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살부터 의사 생활-65화 (65/257)
  • 65화 제3장 막아야 한다 (5)

    “콜록, 콜록, 갑자기 왜 이러지?”

    헛기침을 하는 안태환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그제야 나를 제외한 안태환의 가족도 안태환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태환아, 어디 아프니?”

    “기침을 하는 걸 보니까 감기라도 걸린 것 같은데.”

    “오빠, 어제까지는 괜찮았던 것 같은데…….”

    “별거 아니에요. 오랜만에 달렸더니 감기 기운이 올라왔나 봐요.”

    가족들이 걱정하자, 안태환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안소혜가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려던 상황이 방금 막 마무리되었다.

    그러니 더 이상 부모님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서 그런 거겠지.

    하지만 전직 흉부외과의인 내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가슴이 불편한지 가슴에 올려놓은 손.

    뜀박질이 끝난 지 한참이 지났음에도 거친 호흡.

    목덜미에서 번지고 있는 발적과 두드러기.

    안태환의 몸 상태는 심상치 않았다. 이런 안태환을 방치했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선배, 안 괜찮으면서 괜찮은 척하면 안 됩니다. 빨리 병원에 가죠.”

    “조금 불편하긴 한데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니야.”

    “제가 보기엔 아나필락시스 같은데요? 선배, 복숭아 아나필락시스 있지 않아요?”

    아나필락시스.

    알레르기 반응으로 인해 찾아오는 전신 쇼크.

    경미한 증상으로 끝날 수도 있으나 사람에 따라서는 목숨을 빼앗길 수도 있었다.

    아파트 단지 앞에서 안태환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안태환의 입가에 묻은 복숭아 조각을 기억했다.

    복숭아가 아나필락시스의 유발 인자라고 하면, 안태환의 증상도 설명이 됐다.

    “이믿음, 네가 전체 수석인 건 아는데 벌써 나를 가르치려고?”

    안태환이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아나필락시스는 죽었다가 깨어나도 아니야. 왜인 줄 알아?”

    “왜죠?”

    “난 복숭아에 알레르기가 없으니까. 황도, 백도 상관없이 다 잘 먹고, 먹고 나서 탈이 난 적도 없어.”

    “…….”

    “그러니까 아나필락시스는 아니란 소리지. 안 뛰다가 뛰어서 탈이 난 게 맞아.”

    안태환은 확신에 차 있었다.

    본인의 몸이니 본인에게 복숭아 알레르기가 없다는 것도 본인이 제일 잘 알 것이다.

    하지만 나도 순순히 물러날 수는 없었다.

    안태환의 신체가 보여 주는 증상들은 분명 전형적인 아나필락시스였다.

    갑자기 뛰어서 감기 기운이 올라온 것으로 해석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렇다고 내 진단이 100퍼센트 옳다고 주장할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복숭아 알레르기가 없는데, 어떻게 복숭아 아나필락시스가 나타난단 말인가.

    “선배, 꽃가루 알레르기나 다른 알레르기 반응도 없어요?”

    “없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 안태환.

    나와 안태환의 의견이 팽팽하게 충돌하는 가운데 나는 초조함을 느꼈다.

    안태환의 목덜미에서 시작된 발적과 두드러기가 어깨까지 퍼졌던 것이다.

    증상이 악화되는 가운데 안태환은 계속 괜찮다며 버티고 있었다.

    이런 식이라면 구급차의 신세를 져야 할지도 몰랐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물어볼게요. 혹시 복숭아 먹고 운동한 적은 있어요?”

    “복숭아 먹고 운동?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있는지 없는지 그것만 말하세요.”

    내가 다소 거칠게 나오자, 당황한 안태환이 눈을 깜빡거렸다.

    “왜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없어. 아마 없을걸?”

    “그럼 선배, 음식물 의존성 운동 유발 아나필락시스일 수도 있습니다.”

    “뭐? 음식물 의존 어쩌고 아나필락시스?”

    “음식물 의존성 운동 유발 아나필락시스요.”

    나는 긴 진단명을 한 호흡에 뱉어 냈다.

    아나필락시스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흔히 꽃가루가 닿거나, 벌에 쏘이거나, 음식을 잘못 먹으면 생기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 이외에도 알레르기 반응을 유발하는 인자는 넘치고 넘쳤다.

    신체의 온도 변화 때문에 생기는 아나필락시스.

    아예 원인을 알 수 없는 아나필락시스 등등.

    그중에서도 안태환이 앓고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아나필락시스는 음식물 의존성 운동 유발 아나필락시스였다.

    해당 아나필락시스를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복숭아는 먹어도 된다.

    하지만 복숭아를 먹고 운동을 하면 안 된다.

