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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살부터 의사 생활-6화 (6/257)
  • 6화 제2장 나는 유치원생이다 (1)

    봄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어느 아침.

    나는 부모님과 식사를 하고 있었다.

    주 식단은 된장찌개에 계란말이.

    거기에다 시금치 무침을 비롯한 밑반찬 세 가지.

    평범한 메뉴를 비범하게 바꿔 주었던 건 역시 계란말이였다. 이때는 계란이 귀했다. 오직 아버지들만이 계란을 먹을 수 있었다.

    지금의 나야 외동이고, 워낙 기특하게 자라서 달걀을 먹을 수 있었지만.

    나는 부모님의 얼굴마저 반찬으로 삼아 식사를 했다.

    의대에 들어가고 병원에 들어가고 흉부외과의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부모님과 얼굴을 맞대고 식사하는 시간이 적었다.

    협심증 수술 도중에 돌아가신 아버지와는 더더욱 식사를 할 자리가 없었고.

    그래서 이 순간이 천금처럼 소중했다.

    사랑한다는 것은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이라는 걸 예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다.

    “우리 믿음이, 어쩜 이렇게 젓가락질을 잘할까?”

    먼저 식사를 마친 어머니가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두 손에 턱을 괸 채 나를 바라보는 모습에는 애정이 흘러넘쳤다.

    “나 젓가락질 잘해요?”

    나는 시치미를 떼고 물었다.

    “믿음이 정도면 웬만한 초등학생 형·누나보다 잘할걸?”

    “나 젓가락질 잘해야 해요. 있잖아요. 나는 나중에 커서 멋진 의사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우리 믿음이는 한결같구나. 그런데 왜 의사 선생님이 되고 싶어?”

    “멋있어서요.”

    일단 육신은 아이였으므로 나는 아이답게 대답했다.

    전생에 미처 풀지 못한 매듭들.

    이를테면 활짝 펼치지 못한 내 재능이나 불구대천의 원수 강태섭에 대해 이야기할 수는 없었으니까.

    의사가 되고 싶다는 나의 말에 부모님은 흐뭇하게 웃으셨다.

    지금은 귀엽게만 보시겠지만, 내 말이 사실이 될 날은 그리 머지않았다.

    나는 내 젓가락질을 자랑하듯 숟가락이 아닌 젓가락으로 콩자반을 하나하나 건져 먹었다.

    날 보고 감탄하는 부모님의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어머니의 시선이 곧 아버지에게 머물렀다. 그 시선은 내게 머물렀던 시선과는 사뭇 달랐다.

    “여보.”

    “왜?”

    “반찬 좀 골고루 먹어. 몸에 좋은 시금치도 먹고 당근도 좀 먹고 양파도 좀 먹어. 계란하고 김치만 먹지 말고.”

    “당신도 알잖아. 나 야채 싫어하는 거.”

    아버지가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볼을 긁적거렸다.

    “그래도 편식이 너무 심하잖아. 누가 보면 믿음이가 애 아빤 줄 알고, 당신이 자식인 줄 알겠어.”

    어머니의 일침에 아버지는 하는 수 없이 꾸역꾸역 야채를 입에 넣었다.

    하지만 먹는 시늉만 몇 번 했을 뿐, 금방 먹던 반찬에만 손이 갔다.

    반찬으로 티격태격하는 부모님을 지켜보며 나는 슬며시 미소를 머금었다.

    이런 사소한 다툼조차 추억이 되고 그리움이 된다는 걸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화장실 다녀오겠습니다.”

    수저를 내려놓고 헌책방에 딸린 방을 나왔다. 좁은 마당에 위치한 화장실로 들어가 소변을 보았다.

    시원하게 뻗어 가는 줄기만큼 내 오줌보도 시원해졌다.

    ‘진짜 세월이 무상하구나.’

    나는 화장실 벽에 걸린 통거울을 통해 내 모습을 확인했다.

    꾀돌이 같은 인상에 이목구비가 올망졸망한 꼬마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도 시간은 간다고 한 살이었던 나는 벌써 미운 여섯 살이 되었다.

    할 수 있는 일은 여전히 많지 않았지만, 활동반경은 확실히 넓어졌다.

