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살부터 의사 생활-49화 (49/257)
  • 49화 제5장 나는 의대생이다 (4)

    “하아… 하아… 하아…….”

    양순재는 허리를 숙인 채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다.

    병원 현직에서 물러나고 나이까지 먹은 탓일까.

    CPR을 두 서클 정도 행하자, 온몸이 파김치가 되었다. 온몸이 비가 아니라 땀에 절어 버린 것 같았다.

    입에서는 단내가 훅훅 풍겼다.

    “힘 줘서 똑바로 못 해? 더 세게 누르라고! 환자의 몸이 들썩거릴 정도로!”

    양순재는 남은 힘을 쥐어짜서 호통을 쳤다.

    검정 자동차에 탄 환자들을 이믿음에게 맡기고, 하얀 자동차의 환자들을 본 지 벌써 10분이 지났다.

    그가 맡은 두 명의 환자 모두 의식이 있었고, 각각 경추골절과 저혈량성 쇼크, 척추골절과 두부 외상이 의심되었다.

    양순재는 다급하게 응급처치에 나섰다.

    첫 번째 환자의 목 골절 부위가 움직이지 않도록 고정기를 착용시켰고.

    복부 출혈 부위는 붕대로 칭칭 감아 1차 지혈을 하고, 상처 윗부분을 간접 압박해서 2차 지혈을 했다.

    두 번째 환자의 머리엔 붕대를 감았다.

    환자의 허리가 좌우로 움직이지 않도록 학생들이 붙잡게 만들었다.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치료는 무난하게 끝나는 듯 보였다.

    남은 건 앰뷸런스가 현장에 도착해서 환자를 이송하는 일만 남은 듯했다.

    하지만 그것은 양순재의 착각에 지나지 않았다.

    저혈량성 쇼크가 의심되던 환자가 갑자기 호흡을 멈췄다. 쇼크로 인한 H.A(Heart Arrest, 심장마비)가 찾아온 것이었다.

    이것저것 잴 것이 없는 상황.

    양순재는 그대로 차가운 도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환자의 가슴을 압박한 뒤 인공호흡에 나섰다.

    다만 문제는 그의 체력이었다.

    예전 같지 않은 육신이 CPR의 발목을 잡았다.

    그래서 지푸라기도 잡는 심정으로 치료를 돕던 학생에게 즉석에서 흉부압박을 가르쳤다.

    응급 상황이라 잔뜩 겁을 집어먹었기 때문일까.

    학생의 CPR은 영 신통치 않았다.

    환자의 가슴을 압박하는 게 아니라 고양이가 꾹꾹이를 하듯 가볍게 누르는 수준이었다.

    물론 그따위 어설픈 흉부압박이 양순재의 성에 찰 리 없었다.

    “교… 교수님, 힘을 더 주면 환자가 다칠 것 같아서…….”

    흉부압박을 하던 학생이 변명하듯 중얼거렸다.

    오리엔테이션에 참여 중인 신입생이 뭘 알겠느냐마는 답답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 가고 있지 않은가.

    “에이, 비켜!”

    흉부압박 중인 학생과 교대를 하려는 찰나, 무언가가 불쑥 양순재 앞으로 튀어나왔다.

    바로 이믿음이었다.

    예상치 못한 인물의 등장에 양순재는 깜짝 놀랐다.

    “교수님, CPR은 제가 하겠습니다.”

    “저쪽에 있는 환자들은 어떻게 하고?”

    양순재는 자신도 모르게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나마 이믿음이 믿음직스러워서 저쪽 현장을 맡기고 왔건만, 벌써 이쪽을 도와주러 왔다고?

    그 치료 및 처치 속도가 의심스럽고 수상쩍었다.

    “처치는 벌써 끝났습니다. 지금부터는 제게 맡겨 주세요.”

    양순재가 의심을 하거나 말거나, 이믿음은 환자 가슴 앞에 자리를 잡고 흉부압박을 실시했다.

    퍽! 퍽! 퍽!

    이믿음이 깍지 낀 손으로 환자의 가슴을 누를 때마다 환자의 상체가 들썩거렸다.

    양팔을 쭉 펴면서 만들어지는 상체의 역삼각형.

    환자의 가슴에서 떨어지지 않는 손바닥.

    분당 100회로 진행되는 리드미컬한 압박.

    이믿음의 흉부압박은 그야말로 웬만한 심장내과 레지던트에 버금가는 수준이었다.

    ‘말도 안 돼. 이게 가능하다고?

    양순재는 두 눈으로 보고 있는 광경이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이믿음의 흉부압박이 이미 완성되어 있다는 것도.

    흉부압박을 자처하는 이믿음의 용맹한 강단까지도.

    “하아… 하아… 하아… 거기 모자 쓴 사람, 버스 짐칸에 앰부 백 있거든? 앰부 백 좀 가져다줄래?”

    “앰부 백?”

