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제1장 응애 (3)
‘그래도 이건 심각하네. 진짜.’
포대기에 싸여 아버지의 등에 업혀 있던 나는 문득 미간을 찌푸렸다.
책방은 온통 먼지투성이였다.
손가락으로 책장을 살짝 찍어 봤더니 손가락 끝에 두터운 먼지가 묻어났다.
이 정도면 최소 몇 달이 지나도록 청소 한 번도 안 한 모양이었다.
더러운 건 바닥도 마찬가지였는데, 바닥 곳곳에 검은 때가 지저분하게 껴 있었다.
껌이 왕서방의 점처럼 선명하게 박혀 있는 곳도 있었다.
[주인아저씨는 참 친절하고 책에 대해서도 많이 아는 것 같은데, 책방이 너무 지저분하단 말이지.]
[그러게. 먼지가 많아도 너무 많아. 그래서 난 요즘에 십 분 거리에 있는 다른 책방에 가.]
나는 얼마 전 책방을 찾은 손님들이 아버지 몰래 나눴던 말을 떠올렸다.
그들의 말이 옳았다.
굳이 식당뿐만이 아니라 그 어떤 가게에서도 위생은 중요한 법이니까.
소설가라는 꿈을 좇는 아버지는 현실에 지독하리만큼 무감각한 편이었다.
하지만 꿈도 현실이라는 땅에 단단히 뿌리를 내려야만 이룰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헌책방은 대청소가 필요해 보였다. 아버지가 책을 한 권이라도 더 팔아야 가정에 보탬이 될 테니까.
‘그럼 슬슬 작전을 펼쳐 볼까?’
나는 가볍게 목을 좌우로 까닥거렸다.
한 살배기의 삶에 어느 정도 적응한 시점이었다.
한 살은 말도 못 하고 걷지도 못하고 대소변도 혼자 가릴 수 없지만, 그 나름의 장점이 있었다.
그게 뭐냐고?
특유의 천진난만함과 타고난 관종이라는 점이었다.
‘가자!’
아버지가 나를 업고 책방을 순회하는 동안, 나는 일부러 손바닥으로 책장을 쓸었다.
먼지로 인해 손이 까맣게 더러워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나는 꾀죄죄한 손바닥을 내 얼굴에 마구 문댔다. 마치 구두에 구두약을 바르듯이. 그러고 나서는 사정없이 기침을 했다.
“콜록! 콜록! 콜록!”
“우리 믿음이 왜 그래?”
폐에서부터 끌어올린 요란한 기침에 아버지가 반응을 보였다.
“뭐야! 믿음아, 얼굴이 왜 그래?”
아버지는 놀란 부엉이처럼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돌아다보았다.
“콜록! 콜록!”
나는 다시 한번 혼신의 힘을 다해 기침을 했다. 아버지는 그제야 심상치 않은 기색을 느낀 모양이었다.
방으로 돌아가 포대기를 풀고 물수건으로 내 얼굴과 손바닥을 깨끗하게 닦아 주었다.
“아빠가 잘못했구나. 소설을 쓰느라고 책방 관리에 너무 소홀했어. 아빠 때문에 우리 믿음이가 먼지투성이가 되어 버렸구나.”
아버지는 착잡한 목소리로 말했고, 나는 그게 맞다는 듯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 글 쓰시는 것도 좋은데 책방 청소는 꾸준히 하셔야죠. 안 그러면 책방 손님이 계속 줄어들 겁니다.’
나의 연기가 적중한 덕분일까.
“믿음이가 기침 안 하게 아빠가 책방 청소 좀 할게. 코 쉬고 있으렴.”
아버지는 기꺼이 소매를 걷어붙이고 방을 나섰다.
탁. 탁. 탁.
먼지떨이로 책장과 책의 먼지를 털어 내는 소리.
쓱. 쓱. 쓱.
경쾌하고 산뜻한 빗질 소리가 책방 안에 울려 퍼졌다.
어쩐지 내 마음도 깨끗하게 청소되는 기분이었다.
