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제3장 균열 (3)
고통스러워하는 박정훈을 발견한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하지만 전직 흉부외과의답게 나는 금방, 그리고 능숙하게 감정을 추슬렀다.
상황이 위급하다고 해서 상황에 끌려 다녀선 안 된다.
외과의는 상황을 통제할 줄 알아야 했다.
그리고 외과의에게 필요한 감정 또한 공포, 긴장, 불안 따위가 아니다.
환자를 반드시 내 손으로 살리겠다는 절실함 하나면 충분됐다.
나는 박정훈에게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은 뒤 박정훈과 눈을 마주쳤다.
나의 태도는 침착 그 자체였다.
“박정훈, 어디가 제일 불편해?”
내 질문에도 박정훈은 나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가슴에 손을 얹은 채 교실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쩍 벌어진 입에선 갓 뭍에 올라온 생선처럼 가쁜 숨이 토해지는 중이었다.
“정훈아, 내 말 들리지?”
한 번 더 묻자, 박정훈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경황은 없어 보였지만, 내 말을 알아들을 정도로 박정훈은 의식이 또렷했다.
주변에서 호들갑을 떨 만큼 응급한 질환이 발생한 것 같지는 않았다.
좀 더 진찰해 봐야 정확한 결론이 날 듯하지만…….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사실 중증인 질환.
겉으로는 심각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의외로 경증인 질환.
이 두 가지의 경계를 잘 파악하는 의사가 바로 실력 있는 의사였다.
회귀한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난 꽤 괜찮은 의사다.
이학적 검사.
즉 문진, 시진, 촉진, 타진, 청진을 통한 검사로 실시하는 추정 진단에 나는 능숙한 편이었다.
“가슴 통증은 있어?”
고개를 가로젓는 박정훈의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호흡은 운동장을 다섯 바퀴 이상 돈 것처럼 가빠 보였다.
나는 일단 심장에 문제가 있을 거라는 가정은 배제했다.
브루가다 증후군을 앓고 있는 김요한이 특이 케이스일 뿐, 10대에게 심장 질환이 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으니까.
다음 용의자는 천식.
천식으로 인한 발작이라면, 지금 박정훈의 상황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천식마저 용의선상에서 과감하게 배제했다.
박정훈이 천식이라면 지금처럼 과하게 호흡을 내뱉을 때 천명음이 들려야 한다.
천명음이란 쉽게 말해 쌕쌕거리는 소리.
공기가 좁아진 기관지를 통과하면서 나는 특유의 날카로운 소리 말이다.
그런데 박정훈에게선 천명음이 들리지 않았다.
몇 가지 의심 가는 질환들을 전부 쳐내고 나니 머릿속에 남는 것은 하나뿐.
정답은 박정훈의 증상과 박정훈이 겪고 있는 상황과도 퍼즐조각처럼 딱 들어맞았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불행이라고 해야 할지 나는 도통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애들아, 수업 준비 안 하고 뭣들 하냐?”
수업 시간이 되자, 이번 수업을 맡은 도덕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왔다.
교실이 소란스럽고 어수선함을 느낀 도덕 선생님은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선생님, 정훈이가 많이 아픈 것 같아요.”
“정훈이가?”
이제는 선생님까지 교실 뒤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걸 알아챈 선생님은 휘둥그레진 눈을 깜빡거렸다.
하지만 이미 진단을 마치고 치료법까지 파악한 나였다.
이 상황을 종료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나는 차분하게 주변을 살피다가 매점 비닐봉지를 들고 있는 강용호를 지그시 불렀다.
“용호야.”
“어? 왜?”
“잠깐 봉지 좀 나한테 줄래?”
* * *
“이믿음, 저 새끼 뭐 하는 거야?”
“씨발, 나라고 알겠냐.”
곁에 선 일진 친구의 질문에 심병수는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현재 심병수의 심기는 꼬일 대로 꼬여 불편했다.
자신이 박정훈을 괴롭히고 있다는 사실을 이믿음이 알아 버렸다.
그것도 모자라 그 사실을 담임에게 고자질하는 바람에 교무실에 불려 가기까지 했다.
“믿음이가 그러는데, 네가 정훈이를 괴롭혔다며?”
“아니에요. 선생님. 저는 억울해요. 정훈이를 괴롭힌 건 일진 애들이고, 저는 우연히 그 근처를 지나가고 있었을 뿐이에요.”
“…….”
“제가 전교 2등인 거 아시잖아요. 반 친구를 괴롭혀서 제가 얻는 게 뭐가 있겠어요.”
