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제2장 나는 유치원생이다 (5)
다음 날 아침.
유치원에 등원하자 나는 일약 슈퍼스타가 되어 있었다.
나를 바라보는 유치원 선생님의 눈빛이 하나같이 예사롭지 않았다.
좀 더 기특하게 그리고 좀 더 예의 주시하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내 곁에 앉고 싶어 했고, 쫑알쫑알 말을 걸고 싶어 했다.
귀찮고 성가신 인기였다.
내가 진짜배기 유치원생이었으면 한껏 콧대가 올라갔겠지만, 나는 가짜 유치원생이었다.
몸은 여섯 살이었으나, 의식은 중년이었다.
내게 쏟아지는 관심이 그저 부담스럽고 껄끄럽기만 했다.
내 유치원행이 부모님의 행복이 아니었다면, 아마 나는 진작 유치원을 탈출했으리라.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김지원과 손승우가 특히 내게 관심을 보였다.
좌청룡 우백호의 느낌이랄까.
내 왼편엔 김지원이 앉았고, 오른편에 손승우가 앉았다.
한 명은 입이 가볍고, 한 명은 입이 무거워 균형이 잘 맞았다.
손승우와의 인연이 아버지에게까지 닿은 것처럼 또 어떤 인연이 나와 닿을지 몰랐기에 일단 나는 적당히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춰서 놀아 주었다.
“수업 끝나고 우리 집에 놀러 갈래? 우리 집에 변신 로봇 엄청 많은데.”
하원 시간이 가까워질 무렵, 손승우가 제안했다.
“미안. 나 오늘 집에 빨리 가야 돼.”
“그래? 알았어.”
손승우는 실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시무룩한 모습이 안타까웠으나 내겐 정말 할 일이 있었다. 그것도 우리 가족의 인생을 뒤바꿀지 모르는 중요한 일이.
“어제 많이 무서웠지? 이제는 안 무서워?”
“누가 쫓아오는 꿈을 꿨는데, 그래도 괜찮아. 엄마가 안아 줬어.”
“넌 씩씩하니까 잘 이겨 낼 거야.”
“정말?”
“응. 나는 그렇게 믿어.”
손승우를 응원하며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손승우가 질식 사건으로 트라우마가 생기는 것을 나는 원치 않았다.
마음의 병이 몸의 병으로 번지기를 원치 않았다.
전생에도 나는 유독 어린 환자에게 관심과 애정을 쏟고는 했다.
자식이 없어서 어린 환자들을 내 새끼처럼 여겼는지 아니면 못다 핀 인생이 애처로워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르겠다.
“헤헤. 고마워.”
“고맙기는. 나중에 맛있는 거 사 먹자. 너희 아빠가 준 용돈 아직 가지고 있어.”
“그래.”
손승우와 대화를 마칠 무렵, 어머니가 유치원을 찾아왔다.
아버지가 승우 아버지의 출판사를 찾아갔기에 쉬는 날인 어머니가 대신 온 것이다.
나는 유치원 가방을 메고 쪼르르 어머니에게 달려갔다.
“엄마!”
“우리 믿음이 잘 있었지?”
“네!”
“안녕하세요. 믿음이 어머니. 간호원인 어머니를 이제야 뵙네요.”
유치원 선생 중 한 명이 어머니를 반갑게 맞았다.
“아. 네.”
“믿음이가 참 영특해요. 어머니한테 배운 하임리힘법을 기억해서 친구를 다 살리고. 어제 일은 들으셨죠?”
“아, 네. 그렇죠. 감사합니다. 믿음아. 가자.”
“네,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
유치원 선생님에게 인사하고 어머니와 유치원을 빠져나왔다.
“믿음아, 근데 말이야. 엄마는 너한테 하임리히법을 가르쳐 준 적이 없는데 어떻게 알고 있었니?”
어머니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어머니의 입장에서는 당연하다면 당연한 질문이었고, 내가 어제부터 대답을 준비하고 있던 질문이었다.
나는 아주 태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책에서 봤어요.”
“책?”
“의사 선생님들이 읽는 책이에요. 그림이 나와 있어서 기억하고 있어요.”
“그걸 한 번 보고 기억했니? 어려운 이름까지 다 외웠고?”
어머니가 무언가 이상하다는 듯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그냥 외워지던데요?”
“그냥?”