임무를 완수해서 그런지 온몸이 나른해지면서 정신이 몽롱해졌다.
나는 바로 꿈나라로 여행을 떠났다.
* * *
“믿음아, 어때? 깔끔하지?”
잠에서 깬 지 얼마 안 된 나는 아버지의 품속에 안겨 있었다.
당신이 깨끗하게 청소한 것을 자랑하고 싶었던지 아버지는 내게 책방 이곳저곳을 보여 주었다.
각 잡고 청소를 하셨을까.
과연 내가 알던 책방이 맞나 싶을 정도로 책방이 말끔해졌다.
책장 위를 손바닥으로 훑고 책을 꼼꼼히 만져 봐도 더 이상 먼지는 묻어나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노끈으로 묶인 책들을 정돈해 놓으니 통로도 확 트였다.
책방이 전에 비해 배로 넓어졌다.
그래, 아무리 헌책방이라도 최소한 이 정도 관리는 해 줘야지.
소설가인 아버지는 책에 조예가 깊고 사람 관리도 잘하는 편이니.
청결에만 좀 더 신경을 쓴다면, 최소한 책방 수익이 떨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제야 좀 마음이 놓였다.
“이젠 믿음이가 책방에서 기침 안 하게 아빠가 말끔하게 관리할 거야. 너도 좋지?”
“아바바바!”
나는 방긋 웃으며 손을 뻗어 아버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참 잘했어요, 라는 의미였다.
“아빠, 잘했어요?”
“아바바바!”
“우리 믿음이 덕분에 아빠가 청소를 다 했네. 이따가 네 엄마가 뭐라고 하겠다. 엄마가 청소하랄 땐 귓등으로도 안 듣더니 믿음이가 청소하라니까 잽싸게 청소했다고.”
아버지는 유쾌하게 웃었다.
땡~~.
때마침 도어벨이 울리고, 두 명의 청년이 책방으로 들어왔다.
청년들의 손에는 책으로 빵빵해진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어서 와요. 장원대학교 의대생들이죠?”
아버지는 너그러운 미소로 손님들을 맞았다.
“어? 저희를 기억하시네요?”
“저번에 책 사러 왔을 때 대화 나눴던 거 기억하니까요.”
“아, 그냥 넘어가실 줄 알았는데 기억력이 좋으시네요. 근데 책방이 전보다 엄청 깔끔해졌네요?”
“정말이네. 저번에 왔을 때보다 훨씬 넓어 보이고.”
안경 낀 청년이 책방을 훑어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옆에 있던 수수깡처럼 빼빼 마른 청년도 맞장구를 쳤다.
청소를 한 건 아버지지만, 괜히 내가 다 뿌듯해졌다.
“큰맘 먹고 청소 한 번 했죠. 학생들, 책 팔러 왔어요?”
“아. 네. 여기 있는 책들인데, 혹시 팔 수 있을까 해서요.”
장원대 의대생들, 그러니까 미래의 대선배들이 아버지에게 펼쳐 놓은 책은 의학 서적이었다.
그러니까 일반인이 보기에는 괴상망측한 의학 용어가 난무하고 인체 단면도가 그려진 책이라는 뜻이다.
아기의 몸으로 의학 서적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해졌다.
잠들어 있던 흉부외과의의 피가 들끓기도 했다.
“선배들한테 물려받은 책인데 당장 필요한 것도 아니고… 급하게 돈이 필요해서…….”
안경을 쓴 청년이 변명하듯 말했다. 하지만 책을 훑어보는 아버지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아버지가 무슨 대답을 할지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미안한데…….’
“미안한데 전공 서적은 우리가 취급을 잘 안 해요. 잘 팔리지도 않고 학생들이 공부하면서 밑줄 같은 것도 그어 놓고 그래서 상태가 안 좋은 편이라서.”
“하긴, 그렇죠? 그냥 여쭤만 보려고 왔어요.”
청년들이 머쓱한 표정으로 물러서려는 바로 그때였다. 나는 솜뭉치 같은 손으로 의학 서적이 담긴 봉지를 꽉 쥐었다.
