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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살부터 의사 생활-41화 (41/257)
  • 41화 제4장 매듭 (1)

    박정훈이 내게 말한 증상은 퍽 심각해 보였다.

    커터칼로 가슴을 베어 내는 듯한 통증은 심근경색이나 대동맥 파열과 같은 응급한 심장 질환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의외로 걱정하거나 초조해하지 않았다.

    아직 구체적인 문진을 하지 않았지만, 짚이는 바가 있었다.

    “요즘 가슴이 자주 아파서 불안하더라고. 다음 주에 큰 병원 심장내과라도 가 볼까 봐.”

    증상을 호소하는 박정훈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심병수의 정신적·물리적 괴롭힘에 흉통까지 겹쳐지니 많이 두렵기는 할 것이다.

    그 마음을 내가 모를 리 없었다.

    “흉통이 주로 식사하고 1-2시간 정도 있다가 나타나지 않아?”

    “으음… 듣고 보니까 그런 것 같기도 한데?”

    “목에 무언가가 걸린 것처럼 답답하기도 하고.”

    “맞아. 그걸 어떻게 알았어?”

    내가 박정훈의 증상을 예지하듯 맞추자 박정훈이 신기하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굳이 큰 병원까지 갈 필요는 없고, 동네 내과 의원을 가 봐.”

    “동네 의원? 동네에서는 심장 검사를 못 하지 않나?”

    “동네 의원에서도 심전도 정도는 가능해. 하지만 그건 어차피 의미가 없어. 넌 심장 질환을 앓고 있는 게 아니니까.”

    나는 단호한 표정으로 못을 박았다.

    많은 환자들이 흉통을 느끼면 대개 심장내과나 흉부외과부터 찾는다.

    심장에 문제가 생겨서 흉통이 발생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었다.

    흉통을 느끼는 환자의 80퍼센트는 역류성 식도염이나 위염을 앓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식도와 위의 위치가 심장과 가깝다 보니.

    소화기계 질환을 심장 질환으로 오해하기 때문이다.

    특히 40대 이하의 환자가 흉통을 호소할 경우.

    흉통의 원인이 소화기 질환일 확률이 높았다.

    그래서 내 결론은 무엇이냐.

    박정훈 역시 심장 질환이 아니라 소화기 질환을 앓고 있다는 것이었다.

    최근 심병수의 괴롭힘으로 스트레스를 받아 생긴 위장 장애.

    그것이 분명 흉통의 원인일 것이다.

    10대는 심장 질환을 앓기엔 너무 어린 나이였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김요한은 정말 말도 안 될 만큼 특이 케이스였다.

    “으음… 듣고 보니 뭔가 그럴듯하네.”

    내 설명을 다 듣고서 박정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 벌써 의사를 해도 되는 거 아니야? 저번에 내가 반에서 숨을 못 쉴 때도 응급처치를 해 줬잖아.”

    “그거야 내가 따로 공부한 부분이니까.”

    나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어차피 흉부외과는 개원도 못 하고 개원한다고 해도 돈을 못 번다고.

    번화가에 위치한 수많은 의원 중에서 혹시 흉부외과 의원을 본 사람이 있는가.

    아마 100명 중 1명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수많은 진료 과목 중에 흉부외과 의원만 존재하지 않는 이유를 생각해 본 사람이 있는가.

    그런 사람도 아마 없을 것이다.

    흉부외과의는 의원을 차린다고 해도 사실상 수술을 할 수 없었다.

    수술을 위해서는 엄청난 고가의 장비와 전문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수술도 못 하는 흉부외과 의원을 환자가 찾을 필요는 없었다.

    차라리 심장내과나 순환기내과를 가지.

    죽든 살든 대학 병원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과목.

    대학 병원을 떠난다고 해도 개원조차 못 하는 과목.

    힘든데 돈은 안 되고, 그래서 지원자가 갈수록 줄어들어 안에 있던 사람만 계속 갈려 나가는 과목.

    그것이 바로 흉부외과의 처참한 현실이었다.

    “근데 믿음이, 너 의대 졸업하면 흉부외과 전공할 생각이야? 그런 이야기가 많이 들리던데… 흉부외과 엄청 힘들지 않나?”

    “그래도 하고 싶어. 아니, 해야만 해.”

    나는 사뭇 비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내 목표는 프로스트의 시처럼 가지 않았던 길을 가는 것이 아니었다.

    이미 갔던 길을 걸으며 과거의 저질렀던 실수와 후회들을 만회하는 것이었다.

    “…….”

    “…….”

    잠시 흘렀던 침묵을 깨고 나는 박정훈에게 한 가지 정보를 알려 주었다.

    병원 간판으로, 전문의와 일반의를 가려내는 방법이었다.