    “고무 재질의 공기주머니. 보면 뭔지 알 거야. 의학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거.”

    “아… 알았어.”

    잠시 후 이믿음의 지시를 받은 학생이 앰부 백을 가지고 돌아왔다.

    앰부 백이 짐칸에 있었다는 것과 앰부 백이 무엇인지 벌써 알고 있는 이믿음 때문에 양순재는 더욱더 충격에 빠졌다.

    이 녀석, 대체 뭐 하는 녀석이지?

    “환자 얼굴에… 마스크를 대고… 공기주머니를… 쥐어짜면 돼.”

    흉부압박으로 숨을 헐떡거리면서도 이믿음은 차분하게 지시를 내렸다.

    현 상황을 장악하고 있는 사람은 누가 뭐래도 이믿음이었다.

    “잘하고 있어… 환자 흉곽이 움직이고 마스크에 뿌연 김이 서린다. 산소가 제대로 들어가고 있다는 증거야.”

    설마설마했는데, 앰부 백의 정확한 사용법까지 알고 있을 줄이야.

    양순재는 누군가에게 뒤통수를 크게 얻어맞은 것처럼 그저 머리가 얼얼할 따름이었다.

    흉부압박과 앰부 백을 활용한 CPR을 5분가량 진행했을 때, 드디어 환자의 의식이 차츰차츰 돌아오기 시작했다.

    영영 떠지지 않을 것 같았던 눈꺼풀이 희미하게 떨리더니 환자의 눈동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위이이잉.

    위이이잉.

    잠시 후 구세주 같은 앰뷸런스의 사이렌 소리가 도로에 크게 울려 퍼졌다.

    교통사고 응급처치는 무사히 끝났으니 남은 건 병원으로의 이송뿐이었다.

    양순재는 그제야 팽팽했던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있었다.

    “고생 많았다. 다들 얼른 들어가서 쉬거라.”

    그는 숨을 헐떡거리는 이믿음의 어깨에 다정하게 손을 얹었다.

    이번 교통사고 처치의 수훈자는 자신이 아닌 이믿음이었다.

    혼자 검은색 자동차의 환자들을 치료하고 그가 있는 쪽까지 와서 도움을 줬으니 말이다.

    ‘정말 말이 안 되기는 하는데…….’

    마음 같아서야 이믿음의 상상을 초월하는 처치 실력과 의학 지식의 연원을 바로 캐묻고 싶었지만, 양순재는 가까스로 참았다.

    T. P. O(시간, 장소, 상황)가 하나도 들어맞지 않았기에.

    “애들아, 믿음이 부축해서 버스로 데려가라.”

    “네, 교수님.”

    이믿음이 돌아가는 것을 보고 양순재는 119 대원들에게 사정 설명을 했다.

    본인은 의대생 오리엔테이션의 인솔을 맡은 교수이며, 교통사고를 확인하고 1차적인 응급처치를 했다는 것을.

    “비도 오는데,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가까운 병원으로 최대한 빨리 이송하겠습니다.”

    “별말씀을요.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119 대원과 이야기를 나누며 양순재는 스트레처카에 실려 가는 환자를 힐끔 쳐다보았다.

    마침 이믿음이 응급처치를 한 환자가 그의 곁을 지나고 있었다.

    순간 부엉이처럼 휘둥그레지는 양순재의 눈.

    대퇴부에 개방성 골절이 있는 환자에게 한 처치가 아주 완벽했다.

    상처 부위를 두른 탄탄한 붕대하며 무릎 아래에 야무지게 댄 부목까지.

    허허, 살다 보니 이런 신입생도 다 만나는군.

    양순재는 남몰래 혀를 찼다.

    * * *

    오리엔테이션이 진행되는 콘도.

    “휴, 살 것 같네.”

    2인실로 배정받은 숙소 욕실에서 나오며 나는 상쾌하게 중얼거렸다.

    축축하게 젖었던 몸을 온수로 씻었고 옷을 갈아입으니 기분이 날아갈 듯 가벼워졌다.

    사실 그보다 더 나를 기쁘게 했던 것은 전생에서 벌어졌던 비극을 막아 낼 수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전생의 나는 이번 사건에서 그저 허수아비였다.

    교통사고가 발생했음에도 버스에서 내리지도 않았고, 당연히 치료를 돕지도 않았다.

    물론 그게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었다.

    의대생은 의사가 아니었다.

    그것도 오리엔테이션도 치르지 않은 파릇파릇한 의대생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그러니 교통사고 응급 환자가 발생하면 몸이 얼어붙고 겁을 집어먹는 것이 오히려 당연했다.

    그럼에도 말이다.

    환자가 쓰러져 죽어 가는 것을 맥없이 지켜보고만 있었던 전생의 경험이 결코 유쾌할 리 없었다.

    이날의 충격적인 광경은 전생의 내게 무력감이라는 이름의 그늘을 만들어 냈다.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설령 한다고 해도 안 될 거야.

