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제1장 응애 (4)
드르르륵! 쾅!
헌책방의 셔터가 내려가는 소리가 마치 천둥소리처럼 요란했다.
아버지는 발광하는 나를 품에 안은 채 서둘러 택시에 올라탔다. 아버지의 불안한 눈동자는 아까부터 내게서 떠날 줄을 몰랐다.
“믿음아, 조금만 기다려. 아빠가 병원 데려다줄게.”
아버지는 내게 말하는 게 아니었다.
스스로를 안심시키기 위해 말하고 있었다.
나를 걱정하는 아버지가 안쓰러웠지만, 지금은 이 방법뿐이었다.
지금으로부터 20분 전.
나는 미친 듯이 난리법석을 떨어 댔다.
내 귀가 아플 정도로 울어 댔고, 팔다리를 마치 경련하듯 마구 흔들어 댔다. 심지어 한 시간 전에 먹은 분유까지 고통스럽게 게워 냈다.
그런 내게 아버지는 속수무책이었다.
나를 어르고 달래 보았지만, 감당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자식을 이기는 부모는 많지 않다.
하물며 그 자식이 아픈 자식이라면 부모는 처음부터 지고 들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응. 응.”
-…….
“알았어. 지금 당장 갈게.”
아버지는 결국 간호원인 어머니에게 SOS를 청했다.
어머니는 빨리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으로 오라고 말했고.
“기사님, 애가 있는데 담배 좀 꺼주시겠어요? 부탁드립니다.”
“네네. 그럽시다.”
아버지의 지적에 택시기사는 피우고 있던 담배꽁초를 도로에 버렸다.
이때만 해도 버스, 택시, 식당, 가정집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흡연을 하고, 병원에도 흡연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을 정도로 담배에 너그러운 시기였다.
‘일단 이 정도만 할까?’
일단 택시에 탔으므로 나는 더 이상 크게 소란을 피우진 않았다.
대신 국민 배우급 고통 연기를 선보였다.
[나 지금 너무 아파 죽을 것 같아요.]
그 말을 찡그린 눈썹과 좁아진 미간, 앙다문 입술로 대신 표현했다.
아픈 척을 진지하고 꾸준하게 하다 보니 진짜 아픈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설령 진짜로 아픈들 어떠랴.
내가 아파서라도 어머니가 무사하고 건강할 수만 있다면.
아버지의 품에 안긴 나는 과거 속 기억 한 자락을 회상해 보았다.
전생대로라면 정시에 퇴근한 어머니는 버스를 타고 퇴근한다.
그런데 퇴근길에 탄 버스가 마주 오던 버스와 충돌하면서 어머니는 손목과 발목을 크게 다친다.
그 후유증으로 영영 간호원 일을 그만두게 되고 말이다.
-엄마는 왜 병원 일을 그만뒀어요?
전생에 나는 어머니에게 불쑥 그렇게 물은 적이 있었다. 어머니는 촉촉하게 젖은 눈가로 이렇게 대답해 주셨다.
-네가 한 살 무렵, 엄마가 교통사고를 당했단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그날이 바로 엄마 생일이었단다.
그러니까 환생해서 한 살로 다시 살아가는 내가 막고 싶은 건 어머니의 교통사고였다.
어머니의 교통사고는 우리 가족이 앞으로 겪을 불행의 전주곡과 같은 것으로, 그 후부터 우리 세 가족의 인생은 꼬여만 갔다.
나는 우리 가족의 새 인생을 첫 단추부터 제대로 꿰매고 싶었다.
‘계획대로 잘되어야 할 텐데…….’
나는 초조한 마음에 손가락을 입에 물었다.
「일부러 심하게 아픈 척을 한다.
어머니의 병원으로 진료를 보러 간다. 어머니는 내 진료가 끝날 때까지 나를 기다릴 테니 정시에 퇴근하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교통사고를 피한다.」
이것은 젖먹이인 내가 계획하고 행동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교통사고 대비책이었다.
지난 며칠간 가뜩이나 부족한 뇌세포를 쥐어짜 내어 떠올린 작전이었다.
인생이란 계획대로 되지 않는 법이라지만, 이번에는 제발 계획대로 잘 풀리기를 바라는 수밖에…….
“여기 있습니다.”
택시비를 건넨 아버지가 택시를 박차고 내렸다.
어머니가 근무하는 창송 병원으로 뛰어 들어갔다.
“아이가 많이 아픕니다. 열도 있고 먹은 것도 막 토했어요.”
“네, 접수해 드릴 게요. 아이 주민번호 말씀해 주세요.”
접수를 마친 뒤 아버지와 나는 응급실 전용 대기실로 들어갔다.
전직 흉부외과의답게 병원을 훑는 내 눈은 어느새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먼 미래를 경험하고 온 내게 80년대의 병원은 한마디로 구식이었다.
병원 인테리어랑 가구부터 촌스러웠다.