“네, 그냥.”
“그럼 책을 보고 배웠다고 해야지. 왜 엄마 이야기를 꺼냈니?”
“책을 보고 배웠다고 하면 선생님들이 안 믿을 것 같아서요. 봐봐요. 엄마도 지금 나 이상하게 생각하잖아요.”
나는 아무도 나를 믿어 주지 않아서 서글프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식으로 감정 연기를 하다간 흉부외과의가 아니라 배우로 전향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어머니는 내 말을 순순히 믿는 눈치였다.
그동안 내가 자라면서 보여 준 전적들이 워낙 화려했으니까.
이래서 사람은 평소 행실이 중요한가 보다.
“엄마는 당연히 믿음이 믿지. 그냥 이유가 궁금했을 뿐이야. 그러니까 믿음이는 친구를 살리고 싶어서 거짓말을 했다는 거지?”
“네, 맞아요.”
“으음… 이번에는 결과가 좋았지만 항상 그럴 거라는 보장은 없단다. 앞으로는 말과 행동에 좀 더 조심하렴. 똑똑한 믿음이는 엄마가 무슨 말 하는지 알지?”
“네!”
“기특한 녀석.”
어머니가 방긋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흉부외과의였지만, 어머니의 다정한 손길은 언제나 고팠다.
‘이 땅이 나중에 다 금싸라기가 될 텐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훑으며 나는 눈을 빛냈다.
우리 가족은 목동에 살았다.
2000년대부터 목동은 탁월한 학군과 엄청난 집값으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현재 시점인 1980년대 중반만 해도.
목동은 허허벌판에 판자촌까지 있었던, 전형적인 못사는 동네였다.
안양천이 수시로 범람해 주거 환경으로서도 영 빵점이었다.
목동이 각광을 받았던 건 정권에 의해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부터였다.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후에도 한동안 별 볼 일 없는 동네로 인식되었으나, 그 인식은 의외로 금방 바뀌게 된다.
나는 집 근처에 우후죽순처럼 세워지는 아파트를 바라보며 군침을 흘렸다.
어른이 돼서 의사 봉급을 받고 대출을 낀다면 아파트를 살 수 있었다.
하지만 굳이 그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지금 상대적으로 저렴할 때 아파트를 사 두면 집값은 알아서 천정부지로 뛸 테니 말이다.
우리 세 가족의 단란한 보금자리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에 머리가 쌩쌩 돌아가기 시작했다.
헌책방 수익과 아버지의 소설 출판 수익.
어머니의 꾸준한 간호원 활동 수익 및 주택 대출.
거기에 내 활약(?)을 더한다면 적어도 국민학교 3학년이 되기 전에 아파트를 구입할 수도 있지 않을까.
흐릿했던 청사진이 점점 구체적인 모습을 띠기 시작했다.
동시에 나는 내가 계획해 놓은 모든 것을 이뤄 낼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충만해졌다.
“우리 믿음이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엄마 생각이요.”
어머니와 아파트에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으니 백 퍼센트 틀린 말은 아니었다.
“엄마가 옆에 있는데도?”
“나는 엄마가 옆에 있어도 엄마가 보고 싶어요.”
“어머머, 애 좀 봐. 아빠가 소설가라고 벌써부터 광고하고 다니네?”
어머니가 꺄르르 웃었다.
사실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반한 것도 아버지 특유의 넉살과 달콤한 멘트 때문이었다.
전생에서는 절필을 선언한 뒤.
그리고 협심증으로 세상을 떠난 뒤 아버지의 유머러스한 멘트를 더 이상 들을 수 없어 아쉬웠지만.
“아빠 출판이 잘됐으면 좋겠다. 그렇지, 믿음아?”
“네.”
“아빠 책이 나오면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도… 아니, 이 이야기는 됐다.”
말을 허겁지겁 마치는 어머니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외가는 어머니의 아픈 손가락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외가 쪽 이야기를 캐묻지 않았다. 외가 쪽 그림자를 청산하는 것은 내게도 좀 더 나중에 처리해야 할 일이었다.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며 도착한 헌책방.
드르르륵.
어머니는 셔터를 열고 계산대에 앉았다.
할 일이 없었던 나는 어머니 근처에서 책을 읽었다.
오늘의 도서는 ‘군주론.’