    이제야 좀 사람다워진 셈이랄까.

    ‘생각나는 게… 없구나.’

    나는 이 무렵의 나를 필사적으로 떠올려 보곤 피식 웃었다.

    기억다운 기억.

    의식다운 의식이 생겨난 것은 국민학교 때부터였다.

    국민학교 입학식 날, 학교에 가기 싫다고 떼를 썼던 것이 내 기억의 첫 페이지였다.

    “여보, 이번에 잘 안 됐어.”

    “뭐가?”

    “신춘문예에 보낸 소설. 예선 탈락한 모양이야.”

    “괜찮아. 첫술에 배부를 순 없잖아? 여보는 글재주가 좋으니까 금방 붙을 거야. 난 여보 믿어.”

    부모님이 나누는 대화가 문 너머로 들려왔다.

    문득 가슴이 아려 왔다.

    집안 형편이 가파르게 기울면서 과거의 아버지는 끝내 펜을 꺾었다. 꿈을 등진 채 육체노동을 하면서 신화 속 시지프스처럼 괴롭고 저주받은 인생을 보냈다.

    아버지가 협심증을 앓게 된 것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막노동을 하면서 술, 담배를 배우고 빚보증으로 인한 스트레스에 시달렸기 때문에 말이다.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철학자 키에르케고르의 말은 하나도 틀린 것이 하나 없었다.

    하지만 걱정 마세요. 아버지.

    당신의 곁에는 40살 먹은 능구렁이 같은 제가 있으니까.

    당신은 남부럽지 않게 행복하게 살 거고, 당신이 쓴 소설은 대중의 사랑을 받을 겁니다.

    부모님의 대화가 잦아들 때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방에 들어갔다.

    부모님도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맞아 주었다. 우리 세 가족은 이렇게 쿵짝이 잘 맞았다.

    “믿음아, 준비됐어?”

    “네!”

    “그럼 옷 갈아입자.”

    어머니가 옷장에서 꺼낸 노란 꼬까옷을 나는 손수 입었다. 오늘부터 다니게 된 샘소리 유치원 복장이었다.

    옷을 갈아입은 나는 옷 가슴팍에 ‘이믿음’이라고 박음질이 된 내 이름을 내려다보았다.

    믿음, 사랑, 소망 중 으뜸은 믿음이라는 아버지의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 내 이름이었다.

    아버지의 배웅을 받으며 어머니와 책방을 나섰다.

    “엄마, 근데 나 유치원 꼭 가야 해요?”

    나는 투정을 부리듯이 물었다.

    6세의 아이에겐 유치원이 필요할 수 있다.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40살의 의식을 가진 6세에게 유치원은 사실 가나 마나 한 장소였다. 전직 흉부외과 교수가 유치원에서 대체 무엇을 배운단 말인가.

    무엇보다 유치원에 다니는 게 싫었던 이유.

    그것은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내 유치원비가 부담스럽다는 이유에서였다.

    “유치원 가서 좋은 친구들도 많이 만나고 선생님한테 글도 배우면 좋잖아? 벌써부터 신나지 않니?”

    “그렇지만 유치원 다니는 거 비싸잖아요.”

    “믿음아, 그런 소리는 대체 어디서 들었어?”

    어머니의 눈초리가 가늘어졌다.

    “옆집 아줌마가 하는 말 들었어요. 유치원 다니는 데 돈 많이 필요하다고 했어요.”

    어머니의 기습 질문을 나는 아마추어 탁구 선수의 서브처럼 가볍게 받아넘겼다.

    전생에 비해 내 화술은 놀라울 정도로 늘었다.

    하얀 거짓말도 적당히 할 줄 알았고, 당황스런 질문은 손쉽게 받아쳤으며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똑 부러지게 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느냐고?

    말을 못 하던, 아니 안 하던 시기가 독이 아닌 약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의식을 가진 채 아이로 살다 보니 상대방의 미세한 표정 변화로 감정을 읽는 법.

    상대에게 사랑을 받는 법.

    상대를 설득하는 법을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1살부터 6살까지 살아왔던 시간이 마냥 시간 낭비는 아니었던 셈이다.

