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살부터 의사 생활-37화 (37/257)
  • 37화 제3장 균열 (2)

    “…….”

    “…….”

    나와 심병수 사이에서 팽팽하고 날카로운 신경전이 벌어졌다.

    우리는 서로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았으며 어느 한쪽도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이믿음, 건방지게 정의의 사도인 척 나대지 말고 제발 좀 가만히 있어라. 응?”

    “쓰레기 같은 놈, 너야말로 삼류 양아치 흉내나 내지 마라.”

    아직도 자신의 죄를 뉘우칠 줄 모르는 심병수에게 나는 으르렁거렸다.

    같은 반 친구의 손목을 담뱃불로 지짐으로써.

    심병수는 스스로가 인간이 아님을 증명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심병수는 짐승, 아니 짐승보다 못한 놈이었다.

    “두… 둘 다 그만해…….”

    박정훈이 모기만 한 목소리로 껴들었으나 그 영향력은 미미했다.

    더 이상 심병수를 상대하는 것은 시간 낭비였기에.

    나는 박정훈의 손을 이끌고 교무실로 직행했다.

    담임선생님이 심병수의 몹쓸 괴롭힘을 알아차리는 게 우선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과연 내가 이렇게까지 나서는 것은 옳은 일인가.

    잠깐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그런 걱정은 접어 두기로 했다.

    이대로 박정훈을 방치한다면, 박정훈의 몸과 마음은 피폐해질 것이 분명했다.

    정작 가해자인 심병수는 아무런 죄책감 없이 다리 쭉 뻗고 잘 테고.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행동 범위 안에서 박정훈을 돕는 게 옳았다.

    그리고 그 시작은 담임선생님에게 오늘 내가 알아차린 끔찍한 사실을 알리는 것이었다.

    “선생님, 혹시 시간 괜찮으신가요?”

    “어, 그래? 믿음이냐? 정훈이는 또 무슨 일이고?”

    서류 업무를 보던 담임선생님이 나와 박정훈을 위아래로 훑었다.

    “중요하게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뭔데? 말해 봐.”

    “병수가 정훈이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병수가?”

    담임선생님은 의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는데, 그 반응은 담임선생님 입장에선 당연한 것이었다.

    적어도 선생들 사이에서 심병수는 공부 잘하고 착실한 이미지를 가진 녀석이었다.

    양의 탈을 쓴 늑대라고 하는 편이 가장 정확할 것이다.

    “흐음… 괴롭힘이라…….”

    담임선생님의 미지근한 독백에서 나는 한 줄기 불안감을 느꼈다.

    학우가 학우를 괴롭혔다면 담임으로서 펄쩍 뛰는 것이 맞을 텐데…….

    담임선생님에게서 느껴지는 방관자의 분위기가 썩 불길했다.

    “너희 나이 때는 친구들끼리 좀 치고받고 싸울 수도 있긴 한데…….”

    “선생님, 단순히 장난을 치는 수준이 아닙니다.”

    나는 끓어오르는 화를 참으며 정중한 태도를 보이고자 최선을 다했다.

    담임선생님과 싸우려고 교무실을 찾아온 건 아니었으니까.

    “박정훈, 정말 심병수가 너 괴롭혔어? 왜 믿음이만 말을 하고 괴롭힘을 당했다는 너는 말이 없냐?”

    “그게요…….”

    “정훈아, 선생님께 있는 그대로 말씀드려. 팔 토시 걷어서 상처도 보여 드리고.”

    내 재촉에 박정훈이 고개를 푹 숙였다.

    무언가를 말할 듯 입술을 달싹거리기를 반복했다.

    박정훈의 용기가 필요한 시점.

    “미안해, 믿음아. 죄송합니다, 선생님. 오늘 일은 없었던 걸로 할게요.”

    박정훈이 교무실을 뛰쳐나가는 모습을 나는 허탈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박정훈을 원망하거나 바보 같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동안 심병수에게 얼마나 시달렸으면 저럴까.

    사실을 밝힌다고 해도 솜방망이 처벌이 내려진다면 박정훈에게 가해지는 괴롭힘은 더욱 심해지기만 할 테니.

    아마 박정훈은 그 점까지 감안해서 자리를 피한 게 분명했다.

    그런 박정훈에게는 티끌만큼의 문제도, 죄도 없었다.

    ‘지독한 자식.’

    나는 그저 이런 끔찍한 상황을 만든 심병수에게 크나큰 분노를 느낄 따름이었다.

    “정훈이가 그냥 가 버리는데? 어떻게 된 거냐, 믿음아?”

    담임선생님이 설명을 더 해 보라는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요새 병수가 괴롭혀서 정훈이가 많이 힘들어합니다. 병수가 담뱃불로 팔을 지져서 팔 토시를 차고 있었던 거고요.”