병원 벽면은 울퉁불퉁한 시멘트에 하얀 페인트칠을 한 것 같았다. 대기실 의자는 플라스틱인 데다 등받이가 허리 중간까지밖에 오지 않아 불편해 보였다.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들은 마치 고라니처럼 층계를 겅중겅중 뛰어다녔다.
EMR(전자의무기록)에 E자도 없던 시절.
차트와 엑스레이 검사지를 수동으로 나르는 건 인턴들의 몫이었다.
선배 의사 세대들이 보낸 병원 생활을 생생하게 목격한 나는 순간 안쓰러움을 느꼈다.
‘나 때는…….’이 안 나올 수가 없는 구조랄까.
“믿음이 괜찮아?”
간호원 복장을 한 어머니가 급하게 응급실로 내려왔다.
내 이마에 손을 얹고 내 몸 상태를 살폈다. 하지만 어머니를 보고 안심한 건 오히려 나였다.
어머니의 교통사고 예방 작전이 안전한 궤도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현재 시간은 오후 3시 55분.
각종 검사를 받고 검사 결과를 확인하다 보면, 어머니의 퇴근 시간 4시는 가볍게 넘길 수 있을 듯했다.
“택시 타고 나서부터는 좀 얌전해지더라. 그 전에는 말도 못 했어. 울고 버둥거리고 토하기까지 했다니까?”
“정말? 쯧쯧. 말도 못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어머니가 내 팔다리를 주물러 주며 말을 이었다.
“괜찮아졌다고 해도 진료는 봐야 해. 상태가 일시적으로 좋아지는 경우도 많거든.”
“안 그래도 응급실 접수하고 대기 중이야.”
“이믿음 환자, 응급실로 들어오세요.”
때마침 응급실 간호원의 부름이 있었다.
그제야 한시름을 던 나는 부모님과 함께 응급실 안쪽으로 들어갔다.
원하는 목적을 달성했기에 더 이상 난리법석을 떨 필요가 없었다. 나는 다시 세상 얌전한 아이로 돌아갔다.
“특이한 점은 안 보이는데요? 제일 의심되는 건 감기인데, 열도 없고 코도 멀쩡하고. 소화기계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응급의학의는 문진을 하고 청진기를 사용하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부모님을 향한 그의 눈빛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저기요? 아이가 너무 멀쩡한데요?
본의 아니게 아버지만 바보가 되어 버린 꼴이었다.
[죄송해요. 아버지. 제가 왜 이렇게 소란을 피웠는지는 금방 아시게 될 겁니다.]
꾀병이었기에 이어진 피검사와 소변검사 결과에서도 이상 징후가 나타날 리 만무했다.
우리 가족은 고작 30분 만에 주사는커녕 약 처방조차 받지 못한 채 병원을 나오게 되었다.
“진짜 이상하네. 나랑 있을 때는 진짜 숨넘어갈 것처럼 심하게 울었는데.”
아버지가 억울하고 미련이 남은 말투로 말했다.
“괜찮아. 당신 탓하는 사람 아무도 없으니까.”
“그래. 액땜했다고 치지 뭐. 믿음이만 건강하면 아무렴 상관없지. 그렇지? 믿음아?”
“어음마. 아바.”
나는 부모님을 올려다보며 해맑게 웃었다.
나만 아는 교통사고였지만.
전생에만 있었던 교통사고였지만.
우리 가족에게 닥쳤을 불행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어서 기뻤다.
비록 한 살배기 젖먹이일지라도 간절히 원하고 계획하면 원하는 것을 이루고 운명을 바꿀 수 있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만 해 나간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 않을까.
* * *
“와! 세상에, 믿음아. 이것 봐봐! 아빠가 책방 청소를 다했네? 그것도 바닥에 반질반질 윤이 날 정도로? 오늘은 해가 서쪽에서 떴나?”
책방에 들어선 유희애는 내부를 훑어보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녀의 폭풍 잔소리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책방 청소에 관심이 전혀 없었다.
-먼지가 쌓인다는 건 그만큼 세월이 쌓인다는 뜻이지. 책방에 세월이 쌓인다면 그건 그것대로 고즈넉하고 운치 있지 않겠어?
-으이구, 화상아. 그걸 말이라고 해?
동갑내기 남편이 현학적인 헛소리를 할 때면 그녀는 그에 대한 대답으로 남편의 등을 세차게 후려치곤 했다.
그렇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잔소리를 해도 청소를 전혀 하지 않던 남편이 기특하게 책방 청소를 다 하다니!
별일이 다 있었다.
“으음… 내 생일이라고 특별히 청소한 것 같지는 않은데…….”
“당연히 당신 좋으라고 한 거지.”
“거짓말하지 말고 사실대로 말해 봐. 나라님은 속여도 나는 못 속여.”
유희애는 가느다란 가자미눈으로 남편을 노려봤다.
남편은 금방 멋쩍게 웃으며 이실직고했다.
사실인즉 믿음이를 업고 책방 안을 걷는데 믿음이가 책장 먼지를 손바닥에 묻히고 제 얼굴에도 묻혀서 청소를 결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칫! 아내 말은 개뿔이고 아들 말은 임금 같다, 이거야?”