    “엄마가 보기에 믿음이는 특별한 아이야. 그러니까 특별하게 유치원을 다녀야 해. 알았지?”

    “…네.”

    어머니의 고집을 꺾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유치원을 가는 것이 효도라면 유치원에 가는 것이 마땅했다.

    유치원을 가는 것이 어머니의 행복이라면 유치원에 가는 것이 마땅했다.

    나는 앞으로도 마땅히 해야 하는 일들을 해 나갈 것이다.

    전생에서 마땅치 않았던 일들은 영민하게 피해 가면서.

    터벅터벅.

    어머니의 손을 꼭 붙잡고 등원길에 올랐다.

    ‘이렇게 삶의 궤적이 바뀔 줄이야.’

    내 기억에 따르면, 과거의 나는 유치원을 다니지 않았다.

    어머니가 교통사고를 당한 후 간호원을 그만두면서 집안 형편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미세하지만 확실하게 상황은 변하고 있었다. 물론 좋은 쪽으로.

    “안녕하세요. 믿음이 어머님. 우리 믿음이 왔구나.”

    유치원 현관에 들어서자 유치원 선생이 반갑게 우리를 맞아 주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나는 허리를 숙여 배꼽 인사를 했다.

    “인사성도 밝네. 믿음이 어머니 등원 신청할 때도 말씀드렸지만, 믿음이는 정말 인상이 좋은 것 같아요.”

    “호호호. 빈말이라도 기분이 좋네요.”

    “어머머, 빈말이라니요. 진심인데.”

    유치원 선생의 말은 빈말이 아니라 진심일 것이다.

    나는 한 살 때부터 부모님께 효도하려고 얼마나 웃어 댔는지 모른다.

    그 웃음으로 인해 인상이 선하고 환하게 바뀌어 버렸다.

    “믿음아, 엄마 갈게. 이따가 아빠가 데리러 올 거야. 선생님 속 썩이면 안 된다?”

    “네, 잘 다녀오세요.”

    어머니와 헤어진 나는 유치원에 발을 내디뎠다.

    나름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 * *

    하원 시간에 유치원을 뒤흔들 대사건이 벌어지기 전까지 내 일과는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이미 초·중·고를 거쳐 의대를 정복하고 흉부외과의로 일했던 나였다.

    6살짜리 꼬맹이들과의 생활이 즐거우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등원 직후, 유치원은 살짝 난장판이었다.

    “으에에에엥!”

    “엄마아아아~.”

    부모님과 헤어진 아이들이 울음보를 터뜨려서다. 한 아이가 울면 옆에 있는 아이가 따라 우는 진풍경도 연출되었다.

    교사들이 간신히 아이들의 울음보를 진정시키면서 본격적인 일과가 시작되었다.

    꼬까옷을 입은 원생들은 대열을 맞춰 서서 교사들을 따라 간단한 체조를 했다.

    그다음 신규 원아 소개.

    글 배우기와 그림책 읽기 등의 수업을 받았다.

    나는 겉으로 수업을 성실하게 따랐지만, 속으로는 딴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 흥미를 끌려면 최소한 대형 병원의 컨퍼런스 정도는 되어야 했다.

    두 시간의 수업이 끝난 뒤 모처럼 찾아온 자유 시간.

    나는 아이들과 거리를 둔 채 창가에 서 있었다. 유치원 마당에서 기르는 푸릇푸릇한 화초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속세를 떠난 스님처럼.

    “너, 나랑 놀래?”

    낯선 목소리에 내 상념이 깨졌다.

    고개를 돌리자, 예쁘장한 여자아이가 등 뒤에 서 있었다. 명찰에 적힌 이름은 김지원이었다.

    “난 혼자 있고 싶어.”

    “에이, 거짓말. 처음 와서 어색해서 그런 거잖아. 내가 같이 놀아 줄게. 소꿉놀이하자.”

    김지원은 내 소매를 억지로 끌다시피 해서 바닥에 앉혔다. 그러고는 근처에 있던 소꿉놀이 세트를 펼쳐 놓았다.

    “난 혼자 있고 싶다니까?”

    “…….”

    내가 단호하게 거절하자, 김지원의 눈망울이 그렁그렁해졌다.

    한바탕 울면 시끄러워질 게 분명했다.

