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살부터 의사 생활-14화 (14/257)

14화 제3장 나는 국민학생이다 (2)

“녀석, 걸음 한번 씩씩하네.”

이희성은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는 아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아들이 점이 되어 사라지고 난 뒤에도 그는 한참 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

그에겐 아직도 이 모든 순간이 그저 꿈만 같았다.

이희성은 20대 초반에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여의었다.

형제는 없었고, 친척에게도 손을 빌리지 않았다.

부모님의 보험금으로 생활하며 소설 집필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텨 냈다.

하늘이 천사 같은 아내를 내려 주었지만, 그는 자신의 삶이 불행할 것이라는 예감을 늘 안고 살았다.

격변하는 시대에 그가 가진 재주는 별 볼 일 없는 글솜씨 하나뿐이었으니까.

그러니 경제적 궁핍이 숨통을 조여 와 언젠가 파멸을 맞이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믿음이가 태어나고 모든 게 달라졌다.

아내가 천사라면, 믿음이는 복덩이였다.

한 살 때부터 끊임없이 가정에 복을 불러왔다.

아내의 교통사고를 마치 예지라도 한 듯 울어서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줬다.

유치원 때는 또래 원생을 구해서 출판사 사장과 자신을 연결시켜 줬다.

어디 그뿐인가.

영특할 뿐만 아니라 손재주까지 천재적이라서 인형 눈을 꿰매며 직장인 월급의 3할을 벌어들였다.

그 돈은 세 가족이 아파트를 구입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지금의 이희성은 꽤 이름 있는 작가다.

그간 출판한 책들의 인세와 단편 원고 및 에세이 청탁만으로도 평범한 직장인의 월급에 두 배는 벌었다.

두말하면 입이 아프겠지만, 이 또한 믿음이 덕분이었다.

그러니까 믿음이 덕에 그와 아내의 삶은 완전히 뒤바뀐 것이다.

이희성은 요즘도 가끔 볼을 꼬집어 보곤 했다.

이토록 과분한 행복을 누리는 게 그저 꿈만 같아서.

“여보,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내가 등 뒤에서 그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그냥 너무 행복해서. 행복해서 불안한 느낌?”

“뭐야. 또 이상한 소리 하네. 행복하면 행복한 거지 행복해서 불안한 건 또 뭔데?”

“비유를 하자면 이런 거야. 모래사장에 예쁘게 모래성을 쌓았는데, 언제 파도가 들이닥쳐서 모래성이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되는 느낌이랄까?”

“걱정도 팔자네. 나랑 믿음이가 있으니까 다 잘될 거야.”

“나도 알아. 하지만 인생에서 균열을 발견하는 게 소설가의 천성이라 어쩔 수 없단 말이지.”

“사실 난 예전부터 당신의 그런 점이 마음에 들었어. 뭔가 세상의 고뇌를 혼자 다 짊어진 것 같은 느낌. 그래서 지켜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거든.”

“한마디로 불쌍해 보였다는 거네?”

이희성의 직설에 아내가 꺄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아내의 미소가 햇살처럼 반짝거려 보였다.

그 미소 위로 오색찬란한 무지개가 뜬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 요새 생리 안 하는 거 같아.”

“정말? 혹시 둘째 가졌어?”

이희성이 놀라 물었다.

“아직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긴 해. 내가 원래 주기가 불규칙한 편이기도 하고.”

“둘째 생긴 거면 좋겠다. 이번엔 당신을 꼭 닮은 딸이었으면 좋겠어.”

이희성은 아내를 마주 보다가 뺨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모든 것이 완벽한 어느 봄날의 아침이었다.

* * *

“이믿음! 나와서 문제 풀어 봐.”

“네, 선생님.”

나는 칠판 앞에 서서 분필을 손에 쥐었다.

초등학교 6학년 산수 문제 따위가 나를 당황케 할 수는 없는 법.

나는 번개처럼 풀이 과정을 적고 답까지 적었다.

거침없는 문제풀이에 아이들 몇몇이 오오, 하고 탄성을 내질렀다.

그럼에도 전혀 자랑스럽지 않은 게 문제였지만.

“흐음… 잘 풀었다. 하지만 수업시간에 딴생각하면 안 돼. 수업 시간에는 수업에만 집중해야 하는 거야.”

“네, 선생님.”

나는 잘못을 뉘우친 척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딱히 수학 선생님을 무시해서 딴생각을 한 건 아니었다.

수업 내용이 유치해서 딴생각을 한 것도 아니었다.

내가 수업에 집중하지 못했던 건 전부 김요한 때문이었다.