    예를 들어, 간판에 00피부과 의원이라고 적혀 있으면 그 의원은 피부과 전문의가 진료를 본다.

    00의원, 진료과목: 피부과.

    이렇게 적혀 있으면 일반의가 피부과 진료를 보는 것이다.

    일반의라고 해서 실력이 없는 건 아니지만.

    자신의 진료를 보는 의사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는 있는 게 유익할 것이다.

    박정훈과 대화를 마친 나는 빵집을 나와 걷기 시작했다.

    눈엣가시였던 심병수에게 정의의 철퇴를 선물할 날이 머지않았기에 내 발걸음은 마냥 가볍기만 했다.

    * * *

    4교시 수업이 끝나고 찾아온 점심시간.

    심병수는 친한 일진들과 함께 학교 옥상을 찾았다.

    그의 점심 메뉴는 박정훈 특식으로, 빵셔틀인 박정훈이 곧 매점에서 음식을 사 가지고 올 것이다.

    “병수야.”

    “왜?”

    “요새 이믿음, 걔 띠껍지 않냐? 박정훈을 괴롭히는 것보다 이믿음을 괴롭히는 게 더 낫지 않아?”

    그의 오른팔에 가까운 손태호가 한마디 충고를 했다.

    손태호가 한 생각을 심병수라고 안 해 본 것은 아니었다.

    심병수는 박정훈보다 이믿음이 더 얄미웠으니까.

    이믿음은 학교에서 심병수보다 잘난 유일한 인간이었고, 사사건건 심병수의 심기를 건드렸다.

    하지만 이믿음을 건드리는 것은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이믿음은 전교에서 주목을 받는 놈이다.

    이믿음에게 문제가 생긴다면 담임은 물론이요, 다른 선생들까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믿음의 눈빛은 어딘지 모르게 위험했다.

    어설프게 해코지를 했다간 역으로 당할 것만 같았다.

    그러니 이믿음을 직접 손봐 주는 것은 최후의 방법이 되어야만 했다.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냐? 그냥 그렇게만 알고 있어.”

    “그냥 내 생각이 그렇다고.”

    일진들과 잡담을 나누고 있는데, 박정훈이 헐레벌떡 옥상으로 올라왔다.

    얼마 전 그의 괴롭힘으로 숨을 헐떡거리며 고통스러워했던 박정훈이지만.

    심병수는 그런 박정훈에게 별다른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그러게 누가 이믿음하고 붙어먹으래?

    졸업할 때까지 내 장단에만 적당히 맞춰 졌으면 별 탈이 없었을 텐데…….

    “저기, 1000원을 주고 빵 4개랑 우유 4개를 사 오라고 하는 건 좀 심하지 않아? 나도 용돈도 별로 없는데.”

    주제를 모르고 나대는 박정훈을 향해 심병수는 눈을 흘겼다.

    이 새끼가 지금 뭐라고 지껄이는 거지?

    그렇게 당하고도 정신을 못 차렸나?

    “야, 너 미쳤어?”

    “아니, 사실이 그렇잖아. 병수 너네 집이 우리 집보다 훨씬 잘사는데…….”

    “하… 이 맹랑한 새끼 보소?”

    심병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박정훈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박정훈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예전의 기죽고 풀 죽은 눈빛이 아닌, 뭔가 독기를 품고 있는 눈빛이었다.

    착각인지 몰라도 일부러 시비를 거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시키는 대로 하지.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대가리 좀 컸다 이거냐?”

    심병수는 검지로 어처구니없이 개기는 박정훈의 가슴을 꾹꾹 질렀다.

    “왜, 또 마음에 안 든다고 담뱃불로 내 손목을 지지려고?”

    “한 번 했던 걸 두 번 못 할 것 같으냐?”

    “넌 진짜 못됐어. 네 본모습을 선생님들이 모르시는 게 진짜 천추의 한이다.”

    “이 씹새끼가 보자 보자 하니까.”

    짜아아악!

    성질을 이기지 못한 심병수는 박정훈의 뺨을 냅다 후려갈겼다.

    박정훈의 상체가 갈대처럼 맥없이 휘청거렸다.

    그럼에도 심병수는 분이 풀리지 않았다.

    오히려 약간의 두려움마저 느꼈다.

    눈앞의 박정훈이 항상 고분고분하던, 그가 알고 있던 박정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새끼가 대체 뭘 믿고 나대는 거지?

    혹시 상한 음식이라도 처먹은 건가?

    “또 까불면 그땐 진짜 뒈진다. 밥맛 떨어지니까 썩 꺼져.”

    뺨이 벌겋게 부어오른 박정훈이 곧 옥상을 떠났다.

