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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살부터 의사 생활-19화 (19/257)
  • 19화 제3장 나는 국민학생이다 (7)

    본관 6층에 위치한 소아과 전용 입원 병실.

    소아 환자복을 입은 김요한은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침상에 앉은 채 환자복을 내려다보며 헐렁한 옷자락과 끈을 매만지기에 바빴다.

    6인실의 병실은 비좁았다.

    쥐꼬리만 한 여유 공간과 커튼 막을 두고 침상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환자와 보호자들이 밀집해 있었지만, 병실은 의외로 고요했다.

    수술을 앞둔 아이들, 또는 수술을 마치고 회복 중인 아이들에겐 또래 아이들 특유의 생기와 재잘거림을 찾아볼 수 없었다.

    크게 아파 본 사람은 안다.

    병이 사람을 어떤 식으로 좀먹어 가는지를.

    무겁고 침울한 분위기 속에서 김요한은 창가를 응시했다.

    운이 좋게도 김요한은 창가 자리를 얻었다.

    병실의 아픈 환자들 대신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다는 건 축복이었다.

    “…….”

    “…….”

    나 역시 침묵을 지키며 창 너머 풍경을 바라보았다.

    모처럼의 여유와 평화를 만끽했다.

    김요한이 쓰러진 뒤 CPR을 실시하고 종합병원을 찾았다가.

    브루가다 증후군이라는 가까운 미래의 질병을 발견한 뒤.

    겨우겨우 해결책을 찾아 강 교수의 진료를 받게 하고 입원하게 만든 것이 모두 오늘 하루 동안에 벌어진 일이었다.

    돌이켜 보면, 실로 박진감 넘쳤던 하루가 아닐 수 없었다.

    갖은 우여곡절을 겪었으나, 나의 고군분투는 결코 헛수고가 아니었다.

    김요한이 끝내 페이스메이커 삽입 시술을 받게 되었으니.

    ‘강 교수님을 만난 게 신의 한 수였지.’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강 교수가 부르가다 증후군을 어느 정도 알아보고 적극적으로 시술을 권유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다른 대학 병원의 심장내과의 교수를 만났다고 한들.

    강 교수처럼 브루가다 증후군을 꿰뚫어 볼 수 있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제아무리 대학 병원 의사라고 해도 의사별 경험치와 능력은 제각각 달랐으니까.

    ‘혼자가 아니니까 해낼 수 있어.’

    나는 오늘 사건으로 용기를 얻었다.

    회귀한 나는 비록 만능이 아니지만 훌륭한 의사들과 함께라면.

    앞으로 닥칠 그 어떤 시련도 이겨 낼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긴 상념에 빠졌던 내 시선이 곧 김요한에게 머물렀다.

    “너, 진짜 용감하다.”

    나는 김요한에게 말을 걸었다.

    김요한의 어머니와 담임선생님은 잠깐 자리를 비웠다.

    사회 사업팀에 들렀다가 입원 생활에 필요한 생필품을 사러 나갔다.

    “뭐가?”

    “나 같았으면 수술 받는다고 하면 무서워서 엉엉 울었을 텐데, 너는 되게 의젓하잖아.”

    김요한을 기분 좋게 하려고 괜히 하는 말이 아니었다.

    실제로 김요한은 입원하기 싫다거나 수술을 거부하지 않고 초연한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나는 김요한이 차라리 울고불고 떼를 쓰기를 바랐다.

    참고 인내하는 것은 아이의 미덕이 아니었다.

    “난 무서워하면 안 돼.”

    “왜?”

    “왜냐하면… 엄마가 나보다 더 힘들 테니까. 엄마는 나 때문에 찬바람을 맞아 가면서 돈을 벌어. 그리고 힘들게 번 돈을 병원에다 써야 돼. 나까지 울면 엄마가 너무 힘들 거야.”

    결연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김요한을 보며 나는 콧잔등이 시큰해졌다.

    눈시울은 붉어지고, 가슴은 뭉클해졌다.

    김요한이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한눈에 그려졌다.

    가난이 강제로 빚어낸 성숙함은 언제나 애처로운 법이었다.

    “너, 진짜 멋있다. 나라면 너처럼 못 했을 거야.”

    “아니야. 난 그냥 참는 것밖에 할 줄 몰라서 그래.”

    김요한이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계속 말을 못 했는데, 고마워. 너 때문에 내가 살았어.”

    “그건 아는구나. 난 까맣게 모르는 줄 알았는데.”

    내가 농담조로 말하자, 김요한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있잖아. 나는 오래전부터 믿음이 네가 부러웠어. 넌 잘생기고 인기도 많고 공부도 잘하잖아?”

    “…….”

    “그래서 네가 나한테 친한 척을 했을 때 많이 놀랐어. 네가 나를 꼬붕 삼으려고 하는 줄 알고.”

    “난 그런 생각을 한 적 없는데?”

    “그냥 내가 그렇게 생각했어.”

    김요한의 고해성사가 이어졌다.