“그럼 믿음이가 오해한 거냐?”
“네, 저는 진짜 아니에요. 믿어 주세요. 선생님.”
심병수가 필사적으로 변명하자, 담임은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였다.
심병수는 수업 중에는 교실에서 흠 잡을 데 없는 모범생이었으니까.
담임의 혐의를 어렵지 않게 벗은 그는 곧바로 일진 친구들과 함께 박정훈을 화장실로 불러냈다.
박정훈에게 욕설을 퍼붓고 적당히 주먹질을 했다.
자신을 곤란하게 만든 대가를 톡톡히 치르도록 만든 것이다.
그제야 좀 분이 풀렸다.
가슴에 얹혀 있던 돌멩이 같은 것이 쑥 내려앉은 기분이었다.
그런데 웬걸?
괴롭힘을 당하고 교실로 돌아온 박정훈의 얼굴이 갑자기 하얗게 질렸다.
급기야 바닥에 무릎을 꿇더니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은 사람처럼 가쁜 숨을 토해 냈다.
이거 괜히 꼬리 잡히는 거 아닌가.
그런 불안감이 엄습하는 바람에 현재 심병수는 초긴장 상태였다.
그런데 심병수의 가슴을 한 번 더 요동치게 있던 사람이 있었으니…….
그 주인공은 바로 이믿음이었다.
수업이 시작할 때쯤 나타난 이믿음은 박정훈에게 다가가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실로 꼴같잖은 행동이었다.
전국모의고사 수석이면 수석이지 자기가 무슨 의사인 줄 착각하고 있단 말인가.
한층 더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진 것은 잠시 후였다.
“용호야.”
“어? 왜?”
“잠깐 봉지 좀 나한테 줄래?”
강용호에게 비닐봉지를 받은 이믿음은 대뜸 비닐봉지를 박정훈의 얼굴에 뒤집어씌웠다.
실로 우스꽝스럽고 한심한 행동이었다.
숨도 제대로 못 쉬는 박정훈에게 비닐봉지를 뒤집어씌운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믿음이, 좀 이상하다? 왜 저런 행동을 하지?”
“저러면 정훈이가 더 위험할 것 같은데.”
주변에 있는 반 친구들 역시 심병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믿음의 행동은 완전히 상식을 벗어났던 것이었다.
심병수가 상황을 관망 중인 도덕 선생님을 살짝 훔쳐보니.
도덕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119를 불렀냐고 묻는 중이었다.
아이들은 아직 부르지 않았다고 했다.
까만 비닐봉지를 뒤집어쓴 박정훈.
그 곁을 지키고 있는 이믿음.
마지막으로 그 두 사람을 숨죽여 지켜보고 있는 도덕선생님과 반 친구들.
교실의 분위기는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그렇게 짧으면서도 길었던 시간이 지났다.
“정훈아, 이제 좀 괜찮지?”
이믿음이 과감하게 박정훈의 머리를 감쌌던 비닐봉지를 벗겨 냈다.
“어. 응.”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119가 와야만 해결될 것 같았던 박정훈의 가쁜 호흡이 씻은 듯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심병수는 물론이요, 반 친구들, 도덕 선생님까지 그 광경에 놀라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뭐야, 이게 대체?’
심병수는 지금의 상황을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들었다.
마치 이믿음이 마법을 부린 것 같아서.
“아직 119를 안 부른 것 같은데, 119까지 부를 필요는 없습니다.”
이믿음이 박정훈을 부축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믿음아,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니?”
심병수가 묻고 싶었던 질문을 도덕 선생님이 대신했다.
“정훈이는 과호흡 증후군을 앓았습니다.”
“과호흡 증후군?”
“말 그대로 호흡이 과해지면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많아지는 질환입니다.”
이믿음이 똑 부러지는 눈빛과 목소리로 과호흡 증후군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과호흡 증후군의 원인은 신체적 원인과 정신적인 원인, 두 가지가 있다.
그런데 박정훈은 평소 건강했으니 정신적인 원인으로 과호흡 증후군을 앓게 되었다.
과호흡 증후군의 증상으로는 과호흡, 어지럼증, 실신, 두통 등이 있으며.
과하게 배출한 이산화탄소를 다시 들이마시게 해서 혈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정상화하는 처치법이 필요했다.
박정훈에게 비닐봉지를 씌운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믿음의 의학 지식이 마치 의사처럼 해박했기에.
도덕 선생님은 물론이고, 반 친구들도 깜짝 놀랐다.
심병수 역시 크게 놀랐고.
