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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살부터 의사 생활-57화 (57/257)
  • 57화 제2장 선택의 기로 (2)

    다음 날 아침.

    전공 수업인 해부생리학 수업 30분 전.

    책상에 가방을 건 나는 이민호 패거리를 향해 직진했다.

    이민호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바로 어제 있었던 끔찍한 칼부림 사건에 관한 의문을 풀기 위해서였다.

    이민호가 범인이 아닐 확률이 높다는 건 알았다.

    이민호와 자상을 당한 환자 사이에는 별다른 연관성이 없어 보였으니까.

    혹시 내가 모르는 관계가 만에 하나라도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하지만 이민호가 사건 당시 보여 준 행동들은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이민호는 내가 알지 못하는 정보들을 더 알고 있을 가능성도 높았고.

    “이민호, 잠깐 이야기 좀 하자.”

    “이게 누구야? 면허증 없는 의사 선생님이시네?”

    이민호가 아닌, 이민호의 왼팔 배태섭이 빈정거렸다.

    정작 이민호는 팔짱을 낀 채 나를 가만히 올려다보기만 했다.

    훤칠한 키와 밀가루처럼 하얀 피부.

    강인한 이미지와 부드러운 이미지를 동시에 가진 눈동자.

    이민호는 미남이었으나, 그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다.

    표정이 없으므로 감정도 읽어 낼 수가 없었다.

    내가 기억하는 이민호는 늘 무표정이었다. 간혹 드러내는 감정이라고는 혐오나 멸시, 짜증뿐이었다.

    ‘넌 행복이 뭔지 아니?’라고 나는 불쑥 이민호에게 묻고 싶어졌다.

    “배태섭, 난 너한테 말 건 적 없으니까 입 좀 다물어 줄래?”

    “뭐? 전체 수석으로 들어왔다고 눈에 보이는 게 없나보다? 너희 부모님 직업이 뭔데?”

    다짜고짜 부모님의 직업을 묻는 배태섭을 보고 나는 혀를 찼다.

    방금 전 배태섭이 한 질문은 이 패거리에 속한 인간들의 수준과 그들의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 주는 것이었다.

    선민사상과 엘리트주의.

    이민호도 그렇고, 이민호의 패거리도 그렇고.

    대학생씩이나 돼서 왜 이렇게 유치하게 굴까 싶긴 했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인간은 약점이 드러나면 누구나 유치하게 방어하기 때문이다.

    자기들이 세상에서 제일 잘나고 똑똑한 줄 알았던 이민호 패거리가 아닌가.

    그런 그들에게 전체 수석이자 수능 만점으로 합격한 나는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었다.

    하나의 상처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나만 보면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게 당연했다.

    참고로 내게도 약점은 있었다.

    그 약점 때문에 유치해지는 때도 있고.

    “됐어. 네가 낄 때가 아니다.”

    “민호야, 근데 이믿음이 자꾸 나대는…….”

    “그러니까 넌 가만히 있으라고.”

    항변하는 배태섭을 분위기로 찍어 누른 이민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민호가 대화에 응하는 분위기였기에 나는 그대로 교실을 나와 건물 옥상을 찾았다.

    옥상은 넓었으며 남학생 몇몇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중 우리 과 학생은 없어 보였다.

    “그래서 따로 불러내서까지 하고 싶은 말이 뭐지? 나와 재미있는 탐정 놀이라도 하고 싶은 건가?”

    이민호가 먼저 공격적으로 물어 왔다.

    따로 불러낸 이유를 벌써 알고 있는 듯했다.

    감정이 없지 눈치가 없는 건 아니었군.

    하지만 탐정 놀이라는 단어 속에 담긴 비하의 의미가 내 신경을 자극했다.

    과도로 한 사람을 난자한 범인을 찾는 일이 어째서 놀이가 된단 말인가.

    “말이 심하네. 한 사람이 끔찍하게 살해당할 뻔했어. 그리고 너도 나도 현장에 있었고.”

    “효율성이 떨어지는 대답이군. 나한테 묻고 싶은 건 따로 있지 않나?”

    이민호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걸렸다.

    “너, 피해자와는 무슨 관계지? 혹시 네가 범인이냐?”

    나 역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이민호에겐 화제를 빙빙 돌리는 화법보다 핵심을 찌르고 들어가는 화법이 더 효과적이었다.

    “내가 범인이길 바라는 눈치다만… 원하는 대답을 해 주지 못해서 안타깝군.”

    “…….”

    “나는 어제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내가 화장실에 도착했을 때 그 남자는 이미 피를 흘린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어.”