    “태호야, 수업 끝나면 네가 저 새끼 한 번 더 손봐 줘라. 선생님한테 한 번 꼰지르더니 너무 기고만장해졌어.”

    “뭐, 그거야 어렵지 않지.”

    손태호에게 명령을 내린 심병수는 바닥에 주저앉아 빵과 우유를 먹기 시작했다.

    옥상 뒤편 창고에서.

    지금까지 그가 했던 행동을 고스란히 촬영하고 있는 캠코더가 있다는 것도 까맣게 모른 채.

    * * *

    “정훈아, 미안하고 고생 많았다.”

    “나야 늘 하던 대로 했을 뿐인데 뭐.”

    “그게 어려운 거야. 자, 이거라도 대고 있어.”

    나는 양호실에서 미리 얻은 아이스 팩을 박정훈에게 건넸다.

    냉찜질은 혈관을 수축시켜 염증을 줄이는 역할을 했다.

    보통 급성 질환의 경우 냉찜질을, 만성 질환일 경우 온찜질을 사용하곤 한다.

    지금으로부터 30분 전.

    나는 박정훈과 함께 심병수가 학교 폭력 가해자라는 증거 확보에 나섰다.

    계획은 순조롭게, 아니 기대 이상으로 잘 진행되었다.

    확인 결과, 녹음기의 음질은 또렷하고 선명했다.

    심병수를 아는 사람이라면 심병수의 목소리를 한 번에 알아차릴 수 있는 수준이었다.

    녹음된 내용에는 심병수가 박정훈에게 담뱃불을 지진 것.

    괴롭힘이 오래전부터 진행돼 왔다는 정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캠코더 영상 또한 흠잡을 데 없이 훌륭했다.

    미리 최적의 촬영 위치를 선점한 덕분에 심병수와 일진의 얼굴들이 깔끔하게 찍혔다.

    기록들을 확인한 나는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라면 심병수를 처리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나는 확인한 증거 자료들을 다시 가방에 넣었다.

    인적이 드문 학교 후문 근처.

    이곳에 있는 학생은 나와 박정훈이 유일했다.

    점심 식사를 마친 학생들은 대부분 교실에서 쉬거나 운동장에서 체육 활동을 하고 있었다.

    “앉아서 좀 쉬자.”

    “그래.”

    나는 박정훈과 가까운 벤치에 앉아서 한숨을 돌렸다.

    전생에는 없었던 심병수의 타락.

    그리고 그런 심병수로 인해 끔찍한 괴롭힘을 당한 박정훈.

    내 시나리오에 없었던 사건이 벌어졌으나 나는 현명하고 슬기롭게 잘 대처하는 중이었다.

    또한 나는 전생에서 이미 경험했던 사건만 극복할 줄 아는 반푼이가 아니었다.

    어느새 예기치 못한 사건까지 해결할 줄 아는 성숙한 인간이 되었다.

    하지만 내가 잘나서 이 모든 것을 이뤄 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저 회귀라는, 다른 사람들이 갖지 못한 기회를 가졌기 때문에 이런 활약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가만히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심병수 사건만 잘 해결된다면, 당분간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이제 수능을 잘 쳐서 의대에 들어가는 일만 남았으리라.

    훌륭한 흉부외과의가 되는 첫걸음이 이제 곧 시작된다고 생각하자, 가슴이 설레었다.

    이날을 1살 때부터 얼마나 기다리고 또 기다렸던가.

    “믿음아.”

    “응? 왜?”

    “근데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냐?”

    “오늘 받은 자료를 변호사한테 넘겨야지. 소송 걸고 학교에도 공식적으로 이야기해서 학교 폭력 자치회도 열어야 하고.”

    설명을 하던 나는 깜빡 잊고 있었던 중요한 일을 떠올리고 휴대폰을 손에 쥐었다.

    “네, 안녕하세요. 갑자기 전화 드려서 놀라셨죠? 혹시 통화 괜찮으세요?”

    -…….

    “제가 기자님께 제보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 괜찮으시면 따로 미팅을 해도 좋을까요?”

    -…….

    “네, 네. 감사합니다.”

    통화를 끊은 나는 활짝 웃었다.

    김요한을 CPR로 살렸던 사건을 취재하고 인터뷰했던 기자와 막 통화를 끝마쳤다.

    왜냐고?

    그거야 두말할 필요도 없이 심병수를 좀 더 엿 먹이기 위해서였다.

    언론까지 불을 지른다면 심병수는 이번 사건으로 더욱 고통 받게 될 테니까.

    회귀한 나는 복수에 제법 진심이 되었다.

    애매하거나 미지근한 복수는 내 끓어오르는 복수욕을 다 채울 수 없었다.

    강태섭, 다음은 당신 차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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