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살부터 의사 생활-15화 (15/257)
  • 15화 제3장 나는 국민학생이다 (3)

    전직 흉부외과의였던 나는 이제 사립 탐정의 영역에까지 손을 대었다.

    수업이 끝난 뒤 찾아온 하교 시간.

    자기 집에서 놀자는 김지원과 팽이치기를 하자는 친구들을 뿌리치고 김요한을 미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김요한은 하굣길에도 어김없이 혼자였다.

    계절은 봄이었으나, 김요한은 아직 겨울에 머물러 있었다.

    ‘변수가 너무 많아.’

    김요한의 뒤를 밟으며 나는 생각에 잠겼다.

    김요한은 체육 시간에 교실에서 혼자 있다가 세상을 떠났는데, 국민학생이 급사할 원인을 찾는 건 하늘의 별 따기였다.

    현재 가장 의심이 가는 질환이 있다면, 그건 아나필락시스 증후군이었다.

    아나필락시스 증후군.

    일종의 면역 질환으로 갑작스런 알레르기 반응으로 인한 두통, 호흡곤란, 저혈압 등을 주된 증상으로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람이 사망할 수도 있는 응급 질환이기도 하다.

    「벌에 쏘인 김요한에게 아나필락시스 증후군이 나타났다. 혼자 교실에 있던 김요한은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못하고 참고 참다가 결국 세상을 떠난다.」

    지금까지 내가 세운 가설 중에서는 그나마 아나필락시스설이 가장 유력해 보였다.

    두 번째 가설은 가정 폭력이었다.

    부모님의 폭행 및 구타가 김요한의 죽음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정 폭력과 사망과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찾는 일은 녹록지 않았다.

    가정 폭력으로 인한 쇼크사라면 부모가 학교까지 와서 김요한을 때려야 하지 않는가.

    그런 그림은 상식적으로 봤을 때, 쉽게 그려지지 않았다.

    세상은 요지경이라 기절초풍할 만한 일이 심심치 않게 벌어지긴 한다만.

    ‘그러고 보면 환생도 만능은 아니란 말이지.’

    김요한의 사망 원인을 추리하던 나는 쓰게 웃었다.

    시간을 거슬러 환생을 했다고 해서 모든 것을 기억하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기억하는 것들은 전부 내 관심사 안에 있었다.

    관심사 밖에 있는 것은 아무것도 떠올릴 수가 없었다.

    김요한의 얼굴에 멍 자국이 있었는지 김요한의 얼굴이 부어 있었는지 등등.

    아주 사소한 단서라도 기억하고 있었다면 김요한의 죽음을 막는 일이 이토록 어렵지는 않을 텐데…….

    다시 찾은 두 번째 삶.

    이번 삶에서는 주변을 좀 더 넓게 바라보는 눈이 필요할 것 같았다.

    “엄마, 나 왔어.”

    김요한은 재래시장에 발을 디뎠다.

    입구와 가까운 노상에서 바구니에 야채를 담아 파는 여성을 어머니라고 불렀다.

    나는 기둥에 몸을 숨긴 채 모자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했다.

    김요한이 궁색한 것처럼 김요한의 어머니도 궁색해 보였다.

    순간, 가슴 한편이 아려 왔다.

    가난에 찌들었던 내 전생과 김요한이 오버랩 되었다.

    때 묻은 상의 두 벌과 바지 한 벌.

    꾀죄죄한 얼굴과 배고픔이 일상이었던 그때 시절이.

    김요한이 반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는 분명 가난이었을 것이다.

    그 시절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가난하면 친구도 못 사귀냐?’라고 누군가는 반박할지 모른다.

    백 퍼센트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가난이 주는 자격지심이 얼마나 뼈아픈지 가난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가난은 아이의 어깨를 짓누르고 마음을 짓누른다.

    도시락에는 밥과 김치밖에 없고 옷차림이 후줄근한데 무슨 자신감으로 친구를 사귄단 말인가.

    더군다나 태생적으로 내성적인 성격이라면 더더욱 힘들었다.

    “야채 사세요. 싱싱한 야채 사세요.”

    김요한은 제 어머니 곁에서 목청껏 외쳤다.

    학교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우렁찬 목소리였다.

    사람들이 동물원의 원숭이를 보듯 김요한을 쳐다봤지만, 김요한은 개의치 않아 보였다.

    그런 눈빛 따위는 너무나 익숙하다는 듯.

    “요한아, 엄마는 괜찮으니까 집에 들어가렴.”

    “집에서 할 것도 없어요. 그냥 엄마 도와줄래요.”

    “이러다가 친구들이 보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려고.”

    “괜찮아요. 친구 없어요.”

    “뭐라고?”

    김요한 어머니의 눈이 개구리의 그것처럼 휘둥그레졌다.