이탈리아의 사상가인 마키아벨리의 저서로, 인간의 본성과 군주로서 갖춰야 할 덕목을 서술한 고전 명작이었다.
-권력을 유지하려는 자는 선하기만 해서는 안 되고, 악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둘을 적재적소에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현명한 군주는 부하들이 충성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만들어 놓으나, 멍청한 군주는 억지로 충성을 강요하다가 배신을 당한다.
…….
‘군주론’에는 이런 주옥같은 문장이 많았다.
지금의 내가 읽어도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명문장들이었다.
전생의 나는 정확히 ‘군주론’에서 나오는 내용과 정반대로 행동했다.
첫째로 나는 너무 물러 터졌다.
마땅히 착한 게 좋은 줄로만 알고 살았다. 강태섭에게 바보처럼 이용당한 게 가장 큰 증거였다.
내가 영리하게 굴었다면 반대로 강태섭을 조종할 수 있는 기회가 몇 번이나 있었는데…….
그걸 전부 허망하게 놓쳐 버렸다.
둘째로 나는 주변 사람들을 내 편으로 만들지 못했다.
나는 내 일만 잘하면 사람들이 자연히 나를 좋아해 줄 줄 알았다.
심각한 착각이었다.
머저리 같은 오해였다.
함께 일을 한 시간이 곧 친밀도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강태섭에게 복수를 꿈꿨을 때, 내 손을 잡아 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를 거다.’
나는 속으로 바득바득 이를 갈았다.
나를 천 길 낭떠러지로 몰고 간 강태섭에게 제대로 한 방을 먹이기 전까지 내 독기는 결코 빠지지 않을 것이다.
딸랑~.
도어벨이 울리고 고말숙이 책방으로 들어왔다.
파마머리의 악마.
우리 가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인 빚보증만 남기고 떠나간 범죄자.
“언니 오셨어요?”
“응. 오는 길에 네 것도 챙겨 왔어. 자, 받아.”
고말숙이 어머니에게 거대한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나는 비닐봉지에 눈독을 들였다.
저 봉지 안에는 유치원생인 나도 돈을 벌 수 있는 특별한 물건이 들어 있었다.
놀자는 손승우의 제안을 뿌리친 이유 또한 저 안에 들어 있었다.
“고마워요. 언니. 매번 이렇게 신세만 져서 어떻게 해요?”
“신세는 무슨. 옆집 사는데 이 정도는 도와야지. 호호호.”
“안녕하세요.”
나는 억지로 고말숙에게 인사를 했다.
“믿음이도 있었구나. 벌써부터 책 읽니?”
“네.”
“똘똘하기도 해라. 우리 민석이는 네 나이 때 동화책도 안 봤는데.”
“…….”
“그건 그렇고 안 힘들겠어? 쉬는 날에는 제대로 쉬어야지. 무슨 부업까지 하려고 그래? 그러다 탈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에이, 이 정도 가지고 뭘요.”
“호호. 누가 청춘 아니랄까 봐 부럽네. 너무 무리하지 말고 다음에 또 봐.”
고말숙이 떠난 뒤 어머니는 비닐봉지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내 머리만 한 인형과 손톱만 한 크기의 눈알들.
어머니는 며칠 전부터 틈틈이 인형 눈알을 꿰매는 부업을 하고 있었다.
없는 살림에 내 유치원 비용을 대느라 무리했기 때문이다.
“엄마 일할게. 믿음아.”
실뜨기 세트를 꺼낸 어머니는 야무지게 인형 눈알을 꿰매기 시작했다.
소아 병동에 불려가 정맥 라인을 잡는 어머니인 만큼 바느질 솜씨는 좋았다.
흉부외과 서전으로서의 내 손재주도 사실 어머니의 유전이라고 볼 수 있었다.
‘나도 시작해 볼까?’
어머니를 지켜보며 나는 가볍게 손을 풀었다.
비록 유치원생이지만, 나는 고사리 같은 손을 꽤 능숙하게 썼다.
부모님이 없을 때 혼자 바느질을 해 봤는데, 과거 집도하던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겠다만.
환생하면서 흉부외과의 시절의 손놀림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것 같았다.
즉 환생 말고도 손재주라는 선물을 하나 더 받은 것이다.
그 이치와 이유는 정확히 알 길이 없었으나, 내 입장에서는 축복받은 일이었다.
