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살부터 의사 생활-13화 (13/257)
  • 13화 제3장 나는 국민학생이다 (1)

    1992년 3월의 어느 아침.

    방에서 잠을 깬 나는 국민학생답지 않게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목과 어깨와 다리와 허리를 돌리고 쭉쭉 늘려 주었다.

    스트레칭은 짧은 시간 안에 몸을 가뿐하게 만들어 주는 효과적인 운동이었다.

    신체 부위별로 1-2분 동안 깔짝깔짝 움직여 봐야 무슨 효과가 있느냐고 되묻는 사람이 많지만, 제대로 해 본 사람은 안다.

    빳빳한 몸과 근육을 풀어 주고 잘못된 자세를 바로잡는 데 스트레칭이 얼마나 효과적인지를.

    가뿐해진 몸으로 거실로 나왔다.

    베란다에 서자 아파트 주변 풍경이 한눈에 잡힐 듯했다.

    보이는 건 평평한 논밭과 허름한 건물뿐이던 목동의 풍경이 퍽 도시적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콩나물처럼 쑥쑥 자라는 아파트와 시원스레 쭈욱 뻗어 나가는 도로들.

    가만히 귀 기울여 보면 집값 올라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도 했다.

    ‘결국 뜻대로 됐네.’

    베란다에 설 때마다 나는 흐뭇한 웃음을 감추기가 힘들었다.

    내가 국민학교 2학년이었을 때, 드디어 아버지의 책이 출간되었다.

    사실 더 빨리 출간할 수도 있었지만, 아버지의 완벽주의 탓에 시기가 조금 늦어졌다.

    어쨌거나 아버지의 걸작 ‘그림자의 문’은 지금까지 총 20만 부가 팔렸다.

    정식 데뷔를 하지 않은 작가가 기록한 판매 부수치고는 초대박 성적이었다.

    덕분에 아버지의 이름과 아버지의 소설.

    이 두 가지가 신문과 뉴스에 오르내린 적도 있었다.

    어머니는 자랑스러워했고, 나는 뿌듯해했다.

    이후로도 아버지는 여전히 소설을 쓰고 있었다.

    신작은 가족애를 담은 소설이 될 거라고 했다.

    틈틈이 청탁 받은 단편이나 에세이를 기고하고, 인세도 꾸준히 들어왔기에

    아버지의 수익은 웬만한 월급쟁이보다 좋았다.

    어머니도 꾸준히 간호사로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어머니가 간호사였기에 우리 가족은 목돈을 대출 받아 목동에 아파트를 구입할 수 있었다.

    아, 참!

    어머니를 생각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또 고말숙 아니겠는가.

    전생에서 빚보증을 부탁하고 도망가 버린 희대의 악녀 말이다.

    고말숙은 전생처럼 동네를 떠났지만, 우리 가족의 돈을 빨아먹지는 못했다.

    왜냐고?

    빚보증 시기와 아파트 구입을 위한 대출 시기가 겹쳤으니까.

    -언니, 진짜 미안해요. 내가 마음 같아서는 백번이라도 해 주고 싶은데, 얼마 전에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어요.

    -…….

    -앞으로 이자 갚기도 빠듯할 것 같아서 아무래도 보증은 못 서 줄 것 같아. 대신 얼마라도 빌려줄까?

    보증을 받기 위해 집을 찾았던 고말숙은 실망한 표정으로 떠났다.

    며칠 뒤 고말숙은 동네에서 완전히 잠적했는데 집을 저당 잡혔는지 다른 가족을 등쳐먹어서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어쨌거나 전생의 묶은 체증이 씻은 듯 내려가던 순간이었다.

    우리 가족이 아파트를 구입하는 데는 내 공로 또한 혁혁했다.

    나는 흉부외과 수술 집도로 단련한 손재주를 이용해 열심히 인형 눈을 꿰맸다.

    나중에는 단가가 높은 고급 선물 상자에 천을 덧대는 일까지 맡았다.

    그렇다면 내 한 달 수익은 어땠을까.

    자그마치 평범한 직장인의 3할 수준이었다.

    그것도 부모님이 걱정하지 않도록 놀 거 다 놀고 책 볼 거 다 보고 이룬 성과였다.

    덕분에 전생과 달리 우리 가족은 화목하고 잘살게 되었다.

    빚 독촉에 시달릴 일도, 냉·난방도 잘 안 되는 단칸방에 살 일도 없었다.

    번듯한 아파트 한 채를 소유하고 있었고 아버지는 잘나가는 소설가, 어머니는 내과 병동의 책임 간호사였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전생의 전도유망한 흉부외과 서전이었다.

    ‘아직 해결할 게 딱 하나 남아 있긴 한데…….’

    나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를 떠올렸다.

    친할아버지와 친할머니는 아버지가 청년 무렵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셔서 잘해 드릴 방법이 없었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아버지가 가난하고 비전이 없다는 이유로 외가는 어머니의 결혼을 극구 반대했다.

