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제1장 응애 (2)
트럭에 온몸이 으깨져 죽었던 내가 한 살 무렵으로 돌아오다니…….
이게 대체 무슨 조화일까.
나는 이 상황이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워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하지만 처한 현실을 받아들이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왜냐고?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 말고는 별다른 방법이 전혀 없었으니까.
주름 없이 팽팽한 얼굴의 부모님.
허름하지만 단란한 신혼집.
기저귀를 차고 요람에 누운 나.
철학자 데카르트처럼 집요하게 주변 상황과 감각을 의심하고 또 의심해도 가리키는 결론은 단 하나뿐이었다.
나는 한 살 무렵으로 돌아왔다.
그것도 지난 사십 년 간의 자아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로.
내 어리석었던, 그리고 궤도를 벗어나 어긋났던 삶을 되돌리기 위해 의술의 신께서 한 번 더 기회를 주신 걸까.
불쑥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회개의 눈물인지 참회의 눈물인지 감격의 눈물인지는 나도 알 수가 없었다.
어쩌면 전부 다인지도 몰랐다.
‘예전과는 다를 거야. 분명 예전과는…….’
나는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앞으로 펼쳐 갈 나의 인생은 지난 삶과는 180도로 다를 거라고.
지금의 이 감격과 감사한 마음을 평생 가슴에, 뼈에, 심장에 새겨 두겠다고.
다시 태어난 나의 삶은 전생과 같은 순서를 절대 밟아선 안 됐다.
“우리 믿음이 맘마 먹을까? 어머, 어디 아프니? 울고 있잖아.”
어머니는 요람에 누운 나를 확인하곤 화들짝 놀랐다.
손가락으로 내 눈물을 훔친 뒤 품에 꼭 안았다.
거의 사십 년 만에 안기는 어머니의 품은 따스하고 포근했다.
전생부터 담아 온 세월의 애환이 사르르 녹아내릴 정도로.
“보자. 기저귀는 문제없고. 열도 문제없고. 우리 믿음이 배고팠나 보구나?”
어머니는 상의를 들추고 내게 젖을 먹였다.
딱히 뭔가를 먹고 싶은 기분은 아니었지만, 본능적으로 어머니의 젖을 빨았다.
보통의 아이라면 어머니의 젖을 잇몸으로 씹으며 젖을 보채겠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번 생에서는 어머니를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번 생에서 어머니는 행복으로 정신이 없을 정도의 삶을 살아야 했다.
고등학교 시절, 내 방황으로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던 어머니인데…….
모유는 달았다.
괜히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표현이 나온 게 아니었다.
배가 든든하게 부를 때까지 젖을 먹은 나는 어머니를 올려다보았다.
죽기 전에 봤던 어머니와 신혼 시절의 어머니는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
어머니도 이 시절에는 꽃이었다.
‘이번에는 다를 겁니다. 어머니. 제 삶도, 어머니의 삶도.’
나는 속으로 각오를 다졌다.
그 각오가 당장 어머니에게 닿지는 않겠지만, 언젠가는 닿을 것이다.
“믿음이, 젖 먹였어?”
잠시 바깥으로 나갔던 아버지가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아버지.
백 번을 불러도 그리운 이름을 나는 속으로 불러 보았다.
내가 의대 예과 2년을 마쳤을 때 협심증으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
나를 흉부외과의 길로 이끈 아버지.
아버지 역시 이번 생에서는 나 그리고 어머니와 함께 오순도순 오래오래 사셔야 했다.
이는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미래의 사십 년을 머리와 가슴에 새긴 지금의 나라면 충분히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
“응. 오늘은 젖도 얌전하게 먹더라. 전부터 계속 젖꼭지를 씹었는데, 오늘은 안 그러더라고.”
“우리 믿음이가 철들었나 보네?”
“한 살짜리가 철은 무슨?”
아버지의 농담에 어머니가 웃었다.
나도 아이답게 꺄르르 웃었다.
나의 웃음을 확인한 부모님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내가 웃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행복의 깨가 쏟아지는 두 분이었다.
부모님은 벽에 등을 기댄 채 흑백 브라운관 TV를 시청했는데, 나도 힐끔 TV를 보았다.
코미디언 최주일이 취나물을 팍팍 무칠 때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끅끅거리는 소리를 내며 크게 웃었다.
이 시대는 코미디언 최주일이 전성기인 때였다.
나는 몸소 경험했으나 기억은 하지 못하는 시대였다.
‘가만 보자.’
TV에서 시선을 돌린 뒤 골똘히 앞으로의 청사진을 그려 보았다.
어머니에게 닥칠 일.
아버지에게 닥칠 일.
마지막으로 나에게 닥칠 일들을.
