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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살부터 의사 생활-11화 (11/257)
  • 11화 제2장 나는 유치원생이다 (6)

    ‘귀신에 홀린 것도 아니고…….’

    유희애는 영혼이 몸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듯한 황당한 기분이 들었다.

    믿음이가 인형 눈을 꿰매는 것을 보고 나서 생긴 증상이었다.

    세상에 유치원생 아들의 손재주가 나보다 좋을 수가 있는 건가.

    “엄마, 너무 재밌어요. 하나 더 해 볼게요.”

    믿음이가 세 번째 인형의 눈알을 꿰맸다. 혈관을 잘 잡는다고, 처치를 잘한다고 인정받는 그녀보다 훨씬 빠르고 정교한 손놀림이었다.

    믿음이는 어렸을 때부터 특별하긴 했다.

    한 살 때는 신기를 발휘해 그녀의 목숨을 구했다.

    걸음마와 대소변 가리기.

    옷 입기. 말 익히기 및 조리 있게 말하기.

    자신과 남편의 말 알아듣기 등등.

    모든 면에서 또래의 아이들보다 월등한 모습을 보여 주며 성장해 왔다.

    심지어 어제는 의학 전공 서적에서 본 하임리히법을 기억하고 유치원 선생님에게 알려 주어 기도 질식한 친구의 목숨을 살리기도 했고.

    그런데 설마 손재주까지 이리 좋을 거라곤 꿈에도 생각 못 했다.

    ‘내 자식이지만 정말 못하는 게 뭐지?’

    유희애는 신과 운명을 믿지 않았지만 믿음이를 지켜보면서 자신의 믿음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물론 기분 좋은 동요였다.

    “엄마, 나 심심한데 이거 계속해도 돼요?”

    믿음이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아니. 믿음이 잘하는 거 알았으니까 그만해도 돼. 이건 엄마 일이야.”

    “엄마 일은 내 일 아니에요? 나 엄마 때문에 밥 먹는데…….”

    “그래도 안 돼.”

    “조금 더 할게요. 바느질이 너무 재미있단 말이에요.”

    믿음이가 평소답지 않게 떼를 쓰기 시작했다.

    순간 머리가 지끈거렸다.

    유희애는 믿음이가 인형 눈을 꿰매는 것을 원치 않았다.

    유치원생이 무슨 부업을 한단 말인가.

    물론 믿음이는 부업의 개념을 아예 모르겠지만.

    유치원생은 잘 먹고, 재미있게 놀고, 푹 자는 게 최고였다. 헌책방에 앉아서 인형 눈이나 꿰매고 있을 나이가 아니었다.

    “엄마, 나 바느질할래요. 의사 선생님 되려면 손재주가 좋아야 한다고 그랬단 말이에요.”

    “…….”

    “지금부터 미리 연습하면 안 돼요? 책도 맨날 봐서 지루하단 말이에요. 엄마는 내가 지루한 게 좋아요?”

    “휴. 알았다. 믿음이 하고 싶은 대로 해.”

    믿음이의 폭풍 같은 언변에 유희애는 결국 두 손 두 발을 다 들고 말았다.

    그런데 어째 사기 당한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믿음이에게 조종당한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야호, 신난다!”

    “대신 엄마 도와준다고 무리하지 말고 적당히 해야 돼. 약속할 수 있지?”

    “네!”

    모자가 나란히 앉아 인형 눈알을 꿰매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완성된 인형이 수북하게 쌓이기 시작했다.

    그녀보다 손재주가 좋은 믿음이가 합류하자 작업 속도는 말도 못 하게 빨라졌다.

    더 놀라운 것은 믿음이의 집중력이었다.

    솔직히 서너 개만 하고 나면 힘들다고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질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믿음이의 자세와 집중력은 인형을 꿰매는 내내 흐트러지지 않았다.

    마치 외과의가 어려운 수술을 집도하는 것처럼.

    믿음이 덕분에 혼자 했으면 내일쯤에야 간신히 끝냈을 일거리가 고작 한 시간 반 만에 끝났다.