    음식을 섭취한 후 몸을 움직이면 아나필락시스가 발현되는 형태인 것이다.

    당연히 아나필락시스 중에서도 매우 희귀한 형태였다.

    내가 이 아나필락시스를 알고 있는 건 전생에 친했던 알레르기내과 동기의 연구 논문을 읽었기 때문이고.

    “세상에 그런 아나필락시스도 있었어?”

    내 설명을 듣고 안태환이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안태환의 부모님과 안소혜는 아예 설명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고.

    “논문도 많지 않고 한창 연구 중일 거예요.”

    “그걸 의예과생인 네가 어떻게 아는데?”

    “전 천재라서 고3 때부터 이런저런 의학 논문을 많이 봤으니까요. 입씨름은 이쯤 하고 병원으로 가죠.”

    “…….”

    “감기 기운 때문에 발적이 생기고 두드러기까지 난다는 거, 솔직히 말이 안 되잖아요?”

    나는 안태환의 팔을 억지로 끌고 옥상을 벗어났다.

    이러쿵저러쿵할 시간도 아까웠다.

    아나필락시스가 악화되어 호흡곤란에 저혈압까지 온다면 돌이킬 수 없게 된다.

    한시라도 빨리 병원에 도착해야 했다.

    내 풍부한 의학 지식에 결국 백기를 들었는지.

    아니면 아나필락시스가 악화되어 기력이 빠졌는지 안태환은 순순히 나를 따랐다.

    * * *

    택시를 타고 가장 가까운 대학병원에 도착했다.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안소혜의 극단적인 선택에 모든 관심이 쏠려 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안태환의 부모님과 안소혜는 어느새 안태환을 걱정하고 있었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만만치 않네.’

    안태환의 부모님이 응급실 접수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안소혜의 극단적인 선택만 막으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중요한 사건을 해결하고 나니 이번엔 안태환이 말썽을 부렸다.

    그것도 특이 질환인 음식물 의존성 운동 유발 아나필락시스로 고통을 받았다.

    확신은 할 수 없지만, 전생의 안태환은 음식물 의존성 운동 유발 아나필락시스 같은 건 모르고 살지 않았을까.

    복숭아를 먹고 격하게 운동할 일이 없었을 테니까.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나는 새삼 깨우쳤다.

    회귀를 했더라도 사람 살리는 일은 가시밭길의 연속이라는 것을.

    언제 어떤 변수가 불쑥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것을.

    하지만 그런 위기를 막기 위해서 나는 전생을 거슬러서 회귀했다. 나는 미래에 일어난 일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고, 과거 두부처럼 물렀던 정신력은 강철처럼 단단해졌다.

    사람이 귀한 줄 알고 사람을 챙길 줄도 알았다.

    출중한 예지 능력과 풍부한 의학 지식.

    굳건한 정신력.

    인연을 맺고 있는 사람들의 도움.

    이 세 가지와 함께라면 앞으로 닥칠 그 어떤 시련도 이겨 낼 수 있을 것이다.

    “선배, 괜찮아요?”

    나는 안태환에게 시선을 돌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안태환의 안색이 더욱 창백해졌다. 말수는 확 줄었고, 거친 숨소리가 말을 대신했다.

    병원에 안 가고 끝까지 버텼으면 분명 참사가 벌어졌으리라.

    “아니.”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안태환.

    “안태환 환자분 들어오세요.”

    간호사의 부름에 나와 안태환의 가족이 응급실 안으로 들어갔다.

    응급실은 한마디로 난리법석이었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침상 두 곳에서 CPR을 진행 중이었다.

    끼이이익.

    끼이이익.

    흉부압박을 할 때마다 침상이 분필로 칠판을 긋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를 터뜨렸다.

    제세동기 사용으로 환자의 육신은 들썩거리기 바빴다.

    “야, 이명호 네가 기관 삽관 좀 해 봐.”

    “네, 선생님.”

    ‘T.A(Traffic Acident, 교통사고) 환자가 들어왔구나.’

    나는 처치를 받고 있는 환자들을 살펴보곤 안타까움에 혀를 찼다.

    진찰대 앞에 도착하자, 흰 가운을 걸친 의사가 우리를 맞이했다.

    진찰의는 안경을 쓴, 아직 앳된 기운이 가시지 않은 20대 후반의 남성이었다.

    가운의 가슴에 적힌 이름은 의사 소지성.

    수련 중인 과목이 적혀 있지 않다는 건 소지성이 인턴이라는 뜻이었다.

    교통사고 환자 수습으로 레지던트들이 바쁘자, 인턴이 진료에 나선 것이다.

    순간 내 머릿속을 떠오르는 한 문장.

    -3월에는 응급실을 가지 마라.