    자기도 실수를 했다는 걸 깨달았는지 김요한의 얼굴에도 낭패의 기색이 떠올랐다.

    “그게… 제가 엄마 돕는다고 절 부끄러워할 친구가 없다고요. 그러니까 걱정 마세요.”

    김요한은 아이답지 않은 능숙한 언변을 선보였다.

    벌써 철이 들어 버린 김요한의 모습은 다시 한번 내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의술의 신이시여.

    어째서 이렇게 대견하고 가엾은 아이의 목숨을 그리도 빨리 데려가셨습니까.

    그것이 당신의 정의입니까.

    하늘을 원망하던 나는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내가 환생한 것은 어쩌면 김요한처럼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살리기 위함이 아니겠는가.

    나는 그렇게 믿기로 했다.

    그렇게 김요한을 몰래 관찰한 지 무려 한 시간이 지났다.

    김요한이 제 어머니와 함께 장사를 접고 일찍 집에 돌아가는 것까지 확인했다.

    김요한의 사망 원인과 관련된 단서를 찾지는 못했지만 나름의 성과는 있었다.

    김요한을 살리고 싶다는 내 열정은 뜨거워져만 갔다.

    * * *

    “다녀왔습니다.”

    “오늘은 조금 늦었네. 친구들이랑 놀고 왔니?”

    집에 돌아가니 퇴근한 어머니와 집안일을 하던 아버지가 나를 맞아 주었다.

    “네, 팽이치기를 했어요.”

    “노는 건 좋은데 미리 말을 했어야지. 엄마, 아빠가 걱정하잖니.”

    “죄송해요. 앞으로는 안 그럴게요.”

    “또 그렇게 풀이 죽으면 엄마가 미안한데. 배고플 텐데 간식부터 먹으려무나.”

    부모님과 함께 먹는 과일 간식.

    김요한을 미행하느라 에너지 소모가 컸는지 나는 사과를 단번에 두 개나 해치웠다.

    “근데 엄마, 아빠 저번에 한 건강검진은 어떻게 됐어요?”

    내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삼 주 전 어머니가 근무하는 병원에서 두 분이 건강검진을 받았다.

    내 성화에 못 이겨서 받은 건강검진이었다.

    친구 어머니가 크게 아프다는데 엄마, 아빠도 어디 아픈 거 아니냐며 확인해 봐야 한다고 생떼를 부렸다.

    거짓말까지 해 가며 두 분이 건강검진을 받게 한 이유.

    그것은 당연히 가족의 건강이 최우선이라서였다.

    특히 아버지는 전생에 내가 의대에 다닐 때 불안정성 협심증으로 세상을 떠나지 않았던가.

    지금부터 미리미리 병환을 체크할 필요가 있었다.

    “엄마, 아빠 둘 다 멀쩡하단다. 너무 건강하다고 하던걸?”

    어머니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아빠는 가슴이 아프다거나 숨쉬기가 답답하지는 않아요?”

    “아빠가? 아빠는 믿음이 업고 지구 두 바퀴를 돌 수 있을 만큼 건강한데?”

    아버지가 너스레를 떨었다.

    검진 결과가 무사하다니 다소 마음이 놓였다.

    순전히 내 추측이지만, 이번 생의 아버지는 협심증에 걸리지 않을 것이다.

    첫째로 소설을 접지 않고 오히려 소설로 빛을 본 점.

    둘째로 전처럼 빚보증에 허덕이며 막노동과 술, 담배를 하지 않을 거라는 점.

    이 두 가지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혹시나 모를 위험성은 항상 경계해야겠지만 말이다.

    “믿음아, 첫 수업은 어땠니?”

    “재밌었어요. 새로운 친구도 많이 사귀었어요.”

    “하긴, 우리 믿음이가 어디 빠지는 데가 있어야지. 공부면 공부, 친구 사귀는 거면 친구 사귀는 거. 내 아들이지만 너무 잘났다니까.”

    어머니가 꺄르르 웃었다.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어머니의 행복은 곧 나의 행복이었다.

    부모님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나는 곧 씻고 방으로 들어갔다.

    몸이 노곤했지만 두 볼을 가볍게 두드리며 늘어지는 정신을 일으켜 세웠다.

    ‘지금부터 미리미리 준비해야지.’

    영어 말하기·듣기 책을 펼치고 영어 공부에 돌입했다.

    전생에 공중보건의를 마치고 흉부외과에 복귀해서 펠로우 1년 차였을 때.

    우연치 않게 제임스 홉킨스 병원에서 연수받을 기회가 찾아왔다.

    2년짜리 흉부외과 장기 코스였는데, 선후배들은 미국 최고의 병원에서 수련할 수 있다는 사실에 눈이 돌아갔다.

    물론 나도 탐이 났지만, 쉽게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영어 실력도 안 될뿐더러 타지에서 혼자 살아갈 자신도 없었기 때문이다.