    주요 골자는 김요한이 나를 오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그림자의 세계에 있던 김요한이 빛의 세계에 있던 나를 동경하면서 동시에 질투했다는 내용이었다.

    그 참혹한 기분을 물론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먼 훗날 의대에서 만나게 될 박태준.

    김요한이 내게 가졌던 감정을 나 역시 박태준에게 가졌으니까.

    빛나는 사람 곁에 있는 건 의외로 괴로운 일이었다.

    매번 자신의 한계를 느끼고 자존심감이 깎이며 스스로를 자책하게 되니까.

    아마 전생의 김요한은 나를 질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 역시 김요한처럼 그림자의 세계에 있었던 아이였으니.

    “근데 믿음이 너는 왜 나랑 친해지려고 했어?”

    “너, 그림 잘 그리잖아. 나는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이 부럽거든. 난 너처럼 그림 못 그려.”

    “그냥 낙서인데?”

    “낙서가 그렇게 멋있으면 나중에 제대로 그리면 더 멋있을 거 아니야.”

    내 칭찬에 김요한이 볼을 긁적거리며 쑥스러워했다.

    김요한은 경제적으로 궁핍했던 것뿐만 아니라 칭찬에도 목말라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하긴 반에서 김요한의 그림에 관심을 가지는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너, 나중에 커서 그림 작가나 만화가를 해도 될 것 같아.”

    “정말?”

    “응. 열심히 하면 될걸? 우리 아빠가 그랬어. 세상을 사는 데는 믿음 한 스푼, 의심 한 스푼, 다시 믿음 한 스푼이 필요하다고 했어.”

    “…….”

    “우선 네 꿈을 믿고 열심히 노력해 봐. 그리고 그 꿈을 잠깐 의심했다가 다시 믿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했어.”

    나는 아버지의 마법 공식을 김요한에게 전달했다.

    국민학생이 이해하기는 어려운 이야기였지만, 그 뉘앙스는 어느 정도 전달된 것 같았다.

    “고마워. 나 열심히 해 볼게.”

    “그래. 너라면 잘할 수 있을 거야. 그런 의미에서 나랑 약속해. 커서 멋진 그림 작가가 되겠다고.”

    나는 김요한과 새끼손가락을 걸고 엄지로 도장을 찍고 손바닥으로 복사를 했다.

    약속을 하면서 맞닿은 김요한의 손바닥은 따뜻했다.

    살아 있다는 것을 그리 대단하게 정의 내릴 필요는 없었다.

    살아 있다는 것은 그저 따스하다는 것이었다.

    잠시 후, 김요한의 어머니와 담임선생님이 병실로 돌아왔다.

    나는 곧 담임선생님과 함께 집에 돌아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병원비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될 것 같구나. 병원비의 30퍼센트는 국가의 지원을 받을 수 있고, 나머지는 원무과에 조금씩 갚기로 했어.”

    “와, 잘됐어요.”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수술비를 감당하지 못해 입원하지 못하고 그 후로 종적을 감춘 환자를 나는 제법 알고 있었다.

    자본주의 사회는 어느 정도 무전유병, 유전무병의 성격을 띠고 있었기에.

    김요한이 별 탈 없이 수술을 받게 되었으니

    내 역할은 완전히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김요한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지난 몇 주간의 긴장이 순식간에 풀리면서 마음이 노곤해졌다.

    “요한이가 쓰러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부터 선생님의 마음이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모를 거다. 어쨌거나 오늘은 여러모로 믿음이 네게 큰 신세를 졌구나. 요한이를 교실에서 살린 것도 너고, 대학병원에 데려왔던 것도 너였으니까 말이야.”

    “…….”

    “오늘은 믿음이가 선생님보다 더 선생님 같았는걸?”

    “아니에요, 선생님. 헤헤.”

    잡담이 끝날 때쯤 택시가 아파트 단지에 도착했다.

    담임선생님은 나를 집까지 데려다주고 내 부모님과도 잠깐 이야기를 나누겠다고 했다.

    “믿음이 너, 지금 시간이 몇 시인 줄 알…….”

    현관문을 열고 잔소리를 퍼부으려던 어머니가 화들짝 놀랐다.

    내 등 뒤에 있던 담임선생님을 알아본 것이다.

    “안녕하세요. 믿음이 어머님.”

    “어머! 선생님이 저희 집은 어쩐 일로… 혹시 믿음이가 말썽을 피웠나요?”

    “믿음이가 말썽이라니요? 가당치도 않은 말씀인 걸요.”

    “현관에 계시지 말고 어서 들어오세요.”

    곧 부모님과 나, 담임선생님이 식탁에 앉아서 도란도란 대화를 나눴다.

    이야기는 주로 담임선생님이 했다.

    오늘 오후 김요한에게 어떤 일이 있었고, 김요한을 위해 내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형식이었다.

    담임선생님이 돌아간 뒤로도 부모님과 좀 더 대화를 나눴다.

    내 용감한 행동에 부모님은 많이 놀란 기색이었다.