“엄마, 나도 그거 한 번만 해 보면 안 돼요?”
나는 최대한 천진난만한 척 연기하며 물었다.
유치원 때부터 인형 눈 꿰매기로 돈을 벌어 부모님이 아파트를 살 수 있게 돈을 보탠다.
그것이 나의 야무진 작전이었다.
부업으로 버는 돈은 당장은 푼돈처럼 보여도 모으면 제법 큰돈이 된다.
나중에 인형 눈 꿰매기보다 단가가 높은 부업을 하면 수익은 더 커질 테고 말이다.
부모님이야 당연히 그런 나를 말리겠지만, 부모님을 설득할 방법을 나는 이미 마련해 두었다.
전생의 내가 흐리멍덩한 인간이었다면, 현생의 나는 철두철미한 인간이었다.
“믿음이는 너무 어려서 안 돼. 바늘에 손가락 찔리면 아야 한단다. 피가 날 수도 있어.”
“나 젓가락질 잘해요. 그리고 의사 선생님 되려면 손을 잘 써야 한다고 그랬단 말이에요. 조금만 해 볼게요~.”
애교 반, 칭얼거림 반을 섞자, 어머니도 결국 백기를 들었다.
내게 인형과 실·바늘을 건네주었다. 이것이 바로 유치원생의 가장 큰 무기인 떼쓰기였다.
잘만 쓰면 이 떼쓰기에 당해 낼 어른이 없다.
얼큰한 맛.
매운맛.
아주 매운맛.
그 세 가지 중에서 나는 아주 매운맛을 택했다.
어머니가 아주 매운맛을 좋아할 것 같았다. 나도 간만에 나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제 실력을 발휘하고 싶었고.
휘리리릭.
본격적인 인형 눈알 꿰매기가 시작되었다.
5-0 봉합사.
그러니까 머리카락 굵기의 봉합사로 미세 혈관 문합술(microvascular anastomosis)을 펼쳤던 나였다.
OPCAB(무인공심폐 관상동맥 수술).
그러니까 심장이 뛰는 상태에서 관상동맥 봉합까지 해 본 나였다.
단순 단속 봉합.
수직 또는 수평 매트리스 봉합.
실을 한 번도 끊지 않고 진행하는 연속 봉합 등등에 도사인 나였다.
인형 눈알 꿰매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나는 눈 깜빡할 사이에 인형의 눈알 양쪽을 꿰매 버렸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전생의 경험을 기억하는 두 손이 마치 춤을 추듯이 움직였다.
수전증을 극복한 나는 원래 이렇게 손을 잘 쓰는 서전이었다.
이런 솜씨를 가지고도 인턴과 레지던트 1-2년 차에 폐급 소리를 들었다는 사실이 새삼 원통했다.
“…….”
한편 나를 지켜본 어머니는 놀라 그만 말문을 잃고 말았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였다.
병동의 에이스 간호사인 어머니보다 유치원생인 내 솜씨가 더 월등했으니까.
“이상하네. 믿음아, 지금 엄마가 꿈꾸는 거 아니지?”
“꿈 아닌데요.”
“그럼 다시 한번만 해 볼래?”
“네!”
숨을 내쉬고 내뱉는 것처럼 아주 빠르고 간단하게 나는 재차 인형의 눈알을 꿰맸다.
아휴, 쉽다. 쉬워~.
“후… 엄마는 기가 막혀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헤헤, 나 잘했어요?”
“잘하는 수준이 아니라 이 정도면 천재야. 천재.”
“나 천재 싫어요. 친구들이 천재는 천하의 재수 없는 놈이라고 그랬어요.”
나는 일부러 유치하게 굴었다.
아이는 어수룩해 보일수록 어른들을 조종하기 편하니까.
“엄마가 말하는 건 좋은 천재야. 어디 보자. 빨리 꿰맨 것도 꿰맨 건데, 엄마보다 훨씬 꼼꼼하잖아?”
어머니는 당신이 꿰맨 인형과 내 인형을 비교하고 혀를 내둘렀다.
기겁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빠르게 셈을 해 봤다.
내가 하루에 꿰맬 수 있는 인형의 숫자.
그리고 그 인형으로 벌어들일 수 있는 수익.
나중에 더 고난도의 바느질 부업을 하게 되면 얻게 될 수익까지.
아파트로 이사 갈 날은 생각보다 빠를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