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살부터 의사 생활-70화 (70/257)
  • 70화 제4장 한 걸음 더(5)

    “지금부터 집도를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비록 연습이라고는 해도 장난스러운 마음, 여유로운 마음 따위는 가지지 않았다.

    수술대에 누운 망자는 의료계의 발전을 위해 자신의 육체를 기꺼이 희생해 준, 의로운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카데바를 다루는 내 태도 또한 경건해야 마땅했다.

    ‘별 이상한 놈들이 다 있었지.’

    나는 먼 미래에 발생할 사건을 떠올리곤 치를 떨었다.

    아마 의대 본과생이 카데바 실습 현장을 사진으로 찍어 SNS에 업로드한 사건이었을 것이다.

    봄나들이를 온 것처럼 해맑은 표정.

    카데바를 희롱하는 듯한 글귀 등등.

    사건을 일으킨 의대생들은 고인에 대한 존중이 눈곱만치도 없었다.

    그들이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까지는 기억할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그들은 의사가 될 그릇이 아니라는 점 하나뿐이었다.

    “교수님, 우측 횡격막 파열을 가정하고 개흉술을 진행하겠습니다.”

    “그러거라.”

    나는 카데바가 왼쪽을 보고 눕게 만들어 오른쪽 옆구리가 노출되도록 만들었다.

    수술 부위를 확인한 순간 살짝 긴장이 되었다.

    전생의 흉부외과의로서 나는 수많은 환자의 가슴을 열었다.

    하지만 그 방식은 대부분 경흉골 양측성 개흉술이라고 불리는 것이었다.

    경흉골 양측성 개흉술은 흉부외과를 다룬 드라마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개흉술이다.

    가슴을 중심으로 위아래를 길게 절개하는 방법인데, 주로 심장 수술에 사용된다.

    이와 달리 양순재의 가르침을 받고 있는 일반 흉부외과 파트에서는 주로 측방 개흉술을 선호한다.

    다루는 장기가 식도, 폐, 종격동, 횡격막 같은 장기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나는 측방 개흉술을 별로 펼쳐 본 적이 없었다.

    개흉술 자체가 그리 어려운 수술은 아니지만 경험이 없는 수술을 하는 것은 긴장감을 유발하기 마련이었다.

    본격적인 수술 시작 전 나는 수술 부위를 소독했다.

    4퍼센트 클로로 핵시딘으로 카데바의 피부를 닦아 낸 뒤 포비돈을 덧칠하고 그 위에 수술포를 덮었다.

    소독까지 마치고 나니 전생으로 돌아가 진짜 집도를 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면…….’

    나는 눈을 감고 잠깐 고개를 숙였다.

    집도하기 전 항상 거행하는 나만의 의식.

    수술의 A부터 Z까지를 재빨리 머릿속으로 훑는 일.

    동시에 수술 과정 중에서 가장 긴장하고 조심해야 하는 과정을 가슴에 새기는 일.

    의식을 거행하고 나니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교수님, 10번 주시겠습니까?”

    “그러마.”

    양순재가 스칼펠(칼대)에 10번 블레이드를 끼워 내게 건넸다.

    칼을 건네면서 양순재를 내 눈을 힐끔 훔쳐보았는데, 그 시선에 담긴 것은 의심이었다.

    그래, 넌 천재니까 의학 지식을 암기하는 건 어렵지 않겠지.

    하지만 암기한 내용을 바탕으로 실전까지 소화할 수 있겠어?

    그것도 수술실에 처음 들어온 상황에서, 모형도 아닌 카데바를 대상으로?

    …라고 양순재의 눈은 말하고 있었다.

    그 눈빛에 이제 내가 대답할 차례였다.

    나는 과감하게 우측 가슴 옆구리에 메스를 댄 뒤 등 쪽 위까지 절개했다.

    피부가 갈라지는 서늘한 감촉이 손에 생생하게 전해졌다.

    “보비(전기 소작기) 주시겠습니까?”

    “여기 있다.”

    보비를 건네받은 나는 피하조직, 근막, 흉막 등을 차근차근 제거했다.

    치이이익.

    고요한 수술실에 전기 소작기가 조직을 태우는 소리만이 흘렀다.

    피부 조직이 타면서 달고나를 만들 때 나는 달콤한 향과 비릿한 혈향이 뒤섞이기도 했다.

    집도의가 오더를 내리고 어시스트가 이를 따르는 등의 말소리만 제거한다면 말이다.

    먼 훗날에 유행하는 ASMR을 수술실 버전으로 만들어도 괜찮을 듯했다.

    보비 소리.

    수술 도구를 움직일 때 나는 달그락거리는 쇳소리.

    환자 감시 장치의 규칙적인 전기음.

    이런 것들은 나름대로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효과가 있었으니까.