    2차 면접까지 진행해서 뽑힌 인물은 이기우였다.

    내 1년 후배로 그럭저럭 영어로 외국 사람과 소통이 가능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니까 영어 실력만 갈고닦아 놓는다면, 이번 생에서는 내가 그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미국에서 수련할 수 있다면, 나는 아마 한 차원 더 높은 훌륭한 흉부외과의가 되지 않을까.

    그날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벌써부터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다.

    “하우 해브 유빈? 왓 아유 업 투?”

    나는 카세트에서 흘러나오는 발음을 차근차근 따라 했다.

    그런데 영어를 따라 할 때마다 얼굴이 달아오르는 건 왜일까.

    * * *

    시간은 잘도 흘러갔다.

    그동안 내 지상 최대의 과제는 당연히 김요한의 죽음을 막는 일이었다.

    김요한에게 꾸준히 관심을 가진 결과, 나는 몇 가지 사실을 추가로 알아냈다.

    김요한은 아버지가 일찍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형제도 없어 재래시장에서 야채를 파는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었다.

    [김요한은 가정 폭력에 시달린다.]

    마음속에 적어 놓은 또 다른 문장을 나는 말끔하게 지웠다.

    시장에서 보여 줬던 모습을 보면 김요한의 어머니가 김요한을 못살게 굴 것 같진 않았다.

    운명의 그날인 개교기념일이 점점 가까워지면서 김요한은 부쩍 보건실을 자주 찾기 시작했다.

    두통이 심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나는 나중에 몰래 보건실을 찾아가 보건 선생님에게 김요한에 대해 물었다.

    김요한이 어딘가 아픈 것 같은데 자세한 건 숨기고 있는 것 같다며.

    그 사실이 친구인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는 핑계를 대고.

    명분이 그럴듯해서 그런지 보건 선생님은 별다른 의심 없이 자신이 가진 정보를 알려 주었다.

    -글쎄, 선생님이 봤을 땐 특별한 이상은 없어 보이던걸? 그런데 계속 머리만 아프다고 하더구나.

    -체온도 정상이고, 혈압하고 맥박도 정상이었어.

    곧 죽을지도 모르는 아이가 건강하다는 사실은 나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쯤에서 나는 김요한을 죽음에 몰아넣을 질병은 아나필락시스라고 확신했다.

    가능한 질병들을 나열하고 소거법으로 하나하나 지우고 나서 남은 건 아나필릭시스 딱 하나뿐이었으니까.

    나중에 다 밝혀지지만, 이때는 아나필락시스 추리가 내겐 최선이었다.

    히포크라테스가 다시 태어나서 내 입장이 됐어도 아마 같은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김요한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게 되었지만, 김요한과 나의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김요한은 내가 다가서는 만큼 나를 밀쳐 냈다.

    같이 놀자고, 같이 밥 먹자고 말해도 김요한은 매몰차게 싫다고만 했다.

    외톨이의 삶을 고수했다.

    그리고 마침내 개교기념일을 이 주일 앞둔 체육 시간이 찾아왔다.

    김요한은 몸이 아프다며 교실에 남고 싶다고 체육 선생님에게 말했다.

    오늘이 그날임은 분명해 보였다.

    김요한을 혼자 둘 수 없었기에 나도 아프다는 핑계로 교실에 남았다.

    반 아이들이 체육복을 갈아입고 나가면서 교실에는 나와 김요한만이 남았다.

    나만 느낄 수 있는 폭풍 전야의 고요.

    내 발바닥은 차가워졌고, 양 손바닥에는 찐득한 땀이 묻어났다.

    탁! 탁! 탁!

    나는 가장 먼저 창문부터 닫았다.

    아나필락시스를 일으킬 수도 있는 벌이 교실 안으로 침투하지 못하도록 원천봉쇄했다.

    “야, 왜 창문 닫아? 나 바람 쐬고 싶단 말이야.”

    김요한이 앙칼지게 쏘아붙였다.

    “나는 바람 쐬기 싫어.”

    “그럼 하나만 열어.”

    “하나도 열기 싫은데?”

    내가 거칠게 나오자, 김요한이 나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나와 싸워 가며 창문을 연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저 씩씩거리며 그림을 그릴 뿐이었다.

    뜻하지 않게 원한을 샀지만, 개의치 않았다.

    김요한이 건강하게 앞으로의 삶을 이어 나갈 수 있다면 나는 그런 미움까지도 달게 받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창문을 닫고 자리로 돌아간 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다양한 상황을 시뮬레이션했다.

    그에 맞는 대처법까지 알고리즘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제야 불안감이 조금 가셨다.

    김요한에게 죽음의 낫을 휘두를 저승사자는 대체 무엇일까.

    이제 곧 그 정체가 밝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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