    “하… 병수가 그럴 리가 없는데… 선생님은 잘 안 믿기는구나.”

    계속 심병수를 두둔하는 담임을 보고 있자니 답답해서 복장이 터질 것 같았다.

    하긴 시대를 탓하는 건 핑계일지 몰라도.

    이 시기에는 공부만 잘하면 착한 학생처럼 여겨지곤 했다.

    “병수가 아니라 다른 애들이 정훈이를 괴롭힌 건 아니고?”

    “그 반대입니다. 병수가 주도적으로 불량 학생들을 이끌고 있습니다.”

    “이따가 병수를 불러서 따로 이야기를 해 보마. 믿음이 네가 거짓말을 할 아이는 아니니까 말이야.”

    “네, 선생님.”

    담임의 미지근한 대처에 나는 교무실을 나와서 한숨을 쉬었다.

    전생에는 모범생이었던 심병수가 지금은 타락하고.

    전생에는 화목했던 학급 분위기가 지금은 개판이 되었다.

    어쩌면 이것들은 회귀라는 보물을 얻은 내가 응당 겪어야 할 업보이자 나비효과일지도 몰랐다.

    ‘그래도 이겨 내는 수밖에…….’

    나는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과거에 벌어졌던 사건만을 수습할 수 있다면, 나의 회귀는 반쪽짜리에 불과할 것이다.

    과거에 벌어지지 않았던, 새로운 사건까지 수습할 수 있어야 나의 회귀는 완성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심병수와 박정훈의 문제는 회귀한 나의 능력을 시험하는 일종의 시험대라고 볼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학급에서 일어나는 이런 복잡한 사건들은 병원에서도 종종 일어난다.

    진급 문제.

    레지던트 선후배 사이의 폭행.

    교수의 갑질 문제 등등.

    그런 의미에서 이번 사건은 앞으로 내가 병원에서 겪을 일들의 일종의 백신과도 같은 역할도 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번 사건을 모른 척 넘어가는 일은 내게 불가능했다.

    교실로 돌아가는 내내, 나는 이번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무엇이 옳은 길이고.

    무엇이 진정한 해피엔딩인지는 시간이 말해 줄 것이다.

    * * *

    koi

    수업 시간 내내 생각이 많았다.

    이번 심병수 사건은 앞으로 병원에서 수많은 부조리를 당할 때.

    내가 어떤 가치관으로 행동할지를 결정할 중요한 사건이 될 것이다.

    심병수 같은 못된 놈을 만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박정훈처럼 불합리한 상황에서 고통 받는 사람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나는 그에 대한 확실한 대답을 내놓아야 했다.

    심병수?

    솔직히 그 쓰레기가 타락을 하든 말든 나와 상관없었다.

    박정훈이 괴롭힘을 당하는 것도 냉정하게 말하면 나와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나는 조용히 학교를 다니다가 수능을 잘 쳐서 의대에 수석으로 입학하면 그만이었다.

    회귀한 지식으로 활약하면서 잘나가는 교수들 뒤에 줄을 잘 서면 내 미래는 말 그대로 탄탄대로 그 자체일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는 속물이 되려고 의사라는 직업을 택하려는 게 아니다.

    나는 전생의 아버지처럼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는 환자들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었다.

    불구대천의 원수.

    동시에 아랫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강태섭 같은 인간에게 정의의 철퇴를 내리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렇다면 내가 가야 할 길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힘을 가진 악한은 응징하고, 힘이 없는 약자를 보듬는다.

    그러므로 나는 심병수가 죗값을 치르도록 만들 것이며, 박정훈의 고통을 덜어 줄 것이다.

    나는 흉부외과의로서 눈을 감을 때까지 이 마음을 잃지 않기로, 잊지 않기로 굳게 다짐했다.

    “믿음아, 너 표정이 왜 그러니?”

    각오로 불타오르는 내 눈빛이 너무 뜨거웠을까.

    수업을 진행 중이던 수학 선생님이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선생님. 수업에 너무 집중하다 보니…….”

    “녀석, 싱겁기는. 자, 수업 계속한다.”

    선생님이 등을 돌아 칠판에 공식을 적을 때 나는 심병수와 박정훈을 번갈아 살폈다.

    우리 셋의 이야기는 조만간 완결이 날 것이다.

    * * *

    5교시 수업이 끝난 뒤.

    나는 인적이 드문 후문 근처로 이동했다.

    지갑에서 꺼낸 명함 속 전화번호를 휴대폰에 입력했다.

    곽도안의 아버지이자 변호사인 곽준호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왜냐고?

    심병수의 학교 폭력을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지 자문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이번 괴롭힘을 학교 자치회 내부적으로만 해결한다?