    등원 첫째 날에 나는 졸지에 김지원을 울린 아이로 낙인찍힐 테고. 귀찮더라도 일단 장단을 맞춰 줘야 할 듯싶었다.

    내용물이야 흉부외과의라도 어쨌든 무늬는 유치원생인 나니까.

    “알았어. 하면 되잖아.”

    “히히. 의사 놀이부터 할까? 내가 의사할 테니까 네가 환자 해.”

    김지원의 눈물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이 어린 녀석이 벌써부터 깜찍한 연기를 펼쳤던 건가.

    “그래. 내가 환자 할게.”

    나는 속은 셈치고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웠다. 의사보다 환자는 딱히 할 게 없었으므로 나도 환자가 하고 싶었다.

    “어디가 아프세요?”

    “가슴이 아파요.”

    “기다리세요.”

    김지원이 플라스틱 청진기를 내 가슴에 대었다.

    진지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는 김지원 때문에 당장이라도 웃음보가 터질 것 같았다.

    “선생님, 저 왜 아파요?”

    나의 질문에 김지원이 한참 고민하다가 입을 떼었다.

    “편식을 해서 그래요. 앞으로 야채를 골고루 먹으세요. 야채를 먹으면 몸이 좋아져요.”

    “선생님은 야채 잘 드세요?”

    “선생님은 건강해서 야채를 안 먹어도 돼요.”

    김지원의 대답은 과연 또래답게 엉뚱했다.

    “선생님, 저 배가 아픈데요?”

    “그건 간단해요. 엄마한테 가서 배를 만져 달라고 하세요. 엄마 손이 약손이에요.”

    크으, 이런 명의를 다 봤나!

    진료면 진료, 치료면 치료.

    김지원은 모든 과목에 능통한 천재 의사였다.

    내가 눈도 아프다고 하자 김지원은 호호 입김을 불어넣으며 또다시 신의(神醫)의 솜씨를 뽐냈다.

    그런데 그런 우리를 고깝게 바라보고 있던 녀석이 있었으니…….

    “야, 너 지원이랑 놀지 마.”

    덩치와 머리가 나보다 한 체급은 큰 녀석이 나와 김지원 사이에 껴들었다.

    이름은 손승우였다.

    우리 둘이 깨소금을 볶는 게 영 아니꼬웠던 모양이다.

    “너 왜 껴들어? 난 믿음이랑 놀고 싶은데.”

    나 대신 김지원이 나섰다.

    “쟤랑 많이 놀았잖아. 이제 나랑 놀자. 나도 너랑 놀고 싶어.”

    “싫어. 넌 너무 무서워.”

    김지원의 거절에 상처를 받은 손승우가 나를 노려보았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하는 격이었다.

    “야, 다 너 때문이잖아!”

    손승우는 성큼성큼 다가와 내 어깨를 떠밀려고 했다.

    물론 내가 그대로 당할 리가 없었다.

    당해 주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어머니가 마련한 소중한 돈으로 다니게 된 유치원이 아닌가.

    그런 유치원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것은 절대 사양이었다.

    나는 몸을 살짝 옆으로 틀어 손승우의 손길을 피했다.

    그리고 손승우의 발목을 슬쩍 걷어찼다.

    쿵!

    “으아아아아앙!”

    김지원과 놀지 못하는 서러움에다 넘어지면서 생긴 통증까지 겹치면서 손승우는 모기처럼 앵앵 울어 댔다.

    “무슨 일이니?”

    다급하게 다가온 유치원 교사에게 나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얘가 혼자 넘어졌대요.”

    * * *

    하원이 가까워진 시각.

    나는 소꿉놀이 이후 단짝이 되어 버린 명의 김지원 선생과 간식을 먹고 있었다.

    간식은 단팥빵과 우유, 젤리였다.

    잠시 후 간식 시간이 끝나면서 아이들이 졸린 닭처럼 고개를 꾸벅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장 평화로울 때가 가장 위험한 때였다.

    고요한 유치원에 예기치 못한 거대한 파도가 덮쳐 왔다.

    “선생님! 선생님! 승우가 많이 아픈가 봐요. 여기요!”

    화장실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외침.

    나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화장실 쪽을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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