    무덤덤한 표정의 이민호.

    말투 역시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투였다.

    이민호는 어제저녁에 벌써 경찰의 조사를 받았다는 사실과 경찰이 범인을 추적 중이라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벌써 범인을 추적 중이라고?”

    내가 놀라서 되물었다.

    “너도 기억할 거다. 술집에서 남자 두 명이 소란을 피웠던 거.”

    “기억을 못 하면 그게 더 이상하지. 고래고래 욕설을 퍼붓는 바람에 주방 이모까지 나와서 말렸으니까.”

    나는 어제 있었던 소란을 기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짚이는 구석이 있었다.

    “그중 한 명이 피해자고, 나머지 한 명이 가해자다. 한쪽이 화를 못 이겨서 범죄를 저지른 모양이더군.”

    경찰이 벌써 범인을 쫓고 있다면, 범인에 대한 단서도 이미 가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즉 이민호는 범인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대화 도중 이민호의 손을 자세히 살펴봤는데, 이민호의 손은 멀쩡했다.

    과도를 그렇게 찔러 댔으며 가해자의 손도 다치기 마련인데 말이다.

    물론 장갑을 꼈을 수도 있지만 나는 어제 화장실에서 마주쳤을 때 이민호가 장갑 낀 모습은 보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가?’

    나는 그제야 한시름을 덜었다.

    이민호가 범인일 수도 있다는 내 걱정은 말 그대로 걱정에 불과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민호가 범인이 아니더라도 의문점은 아직 남았다.

    사실 내가 정말 묻고 싶은 것은 이다음에 나올 질문이었다.

    “궁금한 게 한 가지 더 있어.”

    “말해 봐.”

    “네가 나보다 먼저 화장실에 쓰러진 사람을 발견한 건 맞잖아. 그렇지?”

    “그래서?”

    “왜 넌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화장실을 나왔지?”

    과도에 난자를 당한 사람이 화장실에 쓰러져 있다.

    화장실 바닥은 그가 흘린 피로 인해 참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런 상황에서 보통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크게 놀라서 그 자리에 굳어 버리거나.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거나.

    그 즉시 119나 112에 신고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민호가 보인 반응은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었다. 표정 없는 얼굴로 화장실을 나와 자기 테이블로 돌아간 것뿐이었다.

    한마디로 지극히 비상식적인 행동이었던 것이다.

    내가 애초에 이민호를 의심했던 것도 이런 의아한 행동 때문이었고.

    “왜? 내가 너처럼 발 벗고 나서서 사람을 살렸어야 했나?”

    이민호가 차갑게 웃으며 되물었다.

    “처치까지는 아니더라도 신고 정도는 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주변에게 사실을 알리거나.”

    “…….”

    “아직 의사는 아니지만 넌 의대생이야. 아니, 의대생을 떠나서 사람이라고.”

    “…….”

    “어떻게 그런 광경을 목격하고 못 본 척 지나칠 수 있지?”

    말을 하면 할수록 감정이 격앙되었다.

    회귀한 나는 이해력이 풍부한 사람이지만, 이민호만큼은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 폭풍 같은 질타에도 이민호는 끄떡없었다.

    심지어 눈 한 번 깜빡거리지 않았다. 대체 무슨 생각이고 어떤 감정인지 파악하기 힘들었다.

    “귀찮으니까.”

    “뭐라고?”

    “귀찮다고. 생판 모르는 사람이 죽든 말든 나와 상관없다.”

    이민호의 대답에서 얼음장 같은 냉기가 뚝뚝 묻어났다. 그에 반해 내 몸은 용암처럼 뜨거워졌다.

    “그게 사람이 할 소리냐?”

    “너 같은 사고방식으로 어떻게 세상을 살 수 있는지… 내가 더 이해가 안 되는군.”

    “…….”

    “전 세계적인 사망 통계를 보면 1초당 평균 2명이 죽는다. 우리가 대화하는 동안에도 몇백 명은 죽고 있는 셈이지.”

    “…….”

    “그런데 먼 나라에서 죽는 사람과 내 앞에서 죽는 사람이 뭐가 다르지? 다른 사람이 죽는다는 사실만으로도 내가 고통 받아야 하나?”

    “헛소리하지 마. 궤변도 늘어놓지 말고.”

    나는 으르렁거리며 말을 이었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은 살릴 수도 있어. 내가 하기에 따라서.”

