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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살부터 의사 생활-17화 (17/257)
  • 17화 제3장 나는 국민학생이다 (5)

    앰뷸런스가 도착한 곳은 100병상을 갖춘 종합병원인 성동 병원이었다.

    성동 병원은 학교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곳으로 충수돌기 절제술을 비롯한 외과 수술까지 어느 정도 가능한 곳이었다.

    “믿음아, 혹시 집 전화번호 좀 알려 줄 수 있니?”

    김요한을 부축하며 뒷좌석에서 내리는데, 구급 대원이 내게 물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질문이라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왜요?”

    “네 행동이 너무 기특해서 뉴스에 나갔으면 좋겠구나. 아저씨가 아는 기자가 있거든. 불편하면 안 가르쳐 줘도 되고.”

    “네, 알려 드릴게요.”

    나는 순순히 구급 대원에게 집 전화번호를 알려 주었다.

    뭔가 새로운 인연이 시작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으나 당장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김요한이 심장마비를 일으킨 원인을 찾는 것이었다.

    다른 일에 한눈팔 여유는 없었다.

    “친구를 태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야말로 네 덕을 톡톡히 봤는걸? 친구가 건강하게 귀가하길 바라마.”

    앰뷸런스와 구급 대원이 돌아간 뒤 나와 담임선생님, 김요한은 응급실 접수를 하고 응급실 벤치에서 대기했다.

    “괜찮아. 요한아. 별일 없을 거야.”

    나는 바들바들 떠는 김요한의 어깨에 손을 얹고 다정하게 말했다.

    전생에 수없이 많은 환자를 진찰하고 수없이 많은 집도를 한 나를 유독 마음 아프게 만드는 환자들이 있었다.

    바로 15세 미만의 소아환자들이었다.

    아직 덜 여문, 세상이 주는 행복을 누리지 못한 생명들이 아파할 때마다 나는 내 생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소아에게 닥쳐오는 질환들은 대체로 너무 가혹하며.

    설령 질환을 극복한다고 해도 아이들의 삶에 영원한 그림자로 남기 때문이다.

    다만 내 감상에 오해나 곡해는 하지 않길 바란다.

    어른들은 아파도 된다는 뜻은 아니니까.

    ‘대체 무슨 질환이길래…….’

    나는 진료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김요한을 괴롭히고 있는 심장 질환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가장 유력한 것은 선천성 심장 질환이었다.

    선천성 심질환의 경우, 태어날 때부터 생긴 심장 구조의 이상이 심혈관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그중 빈도가 가장 높은 질환은 판막 기형이었다.

    하지만 심장마비를 일으킬 정도의 판막 기형이라면 그 전에 무언가 징조를 보였어야 했다.

    호흡곤란이라든가.

    부정맥이라든가 말이다.

    그런데 꾸준히 관찰했음에도 김요한에게서 선천성 심질환자의 특징을 발견하지 못한 나였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할수록 수렁에 빠지는 기분이었다.

    “요한아! 괜찮니?”

    “엄마? 엄마~!”

    담임선생님의 연락을 받은 김요한의 어머니가 대기실을 찾았다. 김요한은 제 어머니의 품에 안겨 서럽게 울었고, 어머니도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서로를 의지해 가난을 극복하는 모자의 모습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두 사람을 위해서라도 김요한이 별 탈이 없었으면 좋으련만…….

    결혼을 일주일 앞둔 예비 신랑이 심장마비로 사망한 케이스 등등.

    기구하고 기막힌 사연을 하도 많이 경험한 나라서 마음을 놓기가 쉽지 않았다.

    “어머님, 오셨어요? 지금까지의 상황을 간단하게 설명드리겠습니다.”

    담임선생님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의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김요한의 어머니는 김요한을 달래면서 담임선생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잠시 후 대망의 진료가 시작되었다.

    응급의학의가 상황을 들으며 김요한을 문진해 나갔다.

    문진하는 내내, 그 역시 나처럼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국민학생이 심장마비로 돌연 쓰러지는 일은 결코 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심폐소생술을 이 어린 친구가 했다고요?”

    응급의학의의 시선이 갑자기 내게 머물렀다.

    “아. 네. 요한이가 쓰러졌을 때 교실에 이 친구밖에 없었거든요.”

    담임선생님이 나 대신 대답했다.

    “허… 놀랄 일이 또 있었군요. 국민학생이 심폐소생술로 친구를 살리다니. 심폐소생술은 어디서 봤니?”

    “엄마가 보는 드라마에서 봤어요. 사람이 쓰러지니까 이렇게 가슴을 꾹꾹 눌렀어요.”

    나는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했다.

    중년의 의식을 가진 채 국민학생의 삶을 살고 있는 나만이 가능한 화술이었다.

    “똘똘한 데다 용기도 있는 아이구나. 네 덕분에 친구가 살았어.”

    “아니에요.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는 내가 해야지. 건강한 친구를 선생님에게 데려와 주었으니까. 일단 필요한 검사부터 촬영하고 결과를 보겠습니다.”

