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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살부터 의사 생활-1화 (1/257)

1화 제1장 응애 (1)

무언가가 살갗을 간지럽히는 바람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제일 먼저 보이는 건 베이지색 천장과 빙그르르 돌아가는 돌고래 모빌.

그리고 사방이 원목 기둥으로 막힌 요람.

조금 의외의 광경이었다.

의사인 나는 죽음 이후의 삶을 믿지 않았는데, 깨어나고 보니 엄연한 내세가 존재하고 있었다.

감각이 되살아나면서 의식도 점점 또렷해졌다.

그리고 지금 처한 상황에 대해 나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일단 나는 죽었지만 다시 살아났고, 살아난 장소는 지옥이 아니라 천국인 것 같았다.

지옥에 모빌이 있을 리 만무하니까.

만약 지옥에 모빌이 있다고 해도 그 모빌은 돌고래가 아니라 끔찍한 괴물의 형상이었을 것이다.

가만히 누워 회전목마처럼 돌아가는 모빌을 보고 있자니 왠지 나른해졌다.

‘그래도 이 정도면 밥값은 한 건가?’

천국에서 다시 태어났다고 생각하니, 내 인생도 그리 헛되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전생에 나는 흉부외과의였다.

나름의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환자를 정성껏 돌보았다.

흉부외과의로서의 능력이 어땠냐고 물어보면, 부끄럽게도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약간 모자란 놈이었다고.

인턴 때부터 동료나 선배들은 무슨 일이 생기면 나부터 찾았다.

물론 좋은 의미는 아니었다.

[야, 믿음이 이 새끼 어디 갔어? 화장실에서 질질 짜고 있는 거 아니야?]

[이 새끼는 아직까지 폴리(도뇨관)도 제대로 못 꽂네.]

[펑처(천자)할 때 쫄지 말라고 했지? 지훈이처럼 대범하게 확 해 버리라고!]

[야! 처치할 때 병신같이 손 좀 떨지 마. 환자가 불안해하잖아.]

흉부외과에서 내 별명은 거북이 또는 못난이였다.

레지던트가 되고 펠로우가 되고 조·부교수가 되면서 차차 평판은 나아졌지만, 그래도 다른 동기에 비하면 성장이 더딘 편이었다.

‘그나저나 뭔가 좀 이상한데?’

옛 추억에서 간신히 빠져나온 나는 뭔가 위화감을 느끼며 내 몸을 살펴보았다.

우선 머리가 무거웠다.

피부는 백옥처럼 하얗고, 살갗은 비단처럼 부드러웠다.

손가락은 앙증맞았으며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내가 기저귀를 차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세상에 맙소사, 기저귀라니!

사십대 중반의 중년이었던 내가 졸지에 한 살 남짓한 영아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 충격적인 사실에 당황했지만, 외과의답게 금방 감정을 추슬렀다.

천국에서는 아기부터 인생을 다시 시작하는 모양이다.

천국에서까지 굳이 기저귀를 차야 하는지는 의문이었지만 어쩌랴.

이미 끔찍하게 죽어 버린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연결할 수 있는 고리는 그 정도밖에 없는 것을.

조금 있으면 천사가 나타나서 무슨 설명이라도 해 주지 않을까.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얌전하게 누워 있는 것뿐이라 나는 다시 추억에 빠져들었다.

* * *

강태섭.

불에 태워 죽여도 아깝지 않은 인간쓰레기를 만나기 전에도 내 인생은 높고 낮은 파도를 거쳐 왔다.

헌책방을 운영하며 소설을 쓰던 아버지.

그리고 간호사로 일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나는 외동아 들로 태어났다.

유년 시기는 순탄했으므로 크게 기억에 남는 사건이 없었다.

다만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철이 들 때쯤.

집안이 가파르게 기울기 시작했다.

가정 경제의 토대였던 헌책방이 뚝딱 팔려 나가고, 집은 졸지에 단칸방이 되었다.

아버지는 펜대를 꺾고 소설가에서 막일 노동자로 전락했다.

간호사를 그만둔 어머니는 언젠가부터 웃지 않기 시작했다.

집안이 왜 이리 폭삭 주저앉게 되었는지 이유를 알게 된 것은 좀 더 나중의 일이었다.

집안 경제는 무너졌으나 또래의 아이가 그러하듯 나는 쑥쑥 자랐다.

교우 관계는 원만했고, 공부는 곧잘 했다.