    이런 식의 자포자기하는 감정을 심어 놓았다.

    하지만 회귀를 한 나는 환자를 멋지게 살려 냈고, 그 그늘을 떨쳐 버리는 데 성공했다.

    지금의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어떤 환자라도 살릴 수 있었다.

    회귀를 한 덕분에 나는 인간적으로도, 의사로서도 차근차근 성장하는 중이었다.

    “어때? 몸은 좀 괜찮아졌어?”

    나는 침대에 벌러덩 누워 있는 신철우를 응시했다.

    그러자 멀미로 고통 받고 있던 신철우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제 좀 살 만한 느낌? 구역질은 사라졌는데 어지럼증은 살짝 남아 있다.”

    “그렇게 뇌 타령을 하더니 정작 멀미에는 속수무책이다?”

    “그 누구의 뇌에도 약점은 있는 법이지. 그 위대한 아인슈타인도 양자역학은 끝내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아인슈타인하고 양자역학. 그리고 네 멀미가 무슨 상관인데?”

    신철우의 4차원 화법이 어이가 없어서 나는 콧방귀를 뀌며 물었다.

    “그걸 내 입으로 말해 주면 김빠지잖아? 그 세 가지의 연관 관계를 파악하는 게 내가 오늘 네게 내주는 숙제다.”

    “염병하네.”

    나는 피식 웃으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전생의 기억이 왜곡되거나 틀리지는 않았을 테니 신철우는 분명히 뛰어난 신경외과 서전이 될 것이다.

    지금 친분을 쌓아 두면 분명히 좋은 동료가 될 것이다.

    하지만 신철우와 대화를 나누고 있으면 왜 내 기억이 잘못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걸까.

    이 괴짜가 정말 신경외과 명의가 된다고?

    “그건 그렇고, 아까 치료 한번 기똥차게 잘하더라?”

    신철우가 몇 시간 전에 있었던 교통사고를 화제로 삼았다.

    “멀미 때문에 버스에 있었던 거 아니었어?”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 반대다. 멀미 때문에 버스에서 내렸지. 널 도와줄까 하다가 그냥 상황만 지켜봤어. 내 몸도 못 가누는데 돕기는 누굴 돕나 싶어서.”

    “그랬구나.”

    “처치하는 걸 보니까 벌써 의사 같던데,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신철우의 의문은 당연한 것이었다.

    누가 봐도 내 활약은 수상한 것이었다.

    과거의 어린 나였다면 그럴듯한 거짓말로 이 상황을 모면했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의대에 입학한 지금의 나는 내 능력을 숨기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럴 이유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으니까.

    “나… 천재다. 의사가 되고 싶어서 고등학교 때부터 의대 전공 서적 보면서 혼자 공부했거든.”

    “수능 공부를 하면서 의대 전공 서적까지?”

    “맞아.”

    “크… 이 정도면 대한민국에 둘도 없는 천재네. 너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내가 다 영광이다.”

    “빈정거리는 거 아니지?”

    “빈정거리는 것도 아니고 반어법도 아니야. 순수하게 감탄하는 것뿐.”

    신철우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네 뇌 구조가 궁금한데…….”

    “뇌밖에 모르는 미친놈아. 헛소리 좀 작작해.”

    “짜식, 농담하고 진담도 구분 못 하냐? 우리 사이가 그 정도밖에 안 돼?”

    “우리, 오늘 처음 봤거든?”

    “뇌가 화학·신경 반응을 일으키는 데는 하루가 아니라 몇 초라도 충분하지.”

    신철우가 다시 4차원 화법을 시작하려는 것 같아서 나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하… 이거 진짜 신철우가 아니라 이민호를 택했어야 하는 건가.

    이런 화법을 의대는 물론이요 병원에서까지 듣게 된다면 끔찍할 것 같은데 말이다.

    잠시 고민에 빠졌던 나는 곧 신철우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다.

    나는 신철우를 잘 몰랐다.

    내가 알고 있는 건 신철우가 나중에 뛰어난 신경외과 서전이 된다는 사실 하나뿐이었다.

    신철우를 좀 더 인간적으로 알아보면, 4차원 화법의 뿌리를 캐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똑. 똑. 똑.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려는 순간,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라고 말하자, 다람쥐 같은 인상의 여학생이 문틈으로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저기… 이믿음, 이 방에 있는 거 맞지?”

    “무슨 일인데?”

    “양순재 교수님이 숙소에서 찾으셔. 교수님 702호에 계시는데.”

    “바로 갈게.”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심정으로 나는 방을 나섰다.

    방을 나온 나는 여학생의 얼굴을 확인한 뒤 그만 얼어 버렸다.

    교통사고 처치를 하고 나서 너무 지쳤던 탓일까.

    곧 진행되는 오리엔테이션에서 또 하나의 비극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깜빡 잊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여학생, 남초롱.

    그녀는 오늘 밤 죽는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