    특히 간호사인 어머니가 더 그랬다.

    초등학생이 CPR로 심장마비 환자를 살리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기 때문이다.

    “아까 온 전화가 이 전화였구나.”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전화가 왜요?”

    “샛별일보 기자라는 사람인데, 믿음이 너를 좀 만나 보고 싶다고 했거든. 네가 돌아오는 대로 연락을 달라고 하더구나.”

    아버지의 말에 나는 김요한을 이송했던 구급 대원의 말을 떠올렸다.

    -네 행동이 너무 기특해서 뉴스에 나갔으면 좋겠구나. 아저씨가 아는 기자가 있거든. 불편하면 안 가르쳐 줘도 되고.

    딱히 매스컴을 타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고 나는 생각했다.

    뉴스나 신문에 이번 사건 기사가 나오면 어떻게 될까.

    조만간 외조부모님을 찾아갈 때 부모님이 나를 자랑할 거리가 하나 생길 것이다.

    내가 계획하고 있는 그 일(?)도 순조롭게 해결될 테고.

    착한 일을 했다고 의술의 신께서 복을 점지해 주시는 모양이었다.

    “아빠, 나 그 기자 아저씨랑 통화하고 싶어요. 지금요.”

    * * *

    다음 날 오전.

    윤치환은 교무실로 들어가 자기 자리에 앉았다.

    “윤 선생님, 어제 학생 한 명이 갑자기 쓰러졌다면서요? 일은 잘 처리하셨어요?”

    옆자리에 앉은 이미현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아유, 말도 마세요.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식겁해서 죽는 줄 알았다니까요.”

    윤치환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며 어제 겪었던 일을 미주알고주알 털어놓았다.

    무용담 아닌 무용담이었다.

    “선생님도 고생했지만, 이번에도 믿음이가 한 건 했네요?”

    “믿음이를 아세요?”

    “제가 작년에 믿음이 담임이었어요. 장래 희망이 의사인데, 아주 똑 부러지는 아이예요. 말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고 친구들한테 인기도 많고.”

    “…….”

    “한 반에 믿음이만 50명 있으면 담임도 필요 없을 걸요?”

    “확실히 비범하긴 하더라고요. 남 선생님도 아무것도 못 하고 있었는데, 그 어린것이 친구한테 심폐소생술을 했으니…….”

    윤치환은 어제 동행했던 이믿음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공포에 질린 친구를 챙겨 주는 세심함.

    대학 병원에 가는 게 좋겠다며 자기주장을 내세우는 결단력.

    이믿음은 국민학생이 아니라 다 큰 성인처럼 보였다.

    이믿음이 없었다면 윤치환은 학년 초부터 소중한 학생 한 명을 잃은 채 반을 이끌 뻔했다.

    생각만 해도 아찔한 그림이었다.

    드르르륵.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때마침 교무실 문이 열리고 이믿음이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오! 그래, 믿음이 왔니? 무슨 할 말이라도 있어?”

    “네, 선생님.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뭔데?”

    “요한이가 이틀 뒤에 수술을 받기로 했잖아요. 근데 우리 학교에서 요한이 수술비를 모금하면 안 되나요?”

    “모금?”

    “네, 수술비가 다 해결된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다 같이 조금이라도 돈을 모아서 요한이 어머니께 드리면 좋을 것 같아요.”

    이믿음의 제안에 윤치환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사실 그는 어제 동행한 것만으로 제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한나절 가까이 김요한을 위해 시간을 보냈고, 진심 어린 위로의 말을 전했으니까.

    그런데 이믿음은 그의 생각을 한 차원 뛰어넘는 발상을 하고 있었다.

    이 녀석은 정말 국민학생의 탈을 쓴 성인 같았다.

    ‘모금 활동이라…….’

    윤치환은 이믿음의 제안이 제법 일리가 있다고 느꼈다.

    무지막지한 금액이 걷히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전교생이 합심한다면 어느 정도 보탬은 될 것이다.

    “선생님이 교무회의 때 건의해 보마. 모금은 아마 정상적으로 잘 진행될 거란다.”

    “근데요, 선생님. 학교 모금도 하고 전국적인 모금도 해 보는 건 어떨까요?”

    “전국적인 모금?”

    윤치환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되물었다.

    전교에서 전국이라니, 갑자기 스케일이 확 커진 느낌이랄까.

    쪼그만 녀석이 벌써 전국 단위로 놀겠다는 건가 싶기도 했다.

    “제가 기특하다고 뉴스에서 인터뷰하러 온다고 했거든요. 그때 요한이 사연이 많이 알려지면 요한이랑 요한이 어머니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

    “인터뷰할 때 선생님도 같이 오셔서 요한이에 대해서 말씀 좀 해 주세요.”

    이믿음의 똑 부러진 모금 계획에 윤치환은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추진력이 굉장했기에 그는 끌려가는 것 말고 할 것이 없었다.

    하… 이쯤 되면 누가 선생이고 누가 학생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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