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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살부터 의사 생활-68화 (68/257)
  • 68화 제4장 한 걸음 더(3)

    양순재 교수의 연구실.

    나는 돈을 주고도 듣기 힘든 개별 교육을 받고 있었다.

    잔뼈 굵은 임상 교수가 무려 개인 시간을 빼서, 오로지 단 한 명의 의대생을 가르치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었다.

    그런 양순재 말고도 비상식적인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나였다.

    나는 고작 의대생임에도 양순재에게 폐식도 파트 펠로우 과정을 배우고 있었다.

    심지어 그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비상식과 비상식의 만남.

    먼 훗날 나와 양순재 교수가 만들어 낼 시너지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여기까지가 저번 주 내용 복습이었고, 오늘부터 폐암에 대해 공부하도록 하자꾸나.”

    “벌써 폐암입니까?”

    “시작은 빠르지만 그 끝은 더딜 거란다. 엄밀히 따지면 평생 폐암 하나만 붙잡고 있어도 폐암을 정복하기가 불가능하니까.”

    양순재의 말에 나는 속으로 수긍했다.

    폐식도 파트 수술에서 가장 많은 빈도를 차지하는 질환이 폐암이었다.

    통계와 통계를 작성한 시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국인의 사망 원인 1위는 보통 암이다.

    그중에서도 폐암은 의미는 특별하다.

    암 발병률 3, 4위.

    암 사망률 1위.

    폐암은 여러 종류의 암 통계에서 나쁜 쪽으로 최상위권을 지켜 왔다.

    간과 마찬가지로 폐 역시 침묵의 장기인데 폐는 간보다 한술 더 뜬다.

    간암이야 황달과 복수 부종이라는, 다소 뚜렷한 증상이 있지만.

    폐암은 3, 4기까지 진행되는 동안 환자가 자각 증상을 거의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호흡 곤란, 흉통, 기침.

    폐암을 의심할 수 있는 증상들은 지나치게 일상적인 것들과 맞닿아 있었다.

    위에 언급한 세 가지는 감기만 걸려도 호소할 수 있는 것이니까.

    ‘지금쯤 펠로우를 하고 계시려나?’

    나는 먼 훗날 폐암으로 사망하는 멘토 서 교수를 떠올리며 쓰게 웃었다.

    소문에 따르면 서 교수는 골초였다고 한다.

    담배를 사탕처럼 입에 물고 다녔다는 과장된 소문까지 있었다.

    어쨌거나 서 교수는 강태섭에게 팽을 당한 뒤 망가졌다.

    나야 브랜치(지방 분원)에서 근무라도 했지만 서 교수는 아예 신원대학교를 떠나 두문불출했다고 한다.

    나중에 바람결에 들려온 소식.

    서 교수가 폐암 4기로 타 대학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충격적인 소식.

    병실 찾아가 만난 서 교수는 가지보다 더 앙상해져 있었다.

    -너나 나나 강태섭에게 당하고 처치가 우습게 됐구나. 안 그러니?

    힘없이 웃던 서 교수의 모습은 지금도 뇌리에 선명했다.

    항암 치료와 연명 치료를 거부한 서 교수는 폐암 4기 확진 3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

    나는 뒤늦게 오열했다.

    강태섭에게 배신을 당한 데다가 멘토마저 허망하게 목숨을 잃어서.

    내가 의지할 곳 없는 외톨이가 된 것이 서러워서.

    국도를 달리다가 트럭에 치인 날.

    그날은 사실 서 교수의 장례식장에 들렀다가 지방 분원으로 복귀하는 길이었다.

    ‘아마 그런 거겠지.’

    내가 폐식도 파트에 목을 매는 것도 어쩌면 서 교수 때문일지 몰랐다.

    서 교수가 폐암에 걸리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혹시나 폐암에 걸린다고 해도 내 손으로 서 교수를 구원하고 싶어서 말이다.

    “이믿음, 수업 중에 딴생각이냐? 폐암 수술이 만만하게 보이나 보지?”

    양순재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나를 꾸짖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폐암과 엮인 전생의 인연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지금은 엄연히 수업 중이었다.

    “죄송합니다. 집중하겠습니다.”

    “여기가 수술실이고 네가 수술 중에 딴생각을 생각했다고 가정해 보거라. 방금 네가 집중력을 잃어버린 탓에 환자가 죽었을 수도 있어.”

    “…….”