나는 수업 내내 앞자리에 앉은 김요한을 쳐다봤는데 김요한의 죽음은 전생에서 내가 처음 경험한 죽음이었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을 나는 김요한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때 내게 죽음이란 더 이상 학교에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찬찬히 생각해 보자.’

김요한은 다가오는 개교기념일쯤 체육시간에 명을 달리한다.

몸이 아파서 운동장에 나가지 않고 교실에 머물렀는데.

먼저 교실에 들어온 아이들이 김요한이 쓰러진 것을 발견했다.

그 즉시 119에 실려 갔지만, 김요한은 끝내 학교로 돌아오지 못했다.

선생님이 사인을 말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김요한과 친한 아이가 없었기 때문에.

김요한이 왜 죽었는지는 아직도 미스터리였다.

어쨌거나 전생에 김요한과 큰 인연이 없었더라도 나는 김요한을 살리고 싶었다.

-사람이 죽는 건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어. 하지만 말이야, 김 아무개가 죽는 건 절대 받아들여선 안 되는 게 의사란다.

-무슨 말씀이죠?

-사람은 시대를 초월해서 존재하지만 김 아무개는 과거에도 없고, 미래에도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이기 때문이지. 그러니까 네가 집도하는 사람은 우주에 단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존재란다.

언젠가 나의 롤 모델인 흉부외과 서 교수님이 해 주신 명언이었다.

백번 곱씹어도 옳은 말씀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고금을 통틀어 유일무이하게 존재하는 김요한을 꼭 살리고 싶었다.

그가 살아남아 자기 인생에 어떤 꽃을 피우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국민학교 6학년에 급사라니…….

인생이 이토록 가혹해서 안 되는 것 아닌가.

앞으로 나는 내가 살릴 수 있는 모든 사람을 살릴 것이다.

그것이 새 삶을 얻은 이유에 대한 내 나름의 해석이자 책임이었다.

딩동댕동~.

수업 종이 울리고, 수학 선생님이 교실을 떠났다.

지금부터가 내 시간이었다.

김요한의 죽음을 막기 위해선 우선 김요한이 어떤 아이인지부터 알아야 했다.

전생의 나는 소심하고 친구가 없는 아이였으므로 반이 돌아가는 사정을 거의 알지 못했다.

김요한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그가 어린 나이에 죽는다는 사실밖에 없었다.

김요한의 이름과 죽음을 오래전부터 알았으므로.

김요한과 미리 친해질 생각을 안 해 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운명은 나의 편이 아니었다.

김요한은 5학년 겨울방학을 할 때쯤 우리 학교로 전학을 왔다.

반도 달랐던 데다 김요한이 며칠 등교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겨울방학을 한 탓에 친분을 쌓을 계기가 없었다.

환생이 만능은 아니니까.

나는 김요한을 통해 그 중요한 사실을 새삼 상기했다.

“그림, 좋아하나 봐?”

김요한에게 다가가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김요한은 쉬는 시간이면 어김없이 노트에 낙서를 긁적거렸다.

이제 보니 그림 솜씨가 제법이었다.

무지 노트 위로 요즘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로봇이 근사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

김요한은 말없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눈동자에 미묘한 적대감이 서려 있었다.

김요한과 알게 된 지 얼마 안 된 데다 딱히 미움을 살 만한 짓은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은 나였다.

나를 밀쳐 내는 듯한 눈빛에 나는 살짝 당황했다.

“나도 로봇 하나 그려 주면 안 돼? 나 그랑죠 좋아하는데.”

금방 평정을 되찾은 나는 김요한과 공감대를 쌓으려 했다.

“싫어.”

“왜?”

“나는 그랑죠 별로 안 좋아해.”

“그럼 네가 좋아하는 건 뭔데?”

“나는… 나는… 다간이 좋아.”

“그럼 다간 그려 주라. 다간 그려 주면 내가 떡볶이 사 줄게.”

“싫어. 귀찮아.”

김요한은 딱 잘라 거절하곤 내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더 이상 상종하고 싶지 않다는 눈치였다.

전생에서 김요한이 왜 반에서 공기 같은 존재였는지를 나는 새삼 실감했다.

김요한은 또래 아이답지 않게 음산하고 침울한 분위기를 내뿜었다.

마치 제 몸에 가시를 둘러 일부러 다른 아이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는 느낌이랄까.

김요한이 또래와 다른 이유를 찾는 것.

거기에 김요한을 구할 수 있는 단서가 있을지 모르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이비듬, 뭐 해? 도시락 먹자.”

“어? 응.”

나는 일단 작전상 후퇴를 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김요한이 나를 미워하는 이상 대화를 더 나눠 봐야 역효과만 날 뿐이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돌아서서 까불이와 김지원, 그리고 또 다른 친구 하나와 도시락을 먹었다.