처음 이믿음이 박정훈의 머리에 비닐봉지를 씌울 때만 해도, 이믿음이 머저리 같은 짓을 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거늘…….
세상에 이런 반전이 존재할 줄이야.
다시 한번 학급의 영웅이 된 이믿음을 지켜보며 심병수는 또다시 패배감을 느꼈다.
이믿음을 향한 질투와 시기가 더욱 강해졌다.
“믿음이 네 꿈이 의사 선생님이라고 전교에 자자하더니만… 미리 의학 서적까지 공부했던 모양이구나. 대단해.”
“아닙니다. 이 정도야 뭐…….”
“이런 질문이 조금 우습긴 하지만, 정말 119는 안 불러도 되겠니?”
“네, 지금 필요한 건 119가 아닙니다.”
도덕 선생님에게 향했던 이믿음의 시선이 심병수에게로 고정되었다.
심병수를 바라보는 이믿음의 눈빛에는 적개심이 맹렬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 눈빛에 심병수가 한순간 겁을 집어먹고 뒷걸음질을 칠 만큼.
“정훈이에게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준 누. 군. 가. 가 사라져야 합니다.”
한 글자, 한 글자를 또박또박 발음하는 이믿음은 명백하게 심병수를 저격하고 있었다.
이 자식이 지금 나랑 해 보자는 건가?
“그게 대체 누구니?”
“제가 담임선생님께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정훈이는 좀 더 쉬어야 할 것 같으니까 양호실에 데려다주고 와도 될까요?”
“그러려무나. 어쨌든 믿음이 네가 고생 많았다. 정훈이도 수업 걱정은 하지 말고 푹 쉬고.”
“네.”
이믿음과 박정훈이 교실을 떠나면서 수업은 바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심병수는 좀처럼 수업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자신에게 날을 세우던 이믿음의 모습이 계속 머릿속에 아른거려서.
* * *
‘일단 한고비 넘겼네.’
수업이 시작하면서 고요해진 복도를 나는 박정훈과 걷고 있었다.
우려했던 것과 달리 박정훈에게 심각한 질환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박정훈은 스트레스로 인한 과호흡 증후군으로 고통을 받고 있을 뿐이었다.
물론 과호흡 증후군도 무시할 것은 아니었지만.
전생의 나는 의사 생활을 하면서 대략 다섯 번 정도 과호흡 증후군을 앓는 환자를 상대해 봤다.
그중 신체적인 원인으로 과호흡 증후군이 발생한 환자는 단 한 명도 못 봤다.
대부분이 스트레스로 인해 교감신경이 극도로 활성화되어서 질환이 발생하곤 했다.
정신적인 문제로 과호흡 증후군이 발병할 확률이 높은 만큼.
과호흡 증후군은 공황장애와도 퍽 긴밀한 관계에 있었다.
그러니까 박정훈을 제대로 치료하기 위해선 심리적인 문제부터 해결해야 했다.
즉 그 원인이 되는 심병수를 처리해야 했다.
“믿음아, 아깐 고마웠어.”
박정훈이 힘겹게 말을 꺼냈다.
“진짜 숨이 너무 차서 죽는 줄 알았거든. 비닐봉지를 뒤집어썼을 때도 엄청 무서웠고.”
“…….”
“그런데 오히려 봉지 안에서 숨쉬기가 편하더라. 마음도 차분해지고.”
“네가 편해졌으면 난 그걸로 만족한다.”
나는 박정훈의 어깨에 다정하게 손을 얹었다.
“그리고 아침에 교무실에서는 내가 미안…….”
“그 이야기는 하지 말자.”
“그래도 네가 용감하게 나서 줬는데, 내가 그걸 망쳐…….”
“정말 됐어. 난 신경 안 쓰니까 지금은 푹 쉴 생각만 해.”
나는 푸근한 목소리로 박정훈을 달랬다.
사실 박정훈과 단둘이 있는 지금이야말로 심병수 이야기를 꺼낼 좋은 타이밍이었다.
아까 곽준호 변호사와 했던 이야기도 들려주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박정훈을 다그치고 싶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과호흡 증후군으로 고통 받았던 박정훈이었다.
그런 박정훈과 학교 폭력을 곧바로 이야기하는 것은 박정훈에게 큰 부담이 될 것이다.
궁지에 몰린 사람에겐 한숨 돌릴 여유가 필요한 법이니까.
‘어차피 시간은 내 편이니까.’
양호실로 이동하는 동안.
나는 심병수의 숨통을 조일 작전을 탄탄하게 짜 나갔다.
쥐새끼를 잡을 날이 그리 머지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