    “그리고 내가 널 위해 쏟고 있는 시간까지 무의미하게 만들고 싶은 건 아니겠지?”

    나를 향한 양순재의 눈빛이 메스처럼 날카로웠다.

    양순재가 선배들 사이에서 괜히 미친 호랑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었다.

    “아닙니다.”

    “나가서 빨리 세수라도 하고 와.”

    “네, 교수님.”

    나는 연구실을 벗어나 가까운 화장실에서 찬물로 세수를 했다.

    전생의 추억과 감상에 빠져 느슨했던 의식이 다시 팽팽해졌다.

    그래.

    후회와 한탄으로 얼룩졌던 전생을 바로잡으려면 바짝 정신을 차려야겠지.

    마음을 가다듬은 나는 연구실로 돌아가 수업에 집중했다.

    * * *

    무려 2시간에 걸친 폐암 수술 강의의 개요가 끝났다.

    양순재는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논문 독파와 레포트 숙제를 내 주겠다고 벼렸다.

    내 능력을 몇 번이나 확인한 뒤 그는 나를 더 이상 의대생 취급하지 않았다.

    아예 전문의 취급하며 전문 의학 용어를 남발했다.

    내 편에서는 그게 더 편하긴 했지만.

    ‘그나저나 엄청나게 몰아치시네.’

    수업이 끝난 뒤 나는 풀 죽은 파김치처럼 늘어져 버렸다.

    양순재의 수업은 열정적이었으며 강의 내용은 손톱만큼도 버릴 것이 없었다.

    그래서 수업을 따라가려면 내 에너지를 전부 쏟아부어야 했다.

    아마 내가 천재라고 생각해서 진도를 빠르고 깊게 나아가는 듯싶었다.

    나로서는 천재를 사칭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고 해야 할까.

    “믿음아, 피곤하니?”

    수업이 끝난 후에야 양순재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강의할 때와 강의가 끝난 후의 양순재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제가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교수님만큼은 아닐 겁니다. 새 발의, 새 발의 피쯤 될까요?”

    “…….”

    “교수님이야말로 고생 많으셨습니다.”

    “녀석, 네가 뭘 좀 아는구나.”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보며 피식 웃었다.

    “오늘 오후 수업은 비워 뒀다고 했지?”

    “네.”

    “그럼 잠깐 나랑 어디 가자꾸나. 따라오거라.”

    나는 양순재를 따라 지하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양순재의 승용차 조수석에 앉아 대학교를 빠져나왔다.

    겨울의 끝자락이자 봄의 문턱인 시점.

    햇살은 따스했으며 도로 양옆을 따라 벚꽃이 분홍빛으로 피어오르고 있었다.

    회귀한 나의 인생도 아마 봄의 어느쯤일 것이다.

    “혹시 어디 가시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양순재와 단둘이서 학교 바깥을 나온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평소와는 다른 일정에 호기심이 생겼다.

    “네 생각엔 어디일 것 같은데?”

    “점심시간이니 식당에 데려가시려는 것 아닙니까?”

    “반만 맞았다. 최종 목적지는 양원 병원이란다.”

    “병원에는 왜…….”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끝을 흐렸다.

    혹시 양순재의 건강에 문제라도 있는 걸까.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건 아니니까 걱정 안 해도 된단다. 일종의 깜짝 선물 같은 거니까 기대해도 좋아.”

    양순재의 대답이 의미심장했다.

    차로 30분을 이동해 도착한 곳은 영등포구에 위치한 200병상 크기의 종합병원 양원 병원이었다.

    병원에 들어가기 전 나는 양순재와 점심 식사를 했다.

    점심 식사 장소는 병원 근처의 갈빗집이었다.

    달궈진 불판 위로 먹음직스러운 갈비가 올라갔다.

    치이이익.

    갈비가 익어 가면서 흡사 보비(전기 소작기)를 사용한 듯한 소리와 보비에 지져진 조직에서 타오르는 듯한 하얀 연기가 넘실거렸다.

    갈비를 굽는 과정에서 수술을 연상할 만큼 나는 뼛속부터 외과의였다.

    “지금부터 뭐든 잘 먹어 두거라. 흉부외과의는 전문의가 되고 교수가 되어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 특히 갈비 같은 음식은 일 년에 두세 번도 먹기 힘들 거야.”

    “그럼 교수님, 한 번에 두 점씩 먹어도 되나요?”

