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살부터 의사 생활-66화 (66/257)
  • 66화 제4장 한 걸음 더 (1)

    레지던트의 개입으로 안태환 치료는 무사히 이뤄지는 것처럼 보였다.

    가장 먼저 에피네프린이 근육주사로 투여되었는데, 에피네프린은 내게 아주 익숙한 약물이었다.

    강심제로서 심정지 환자의 심박을 활성화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에피네프린은 수술 중 자주 사용하는 약물임과 동시에 자주 쓰고 싶지 않은 약물이기도 했다.

    에피네프린을 사용해야 한다는 건 환자가 그만큼 응급하다는 뜻이기에.

    또 에피네프린은 안태환처럼 아나필락시스를 겪는 환자의 알레르기 반응을 감소시키는 데도 자주 사용된다.

    어쨌거나 난관은 0.9퍼센트 생리식염수를 투여할 정맥 라인을 잡을 때 발생했다.

    어리바리한 인턴이 혈관을 제대로 잡지 못했던 것이다.

    무려 세 번 연속으로.

    “아… 너무 아파요.”

    아나필락시스의 통증에도 꿋꿋이 버티던 안태환이 고통을 호소했다.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가족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죄송합니다. 안 아프게 빨리 끝내 드릴게요.”

    “선생님, 잘 좀 부탁드립니다.”

    “네, 이번엔 성공할 겁니다.”

    인턴이 자신만만하게 카테터를 들었으나 결과는 이번에도 실패였다.

    수액줄을 정맥 라인에 연결하자, 안태환의 팔이 팅팅 붓기 시작했다.

    의료용 주사침이 혈관을 관통해서 생긴 참사였다.

    “아… 왜 이러지.”

    인턴이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리곤 발을 동동 굴렀다.

    안태환과 안태환의 가족뿐만 아니라 인턴의 마음도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나는 딱히 인턴을 탓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이 인턴은 의사 면허증을 따고 병원 근무를 한 지 채 한 달도 안 됐을 시점이었다.

    처음부터 처치를 잘하면 그게 더 이상했다.

    나 역시 인턴 때는 이런저런 실수를 많이 저질렀던 터라 오히려 인턴이 불쌍해 보이기도 했다.

    선배들한테 치이고.

    심지어 간호사들의 눈칫밥도 먹어야 하는 게 인턴이었다.

    인턴은 병원 내 서열 꼴찌였다.

    “…….”

    정맥 라인을 잡는 데 네 번 넘게 실패한 인턴은 다음 처치를 망설였다.

    자신감이 많이 떨어졌을 것이다.

    안태환과 안태환의 가족을 볼 면목도 없을 것이다.

    모두가 행복하려면 내가 나서야 할 타이밍이었다.

    “선생님, 잠깐 저랑 이야기 좀 하실까요?”

    나는 침상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인턴을 꾀어냈다.

    “제가 본과 4학년생인데, 다른 건 몰라도 IV 라인은 끝내주게 잘 잡거든요. 실습 때도 칭찬 많이 받았습니다.”

    “…….”

    “선생님만 괜찮으시면 제가 IV 라인을 잡아도 될까요? 환자도 힘들어하고 선생님도 힘들어하시는 것 같은데…….”

    나는 본과 4학년이라고 하얀 거짓말을 했다.

    나와 친분이 있는 사람이라면 천재라는 무적의 단어를 사용해서 과감하게 처치를 하겠지만, 처음 보는 사람에게 그럴 순 없었으니까.

    “안 돼요. 아무리 본과생이라도 병원에서 함부로 처치하는 건.”

    인턴은 단칼에 내 제안을 거절했다.

    아직 자존심이 다 죽진 않았던 모양이었다.

    “PK(본과 실습생)인 제가 병원에서 실습하는 거랑, 여기 응급실에서 IV 라인을 잡는 거랑 무슨 차이가 있죠?”

    “그건…….”

    “선생님, IV 라인 잡는 거 한 번 더 실패하면 환자 가족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

    “…….”

    “그렇다고 못 하겠다고 레지던트 선생님한테 떠넘기면 오늘 하루 종일 갈굼을 당할 거고요.”

    “…….”

    “간호사 선생님에게 부탁했다간 무시를 당하겠죠.”

    나는 속사포로 말을 이었다.

    이렇게 청산유수로 말을 할 수 있는 건 나도 인턴 때 똑같은 경험을 해 봤기 때문이다.

    환자 가족들과 선배가 위아래로 짓눌러 오는, 샌드위치를 당하는 기분이란 정말이지 끔찍하고 두려운 것이었다.

    “그렇다고 그쪽한테 IV 라인을 넘겼다간 가족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인턴이 슬슬 내 꼬드김에 넘어왔다.