그 와중에도 내 눈은 집요하게 김요한을 좇았다.

점심시간이 되자, 잠깐 자리를 비웠던 김요한은 교실로 돌아와 다시 그림을 그렸다.

김요한에게 말을 거는 아이도, 김요한이 말을 거는 아이도 없었다.

김요한은 교실에서 유일한 외톨이였다.

‘흐음… 일단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나는 김요한의 외양부터 꼼꼼하게 체크했다.

상의 니트는 해져 올이 풀려 있었고, 바지는 무릎 부분이 하얗게 닳아 있었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 연필도 몽당연필이었다.

그래서 나는 첫 번째 가설을 세웠다.

김요한은 지병이 있는데, 집안이 가난해서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하지만 첫 번째 가설은 곧 이어진 질문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오늘 수업 중 김요한에게 아픈 기색이 보였던가.

정답은 노였다.

활동적이지는 않지만 김요한에게서 특별한 병색은 발견하지 못한 나였다.

빈혈기가 있다거나, 호흡이 고르지 못하다거나, 두통을 호소한다거나 등등.

그렇다면 김요한이 자신의 병을 숨길 이유가 있었을까.

그건 아닐 것이다.

설령 숨겼다고 한들 전직 흉부외과의인 내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행동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본인이 모르는 지병이 있는 건 아닐까.

그 경우엔 문제가 더 심각하다.

당사자도 모르는 병을 내가 어떻게 발견할 것이며.

설령 발견한다고 해도 김요한이 큰 병원에서 진료를 받도록 권유할 명분이 내게 없었기 때문이다.

‘쉽지 않네.’

어느덧 내 이마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

국민학생이 급사할 수 있는 병들을 머릿속으로 검색해 봤지만 딱히 꼬집을 만한 것이 없었다.

나에게 김요한의 죽음은 거대한 물음표였다.

하지만 나는 좌절하지도 않고 실망하지도 않았다.

사람을 살리는 일은 본디 어려운 일이고, 의사의 길 또한 본디 어려운 것이다.

게다가 앞으로 헤쳐 나갈 길이 더 험난하기에 나는 여기서 주저앉을 수 없었다.

“이믿음! 너 아까부터 자꾸 어딜 보는 거야!”

“아야!”

옆구리에 전해지는 짜릿한 통증에 나는 몸을 들썩거렸다.

고개를 돌리니 김지원이 나를 새초롬한 표정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조용히 점심 잘 먹고 있는데, 왜 꼬집고 난리람.

“갑자기 왜?”

“쟤가 나보다 예뻐?”

김지원의 앙칼진 물음에 나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밥 먹는 내내 요한이를 쳐다보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시야에 반 여학생이 있었던 것이다.

즉 김지원은 같은 반 여학생을 질투하는 상황이었다.

“무슨 소리야. 우리 반에서 제일 예쁜 건 너인데.”

나는 당황하지 않고 부모님을 삶아 먹었던 말발로 김지원을 구워삶았다.

이에 김지원의 뺨이 발그레 달아올랐다. 국민학생의 감정선이란 이토록 단순한 것이었다.

“정말? 내가 제일 예뻐?”

“응. 나는 그렇게 생각해.”

“얼레리꼴레리. 김지원이랑 이비듬, 서로 좋아한대요~. 좋아한대요~.”

“너, 조용히 안 해!”

까불이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까불었지만, 김지원은 단숨에 이를 제압해 버렸다.

‘이렇게 또 인생이 바뀌었구나.’

티격태격하는 김지원과 까불이를 보며 나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전생의 국민학생이었을 때 나는 김요한과 비슷한 아이였다.

어머니의 빚보증으로 헌책방이 팔려 나간 뒤 집안은 폭삭 내려앉았다.

덕분에 감출 수 없는 세 가지인 재채기, 사랑, 가난 중 가장 감추고 싶은 가난에 늘 허덕였다.

교우관계는 당연히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런 내가 지금은 학급의 중심이 되어 있었다. 반 아이들은 모두 영민하고 잘생긴 나를 좋아했다.

심지어 전생에 아역 배우 생활로 남자아이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던 깍쟁이 김지원조차.

‘할 수 있어. 분명히.’

나의 시선이 다시 김요한에게로 머물렀다.

내가 나와 가족의 인생을 바꾸고 주변 환경까지 성공적으로 바꿔 왔다면, 까짓것 김요한을 못 살릴 이유도 없었다.

내겐 그럴 만한 힘이 있었다.

비록 나의 육신은 국민학교 6학년생이었으나 나의 정신은 노련한 흉부외과의 그대로였으니까.

그렇게 시간이 흘러 점심시간이 지나고 오후 수업마저 끝났다.

이제 두 번째 단계로 넘어갈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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