초등학교 때 있었던 몇 가지 사건을 빼고는 기억나는 게 없었다.
기억이란, 서랍장에서 필요한 물건을 꺼내듯 쉽게 꺼낼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내 인생의 종착역은 물론 최고의 흉부외과의가 되어 인간쓰레기 강태섭에게 복수하는 것일 테지만, 그것은 아직 먼 훗날의 이야기였다.
그래서 나는 기억의 파편을 긁어모으고 또 긁어모았다.
그리고 그것들을 유년시절부터 학창 시절까지만 오름차순으로 정리해서 가슴에 새겨 두었다.
잊을 수도 없고, 잊어버려서도 안 되는 것들로만.
정리를 마쳤더니 마치 방 청소를 한 것처럼 속이 후련해졌다.
새 삶을 완벽하게 꾸려 나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얻었다.
‘그나저나 지금이 문제인데…….’
나는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성인의 의식을 가진 채 한 살짜리 몸에 갇혀 있으려니 영 좀이 쑤셨다.
도무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젖 먹는 일?
똥오줌을 지리는 일?
그나마 할 수 있는 건 부모님을 볼 때마다 방긋방긋 웃어 주는 일 정도?
‘아니지. 꼭 그렇게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잖아? 한 살에게는 한 살의 길이 있기 마련이니까.’
나는 앙증맞은 주먹을 불끈 쥐고 각오를 다졌다.
한 살짜리가 할 수 있는 효도가 얼마나 대단한지 부모님께 보여 드리자.
* * *
창송 병원 소화기내과 병동은 한산하고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복도를 정처 없이 헤매는 환자도 없었고, 스테이션을 찾아 소란을 피우는 환자도 없었다.
병동 복도 끝에 마련된 흡연실에도 모처럼 사람이 텅 비어 담배 연기가 피어오르지도 않았다.
점심 식사 시간의 병동은 고요했다.
항상 이맘때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막 점심을 먹고 스테이션에 돌아온 유희애는 모처럼의 여유를 만끽했다. 창 너머에서 불어오는 선선한 가을바람을 만끽하는 사치까지 부렸다.
“희애야, 밥 먹었니?”
“네, 선생님. 선생님은 식사 잘하셨어요?”
유희애는 옆자리에 앉은 책임 간호원(이 시대는 간호사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김진희에게 깍듯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럼 잘하고말고. 우리 나이가 되면 일단 잘 먹어야 돼. 한 끼만 부실해도 체력이 딸린다니까? 그건 그렇고, 요새 많이 힘들지?”
“아니요. 딱히 힘든 일은 없어요.”
“괜찮은 척할 필요 없어. 지금이 얼마나 피곤한 시기인데. 누구는 애 안 키워 본 줄 알아?”
김진희가 수다스럽게 말했다.
“안 그래도 간호원 생활이 좀 힘들어? 거기에 젖먹이 애까지 키우려면 등골이 빠지지. 나도 그땐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
“저는 정말 괜찮아요. 선생님.”
유희애는 빙긋 웃었다.
일부러 괜찮은 척을 하는 게 아니라 정말 괜찮아서 그랬다.
자식 자랑은 팔불출이라지만, 믿음이는 정말 타고난 천사였다.
최근 들어 그녀의 속을 썩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젖먹이를 키울 때 제일 힘든 건 아기가 시도 때도 없이 운다는 점이었다.
특히 새벽에 목청껏 울어 대면 머리카락을 마구 쥐어뜯고 싶어진다.
그런데 최근 믿음이는 놀랍게도 울음이라는 것을 잊어버린 듯 굴었다.
젖 주는 시간이 조금 늦어도.
기저귀에 똥오줌을 지려도 믿음이는 결코 울지 않았다.
배가 고프면 영특하게 ‘맘마’라고 옹알이를 했다.
기저귀를 갈아야 할 때면 검지로 기저귀를 쿡쿡 찔러 댔다.
세상에 이런 신사 같은 아이가 또 어디 있을까 싶었다.
거기다 간호원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오면, 어찌나 방긋방긋 잘 웃어 주던지 하루의 스트레스가 훨훨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그녀가 근무시간일 땐 헌책방을 운영하는 남편이 믿음이를 봤는데.
남편도 그런 믿음이가 대견해서 동네방네 자랑을 하고 다녔단다.
“에이, 젖먹이가 안 운다고? 그게 말이나 돼?”
그녀의 설명을 듣고 김진희가 가당치도 않는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진짜예요. 선생님. 제가 왜 선생님께 거짓말을 하겠어요.”
“그래, 그렇다고 치자. 원래 너 때는 자기 자식이 제일 잘나고 제일 예뻐 보이니까.”
“…….”
“오후 차트 좀 정리해 놔. 선생님들이 오더 넣은 거 처리해야 하니까.”
