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제5장 나는 의대생이다 (1)
수능 한파가 가시지 않은 쌀쌀한 저녁.
매서운 칼바람을 헤치며 나는 집을 나섰다.
현재 시간은 밤 10시로, 주택가는 어둡고 인적이 드물었다.
어디서 귀신이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였다.
뜬금없는 시간에 전화를 건 사람은 김지원이었다. 별다른 설명 없이 김지원은 잠깐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전화가 아닌, 직접 얼굴 보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궁금했기에 나도 거절하지 않고 약속 장소로 나갔다.
“김지원.”
약속 장소인 공원 입구에 서 있는 김지원을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김지원도 나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이 밤에 웬일이야? 무슨 일이라도 있어?”
나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일상과 어긋나는 패턴은 보통 불행한 사건과 연결되기 마련이었다.
행복은 일상 속에서 쌓아 나가는 것이고.
불행은 불청객처럼 나타나 평온한 일상을 무너트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뭐, 대단한 건 아니고. 그냥 수능도 끝났는데 겸사겸사 네 얼굴이 보고 싶어서.”
대답하는 김지원의 표정이 어두웠다.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국민학교 때 여장군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을 만큼 쾌활하고 에너지 넘치는 그녀였다.
지금의 김지원은 내가 아는 김지원이 아니었다.
김지원을 괴롭히는 것이 대체 무엇일까.
대학 진학에는 뜻이 없으니 수능을 못 봐서 좌절한 것은 아닐 테고.
최근 캐스팅 이야기가 나오던 드라마가 엎어진 걸까.
나는 호기심이 반, 걱정이 반이었다.
“날씨도 추운데 저쪽으로 가자. 바람부터 피해야지.”
나는 김지원을 이끌고 근처 도서관 건물 앞에 섰다.
“수능은 어땠어?”
“알잖아. 나 대학에 안 갈 거. 대충 찍기 놀이만 하다가 왔지. 믿음이 너야, 당연히 잘 봤겠지?”
“가채점이긴 하지만 만점이더라.”
“와! 설마설마했는데 만점일 줄이야… 수능 만점자도 저녁에 불러낼 수 있고. 나 완전 영광이네?”
“영광 맞지. 알면 나한테 잘해.”
나와 김지원은 우스갯소리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우리 둘 다 명확하게 알고 있는 것이 있었다.
이런 잡담은 우리 둘이 야밤에 만나서 나눠야 할 화제가 아니라는 것을.
진짜 중요한 화제는 따로 존재한다는 것을.
빙빙 도는 것을 참지 못하고 정곡을 찌른 것은 나였다.
“오늘 무슨 일 있었지? 속 시원하게 말해 봐. 내가 다 들어 줄게.”
“딱히 그런 건 아니야.”
“그런 게 아닌 게 아닌 것 같은데?”
“사실은…….”
거듭되는 추궁에 김지원이 고개를 숙인 채 속삭이듯 말했다.
“나, 내년쯤에 이사 가게 됐어.”
“이사?”
예상치 못한 단어에 나는 눈만 깜빡거렸다.
김지원을 우울하게 만들었던 녀석의 정체가 고작 이사라니 황당할 따름이었다.
이사 = 우울.
이런 등호가 성립하는 까닭을 나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넌 왜 내 기분이 꿀꿀한지 모르지?”
“솔직히.”
“안 그래도 믿음이 너, 의대 들어가면 얼굴 보기 힘들어질 텐데 내가 이사까지 가면 더 멀어질 거 같단 말이야. 난 그게 싫어.”
김지원의 말은 마치 투정 부리는 아이의 말처럼 유치하게 들리기도 했으나 그 근본에는 나를 향한 애정이 묻어났다.
결론은 우리가 멀어지는 것이 싫다는 말이었으니까.
하긴 유치원 때부터 시작된 우리의 관계에서 김지원은 늘 해바라기처럼 나만 바라보았다.
나는 그것이 한편으로는 고맙고.
한편으로는 미안하고.
한편으로는 부담이 되었다.
나와 김지원의 관계를 정립해야 할 때가 바로 오늘이 아닐까.
그런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마 김지원도 나와 똑같은 생각일 것이다.
“…….”
“…….”
우리 둘은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서로의 생각에 빠져 있었다.
김지원을 이성으로 생각하고 있는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보았지만, 아니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전직 흉부외과의인 나는 유치원 때부터 김지원을 귀엽게만 봐왔다. 고등학생이 된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김지원과 교제를 못 할 이유는 없었다.
김지원은 성품이 착했고, 나를 끔찍하게 아꼈다.
내가 가족 말고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아마 김지원뿐일 것이다.