    실로 입이 떡 벌어지는 놀라운 속도였다.

    완성된 인형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어느새 경악으로 물들어 있었다.

    “믿음아, 손가락은 안 아프니?”

    “네, 멀쩡해요.”

    믿음이는 씽긋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억지로 기운을 낸 것이 아니라 정말 쌩쌩해 보였다.

    하긴 이 나이에 싫은 기색을 숨긴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엄마는요?”

    “엄마도 멀쩡하단다. 어쨌든 고맙네? 믿음이 덕분에 엄마가 고생을 덜했어.”

    “헤헤, 아니에요. 근데 엄마.”

    “왜?”

    “나 앞으로도 인형이랑 놀면 안 돼요?”

    “앞으로?”

    “너무 재미있어요. 시간도 잘 가고 또 하고 싶어요.”

    “그건 곤란해. 엄마가 아까 말했지? 믿음이는 이런 거 할 나이가 아니라고. 믿음이는 아이답게 지내야 해.”

    유희애는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인형을 꿰매는 믿음이의 모습은 경이로웠으나 그 모습을 계속 보고 싶지는 않았다.

    그녀는 아이다움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럼 하루에 2시간 정도만 하면 안 돼요? 의사 선생님이 되고 싶어서 하는 건데.”

    믿음이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아까는 떼를 쓰듯이 부탁했다면, 이번에는 애원을 하고 있었다.

    아들이 약한 모습을 보이자, 그녀도 괜히 마음이 약해졌다.

    솔직히 유치원생에게 부업을 시키는 게 영 내키지는 않았다.

    하지만 말이다.

    믿음이는 인형 눈 꿰매기가 너무 재미있단다. 좋은 의사 선생님이 되기 위해서 미리 연습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단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는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놔두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그럼 아빠하고 상의해 볼게. 아빠까지 허락하면 해도 좋아.”

    “헤헤. 감사합니다.”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숙이는 믿음이.

    ‘내 자식이지만 정말 요물이라니까.’

    금방 또 태도가 바뀌는 믿음이를 보며 유희애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여보, 믿음아. 나 왔어.”

    때마침 남편이 책방으로 돌아왔다.

    목소리가 밝고 걸음걸이가 당당한 걸 보아하니 출판사와 이야기가 잘된 모양이었다.

    유희애의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출판사에서 뭐래?”

    “마음에 든대. 순문학하고 장르 문학의 경계에 있는 게 유니크하다나? 완성하는 대로 출판하자고 하더라. 내친김에 계약까지 하고 왔지. 계약금도 벌써 받았고.”

    “와! 축하해. 여보.”

    “아빠 축하해요!”

    남편이 유희애를 부둥켜안았다. 순간, 그녀는 코끝이 시큰하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남편의 노력이 드디어 인정받는 것 같아서.

    무능력한 글쟁이 딱지를 드디어 떼는 것 같아서.

    글 쓰는 일이 제 살을 깎아 내는 것처럼 고통스럽다는 걸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내 뒷바라지하느라 당신이 고생 많았지. 아직 축배를 들기에는 이르지만 앞으로 고생 덜하게 해 줄게.”

    “기대할게.”

    “귀여운 내 자식. 믿음이가 친구를 살린 덕분에 아빠가 책도 출판해 보는구나.”

    다음으로 남편은 믿음이를 번쩍 들어 품에 안았다.

    “히히, 그럼 맛있는 거 사 주세요.”

    “당연히 그래야지. 오늘 저녁은 짜장면 먹을까?”

    “짜장면 좋아요!”

    출판 소식으로 인한 기쁨의 여운이 가신 뒤 유희애는 남편과 믿음이의 일을 논의했다.

    화제는 믿음이에게 인형 눈 꿰매기를 맡겨도 되겠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괜찮을 것 같은데?”

    남편의 반응은 의외로 덤덤했다.

    “왜?”

    “당신이 시킨 게 아니잖아. 믿음이가 하고 싶어서 한다는 거 아니야?”