    내 농담에 피식 웃음을 터뜨리는 양순재.

    “얼마든지.”

    점심 식사를 하며 양순재와 평범한 대화를 이어 나갔다.

    현장에서 은퇴한 늙은 스승은 나를 가르치며 오히려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고 했다.

    “너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천재인 너를 가르치기 위해 오히려 내가 더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단다.”

    “…….”

    “그뿐만이 아니란다. 은퇴가 너무 빨랐나 싶기도 하고. 요즘은 다시 수술방에 들어가 수술을 하고 싶은 마음도 든단다.”

    “교수님께서는 왜 그리 일찍 은퇴하셨습니까?”

    모처럼 편안한 분위기 만들어졌기에 나는 평소 하지 않았던 질문을 던졌다.

    외과의의 솜씨는 보통 40대에 정점을 찍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타깝게도 그 후부터는 내리막이다.

    외과는 내과와 달리 소위 피지컬이라는 개념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장시간의 수술을 버틸 수 있는 체력.

    사소한 실수도 놓치지 않는 집중력 등등.

    내과의 지식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무르익지만 외과의의 수술 솜씨는 피지컬의 쇠퇴로 차차 감소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도 양순재의 은퇴는 다소 빨랐다.

    양순재의 나이는 50대 초반이고, 신체 또한 건장했다.

    나이 60이 넘어서도 수술방에 들어가는 외과의가 있다는 걸 감안하면 양순재는 확실히 은퇴가 빨랐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말이다.”

    양순재가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아마 무서웠던 것 같구나. 내 실력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 더 이상 내 수술이 완벽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말이야.”

    “교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다른 교수님들이 섭섭해하지 않겠습니까? 교수님은 누가 뭐래도 폐식도 파트의 명의이신데…….”

    “네 말대로 다른 서전의 입장에선 배부른 소리로 들릴 수도 있겠지.”

    수업을 받으면서 양순재에게 받았던 느낌이 오늘 대화를 통해 구체적인 형상을 띠기 시작했다.

    양순재는 흔히 말하는 완벽주의자였다.

    그러니 완벽하지 않은 자신을 참을 수가 없는 것이다.

    ‘잘하면 좋은 그림을 만들어 볼 수 있겠어.’

    나는 희망찬 꿈에 부풀었다.

    양순재가 복귀에 뜻이 있다면, 진짜 복귀를 하게 된다면 나는 든든한 아군을 얻게 될 것이다.

    내가 연차에 맞지 않는 처치를 한다고 해도 양순재가 뒤를 봐줄 테니까.

    신원대학교 흉부외과에 모자란 인력을 그가 메워 줄 수도 있을 테고.

    내가 양순재의 펠로우 과정을 마친 뒤.

    즉 인턴 생활을 시작할 때쯤 양순재가 복귀한다면 아마 최적의 상황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싶었다.

    그럼 지금부터 슬슬 1살 때부터 키워 온 정치력을 발휘해 볼까.

    “교수님이 일찍 은퇴하신 걸 안타까워했던 사람이 많지 않습니까?”

    “내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당연히 많았지. 나만 한 경력을 가진 사람을 구하긴 하늘의 별 따기니까.”

    “사실 저도 그런 사람 중의 한 명입니다.”

    “허허, 믿음이 너는 왜 그런 생각을 했니?”

    양순재가 의외라는 듯 눈을 깜빡거렸다.

    “교수님의 수업을 들으면서 자주 이런 상상을 했습니다. 나중에 레지던트가 돼서 교수님과 같은 수술방에 들어가면 얼마나 좋을까 말입니다.”

    “…….”

    “교수님의 수술을 곁에서 보고 도울 수도 있다면 참 영광일 것 같습니다.”

    “원, 녀석도.”

    양순재는 쑥스러워하면서도 동시에 만족한다는 듯한 복잡한 표정을 띠었다.

    그의 표정을 보면 복귀에 미련이 있는 건 확실해 보였다.

    “저 농담으로 한 소리 아닙니다. 진심입니다.”

    “알았으니까 복귀에 대한 부분은 찬찬히 생각해 보마. 이러다가 고기 얹히겠다.”

    “네, 교수님.”

    갈비 3인분을 해치운 우리는 식당을 떠난 뒤 문제의 양원병원으로 향했다.

    양순재는 왜 굳이 시간을 내서 나와 함께 이 종합병원을 찾았던 걸까.

    조금 있으면 그 이유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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