“하하하. 여보. 과장이 심하네. 어쨌든 책방이 깨끗해졌으니 좋은 거 아니야?”
“아바바바. 엄마마마.”
얌전히 있던 믿음이가 두 팔을 쭉 뻗어 허공을 더듬었다.
그 모습이 꼭 자신과 남편에게 싸우지 말라고 중재를 하는 것 같았다.
“엄마, 아빠 싸우지 말라고? 알았어. 안 싸울게.”
유희애는 빙긋 웃으며 믿음이의 뺨에 입을 맞췄다.
남편에게 믿음이가 아프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는 놀라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폐렴, 수막염, 기관지염, 중이염, 장중첩증 등등.
믿음이에게 일어날 수 있는 온갖 질병의 이름이 떠올라 자신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혹시라도 입원해야 하는 큰 병은 아니겠지?
그런데 다행히 믿음이는 건강하고 무탈했다. 멀쩡한 아들내미를 보고 있자니 팽팽하게 긴장되었던 마음이 느슨해졌다.
“청소하니까 손님들이 깔끔하고 보기 좋다더라. 매상도 어제에 비해서 좋았어.”
“그러니까 내가 진작 하라고 했잖아.”
“이제부터 열심히 할게. 마음씨 너그러운 당신이 봐줘.”
“또 별일은 없었고?”
“병원에 갔던 거 말고, 또 기가 막힌 일이 있었지.”
소설가답게 남편은 그녀의 관심을 확 끌어당기며 썰을 풀기 시작했다.
인근 장원대 의대생이 책방에 와서 의학 서적을 팔고 갔던 사건이었다.
믿음이가 의학 서적을 꽉 붙잡고 안 놔줬다나 뭐라나.
“우리 믿음이가 진짜 커서 의사가 될지도 몰라. 자기 자식은 팔불출이라지만, 벌써부터 특출 난 구석이 있잖아.”
“나도 그런 느낌을 받긴 했어. 믿음이가 의사가 되면 좋긴 하겠다. 정말.”
남편과 결혼하기 위해 그녀는 부모님을 등졌다.
부모님의 동의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마음이 이끄는 대로 배필을 선택하는 것이 그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남편과의 신혼 생활은 대체적으로 행복했다.
믿음이가 태어난 이후로는 더 행복했다.
그렇다고 부모님께 죄스러운 마음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그것은 목에 박힌 가시처럼 쉽게 빼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뭔가 명분이 있으면 좋을 텐데.
-세 가족이 화목하고 성공한 모습으로 부모님을 보란 듯이 찾아가면 좋을 텐데.
믿음이가 의사가 된다면 부모님을 찾아갈 떳떳한 명분이 생긴다고 유희애는 생각했다.
하지만 떠오르는 그 생각들을 금방 폐기 처분했다.
부모의 욕심으로 아이를 기르는 것은 죄였다.
“그래도 벌써부터 믿음이한테 부담을 주면 안 돼. 그건 어디까지나 우리의 욕심일 뿐이야. 난 믿음이가 건강하고 씩씩하게만 자라 준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어.”
“나도 그냥 해 본 소리야. 글깨나 배운 사람이 자기 욕심을 자식에게 투영하다니, 꼴불견이지.”
그녀의 말에 남편도 맞장구를 쳤다.
때로는 친구 같고, 때로는 동생 같고, 때로는 오빠 같은 내 사람.
유희애는 그런 남편이 좋았다.
“방에 가서 TV 보고 있어. 내가 저녁상 금방 준비할게. 미역국에 불고기까지 완벽하게 준비해 놨으니까 기대하라고.”
“응. 고마워.”
“생일 축하해. 여보. 당신이 있어서 난 정말 행복해.”
남편은 그녀의 뺨에 입을 맞췄다.
그녀의 얼굴이 소녀처럼 붉어졌다.
믿음이를 품에 안은 채 유희애는 TV를 시청했다. 그런데 때마침 흘러나오는 뉴스에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여보, 이리 좀 와 봐. 빨리!”
유희애는 다급하게 남편을 불렀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놀랐는지 남편은 국자를 손에 든 채 방으로 들어왔다.
“저거 봐봐.”
유희애의 손가락이 TV를 가리켰다.
그녀의 손가락을 뒤쫓던 남편의 팔다리가 이내 통나무처럼 빳빳하게 굳었다.
-금일 오후 4시 10분경, 도로를 달리고 있던 시내버스 342번이 마주 오던 341번 버스와 크게 충돌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이 사고로 운전기사 김 씨와 승객 20여 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당했습니다. 사고의 원인은 341번 버스 운전자의 졸음운전…….
말문을 잃은 남편이 멍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도 남편과 같은 반응이었다.
342번 버스.
유희애의 통근 버스.
그러니까 오늘 유희애가 정상적으로 퇴근을 했다면 이 342번 버스를 탔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교통사고를 당해서 크게 다쳤을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갔던 시간이 지금에 와서야 공포로 물들어 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