    어머니는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부유한 외가 대신 아버지와의 사랑을 택했고 말이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외가와의 화해가 가능할 것이다.

    지금의 아버지는 가난하지 않았으며 비전도 있었다.

    어머니는 책임 간호사였고, 나는 똘똘한 국민학교 6학년생이다.

    거기에 가족 명의로 된 버젓한 집도 한 채 있었으니 남에게 자랑할 수 있는 물질적인 행복의 기준은 맞춘 셈이었다.

    추억을 되짚어 보던 나는 화장실에서 씻었다.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 내고 거울 속에 비치는 한 소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가정환경의 차이가 성장의 차이를 만들었다.

    잘 먹고 잘 자란 나는 전생과 달리 유복한 티가 났다.

    전생보다 키는 4센티 더 컸고, 얼굴은 멀끔하고 보기 좋은 웃는 상이었다.

    한 살 때부터 부모님을 위해 하도 웃어 대다 보니 웃는 상이 아예 도장처럼 눈과 입에 각인이 되어 버렸다.

    ‘정신 바짝 차려야지.’

    나는 가볍게 볼을 두드렸다.

    오늘은 초등학교 6학년으로 올라가는 날이자 처음으로 6학년 교실에 등교하는 날이었다.

    동시에 요주의 인물을 만나는 날이기도 했다.

    * * *

    “잘 먹겠습니다.”

    나는 숟가락을 들고 계란국부터 떠먹었다. 우리 세 가족의 단란한 아침 식사가 시작되었다.

    “오냐. 우리 복덩이 많이 먹으렴.”

    “믿음이는 알아서 잘 먹었으니까 당신이나 잘 먹어. 맨날 편식하지 말고.”

    아버지의 말에 어머니가 핀잔을 주었다.

    소설이 성공하고 아파트에 이사 온 후 아버지는 나를 복덩이라고 불렀다.

    “당신이야말로 뭘 모르나 본데? 좋고 싫은 취향의 차이가 그 사람을 만드는 법이라고. 그렇게 치면 모든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무색무취인 거나 다름없단 말이지. 개성 없는 사람이 어떻게 소설을 쓸 수 있겠어?”

    “으휴, 말을 못하면 밉지나 않지. 잔소리 말고 시금치나 먹어.”

    어머니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아버지의 밥그릇에 시금치를 올렸다.

    싫은 표정을 하면서도 아버지는 시금치를 꾸역꾸역 먹었다.

    내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티격태격하는 부모님은 참 귀여웠다.

    이렇게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분들인데 전생에는 왜 그렇게 꼬인 인생을 사셨는지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이번 생은 어찌 될까?’

    알콩달콩한 부모님을 보고 있자니 미래의 내 이성 관계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전생의 나는 결혼을 하지 않았다.

    제대로 된 교제를 해 본 적도 없고, 시쳇말로 썸이란 것만 몇 번 타다가 말았다.

    나는 스스로를 늘 못난 놈이라고 자책했기에 나를 좋아해 줄 사람은 없었다.

    그럼에도 나를 안쓰럽게 여겨 다가와 준 사람이 몇 있었지만, 그들의 손길을 나는 매정하게 쳐 냈다.

    바보 같은 짓이었다.

    그들의 손을 잡았다면 적어도 가족을 제외한 내 편이 한 명은 생겼을 텐데.

    집도를 혼자 하는 게 아니듯이.

    인생도 혼자 사는 게 아니라는 걸 그때는 어리석어서 알지 못했다.

    “믿음아, 무슨 생각 하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싫어하는 친구랑 같은 반 됐니?”

    “아니에요. 싫어하는 친구 없어요.”

    “그러면 다행이지만… 고민거리 있으면 엄마한테 다 털어놔. 엄마가 뭐든지 해결해 줄게.”

    “네, 엄마.”

    나는 전매특허인 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제야 어머니는 마음을 놓았다.

    “다녀오겠습니다.”

    식사를 마친 뒤 가방을 메고 혼자 집을 나섰다.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3월의 아침은 쌀쌀했다. 칼바람이 얼굴을 때리고 옷 속으로 파고들어 살갗을 할퀴어 댔다.

    도로를 따라 늘어선 나무들은 헐벗어 나보다 더 추워 보였다.

    아파트 단지를 벗어난 나는 학교 근처 상가에 서 있었다.

    곧 익숙한 얼굴들이 합류했다.

    나와 마찬가지로 국민학교 6학년생이 된 손승우와 김지원이었다.

    유치원 시절의 인연을 이어 가 우리 셋은 단짝이 되었다.

    손승우는 나보다 머리 두 개 이상은 더 컸다.

    체격도 벌써 중학생 수준이었다.

    학교 축구부에서 일찌감치 손승우에게 눈독을 들여 스카우트를 했던 이유가 있었다.