    김요한과 김요한의 어머니는 간호사를 따라 이동했고.

    대기석엔 나와 담임선생님만 남았다.

    차트를 보지는 않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김요한이 병원의 3대 기본 검사라 불리는 피검사, 소변검사, 흉부 엑스레이 촬영을 할 거라는 걸.

    심장마비로 쓰러졌으니 거기에 심전도와 에코(초음파) 정도를 추가했으리라는 것을.

    그 정도면 김요한의 병명을 밝히기엔 충분할 것이다.

    김요한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초조하게 다리를 떨었다.

    나는 보호자의 마음을 잘 아는 편이었다.

    아버지가 OPCAB(무인공심폐 관상동맥 우회술)를 받을 때, 수술실 앞에서 8시간을 대기해 봤으니까.

    그때의 8시간이 마치 8일처럼 느껴졌던 것도 지금까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기다림.

    기약 없는 기다림.

    머릿속으로 천국과 지옥을 수백 번씩 오가는 기다림.

    병원은 죽음과 맞서 싸우는 전쟁터이자 동시에 기다림과 맞서 싸우는 전쟁터이기도 했다.

    “믿음아, 이제 좀 여유가 생겼구나. 아까는 말을 못 했는데 참 잘했어. 네가 요한이를 구했어.”

    담임선생님은 나를 자랑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아니에요. 운이 좋았어요.”

    “네겐 조금 어려운 말일 수도 있는데, 운이라는 건 운을 알아볼 줄 아는 사람한테만 찾아오는 거란다. 그러니까 요한이를 살린 건 결론적으로 다 믿음이 네 능력인 셈이지.”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짜식, 다른 선생님한테 들었는데 너 의사가 꿈이라면서?”

    “네, 저는 훌륭한 의사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아무렴 되고말고. 넌 우리나라 아니, 세상에서 제일가는 의사 선생님이 될 거란다.”

    나를 향한 담임선생님의 기대가 어색하고 낯설었다.

    전생의 담임선생님은 나를 공기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여기곤 했으니까.

    물론 담임선생님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고, 그저 상황이 달라진 게 신기할 뿐이었다.

    환생한 후 나의 존재감은 어디에서나 두드러졌다.

    -믿음아, 해야 할 일이 있을 땐 우선 그 일을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한 스푼 먹으렴.

    -그런데 믿음은 너무 달아. 마음이 썩어 버리지. 그때는 의심을 한 스푼 먹어 보렴. 그런데 의심을 먹고 나면 아무것도 하기 싫어질 거야.

    -그때는 다시 한번 용기를 주는 믿음을 한 스푼 먹으렴. 믿음 두 스푼, 의심 한 스푼. 만약 아빠가 없더라도 이 공식을 기억하면 꿋꿋하게 살아갈 수 있을 거란다.

    모처럼 큰 병원에서 보호자처럼 대기하고 있어서일까.

    전생에서 OPCAB를 받기 전 아버지가 해 주었던 말이 선명하게 뇌리에 떠올랐다.

    아버지가 알려 준 삶을 지탱하는 마법의 공식.

    믿음 두 스푼, 의심 한 스푼.

    김요한의 진료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김요한이 잘 이겨 낼 수 있을 거라고 나는 믿기로 했다.

    그리고 김요한에게도 이 마법의 공식을 알려 주기로 했다.

    * * *

    “으음…….”

    응급의학의가 스크린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검사 결과가 모두 나왔다.

    김요한과 어머니.

    담임선생님과 나는 다시 응급의학의 앞에 모여 있었다.

    응급의학의의 침묵이 계속되면서 우리를 둘러싼 공기가 긴장으로 팽팽해졌다.

    “일단 소변검사와 피검사상에는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 흉부 촬영에서는… 갈비뼈에 실금이 갔네요.”

    “시… 실금이요?”

    “불안해하실 거 없습니다. 오히려 아이의 친구가 심폐소생술을 잘했다는 뜻이니까요.”

    응급의학의가 기특하다는 표정으로 잠시 내게 시선을 주었다.

    원래 흉부 압박은 환자의 갈비뼈 몇 개를 부러뜨리겠다는 심정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야 멈춰 버린 심장에서 혈액을 쥐어짜 전신으로 보낼 수 있으니까.

    “계속 말씀드리죠.”

    응급의학의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에코, 그러니까 초음파검사에서도 별 이상은 없네요. 심장마비가 왔다고 해서 판막이나 중격의 선천적인 기형을 의심했는데, 그건 아니고요. 심전도에서도 특이 사항은 없습니다.”

    “그럼 우리 요한이는 건강한 거죠?”

    “네, 검사 결과는 별 이상이 없습니다. 차분하게 며칠 쉬면 안정을 되찾을 겁니다.”

    “선생님, 근데요. 요한이가 멀쩡한 거면 왜 쓰러졌어요?”

    모두가 한숨을 돌리는 상황에서 나는 당돌하게 물었다.

    나도 김요한이 무사하길 진심으로 빌었지만, 아직 석연치 않은 구석이 남아 있었다.