    자신이 처한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잠깐 가족분들 데리고 진찰대 앞으로 가세요. 할 말이 있다고 하면서요. 그동안 제가 주변 사람을 확인하면서 IV 라인 잡을게요.”

    “…….”

    “환자도 아파서 눈을 감고 있으니까 아무 문제도 없을 겁니다.”

    “하… 진짜 미치겠네.”

    인턴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이마에 손을 올린 채 고뇌에 빠졌다.

    초면인 의대 본과생에게 IV 라인을 맡긴다는 게 보통 결정은 아니었다.

    만약 내가 IV 라인을 잡는 데 실패하면 인턴이 더 큰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럴 일은 없겠지만.

    “에이, 어차피 죽은 목숨인데 도박이나 걸어 봐야지.”

    자포자기한 듯한 인턴의 목소리.

    “진짜 잘할 수 있죠? 나 진짜 그쪽만 믿을게요.”

    “당연하죠. 오늘 한 선택 중에 최고의 선택이 될 겁니다.”

    합을 맞춘 우리가 안태환의 침상으로 복귀했다.

    계획대로 인턴은 할 말이 있다며 안태환의 세 가족을 진찰대로 끌고 갔다.

    안태환은 기억 자로 접은 팔로 눈을 가린 상태.

    응급실 스태프들은 새로 들어온 응급 환자를 살피느라 정신없이 바쁜 상황.

    기회는 바로 지금이었다.

    안태환과 안태환의 가족.

    그리고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해서 난감한 인턴이 모두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 내 손에 달려 있었다.

    슥슥슥.

    나는 알코올 솜으로 내 손을 닦고 주사를 놓을 안태환의 정맥 라인도 소독했다.

    토니켓(고무줄)을 이용해 안태환의 왼팔 상완부를 꽁꽁 묶었다.

    40여 년을 돌아와 카테터(의료용 주사침)를 쥐는 손놀림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나는 왼손 검지로 정맥을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오른손에 쥔 카테터를 15도로 눕힌 뒤 한 동작으로 카테터를 정맥에 찔러 넣었다.

    푝!

    혈관 뚫리는 느낌이 손끝에 생생하게 전해졌다.

    ‘이 정도쯤이야.’

    5-0 봉합사.

    그러니까 머리카락 굵기의 봉합사로 미세혈관 문합술(microvascular anastomosis)을 펼친 나였다.

    CABG(무인공심폐기 관상동맥 수술)

    그러니까 심장이 뛰는 상태에서 관상동맥을 봉합해 본 나였다.

    IV 라인을 잡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카테터 끝에 맺힌 핏방울을 확인한 나는 고무줄과 주사침을 제거하고 수액줄을 연결했다.

    수액이 똑똑똑 잘도 떨어졌다.

    미리 떼어 놓은 살색 반창고로 수액줄을 고정시키고 처치는 끝.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10초 만에 IV 라인을 잡았다.

    주변을 살피고 전광석화처럼 움직였기에 내가 정맥 라인을 잡는 모습을 본 사람도 없었고 말이다.

    정맥 라인이 성공적으로 잡혔으니 이제 아무도 고통 받을 필요가 없었다.

    안태환은 아파할 필요가 없었고.

    안태환의 가족은 가슴 졸일 이유가 없었고.

    인턴은 안태환의 가족과 선배에게 욕먹을까 봐 겁을 먹지 않아도 됐다.

    사소하지만 모두를 위한 해피엔딩이 이뤄진 것이다.

    “선생님, 간호사 선생님이 수액 놓고 가셨는데요?”

    나는 진찰대로 이동해서 한마디 했다.

    내 승전보에 인턴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딱딱하게 굳었던 안태환 가족의 얼굴도 서서히 펴지기 시작했다.

    의료 스태프가 정맥 라인을 못 잡아서 고통 받는 환자와 환자 보호자의 마음.

    그리고 그 때문에 눈치가 보이고 속이 타들어 가는 의료 스태프의 마음.

    동시에 교차하는 두 가지의 서로 다른 마음을 나는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마음이 한층 넓어진 이번 생에는 분명 전생보다 더 나은 의사 노릇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문득 그런 예감이 들었다.

    * * *

    “고맙기도 미안하기도 하네요. 덕분에 살았어요.”

    처치가 끝난 뒤 인턴이 나를 따로 불러 감사를 표했다.

    활짝 펴진 그의 얼굴이 보기 좋았다.

    “그쪽이 아니었으면 저는 환자 가족분들께 욕을 먹거나 레지던트 선배한테 욕을 먹었을 거예요.”

    “…….”

    “진짜 죽다 살았네.”

    “저는 다른 건 잘 못하고 정맥 라인만 잘 잡습니다. 어쨌거나 선배님을 도와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네요.”

    “근데 정맥 라인을 진짜 잘 잡았네요? 혈관이 엄청 얇고 가늘었는데.”

    인턴의 말은 사실이었다.