하지만 말이다.
내 욕심으로 김지원과 교제를 한다고 과연 김지원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까.
나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전생에 엉키고 꼬였던 인연과 매듭을 정리하며 최고의 흉부외과의로서 거듭나는 그 험난한 과정 속에서 김지원과 알콩달콩 애정을 나눈다?
나는 그럴 만한 깜냥이 없었다.
내가 김지원과 교제를 한다는 건 김지원에게 또 다른 희생을 강요하는 일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누군가는 이런 내 선택을 비난할지도 모르겠다.
흉부외과 전공이면 연애도 못 하고 결혼도 못 하느냐고.
당연히 아니다.
흉부외과의 중에서도 연애와 결혼을 하는 이들은 많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할 자신이 없었다.
내 눈에는 내가 김지원을 고생시키는 그림이 훤히 보였다.
그리고 나는 그런 그림을 결코 참을 수 없었고, 원하지도 않았다.
“지원아.”
생각을 정리한 내가 먼저 운을 뗐다.
벌써부터 마음이 무거웠다.
“네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도 알고, 무슨 말을 할지도 알아.”
김지원이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을 가로챘다.
“그러니까 그 말, 하지 마. 그리고 내 말을 들어 줘.”
“…….”
“난 네가 나를 아직도 애 취급한다는 것도 알고, 나한테 특별한 연애 감정이 없다는 것도 알아. 네가 의대에 들어가면 우리 관계가 멀어질 것도 당연히 알고.”
김지원의 목소리가 어느새 촉촉해졌다.
확실히 김지원은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아는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관계를 끝낼 필요는 없잖아? 항상 최선의 선택을 바라는 건 욕심이니까 때로는 차선을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
“그럼 네가 일방적으로 희생하는 꼴이 되잖아. 나는 그걸 원치 않아.”
나도 내 진심을 전했다.
흉부외과의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를 다 이룬 뒤에 김지원을 만난다?
과연 그때가 언제일까.
그때의 만남은 큰 의미가 있는 걸까.
우리의 관계가 완전히 끊어지는 게 차라리 서로에게 더 좋은 게 아닐까.
이런 상황이 다소 유치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남녀간의 감정이란 본래 유치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것이리라.
“흥! 바보 같은 소리. 세상에 좋은 남자가 얼마나 많은데 내가 평생 너한테만 목을 매니?”
김지원은 갑자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 그냥 지금처럼 계속 지내자. 나중에 너도 여유가 생기고 나도 여유가 생기면 그때 정식으로 만나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
“그럼 너나 나나 부담이 안 될 테니까. 어때?”
“그래, 미안하고 고맙다.”
우리 둘의 관계를 시원하게 정리해 준 김지원.
그녀는 적어도 이 문제에 관해서는 나보다 더 성숙하고 포용력이 있었다.
김지원을 마냥 어리고 세상 물정을 모른다고 생각했던 건 단순히 내 착각이었던 모양이다.
덕분에 마음의 무게가 한결 가벼워졌다.
잘해 줄 수 없다고 해서 아예 관계 자체를 끊어 버리려고 하는 것.
전생에서부터 비롯된 내 고약한 버릇임을 나는 새삼 깨달았고, 그에 대한 괜찮은 해결책도 얻었다.
이것도 다 김지원 덕분이겠지.
“역 앞 포장마차에서 떡볶이 먹고 가자. 오늘은 내가 살게.”
“당연히 그래야지.”
나는 김지원과 다정하게 공원을 벗어났다.
우리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 * *
수능이 끝난 교실은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만악의 근원이었던 심병수는 퇴학을 당했고, 일진들은 나와 마주치면 슬슬 피해 다니기 바빴다.
그렇다고 좋은 소식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수능이 끝난 뒤 몇몇 수험생이 안타깝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제아무리 회귀를 한 나라도 익명의 누군가를 살릴 재주는 없었다.
수능을 치른 밤에 만난 이후로 김지원과 나는 평소처럼 잘 지냈다.
자주 안부를 주고받았고, 등굣길도 함께했다.
진심을 주고받았더니 김지원과의 사이가 예전보다 더 끈끈해진 기분도 들었다.
그렇게 무심하게 시간은 흐르고 흘러 어느덧 수능 성적 통지표가 나왔다.
떨리는 마음으로 담임에게 받은 통지표에 만점이 기재되어 있었다.
다행히도 가채점 결과가 틀리지 않았던 것이다.
이 통지표는 내가 입학할 신원대학교 전체 수석을 알리는 통행증이나 다름없었다.
통지표를 받은 날, 우리 집에서는 경사가 났다.