    그랬다간 반쪽짜리 처벌이 될 확률이 높았다.

    학교든 병원이든 내부 문제는 대충 덮고 넘어가려는 성향이 짙기 때문이다.

    심병수가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 것을 나는 원치 않았다.

    심병수는 자신이 저지른 죗값을 반드시 톡톡하게 치러야 했다.

    ‘믿을 만한 변호사가 있다는 거, 엄청 든든하구나.’

    통화 대기음을 들으며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곽준호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의술을 통해 만들 인맥은 내게 큰 힘이 되어 줄 것이다.

    -어, 믿음아. 오랜만이다.

    “안녕하세요. 통화 괜찮으세요? 혹시 바쁘신데 연락드린 건 아니죠?”

    -그럴 리가. 네 전화라면 자다가도 일어나서 받아야지.

    곽준호가 익살스러운 말투로 대답했다.

    -너야말로 학교에 있을 텐데 통화는 괜찮고?

    “쉬는 시간이라서요. 저기 정말 죄송한데, 문의를 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만…….”

    나는 심병수와 박정훈 사이에 있었던 괴롭힘을 간략하게 전했다.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곽준호가 시원하게 욕 한 사발을 토해 냈다.

    -허허, 어린놈이 씨발 놈이네. 어디서 못된 것만 배워 처먹어 가지고 말이야. 그런 새끼들이야말로 비 오는 날에 먼지 나게 맞아야 하는데 말이지.

    “…….”

    -흠흠, 믿음이 네가 이해해라. 내가 원래 입이 거친 편이라.

    “아니에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까 오히려 제 속이 다 후련한 걸요.”

    -어쨌거나 증거만 수집하면 충분히 형사사건으로도 진행할 수 있을 것 같구나.

    “혹시 징역형도 가능할까요?”

    나는 심병수에 대한 분노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징역형이라… 합의를 안 한다면 형량을 높일 순 있겠지만 소년법이 있는 데다 초범이라면 징역까지는 힘들 가능성이 높단다. 보통은 집행유예랑 봉사 명령 정도로 끝나겠지.

    곽준호의 답변에 나는 살짝 실망했다.

    심병수가 감방에서 콩밥을 좀 처먹어야 이 울화가 풀릴 것 같은데 말이다.

    그놈의 소년법은 대체 뭐란 말인가.

    누구는 가해를 하고도 떵떵거리면서 잘 살고.

    누구는 피해를 당한 뒤에도 평생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불합리한 상황 말이다.

    가해자의 창창한 미래는 중요하고, 피해자의 창창한 미래는 중요하지 않단 말인가.

    나는 불쑥 소년법이 심병수만큼 미워졌다.

    -징역형부터 꺼내는 걸 보면 심병수라는 친구가 어지간히 네게 밉보였나 보구나.

    “말도 못 할 정도입니다.”

    -징역까지는 아니더라도 소송에 들어가고 판결이 나오는 동안, 피의자도 고통 받게 될 거야. 내가 최대한 고통스럽게 만들어 줄 테니까.

    “…….”

    -그리고 특별히 네가 부탁을 했으니 징역형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 보마.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나는 곽준호와 5분 정도 더 대화를 나눴다.

    고소를 위한 절차에 무엇이 필요한지 등등을 구체적으로 묻고 이를 머릿속에 기억해 두었다.

    -친구랑 이야기 잘하고 자료 정리를 마치는 대로 내 사무실에 오려무나. 맛있는 음식을 사 주마.

    “…….”

    -참고로 이번 수임료는 공짜다. 네 덕분에 명태랑 때문에 허망하게 돌아가신 어머니의 넋을 달랠 수 있었으니까.

    곽준호는 의뢰인과 면담이 잡혔다며 금방 통화를 끊었다.

    내 사건을 친절하게 상담해 주고 수임료도 받지 않겠다니.

    곽준호의 따뜻한 마음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오늘 입은 은혜는 내가 어엿한 의사가 됐을 때.

    곽준호의 주치의가 되어 그의 건강을 책임지는 것으로 대신하기로 마음먹었다.

    통화 내용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며 돌아온 교실.

    그런데 돌아온 교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반 아이들이 교실 뒤편을 중심으로 둥글게 원을 그리고 있었다.

    “어떻게 하지? 누가 119에 전화 좀 해 봐.”

    “양호실부터 데려가야 하는 거 아니야?”

    “선생님을 부르는 게 낫지 않아?”

    초조함과 걱정이 묻어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지고 있었다.

    우왕좌왕하는 반 친구들 사이를 비집고 나는 현장에 들어섰다.

    그곳에는 박정훈이 있었다.

    박정훈은 밀랍처럼 하얗게 질린 얼굴로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척 봐도 심상치 않은 기색.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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