    김지원 또한 흔히 말하는 역변을 하지 않고 예쁘게 잘 자랐다.

    부모님이 연예계 쪽에 인맥이 있다던데, 그것을 바탕으로 간간이 아역 배우로서 활동하고 있었다.

    “안녕.”

    “안녕.”

    우리는 벙어리장갑을 낀 손을 흔들며 인사를 주고받았다.

    “이번에도 같은 반이 안 됐네. 아쉽다.”

    손승우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삐죽한 입에서 하얀 입김이 뿜어졌다. 손승우와 나는 4학년 때 딱 한 번 같은 반을 했다.

    “헤헤, 나는 믿음이랑 같은 반이지롱.”

    김지원이 놀리듯이 말하자 손승우가 미간을 찌푸렸다.

    “좋겠다. 네 똥 굵어.”

    “알아. 내 똥은 굵고 칼라 파워거든?”

    새초롬하게 받아치는 김지원에게 손승우는 아무 항변도 하지 못했다.

    김지원이 제리라면, 손승우는 톰이었으니까.

    당하는 게 일상이라는 소리다.

    두 사람과 잡담을 나누며 나는 학교로 이동했다.

    중년의 흉부외과 서전이 국민학생과 이야기를 나누는 내용이 다소 유치하게 느껴졌지만 어쩌랴.

    내 의식이야 어쨌든 겉모습은 국민학생인 것을.

    학교 운동장에 들어서자, 평소와 마찬가지로 운동장이 주먹만 해 보였다.

    나이를 먹고 다니던 학교에 다시 가 본 사람은 다들 공감할 것이다.

    어렸을 땐 우주처럼 넓어 보였던 학교가 어른이 되면 너무나도 좁게 보인다는 것을.

    학교는 일종의 우물이고, 우리는 개구리였던 셈이다.

    손승우와 작별한 나는 김지원과 6학년 2반으로 들어갔다.

    교실의 공기는 서늘했다.

    찬바람이 씽씽 불었다.

    목탄을 넣지 않은 난로가 교실 중앙에 흉물스럽게 놓여 있었다.

    약삭빠른 친구 몇몇은 벌써 난로 위에 도시락을 올려놓기도 했다.

    한편 교실 분위기는 냉탕과 온탕으로 극과 극을 달렸다.

    친한 친구들과 같은 반이 된 아이들은 벌써부터 시끌벅적 떠들고 있었다.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어색한 표정으로 교실 안을 훑고만 있었다.

    “야, 비듬. 이번엔 같은 반이네?”

    안경을 쓴 까불이가 다가와서 아는 척을 했다.

    아, 참고로 내 별명은 비듬이다.

    머리 비듬이 날려 비듬은 아니고 믿음이라는 이름을 우스꽝스럽게 부르는 것이었다.

    이 시절의 별명이란 원래 유치한 법이니까.

    “안녕. 까불이.”

    “여장군도 같은 반이었어?”

    “왜? 나는 같은 반이면 안 돼?”

    “그… 그냥 그렇다고.”

    김지원이 까칠하게 쏘아붙이자 까불이가 한 수 접고 들어갔다.

    김지원은 예쁘장한 외모와 달리 한 성깔 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별명이 여장군이겠는가.

    “어제 엄마가 울트라맨 비디오 빌려줬거든? 오늘 수업 끝나고 같이 볼래?”

    “울트라맨?”

    “응. 세 편이나 빌려줬어.”

    “안 돼. 믿음이는 오늘 우리 집에 가서 놀 거야.”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둘은 알아서 김칫국을 들이켜고 있었다.

    나름대로 이 둘을 지켜보는 맛이 있었다.

    전생의 국민학교 시절.

    나는 소심하고 내성적이었다.

    헌책방은 팔려 나갔고, 부모님은 빚보증 스트레스에 시달렸으며 냉난방이 안 되는 단칸방에서 살았다.

    가정 형편 때문에 위축이 돼서 활동적으로 지내질 못했다.

    그런 내가 지금은 친구들이 같이 놀고 싶어서 다투는 아이가 되었다.

    어떻게 보면 환생으로 운명이 바뀐 것이다.

    내겐 나를 변화시킬 힘이 있을뿐더러 내 주변 사람도 변화시킬 힘이 있다는 걸 다시금 깨달은 순간이랄까.

    앞으로 의대를 졸업하고 병원 생활을 시작해도 나는 지금까지 해 왔던 것처럼 내 운명을 바꿔 나가리라.

    ‘드디어 오셨군.’

    까불이와 김지원이 다투는 것을 지켜보던 나는 이내 교실로 들어오는 한 남학생에게 주목했다.

    김요한.

    전생에 내가 기억하고 있는 몇 안 되는 동창생 중 하나였다.

    내가 김요한을 기억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때문이었다.

    첫째는 이름이 특이해서였고.

    둘째는 다가올 개교기념일쯤에 김요한이 죽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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