당장 책을 읽을 수 있는 것도 아니건만 책이 탐났다.
흉부외과의로 살아가면서 다른 과목에 대한 기초 지식을 까맣게 잊었으니까.
흉부외과의로서 폐와 심장이 중요한다고 한들 사람이 심장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건 아니다.
컨설팅(타과 협진)을 낼 때, 그 과에 대한 사전 지식이 있으면 좀 더 꼼꼼한 치료를 할 수 있었다.
“믿음아, 이러면 곤란해. 형들 가 봐야 돼.”
“아바바바바!”
절대로 내 손에서 의학 서적을 빼앗아 갈 수 없다는 일념으로 나는 버텼다.
“우리 착한 믿음이가 이상한 데서 고집을 부리네? 손 놓으렴.”
“아바바바바.”
나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영민한 의대생들이 지원사격에 나섰다.
“아드님이 커서 의사가 되고 싶은 모양인데요? 안 그래?”
“그러게. 보통 영아들이 이렇게까지 떼를 쓰는 경우는 없던데. 고집이 센 걸 보니까 딱 외과의 스타일인걸?”
의대생들이 바람을 넣자, 아버지도 귀가 솔깃해진 모양이었다.
-의대생이 전공서적을 팔러 왔는데, 젖먹이 아이가 기를 쓰고 책을 놓지 않는다?
-혹시 이건 우리 아들이 의사가 될 운명 같은 건가?
소설가인 아버지는 아마 이런 낭만적인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아니, 굳이 아버지가 아니더라도 세상의 모든 부모는 어린 자식의 사소한 행동에서 무언가 계시를 읽어 내는 법이었다.
‘이건 기회다!’
그런 아버지의 생각에 확신을 심어 주기 위해 나는 책이 담긴 봉지를 더욱 힘껏 붙들었다.
“으사. 으사.”
혀 짧은 소리로 의사를 발음했다.
그러자 의대생들이 ‘오오오!’ 하는 감탄사를 내뱉었고, 아버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저기요. 학생들.”
“네.”
“원래 전공 서적은 취급 안 하는데, 학생들 거는 특별히 살게요.”
“정말요? 감사합니다.”
“제가 봤을 때 아드님은 진짜 커서 훌륭한 의사가 될 거예요. 장담해요.”
의대생들은 넉넉하게 용돈을 챙겨서 떠났고, 의학 전공 서적은 책방에 남았다.
아버지는 아들이 의사가 될지도 모른다는 장밋빛 희망에 부풀었고, 나는 의학 서적을 손에 넣어서 기뻤다.
이것이야말로 모두가 꿈꾸는 해피엔딩이 아닐까.
* * *
의대생들이 떠난 뒤 아버지는 의학 전공 서적을 계산대 근처에 보기 좋게 정렬해 놓았다.
나를 위해 구입한 책이니 아마 팔릴 일은 없을 것이다.
걸어 다니고 말을 하고 글을 읽을 수 있을 때가 되면 저 책들을 정독하리라, 나는 마음먹었다.
타다닥.
타다닥.
아버지가 타자기를 두드리는 소리가 책방에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손님이 없자, 아버지는 본격적인 소설 집필에 매진했다.
현실을 떠나 또 다른 세상을 창조하는 아버지의 눈빛은 진지하고 멋있었다.
내가 사람의 몸을 치료하는 사람이었다면, 아버지는 사람의 마음을 치료하는 사람이었다.
아버지가 붓을 꺾지 않도록 앞으로 나는 최선을 다할 것이다.
쪽방에서 가게 안으로 이동한 요람에 누워 있던 나는 가만히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젖먹이로 환생한 지 어언 일주일째.
돌이켜 보면, 아직도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이 영 실감이 나지 않았다.
마치 장자몽처럼 전생의 내가 진짜 나인지 지금의 내가 진짜 나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하지만 양쪽을 구분하는 건 어쩌면 큰 의미가 없을지 몰랐다.
내가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고 내 가족이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노력할 것.