    선천성 심질환이 없는데도 국민학생이 심장마비로 쓰러진다고?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기엔 의심스러운 구석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글쎄, 어리더라도 과도하게 스트레스를 받으면 일시적으로 심장마비가 발생할 수 있단다.”

    “우와, 정말요? 건강하다니 진짜 잘됐어요!”

    나는 일부러 천진난만하게 손뼉을 치며 응급의학의에게 다가갔다.

    상황이 어물쩍 넘어가기 전에 두 눈으로 검사 결과를 확인하고 싶었다.

    아무래도 응급의학의인 그보다는 전직 흉부외과 교수였던 내가 검사 결과를 보는 게 더 정확할 테니까.

    ‘정말 아무 이상도 없는 건가?’

    나는 응급의학의 옆에 서서 까치발을 들었다.

    혹여 응급의학의가 놓친 게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건만, 특별히 미심쩍은 부분은 발견할 수 없었다.

    에코를 포함한 모든 검사 결과가 정상이었다.

    이제 남은 건 책상에 놓인 심전도 기록지뿐.

    “선생님, 저 이거 구경해 봐도 돼요?”

    “조심해서 구경만 하렴.”

    “감사합니다.”

    나는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심전도 결과지를 살폈다.

    얼핏 보면 의미 없이 오르락내리락한 것처럼 보이는 심전도 결과지는 사실 많은 정보를 담고 있었다.

    부정맥부터 시작해서 심장 근육의 장애와 심장 구조의 이상 등등.

    심장의 전기 리듬은 심장이 우리에게 보내는 은밀한 메시지였다.

    ‘하…….’

    심전도를 살피던 내 미간이 종잇장처럼 구겨져 갔다.

    V1-V3 구간의 ST 분절이 상승하고 있었는데, 그 분포가 우각 차단의 형태를 보이고 있었다.

    한마디로 심장 리듬이 비정상이라는 뜻이다.

    이 리듬이 가리키는 질환은 단 하나뿐.

    바로 브루가다 증후군이었다.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수축하는 브루가다 증후군은 환자의 급성 심장사를 불러일으킨다.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뛰다 보니 어쩌다 심장이 멈추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이거 돌팔이 아니야?’

    나는 남몰래 응급의학의를 째려보았다.

    브루가다 증후군의 진단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대부분의 경우, 심전도만 자세히 봐도 질병을 특징할 수 있었다.

    지금의 나처럼 말이다.

    추가로 약물 유발 심전도를 추가하면 완벽한 확진이 가능했고.

    그러니까 내가 검사 결과를 직접 확인하지 않았다면.

    김요한이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일상으로 돌아갔다면.

    김요한은 언제고 또 심장발작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이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간담이 서늘해짐과 동시에 응급의학의를 향한 분노가 커졌다.

    ‘어라? 잠깐만, 혹시 시대의 문제인가?’

    심호흡하며 평정심을 되찾다 보니 새로운 관점이 보였다.

    현재 연도는 1992년.

    내 기억이 맞는다면, 브루가다 증후군이 순환기내과계에 발표되는 시점도 1992년이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응급의학의가 브루가다 증후군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질병이란 질병으로 정의가 되어야 비로소 치료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브루가다 증후군이 명명되는 시기보다 김요한의 브루가다 증후군 발병 시기가 더 빨랐던 것이다.

    순간, 손발이 차게 식고 머리카락이 쭈뼛 솟았다.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한데…….’

    내가 아는 브루가다 증후군의 호발 나이는 20대에서 40대.

    그런데 김요한은 고작 초등학생임에도 브루가다 증후군을 앓고 있었다.

    한마디로 특별한 특이 케이스.

    그렇다면 운명의 신은 애초에 김요한을 죽일 생각이었다고 보는 게 가장 적절했다.

    운명이란 이렇게 잔인한 것이었던가.

    마구잡이로 흔들리는 감정을 추스르며 나는 심전도 결과지를 응급의학의에게 돌려주었다.

    “선생님, 혹시 브루가다 증후군이 뭔지 아세요?”

    “응? 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니?”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나는 손사래를 치며 물러난 뒤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설마설마했던 가설이 옳았다는 것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응급의학의는 무능했던 게 아니라 브루가다 증후군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상황이 예상외의 방향으로 심각하게 꼬여 버린 것이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제가 딱히 해 드린 것도 없는데요. 며칠 동안은 아이가 무리하지 않도록 신경 써 주세요.”

    “…….”

    “혹시 모르니까 니트로글리세린이라고 혀 밑에 넣는 약만 처방해 드릴게요. 오늘처럼 응급할 때 혀 밑에 넣고 녹여 드시면 돼요.”

    그렇게 진료는 끝났고, 김요한과 김요한의 어머니, 담임선생님과 함께 응급실을 나왔다.

    세 사람의 표정은 안도한 듯 편안했으나 내 표정은 우거지상 그 자체였다.

    나는 새로운 장애물이 나타났음을 직감했다.

    의사들이 모르는 미래의 심장 질환을 나만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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