    이런 말이 나오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대학병원의 경우, 3월 초부터 인턴들이 본격적인 수련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물론 인턴 입장에선 억울할 수도 있었다.

    의대 공부를 마치고 처음 현장에서 일을 하는데 숙련된 의사처럼 능숙하게 진료를 하는 건 불가능하니까.

    그럼에도 환자 입장에선 꺼림칙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고.

    “환자분,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어요?”

    “아나필락시스 증상이 있어서 왔습니다. 복숭아를 먹은 다음부터 상태가 안 좋아서요.”

    고통스러워하는 안태환 대신 내가 설명에 나섰다.

    음식물 의존성 운동 유발 아나필락시스에 관한 이야기를 일부러 하지 않았다.

    괜히 인턴이 더 혼란스러워할 수도 있으니까.

    “아나필락시스를 아세요? 혹시 전에도 이런 증상으로 병원에 온 적이 있었나요?”

    내가 아나필락시스라는 진단명을 언급하자, 인턴은 꽤 놀란 기색이었다.

    “그런 건 아니고 의대생입니다.”

    “아… 괜히 반갑네요. 일단 진찰부터 해 볼게요.”

    인턴이 증상을 물으며 안태환을 살피기 시작했다.

    곧이어 체온 및 맥박, 혈압 확인까지 이루어졌다.

    진찰하는 건 인턴인데, 괜히 내가 더 조마조마한 건 왜일까.

    아마 수저로 떠먹여 주는 아나필락시스마저 받아먹지 못할까 봐서였다.

    새로 비유하자면, 인턴은 아기 새였다.

    갓 둥지를 벗어나 제 힘으로 날갯짓을 해야 하는.

    경험 많은 흉부외과의인 나는 그런 인턴을 노심초사 지켜보는 어미 새였고 말이다.

    “목 주변의 발적과 두드러기가 심하고 저혈압 기운이 살짝 있네요.”

    “…….”

    “아나필락시스일 확률이 제일 높지만, 급성 전신성 두드러기와 급성 심근경색이 동시에 벌어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일단 심전도 검사랑 흉부 엑스레이 검사부터 실시하죠.”

    인턴의 장황한 설명에 나는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잘 나가다가 왜 골대 앞에서 헛발질을 하는 건지…….

    인턴은 본인의 진단에 확신이 없는 게 분명했다.

    아나필락시스 자체는 검사로 확진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임상 소견을 통해 확진하는 것이니까.

    검사를 통해 다른 질환들을 전부 배제한 다음에 아나필락시스를 확진하겠다.

    그게 인턴의 계획인 듯했다.

    이건 조심스러운 것을 뛰어넘어 너무 소심한 것이 아닌가.

    전직 흉부외과의였던 내가 인턴의 지극히 소극적인 진찰 방식에 만족하는 건 불가능했다.

    또 검사를 받는 동안 아무런 처치도 받지 못해 안태환의 상태가 더 심각해지는 것을 두고 보고 싶지도 않았다.

    문제는 설득하는 방식인데…….

    인턴이 곧이곧대로 내 말을 들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는 의사 면허를 획득한 엄연한 의사였고, 나는 의대생에 불과했으니까.

    상황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내겐 1살부터 다져 온 정치력과 연기력이라는 무기가 있었다.

    ‘저 사람을 이용하면 되겠다.’

    나는 때마침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한 남자를 발견하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남자의 가운 가슴에 ‘응급의학과’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선생님, 아나필락시스가 가장 의심된다면 에피네프린부터 투여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나는 일부러 그 의사가 들으라는 듯 큰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다른 질환을 함부로 배제하면 안 됩니다.”

    단호한 표정의 인턴.

    “멀쩡하다가 복숭아를 먹고 난 다음부터 이렇게 됐는데요?”

    “복숭아가 정말 알레르기 유발 인자인지는 아직 모르는 거니까요. 최악의 상황부터 대비하는 게 맞습니다.”

    “그래도 환자가 너무 고통스러워하는데요?”

    “유 선생, 무슨 일인데?”

    내가 큰 목소리로 주의를 끌자, 응급의학과 레지던트가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모든 것이 내 계획대로였다.

    “다른 게 아니고 환자를 진찰 중인데 보호자가 계속 아나필락시스 같다고 하는 바람에…….”

    “보호자분들 잠깐 실례 좀 하겠습니다.”

    레지던트는 안태환을 유심히 살피다가 이내 와락 인상을 구겼다.

    인턴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하기도 했다.

    “야, 뒈질래? 아나필락시스 맞잖아.”

    “넌 어떻게 보호자보다 진찰을 못하냐? 빨리 에피네프린 IM(근육주사)으로 박고, 0.9% NS(생리식염수) 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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