    보비로 수술 시야를 확보한 나는 양순재를 응시했다.

    “리트랙터(견인기)는 어떻게 할까요? 보조해 주실 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만…….”

    수술 시야를 확보했지만 그 범위는 너무 좁았다.

    제대로 된 수술을 하기 위해서는 견인기로 절개창을 넓혀야 할 필요가 있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견인기를 끌어 줄 보조 인력들이 필요했다.

    내가 인턴 때 그랬던 것처럼.

    “그건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구나.”

    지이이잉.

    양순재가 말을 마치기 무섭게 수술방 문이 열리고 두 명의 간호사가 입장했다.

    두 사람 다 스크럽 간호사(수술에 참여하며 집도의를 보조하는 간호사)처럼 보였다.

    문득 참관용 수술실을 올려다보니 민동근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 알고 있다는 끄덕임이었다.

    “저 녀석, 눈치 하나는 빠르다니까. 선생님들, 리트랙터 견인하는 것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그러려고 들어왔는데요.”

    “잘 부탁드립니다.”

    양순재의 말에 두 명의 간호사가 수술대에 각각 자리를 잡았다.

    “스크럽 간호사 두 분이 도와주시고, 교수님 두 분이 참관을 하다니… 이거 제가 너무 호사를 누리는 것 같습니다.”

    “알면 긴장하지 말고 내 실력을 마음껏 뽐내거라.”

    “분명 실망하지 않으실 겁니다.”

    말을 마친 나는 견인기를 절개한 피부 끝에 위치시켰다.

    끼리릭.

    끼리릭.

    고정용 핀을 돌리는 소리가 경쾌했다.

    “고정 다 됐습니다. 절개창 벌려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두 명의 간호사가 위아래에서 견인기를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그러자 피부가 늘어나면서 수술 시야가 한결 넓어졌다. 수술을 해야 할 횡격막도 드디어 눈에 들어왔다.

    “다시 내 차례가 됐구나.”

    양순재가 메스를 손에 쥐고 우측 횡격막을 고의로 훼손했다.

    오늘 실습 케이스인 횡격막 파열 상황을 만든 것이다.

    횡격막이란 가슴과 복부를 나누는 일종의 경계선 역할을 한다.

    횡격막 위로는 심장이, 그 아래로는 복강 내 장기들이 위치한다.

    횡격막 파열은 주로 외상으로 발생한다.

    이를 조기에 치료하지 못할 경우 폐가 압박을 받아 폐 기능이 감소하고, 정맥의 순환이 비정상으로 변하며 복압의 상승으로 복부 장기가 탈장을 일으킬 수도 있다.

    그래서일까.

    폐식도 파트를 수련한 펠로우가 응급실에 불려 가면 횡격막 파열인 경우가 허다했다.

    “자, 그러면 다음 처치를 해 보거라.”

    “네, 교수님. Vicryl 1-0 준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Vicryl(바이크릴)은 흡수성 봉합사로 과를 불문하고 수술실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봉합사였다.

    여기서 1-0이란 실의 굵기를 의미하는데, 숫자가 커질수록 실의 굵기는 얇아진다.

    그러니까 1-0의 경우 봉합사가 꽤 굵은 편이며 5-0쯤 되면 봉합사가 머리카락 굵기만큼 얇아진다.

    끼기기긱.

    나는 오른손에 쥔 니들 홀더로, 양순재가 건넨 봉합사 포장지에 붙어 있는 니들을 뽑아냈다.

    드디어 외과의의 솜씨를 평가하는 지표 중 하나인 봉합의 서막이 열린 것이다.

    ‘봉합이야 자신 있지.’

    나는 왼손에 쥔 포셉으로 찢어진 횡격막의 조직을 붙잡았다.

    그리고 오른손에 쥔 니들 홀더의 바늘침으로 횡격막의 조직을 꿰뚫었다.

    여기서 관건은 힘 조절.

    잘못하면 봉합사의 바늘침이 봉합해야 하는 장기 조작을 찢어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푹!

    바늘침이 상처가 횡격막을 깔끔하게 관통했다.

    나는 같은 방식으로 찢어진 횡격막의 반대편도 바늘침을 통과시켰다.

    양손에 쥔 처치 도구로 봉합사를 잡아당기자 느껴지는 팽팽한 장력.

    봉합사의 장력이 너무 약하면 상처가 벌어져 봉합술을 하는 의미가 없다.

    반대로 봉합사의 장력이 너무 강하면 상처가 찢어지는 경우가 발생한다.

    즉, 이번 작업도 관건은 힘 조절이었다.

    봉합사가 찢어진 횡격막을 팽팽하게 잡아 주도록 만든 나는 간단하게 매듭을 지었다.

    계속되는 봉합술.