    안태환은 인턴이나 간호사들이 정맥 라인을 잡기 꺼려하는 타입이었다.

    혈관이 잘 보이지 않을뿐더러 약해서 터지기 쉬웠기 때문이다.

    새내기 인턴이 감당하기엔 벅찬 혈관이었다고 해야 할까.

    아마 내가 나서지 않았다면 인턴은 네 번째 시도에서도 결국 정맥 라인을 잡는 데 실패했을 것이다.

    “그거야 경험이 쌓이…….”

    나는 말실수를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현 상황에서 나는 PK생이었다.

    정맥 라인을 잡는 경험이 더 많을 수가 없었다.

    “…면 실력이 좋아진다던데. 저는 손재주를 타고났나 봐요. 처음부터 그냥 되더라고요.”

    “부럽네요. 그 손재주. 어쨌든 정말 고마웠고, 이거라도 한잔해요.”

    “잘 마시겠습니다.”

    인턴이 건넨 커피를 챙긴 후 나는 안태환이 누운 침상으로 돌아갔다.

    에피네프린과 생리식염수가 투여된 후 안태환의 증상은 호전되고 있었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간헐적으로 흘러나오던 신음이 사라졌다.

    응급실에 들어온 뒤 감고 있던 눈도 뜨고 있었다.

    “선배, 좀 괜찮아요?”

    “이제 좀 살 만해졌어. 다 네 덕분이다. 별거 아닌 줄 알고 집에 돌아갔으면 큰일 날 뻔했네.”

    대답하는 안태환의 목소리에도 여유가 깃들었다.

    “…….”

    “너 괜히 천재 소리 듣는 게 아니다? 요상한 아나필락시스까지 다 알고 있고.”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겠어요? 다 이유가 있는 법이죠.”

    “짜식, 너스레는. 하여간 고맙고 미안하다. 소혜만 신세진 게 아니라 나까지 네 신세를 졌으니.”

    “그래, 믿음이 네가 우리 가족을 살렸구나.”

    “고생 많았다. 믿음아.”

    “고마워요. 오빠.”

    안태환 가족들의 칭찬과 감사 인사가 줄을 이었다.

    나는 멋쩍은 표정으로 뒷머리만 긁적거렸다.

    고래는 칭찬을 받고 춤을 출지 몰라도 나는 칭찬을 받으면 괜히 부끄러웠다.

    나로서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었으니까.

    칭찬 세례를 받던 내 시선이 잠시 안소혜에게 머물렀다.

    안태환이 아나필락시스로 가족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면서 정작 안소혜가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차라리 잘된 걸까?’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다.

    안소혜는 오빠인 안태환을 걱정하느라 자신의 괴로움을 잠시 잊은 듯했기에.

    “제가 태환 선배를 지키고 있겠습니다. 세 분은 근처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계세요. 하실 이야기가 많을 것 같은데.”

    “그러면 너무 미안한데…….”

    “미안하실 거 없습니다. 과외에 애프터서비스가 붙었다고 생각하시면 되거든요.”

    나는 농담을 섞어 가며 세 가족을 응급실에서 내쫓다시피 했다.

    안태환에게 필요한 것이 몸의 치료였다면, 안소혜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의 치료였다.

    그리고 안소혜를 치료할 수 있는 건 내가 아닌 가족들의 따뜻한 이해와 관심이었다.

    “선배, 눈 감고 한숨 푹 주무세요.”

    “많이 괜찮아진 거 같은데… 그냥 집에 가면 안 되나?”

    “혹시라도 모르니까 팔로우 업(경과 관찰) 해야죠. 아마 3-4시간은 병원에 있어야 할걸요?”

    “이믿음 선생님께서 오더를 내리면 잠자코 들어야지. 근데 넌 심심하지 않겠어?”

    “저 멍때리는 거 좋아해요.”

    “취향 한번 독특하네. 그럼 염치 불고하고 잔다?”

    “네, 푹 주무세요.”

    눈을 감은 지 얼마 안 돼서 안태환은 새근새근 잠이 들었고, 나는 응급실 광경을 무심하게 훑었다.

    스태프들은 숨 가쁘게 침상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움직였다.

    드레싱 카트가 이동하면서 덜컹덜컹 쇳소리가 나기도 했고, 진상 환자가 고래고래 지르는 소리도 들렸다.

    응급실은 태생부터가 소란스러운 곳이었다.

    그러고 보니 인턴에 합격하고 처음 근무한 곳이 응급실이었던가.

    이런저런 잡념에 빠졌던 나는 목과 허리, 어깨, 손목 스트레칭을 차례대로 했다.

    지금부터라도 스트레칭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었다.

    전생에 목·허리 디스크와 손목터널증후군으로 크게 고생했으니까.

    곤히 잠든 안태환을 내려다보며 나는 다른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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