아버지, 어머니가 덩실덩실 춤을 추었고, 외가 쪽에서도 축하 전화가 걸려왔다.
그밖에도 주변에서 쏟아지는 축하에 나는 그만 정신이 아찔할 정도였다.
해가 바뀌면서 노스트라다무스가 세계 멸망을 예언한 1999년이 찾아왔다.
그리고 1999년 2월 22일.
국내 최고의 대학 신원대학교에서 신입생 입학식이 거행되었다.
대학 전체 수석을 차지한 나는 신입생 대표로 선서를 했다.
회귀를 하고 돌아온 나조차 이 순간만큼은 감개무량했다.
집 나간 탕아가 화려하게 집으로 복귀하는 기분이랄까.
우렁찬 목소리로 선서를 마치고 입학식까지 끝낸 뒤 나는 부모님, 외조부모님과 함께 사진 촬영을 했다.
“우리 믿음이가 정말 의사가 되었구나. 엄마는 기뻐서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
어머니가 먼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는 울컥했으나, 필사적으로 울음을 참았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그저 나를 기특하고 대견하게 여기셨다.
“형아, 이제 의사 선생님 되는 거야?”
“그래.”
“그럼 이제 나 아프면 엄마 말고 형아가 호~ 해 줘.”
사랑이는 진지하게 말했지만, 우리 가족은 그저 배를 잡고 깔깔 웃을 따름이었다.
전생에는 나와 부모님만 덩그러니 있었던 졸업 사진.
하지만 이번 생의 졸업 사진에는 외조부모님과 동생 사랑이가 추가되었다.
회귀한 인생은, 내 손으로 일구고 개척한 이번 생은 전생의 삶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 * *
입학식을 마치고 돌아온 늦은 밤, 집 안은 조용했다.
부모님도 사랑이도 모두 잠들어 있었다.
나는 방 안에서 조용조용하게 그리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당장 내일 앞으로 닥친 의예과 오리엔테이션에 들고 갈 짐을 챙기고 있었던 것이다.
‘이쯤이면 되겠지?’
볼록해진 백팩을 책상에 올려 두고 나는 침대에 누웠다.
기저귀를 차고 똥오줌도 못 가렸던 게 엊그제의 일 같은데, 벌써 의대생이 된 나였다.
세월이란 돌이켜 보면 참으로 무상한 것이다.
천장을 도화지 삼아 나는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그려 보았다.
입학을 하고 2년 동안은 비교적 널널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것이다.
2년의 의예과 기간 중에는 의대생이라고 해서 다른 신입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의학 용어나 해부학 같은 전공과목은 몇 가지 안 되었고, 나머지는 다 교양과목이었다.
그래서 ‘노는 게 남는 거다’라는 생각을 가진 신입생들이 많았다.
물론 나는 그 시간을 헛되이 보낼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내게 의예과 2년은 더 나은 흉부외과의가 되기 위한 발판이 되는 시기였다.
나는 추억 속에 묻혀 있던 이름들을 하나씩 꺼내 보았다.
그중에는 미래의 내 동료로 삼아야 할 친구도 있었고.
손절을 해야 하는 친구도 있었으며.
알아 두면 좋은 친구도 있었다.
그들의 성격과 미래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으므로 그들을 활용하는 것은 전적으로 내 몫이었다.
‘당장은 그 문제부터 해결해야겠지?’
나는 가만히 턱을 쓸어내렸다.
1박 2일로 진행되는 오리엔테이션의 첫날.
그러니까 한마디로 내일.
나는 잊지 못할 사건들을 겪게 될 것이다.
그 사건들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서 내 의예과 생활은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들뜬 마음에 잠을 이루지 못한 나는 다시 책상에 앉았다.
백팩을 치우고 내가 알고 있는 과거의 사건들을 수첩에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의예과 2년 동안 반드시 이루어야 할 목표까지 덧붙였다.
그제야 팽팽했던 마음이 조금 느슨해지기 시작했다.
멀고 험난한 길을 돌아 다시 돌아온 의대가 아니던가.
지금까지 내 인생과 주변을 바꿔 온 것처럼.
앞으로 펼쳐질 의대 생활 역시 나는 180도로 바꾸어 나가야 했다.
지금의 나는 그럴 만한 힘과 능력을 갖췄으니 바꾸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선잠에 들었다가 깨고 이상야릇한 꿈을 꾸며 보낸 그날 밤이 지났다.
부모님과 아침 식사를 함께한 나는 백팩을 메고 상쾌하게 집을 나섰다.
어설프게 의사 노릇만 하던 나는 이제 없다.
나는 진짜 의사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