[소심하고 내성적이나 정이 많고 학업 성취가 탁월함]

학년 말에 받는 생활통지표에는 늘 비슷한 내용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사춘기가 찾아오면서 마냥 평탄할 줄만 알았던 내 인생에도 거친 파도가 덮쳐오기 시작했다.

때는 바야흐로 고등학교 2학년 무렵.

나는 흔히 말하는 일진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밤늦게 돌아다니고 담배를 입에 물고 종종 술도 마셨다.

잠깐 악마가 씌웠는지는 몰라도 나를 가난하게 키운 부모님을 원망하기도 했다.

특히 학교 폭력 사건으로 담임선생님께 불려 간 부모님이 눈물을 뚝뚝 흘리던 순간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행실이 불량해지면 자연히 성적도 곤두박질쳤다.

다만 하늘의 도움이 있었는지 나는 금방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고3 시절을 불태워 가까스로 의대에 입학하는 데 성공했다.

누구보다 부모님이 기뻐했고, 그런 부모님을 보며 나는 뿌듯함을 느꼈다.

이제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가는구나, 하고 안심했다.

하지만 다 착각이었다.

예과 2년을 마치고 본과에 올라가는 시기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병명은 불안정성 협심증이었다.

CABG(관상동맥 우회술)을 받던 아버지가 수술대 위에서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CABG로 인한 OPCAB(무인공심폐 관상동맥 우회술)는 크게 발달하지 못했을 때였으니까.

또다시 찾아온 인생의 쓴맛.

발인하던 날,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결심했다.

반드시 훌륭한 흉부외과의가 되겠다고.

아버지처럼 수술대 위에서 허망하게 목숨을 잃는 환자들을 내 손으로 지켜 주겠다고.

나의 뜨거운 심장은 나를 흉부외과로 이끌었다.

의욕 넘치게 시작한 흉부외과의의 생활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타고난 새가슴이었던 나는 환자를 처치할 때마다 손을 벌벌 떨었다.

의대를 졸업할 때까지도 없었던 수전증이 별안간 생긴 것이다.

환자에게 너무 감정을 이입한 나머지, 부담감과 스트레스를 떨쳐 내지 못해 손을 떨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좀 더 나중의 일이었다.

어쨌거나 나는 폐급 취급을 받았지만, 그럭저럭 신원대학교 흉부외과 레지던트를 수료할 수 있었다.

어엿한 전문의가 되었고, 세간의 박한 평가를 어느 정도 불식시키는 데 성공했다.

나도 드디어 빛을 볼 수 있겠구나, 하고 기대를 품기 무섭게 두 번째 악몽이 나를 덮쳐왔다.

강태섭.

양의 탈을 쓴 늑대, 인간의 피를 남김없이 빨아먹는 모기가 흉부외과 과장으로 들어온 것이다.

내가 호구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본 걸까.

취임 한 달 차에 강태섭은 나를 따로 불러내 이렇게 말했다.

[다른 사람들이 이 선생을 마땅찮게 생각하는 거 알죠?]

강태섭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네. 압니다.]

[하지만 말이에요. 난 이 선생이 다른 선생들과는 다른 종류의 재능이 있다고 믿어요. 슬로 스타터라는 말을 들어 봤을 겁니다.]

[…….]

[내가 봤을 때, 이 선생이야말로 그 슬로 스타터예요. 대기만성형이란 말이에요.]

[…….]

[아직 긴장이 덜 풀려서 실수가 잦긴 하지만, 그래도 이 선생은 천생이 성실하고 꼼꼼한 사람이에요. 스스로의 실력을 의심하지 말고 자신 있게 의술을 펼쳐 봐요.]

강태섭의 달콤한 혀 놀림에 나는 그만 홀라당 넘어가 버렸다.

그때까지 나를 인정하거나 믿어 준 사람은 강태섭이 유일했기 때문이다.

부모님을 제외하고 말이다.

그 뒤로 나는 강태섭에게 내 영혼을 바쳤다.

밤을 새워 가며 강태섭 대신 논문을 작성했고, 강태섭이 바빠서 집도하지 못했던 환자들을 내 손으로 수술했고, 심지어 내가 발견한 신수술법을 강태섭에게 넘기기까지 했다.

그 신수술법이 학계에 인정을 받으면서 강태섭은 일약 대한민국 최고의 흉부외과의가 되었다.

그럼 강태섭에게 헌신한 나는 어떻게 되었냐고?

말 그대로 헌신짝처럼 버려졌다.

토사구팽이었다.

강태섭은 자신의 어두운 그림자인 나를 멀리하고 싶어 했고, 기억 속에 지우고 싶어 했다.