오로지 그것만을 생각하기로 했다.
‘어쩔 수 없나?’
마음 같아서야 당장 전공 서적을 펼쳐 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에 나는 다시 한번 전생을 복습하기 시작했다.
돌이켜 보면, 누구의 인생이든 삶의 변곡점이 있기 마련이다.
아버지의 경우는 소설을 포기한 것이었고.
어머니의 경우는 아버지와의 결혼으로 외가와 등을 진 것이었다.
이번 생의 나는 궤도를 이탈했던 내 삶을 원래대로 돌려놓을 뿐 아니라 부모님의 삶도 제 궤도에 올려놓을 작정이었다.
가족이란 마주 보고 걷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곳을 보고 걷는 것이니까.
앞으로 벌어질 일을 손바닥 보듯이 훤히 알고 있기에 그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잘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충만했고 말이다.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절호의 기회를 놓칠 정도로 나는 머저리가 아니다.
“우리 믿음이 뭐 하니?”
원고 작업을 하던 아버지가 다가와 요람 위로 얼굴을 내밀었다.
“아바바바바.”
“그래. 아빠야. 믿음이 정말 커서 의사 될 거니?”
“응응응. 으사. 으사.”
내가 재롱을 떨자 아버지가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
이렇게 잘 웃던 아버지가 전생에는 늘 울상이었던 게 믿기지 않을 만큼.
“그래. 아빠도 믿음이가 의사가 됐으면 좋겠다. 믿음이가 의사가 되면 아빠도 외할머니하고 외할아버지한테 인정받을 수 있을 텐데 말이야.”
아버지의 목소리에서 희미하게 서글픔이 묻어났다. 실제로 전생의 아버지는 심장병으로 돌아가실 때까지 외가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현실 능력 빵점인 글쟁이.
-남의 집 귀한 딸을 데려다가 고생만 시키는 못난 놈.
아버지를 향한 외가의 평가는 딱 그 정도였다.
박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고지식한 외가 어른들의 시점에서 보면 백 퍼센트 틀린 말도 아니었다.
어머니가 자라 온 환경과 어머니가 아버지와 지내고 있는 환경은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였으니까.
아버지의 말대로 내가 의사가 된다면, 아버지는 외가에 큰소리를 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분명 그렇게 될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외가를 위해서라도,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아바바바, 으사. 으사.”
“믿음이, 그렇게 의사가 되고 싶어요?”
“으응. 응. 응.”
아버지에게 믿음을 심어 주던 나는 이내 벽시계를 응시했다.
오늘 날짜는 9월 17일.
현재 시간 오후 3시 40분.
단란한 우리 세 가족의 인생에 처음으로 거친 파도가 몰아치기 직전이었다.
오늘 아침부터 나는 오로지 이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코앞까지 닥칠 비극을 막지 못한다면, 내가 환생한 의미가 없었다.
어쩌면 오늘 벌어질 사건은 환생한 나의 능력을 시험해 보는 데뷔전이 될지도 모르겠다.
“흐으음. 흐으으음.”
목청을 가다듬고 목을 좌우로 까닥거렸다.
환생 후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던 울음을, 나는 그동안 삼켜 왔던 울음을 단번에 토해 냈다.
“응애! 응애! 응애!”
“믿… 믿음아, 갑자기 왜 그래?”
내 우렁찬 울음에 아버지는 발을 동동 구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환생한 후 나는 단 한 번도 울지 않았으니까.
아버지는 황급히 내 기저귀부터 살폈는데, 기저귀는 물론 깔끔했다. 내가 똥오줌을 갈겨서 우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배고파?”
아버지는 분유가 담긴 젖병을 내밀었지만, 나는 짜증을 내며 젖병을 매몰차게 쳐 버렸다.
당연하게도 배가 고파서 우는 게 아니었다.
내 울음은 응급 상황을 알리는 일종의 사이렌이었다.
오늘은 어머니의 생신이자 어머니가 끔찍한 교통사고를 당하는 날이기도 했다.
나는 지금부터 이 교통사고를 막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