“네, 선생님.”
김진희가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유희애는 기죽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진짜인데 안 믿으시네.”
* * *
한 살로 시작한 환생 일주일 차는 그저 순조롭고 순탄하기만 했다.
그동안 내가 했던 최고의 효도는 울지 않는 것이었다.
배가 고파도 울지 않기.
똥·오줌을 싸도 울지 않기.
부모님이 자는 밤에 울지 않기.
젖먹이를 키울 때 가장 힘든 것이 아이가 시도 때도 없이 우는 것이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울지 않는다고 해서 의사표시를 전혀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배고플 때는 맘마라고 옹알이를 하고
대소변을 봤을 때는 검지로 연신 기저귀를 찌르곤 했다.
나의 효도는 적중했다.
내가 잘 울지 않은 덕분에 부모님은 비교적 수월하게 나를 키웠다.
때때로 젖은 기저귀가 불쾌하긴 했지만, 그 정도는 참을 만했다.
부모님이 나를 보며 짓는 미소에 모든 것이 녹아내렸기에.
젖먹이로 지내는 것 또한 걱정한 것만큼 지루하지는 않았다.
하루 종일 잠에 취해 있었으니까.
의식이 깨어 있을 때 나는 자주 전생을 돌이켜 보았다.
내가 했던 실수와 과오들.
어리석고 멍청했던 판단들과 미숙했던 인간관계들을 반성하고 또 반성했다.
[이번에는 반드시 의대에 수석으로 붙는다.]
[인턴 때 쓸데없이 긴장해서 손을 떨지 않는다.]
[강태섭에게 이용당하지 않고 강태섭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준다.]
[내가 개발한 신수술법으로 나의 공로를 오롯이 인정받는다.]
[착한 놈은 미리 사귀고 나쁜 놈은 미리 쳐낸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뼛속 깊숙이 새겼다.
내가 젖먹이부터 환생한 것은 어쩌면 그런 의도 때문인지도 모른다.
가만히 누워서 네 인생을 꼼꼼하게 복습해 보라는 의술의 신의 배려 말이다.
그 배려 덕분에 나는 전생을 오답노트 삼아 우등생처럼 복습할 수 있었다.
앞으로 펼쳐질 내 인생이 A+가 될 거라는 사실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우리 믿음이, 아빠랑 바람 쐬러 갈까?”
아버지는 요람에 누워 있던 나를 포대기에 싼 뒤 방을 나왔다.
모처럼의 외출에 나도 신이 났다.
방을 나서자마자 종이책들이 내뿜는 특유의 종이향이 내 코끝을 간질였다.
책장에는 낡고 헌책들이 빽빽하게 꽂혀 있었고, 책장에 다 꽂지 못한 책은 노끈에 묶인 채 책방 통로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 무렵의 아버지는 헌책방을 운영하며 틈틈이 글을 썼다.
아버지는 책을 사랑하고 글을 흠모하는 소설가였다.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쯤 모종의 이유로 헌책방을 팔고 펜대를 꺾게 되지만 말이다.
‘참 아까웠는데.’
나는 아버지의 미완성 유작을 나중에 읽어 보았다.
아버지의 친구에게도 원고를 보내 조심스럽게 평가를 부탁드렸다.
[참나. 이렇게 섬세한 글을 중간에 접었단 말이야? 완성만 됐으면 내가 어떻게든 출판해 보는 건데. 아쉽구나, 믿음아. 진짜.]
아버지의 국문학과 동기는 아버지의 유작을 읽고 통곡하고, 또 통곡했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수많은 스티븐 킹 중 하나였던 셈이다.
하지만 내가 환생한 이상, 아버지의 인생은 180도 달라질 것이다.
아버지는 결코 펜대를 꺾지 않을 것이고, 소설가로서 승승장구하게 될 것이다.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나는 일은 더더욱 없을 테고(사실 소설 집필을 그만둔 이유와 심장병은 모종의 상관관계가 존재한다).
아버지는 구경을 시켜 주듯 헌책방 안을 크게 돌았고, 나는 책방 이곳저곳을 내 눈과 가슴에 담아 두었다.
아버지를 지키기 위해서는 아버지가 사랑하는 공간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리 믿음이, 배 안 고프니?”
아버지가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나는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가 신기하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착각인지 몰라도 아빠는 말이야, 믿음이가 아빠 말을 알아듣는 것 같단다. 절대 그럴 리가 없는데 말이지.”
“아바바바!”
나는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아버지를 불렀다.
옹알이치고는 꽤 선명한 발음에 아버지는 감탄한 기색을 보였다.
아버지.
이 정도로 감탄하시면 제가 다 곤란합니다.
앞으로 놀랄 일이 몇 트럭은 더 될 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