그의 모든 성과가 내가 흘린 피와 땀의 결과물이라는 걸 의료계에 들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강태섭이 학계의 화려한 조명을 받고 있을 무렵, 나는 영문도 모르고 부산으로 좌천되었다.

‘이 새끼, 날 속였구나!’

멍청하게도 부산으로 내려간 지 6개월이 지나서야 나는 내 처지를 깨달았다.

쉬는 날 강태섭을 찾아가 따졌지만, 강태섭은 나를 차갑게 비웃었다.

[이 교수는 너무 많은 걸 알고 있어. 이젠 내 곁에 두기 너무 버겁군.]

[개소리 하지 마. 당신이 나한테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어허! 자네 살길은 자네가 찾아야지. 왜 애꿎은 나한테 화풀이를 하는지 모르겠군. 헛소리할 거면 썩 꺼져!]

냉대와 함께 쫓겨난 나는 바득바득 이를 갈았다.

강태섭의 허물을 폭로할 자료들을 미친 듯이 수집하기 시작했다.

-하… 미친…….

작업 도중, 바람 빠진 소리가 절로 입에서 나왔다.

내 성과와 강태섭의 비리를 밝혀낼 그 어떤 자료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강태섭은 내가 배신할 거라고 이미 예상했던 걸까.

내 연구 자료는 이미 강태섭에게로 몽땅 넘어가 있었다.

신수술법을 개발한 내 손이 오히려 빈손이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의학계가 과연 누구의 손을 들어 줄지는 안 봐도 비디오였다.

나는 다시 한번 깊은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구원 받을 곳은 그 어디에도 없어 보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강태섭에게 간이고 쓸개고 다 갖다 바친 스스로를 자책하는 것뿐이었다.

병든 닭처럼 시름시름 앓던 어느 날이었다.

넋이 나간 얼굴로 운전을 하던 나는 중앙선을 침범한 트럭에 치여 세상을 떠났다.

미치도록 허망하고.

미치도록 원망스럽고.

미치도록 바보 같은 삶이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나도 마냥 잘한 건 아니었다.

성격이 온순해서 남에게 싫은 소리 한번 못 하고.

우직하다기보다는 멍청할 정도로 타인을 잘 믿으면서.

정작 내 자신을 믿는 데는 구두쇠처럼 인색했다.

무엇보다 난 흉부외과에 소질이 없었던 게 아니었다.

인턴 초반에 저지른 실수.

그로 인한 폐급이라는 주변의 평가 때문에 내 소질을 너무 늦게 발견했을 뿐이다.

정말 소질이 없었다면 나는 흉부외과에서 끝내 살아남지도, 신수술법을 개발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때!

끼이이익.

문소리가 들리고, 발소리가 뒤따랐다.

과거를 되감던 의식이 순식간에 현재로 돌아왔다.

드디어 천사가 나타나서 내 상황을 알려 줄 모양이다.

“우리 믿음이, 착해라. 쉬야도 안 했네?”

“누굴 닮아서 이렇게 얌전한지 모르겠네.”

“누구긴 누구야. 당신을 꼭 빼닮아서 미남인데.”

밝게 재잘대는 부부의 목소리.

요람 위로 보이는 얼굴이 낯익었다.

‘이… 이럴 리가 없는데?’

나는 얼굴을 찌푸리며, 애정 어린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는 천사들의 정체를 밝히려고 노력했다.

맙소사! 이게 꿈이야? 생시야?

천사의 정체는 바로 내 부모님이었다.

빛바랜 사진첩에서 봤던 젊은 시절 부모님의 얼굴.

순간, 내 두 눈을 의심했다.

이것은 내 두뇌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어 버린 뜻밖의 상황이었다.

“그럼 우리 믿음이 좀 안아 볼까?”

아버지가 두 팔로 나를 끌어안았다. 요람에서 벗어난 나는 그제야 천국인 줄 알았던 장소의 실체를 깨달았다.

이곳은 부모님의 신혼집이었다.

구식 브라운관 TV에 휘황찬란한 자개장.

거기에 구닥다리 성냥갑.

방을 살피던 나는 마치 확인 사살을 하듯 달력까지 살펴보았다.

1980년 9월 10일에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천국에서 새 삶을 얻은 게 아니라 한 살 무렵의 나로 환생한 것이었다.

순간 머리가 어질하고 가슴이 먹먹하며 손발이 떨렸다.

심장에 자동차 백미러가 박힌 환자가 응급실에 와도 침착했던 나였건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도무지 평정심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너무 놀란 나머지 나는 이렇게 외치고 말았다.

“응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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