜? 그냥 네가 이긴 걸로 하자고 그러지?”

    “그건 너무 양심에 털 난 짓이고.”

    잠깐의 합의 끝에 마지막 공격이 시작되었다.

    공격권은 내게 있었고 한 번만 득점에 성공해도 내가 이기는 게임이었다.

    드리블에 서툴렀던 나는 신철우를 등지고 공을 튕겼다.

    포스트 업이라고 불리는, 빅맨들이 자주 하는 플레이였다.

    “어쭈, 꾀를 좀 써 보시겠다?”

    “꾀를 부리는 거라면 내가 꽤 하지.”

    등으로 신철우를 야금야금 밀어내며 골 밑으로 향하는 나.

    원하는 만큼 골대와 거리를 좁힌 나는 몸을 빙그르르 반 바퀴 돌리며 슛을 쏠 것 같은 자세를 취했다.

    낚싯줄에 걸린 생선처럼 팔딱거리며 뛰어오르는 신철우, 내 슛 페이크가 통한 것이다.

    기회는 이번 단 한 번!

    나는 신철우의 블록을 피한 뒤 골 밑을 향해 점프를 뛰었다.

    양손에 쥔 공을 살포시 림 위로 던져 올렸다.

    왼손은 살짝 거들뿐.

    철렁!

    레이업 슛이 깔끔하게 성공했다.

    허탈한 표정의 신철우를 바라보며 나는 씨익 웃어 주었다. 슬램덩크의 명대사를 거만한 표정으로 날리면서.

    “나는 이믿음. 포기를 모르는 남자라고.”

    “에이, 마지막에 잡쳤네. 씻고 학식이나 먹으러 가자.”

    “학식? 나는 밖에 나가서 맛있는 음식 먹을 건데?”

    “얻어먹는 주제에 말이 많네. 빨리 따라와.”

    빈정 상한 신철우와 함께 개수대로 이동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농구 한 게임을 하고 나니 없었던 활력이 솟아난 기분이었다.

    도서관에 가지 않은 게 오히려 신의 한 수처럼 느껴질 만큼.

    간단하게 씻고 학생 식당으로 이동하는 나와 신철우.

    문득 올려다본 하늘은 푸르렀으며 봄 햇살은 찬란했다.

    아프지는 않았지만 나는 청춘이었다.

    그리고 교정에서 넘긴 청춘의 한 페이지는 아름다웠다.

    * * *

    이제 와서 돌이켜 보면 시간은 참 빨리도 지나갔다.

    그 시간들을 정말 내가 경험한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의예과 1학년생이었던 나는 눈 깜짝할 사이에 본과생이 되었다.

    일주일에 무려 다섯 번씩 쪽지 시험을 보기 시작했다.

    심리학 같은 교양 수업은 어느새인가 사라졌고, 그 자리를 병리학 실습, 해부학 실습, 약리학 실습 등등.

    다양한 실습 과목들이 자리를 잡았다.

    카데바 해부를 하기도 하고.

    다양한 환자의 케이스 스터디를 하고.

    PK(의대 실습생)가 되어 모교 병원에서 실습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나의 인맥은 두터워져만 갔다.

    신철우와는 거의 영혼의 파트너가 되었으며 남초롱과 권아름과도 허물없이 지내게 되었다.

    먼 훗날 거물 정치인이 되는 안태환 역시 나를 끔찍이 아끼는 선배가 되어 있었다.

    다만 이민호 패거리와의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조별 과제와 케이스 스터디.

    카데바 실습을 할 때 작지 않은 충돌이 있었다.

    하지만 그 역시도 훗날 병원에서 붙을 시비에 비하면 애교에 불과했다.

    일종의 신경전과 전초전에 불과했다.

    나는 그들과 벌여야 할 더 큰 싸움이 남아 있다는 것을 늘 잊지 않았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본과 과정 중에서도 나는 꾸준하게 양순재의 폐식도 파트 교육을 받았다.

    각종 논문을 격파했으며 양원 병원 수술실을 찾아가 실전을 방불케 하는 실습 교육을 받았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따라갈 수도 없는 혹독한 시간들.

    나는 그 시간들을 어렵지 않게 헤쳐 나갔다.

    회귀라는 기적을 경험한 내겐 시련을 극복할 충분한 힘이 존재했다.

    바람처럼 찾아온 2004년.

    나는 어느덧 본과 4학년생이 되었고, 9월 말쯤에 의사 고시를 보았다.

    운전면허 시험보다 합격률이 높은, 합격률이 무려 90퍼센트에 육박한다는 의사 고시에서 만점을 받았다(의사 고시 성적은 인턴 지원 때 반영이 되기 때문에 최대한 잘 받는 것이 좋다).

    하지만 의사 고시 만점은 전생의 흉부외과 부교수였던 내겐 그리 대단한 성취가 아니었다.

    만점을 받고도 시큰둥한 나였다.

    그리고 몇 개월이 더 지나 찾아온 2005년 2월.

    나는 모교인 신원대학교 병원 인턴에 지원서를 넣었다.

    무늬만 의사였던 내가 진짜 의사가 되기 위한 발걸음을 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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