    “그건 그렇지만… 모양새가 좀 그렇잖아.”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걸 하게 내버려 두는 게 좋다고 생각해. 딱히 이상한 일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시간만 적당히 지키면 되지 않을까?”

    “알았어. 그럼 적당히 시킬게.”

    “엄마. 내가 꿰맨 인형 예뻐요. 뿌듯해요.”

    믿음이는 어느새 완성된 인형 하나를 품에 안고 방실방실 웃고 있었다.

    저렇게 인형을 좋아하니 그녀도 더 이상 아들의 작업을 막을 명분이 없었다.

    동시에 그녀는 알 턱이 없었다.

    믿음이가 푼돈을 모아 저금하고 그 돈을 보태 가족의 아파트 이사를 계획하고 있다는 것을.

    인형 눈 꿰매기 부업은 그 과정에서 그저 첫 단추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조금 이르지만 짜장면 먹으러 갈까?”

    “그래.”

    “믿음이도 좋지?”

    “네! 좋아요.”

    세 가족은 모처럼 책방 문을 일찍 닫고 중식집을 찾았다.

    * * *

    “사장님, 인형 왔어요.”

    이태호는 손에 든 비닐봉지를 사장 고형석이 작업 중인 작업대에 올려놓았다.

    “슈퍼집 인형이야?”

    “아니요. 헌책방에서 가져온 인형인데요?”

    “엥? 벌써?”

    고형석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소설가 남편과 간호원 아내가 운영하는 헌책방은 며칠 전부터 인형 눈알 꿰매기 부업을 하고 있었다.

    남편은 글을 쓰느라 부업을 전혀 돕지 않았고, 아내만 간간이 작업을 하는 걸로 알고 있었다.

    문제는 완성 시간이었다.

    오늘 낮에 받아 간 인형을 벌써 다 끝냈다고?

    간호원은 인형 꿰매는 솜씨가 좋고 속도도 꽤 빠른 편이긴 했다.

    하지만 작업 시간이 길지 않아 일거리를 받아 가면 이틀 내지 사흘은 걸려서 끝냈다.

    그런데 오늘은 하루 만에 끝냈다는 것이 영 수상했다.

    “슬슬 나를 호구로 보고 대충하는 건가?”

    “왜요? 무슨 문제라도 있으세요?”

    “작업 속도가 말이 안 되잖아. 하루 만에 끝낼 수 없는 양을 줬거든.”

    “젊은 친구들이 벌써부터 요령을 피우나? 일단 확인이나 해 보죠.”

    “그래. 대충했으면 앞으로 일거리는 얄짤없지. 행여나 자네도 마음이 약해져서 일을 주지 말라고.”

    고형석은 돋보기안경을 끼고 비닐봉지 안에서 인형을 꺼냈다.

    인형의 눈 부위를 매의 눈으로 살폈다.

    그의 눈초리가 차차 가늘어지고, 입은 서서히 벌어졌다. 곁에서 인형을 살피던 이태호의 반응도 그와 비슷했다.

    “흠잡을 곳이 없는데요?”

    “완벽한데?”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외쳤다.

    “참 나.”

    고형석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다음 인형을 꺼내서 유심히 살폈다.

    바느질이 촘촘해서 적당히 힘을 주고 눈을 잡아당겨도 눈이 떨어지지 않았다.

    바느질 선도 지저분하지 않고 깔끔했다.

    가히 눈알 꿰매기의 정석이라고 할 만했다.

    빨리 끝내서 대충 작업한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단지 그의 착각과 오해에 불과했다.

    바느질 솜씨는 탁월하고 뛰어났다.

    “괜히 그 사람들 욕해서 미안해지네요.”

    “아냐. 의심할 만한 상황이긴 했지. 그런데 태호야.”

    “네, 형님.”

    “바느질 확인하면서 이상한 거 못 느꼈니?”

    “뭐가요? 바느질이 다 거기서 거기지.”

    “쯧쯧쯧. 이거 두 개를 잘 비교해 봐.”