    나의 손은 어느새 신들린 듯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내가 손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손이 나를 움직이는 느낌이랄까.

    이 느낌은 내가 컨디션이 좋을 때 나타나는 느낌이었다.

    봉합에 흠뻑 빠지다 보니 나는 수술 간호사와 양순재, 민동근이 있다는 사실마저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야말로 무아지경.

    이 황홀한 감각을 내가 얼마나 기다려 왔는지 다른 사람은 결코 모를 것이다.

    나는 거침없이 continuous two layer 봉합을 선택했다.

    이중 연속 봉합.

    일반적인 단순 단속 봉합과 달리 매듭을 부위 별로 단 한 번만 지으며 중간에 봉합사를 끊지 않고 연속해서 봉합하는 봉합술이었다.

    신속한 봉합.

    혈액 및 체액 누수 방지.

    이중 연속 봉합은 이 두 가지에 장점이 있었다.

    “끝났습니다.”

    5센티가량 찢어진 횡격막을 봉합한 나는 다소 아쉬운 기분으로 수술 도구를 손에서 내려놓았다.

    전생을 거슬러 몇십 년 만에 마주한 집도의의 맛.

    그 맛은 강렬하고 매혹적이었다.

    당장이라도 시간을 건너뛰어서 흉부외과 교수로 활동하고 싶을 만큼.

    누가 뭐래도 나는 수술실에서 가장 빛나는 사람이었다.

    “새로 오신 외과 전문의 선생님이신가 봐요. 봉합이 엄청 말끔하네요.”

    “전문의 선생님치고는 너무 동안이시다.”

    내 처치를 두고 스크럽 간호사들은 칭찬을 하기 바빴다.

    내가 의예과 1학년생이라는 이야기는 못 들었던 모양이었다.

    그들의 칭찬이 나는 고맙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했다.

    나는 의예과 1학년생의 탈을 쓴 20년 차 흉부외과의 부 교수였으니까.

    한편 양순재는 내가 봉합한 횡격막 부위를 자세하게 뜯어보더니 혀를 찼다.

    “개흉술을 할 때부터 심상치 않았지만 봉합까지 완벽할 줄은 몰랐구나. 흠잡을 곳이 없어.”

    “감사합니다, 교수님.”

    “이거, 아무래도 실습 교육 과정을 완전히 다시 짜야겠구나. 설마 실전 술기와 감각까지 펠로우급일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양순재를 바라보니 양순재의 눈이 기묘한 빛을 띠고 있었다. 당황스러워 하면서도 기뻐하는 듯한 눈빛이랄까.

    양순재가 기뻐하는 것을 보니 나도 기뻤다.

    스승이 이 자리를 마련한 보람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아서.

    “그런데 믿음아.”

    “네, 교수님.”

    “이미지 트레이닝만으로 정말 이런 경지에 오를 수 있는지 궁금하구나. 나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서 말이야.”

    “저는 되는 것 같습니다.”

    나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담담하게 대답했다.

    천재 컨셉이라는 물은 이미 엎질러졌기에 주워 담을 수 없었다.

    그러니 죽이 됐든 밥이 됐든 끝까지 밀고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1살 때부터 사용했던 ‘난 아무것도 몰라요, 다 어디서 들은 거예요.’ 처세술보다는 지금의 천재 컨셉이 훨씬 낫지 않은가.

    답답하지도 않고.

    구태여 능력을 숨길 필요도 없고.

    “허허,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일단 오늘 실습은 여기까지 하고 좀 쉬자꾸나.”

    “네, 고생하셨습니다, 교수님. 선생님들도 수고하셨습니다.”

    나는 스크럽 간호사에게도 인사를 한 뒤 양순재와 수술방을 떠났다.

    수술 가운과 수술모, 수술 장갑 등을 후련하게 벗고 병원 복도로 나왔다.

    그제야 일상으로 돌아온 느낌이 들었다.

    봄 햇살을 맞은 것처럼 온몸이 나른해졌다.

    “교수님, 다음에는 교수님이 집도하시는 것을 지켜봐도 되겠습니까?”

    나는 먼저 말문을 열었다.

    문득 폐식도 파트의 대가인 양순재가 집도하는 것을 직접 보고 싶어졌다.

    대가의 수술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도 좋은 훈련이 되기 때문이다.

    “녀석, 성미 한번 빠르구나. 좋다. 안 될 것도 없지. 다음엔 폐암 수술 케이스를 내가 펼치고 네가 보조하도록 하거라.”

    “감사합니다, 교수님.”

    그런 내 모습이 기특했는지 양순재가 환하게 웃으며 한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스승의 다정한 스킨십이 나는 조금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인정을 받은 것 같아서 기뻤다.

    “네 집도를 지켜본 동근이가 무슨 말을 할지 벌써부터 기대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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