    “그건 네 생각이고. 뭐, 네 말대로 사람을 살린다고 치자. 그럼 내게 돌아오는 건 뭐지? 이득이 될 게 없는 행동은 할 필요가 없지 않나?”

    이민호의 냉기 어린 반문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이민호는 나와 사고방식이 완전히 달랐다.

    우리는 아마 천만 년의 시간을 함께 보낸다고 해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어쨌든 현장에서 날 봤다는 네 진술 때문에 고생 좀 했다. 어제, 오늘 일은 잘 기억해 두지.”

    이민호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표정이 드러났다.

    역시 짜증과 불쾌감이 섞인 표정이었다.

    먼저 교실로 내려가는 이민호의 뒷모습을 나는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크게 한 방 먹은 기분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이민호가 그저 권위주의와 엘리트주의에 물든 밥맛 떨어지는 인간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먼 훗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될 새로운 인간 유형.

    사이코패스.

    이민호는 사이코패스였다.

    * * *

    이민호가 사이코패스라는 사실을 깨닫고서 나는 잠시 심란해졌다.

    이민호가 앞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나를 공격하고 견제할 것이 눈에 빤히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회귀한 나는 다양한 경험과 다가올 미래에 벌어질 일을 알고 있었다.

    이민호에게 그리 호락호락하게 당할 리 없었다.

    그럼에도 상대가 물불 안 가리는 사이코패스라는 사실은 꺼림칙했다.

    “너답지 않게 왜 그렇게 멍하니 있는데?”

    해부생리학 수업이 끝나자, 옆자리에 앉은 신철우가 물었다.

    “어제 일 때문에 많이 힘드냐?”

    “그런 건 아니고. 이것저것 생각할 게 있어서 말이지.”

    “생각은 너무 자주 하면 못써. 전에도 말했지? 뇌는 인체 에너지의 25퍼센트를 잡아먹는 괴물 같은 녀석이라고.”

    “…….”

    “고민이나 걱정거리 때문에 힘이 빠지는 게 괜히 생기는 현상이 아니란 말이지. 그래서 어떤 생각이든 적당히 할 필요가 있다.”

    “요새 살이 찐 것 같아서 다이어트 좀 하려고. 뇌로 칼로리 소모하는 다이어트.”

    “잠깐, 거기에는 약간 오해가 있는데… 머리를 쓴다고 다이어트가 되는 건 아니야. 그게 왜냐하면…….”

    “농담이잖아, 농담. 넌 어째 뇌 이야기만 나오면 진지해진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누가 먼 미래의 신경외과 명의 아니랄까 봐.

    의대생 때부터 뇌 타령에 진심인 신철우였다.

    어쨌거나 신철우의 4차원 화법으로 심란했던 마음이 다소 풀렸다.

    ‘하긴, 이민호가 사이코패스라고 해도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

    앞으로 내가 상대해야 할 의료계의 사이코패스는 한두 사람이 아니다.

    제약 회사 직원에게 유령 수술을 강요하는 서전들.

    의료 실수 및 사고를 감쪽같이 은폐하는 의사들.

    더 나아가서는 내가 물리쳐야 할 불구대천의 원수 강태섭까지 말이다.

    또한 나는 이미 한 명의 사이코패스를 상대해 보기도 했다.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고등학교 때 손봐 줬던 명태랑 교수였다.

    그 역시 이민호처럼 사이코패스였다.

    환자를 단순히 자신의 명예를 충족시킬 대상으로만 여겼으니까.

    내 앞길을 가로막을 사이코패스들을 나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회귀하기 전의 나라면 모를까, 회귀하고 난 후의 나는 영악하게 굴 줄 알았으니까.

    “이믿음, 잠깐 과사무실로 올래? 널 찾는 손님이 있어.”

    조교가 교실 앞문에 서서 나를 찾았다.

    “누가 절 찾죠? 딱히 찾아올 사람이 없는데.”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조교에게 다가갔다.

    나를 찾는 손님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손님이 직접 학과까지 찾아왔다는 사실에 그저 어리둥절할 따름이었다.

    혹시 양순재 교수가 내 미국행에 대한 대답을 듣고 싶어 하는 걸까.

    그렇다면 굳이 학과 사무실까지 찾아올 필요는 없을 텐데…….

    “가 보면 알아.”

    조교를 따라 도착한 과사무실에는 한 중년 여성이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녀가 내 손님인 것은 분명해 보였으나 나는 그녀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기억을 아무리 뒤져 봐도 오늘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이믿음 학생 맞죠? 만나서 반가워요.”

    소파에서 일어난 여성이 나를 향해 살갑게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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