    고형석은 인형 두 개를 나란히 이태호에게 건넸다.

    “저는 그래도 잘 모르겠는데요?”

    “바느질 방식이 미묘하게 달라. 왼쪽에 있는 게 더 꼼꼼하고 절단선도 깔끔해.”

    “듣고 보니까 정말 그러네요.”

    “그러니까 작업을 혼자 한 게 아니라 둘이서 했다는 뜻이 되는 거지.”

    “아… 어쩐지…….”

    “그래도 말이 안 되는 건 마찬가지지만.”

    고형석은 가만히 턱을 쓸어내렸다.

    둘이서 인형 눈을 꿰맸다고 해도 작업 속도가 상식을 벗어났다. 심지어 바느질이 이 정도로 꼼꼼하고 깔끔한데 말이다.

    헌책방에 바느질의 신이라도 강림한 걸까.

    “요즘 인형 눈 꿰매는 작업을 하려는 사람이 별로 없지?”

    “그렇죠. 다들 한 번 해 보고 금방 그만두니까. 저 같아도 눈 꿰매기는 안 할 거예요. 돈이 더 안 벌려도 차라리 상자를 접으면 접었지.”

    “내일은 네가 직접 책방에 찾아가라. 이야기 잘해서 일 좀 많이 해 달라고 하고. 단가 높은 거 할 생각은 없느냐고 슬쩍 떠보고.”

    “예이~.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잠시 후 인형 검수를 마친 고형석은 감탄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불량품이 단 한 개도 없었다.

    * * *

    다음 날 오전.

    아버지의 손을 잡고 유치원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은 더없이 가벼웠다.

    아버지는 승우 아버지의 출판사와 계약하는 성과를 거뒀다.

    나는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 정식으로 인형 눈을 꿰맬 수 있게 되었다.

    헌책방 수입과 아버지의 책 출판 수입.

    어머니의 간호원 월급과 대출.

    나의 부업 수당.

    이 다섯 가지를 조합한다면 목동에서 아파트를 구입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집안 경제는 앞으로 활짝 꽃필 일만 남은 것처럼 보였다.

    “흐으으응~.”

    등원하는 내내 아버지는 콧노래를 불렀다.

    들뜬 아버지를 보고 있자니 괜히 나까지 들떴다.

    전생에서는 꼬이기만 했던 아버지의 인생이 하나둘 술술 풀리고 있지 않은가.

    아직까지는 모든 것이 내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의대에 들어갈 때까지는 부모님에게 집중하고, 그 후부터는 아마 나 자신에게 집중하게 될 것이다.

    흉부외과의로서 이루지 못한 꿈을 장대하게 펼쳐 보여야 하니까.

    다시 흉부외과 서전으로 일할 미래를 떠올리니 벌써부터 마음이 설레었다.

    “믿음아, 안녕.”

    “안녕하세요. 선생님.”

    유치원에 도착해 선생님과 인사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버지는 손을 흔들고 나와 멀어져 갔다.

    그런데 유치원 거실에 들어선 순간, 눈이 마주친 승우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눈빛에 말로 표현하기 힘든 애환 같은 것이 서려 있었다.

    의사 생활을 오래하다 보면 눈빛만으로도 환자의 몸 상태나 심리를 꿰뚫어 볼 수 있는 혜안을 얻게 되는데, 지금이 그 혜안이 발동되는 순간이었다.

    혹시 기도 질식 사건의 트라우마가 재발한 것일까.

    갑자기 승우가 걱정됐다.

    “승우야, 무슨 일 있어?”

    나는 승우에게 다가가 조심스레 물었다.

    승우는 다른 아이들과 동떨어진 곳에서 당장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확실히 오늘의 승우는 이전의 승우와 달랐다.

    하지만 나의 우려와 염려는 승우의 더듬거리는 해명에 박장대소로 바뀌고 말았다.

    “엄마… 엄마가…….”

    “엄마가 왜?!”

    “돈가스를 사 준다고 해서 나갔는데, 꼬추가 잘렸어. 흐흐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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