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권. 팔불출 (223/225)
  • ┃팔불출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최현아와 백소희는 쑥쑥 자랐다.

    당연히 새로운 경험을 하고 새로운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다.

    하지만 새로운 경험과 친구라는 것이 꼭 좋은 경우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 아빠는 대기업 다녀!”

    “우리 집 차는 외제 차다!”

    “차보다는 집이지. 우리 집은 10억이 넘는다.”

    “야! 넌 임대 아파트 살지?”

    “거기 사는 애들은 다 거지라던데 맞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어린 나이부터 정치질을 하며 패를 가르거나 부모의 직업이나 재력을 자랑을 하는 놈들이 있었다.

    ‘황당하네.’

    최현아와 백소희를 만나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듣던 현성은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런 건 인터넷에서 나오는 망상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한데 그게 아니었다.

    엄연한 현실이었다.

    빠른 경우에는 유치원생 때 그런 말을 아이가 있기도 하단다.

    ‘다 부모가 애들 교육을 잘못시킨 거지.’

    오죽 집에서 대기업 타령, 외제차 타령, 고급 아파트 타령을 했겠는가?

    하루 종일 그런 소리를 하니 애들도 부모에게 보고 배운 것이리라.

    ‘그런 면에서 보면 현아랑 소희가 참 잘 자랐지.’

    최현아와 백소희는 그 또래 아이답게 순수하고 사랑스러웠다.

    현성은 어린 나이부터 정치질을 하거나 부모 자랑을 하는 아이들보다 최현아와 백소희처럼 그 나이에 맞게 순수한 아이들이 더 많았으면 했다.

    “오빠!”

    학교에서 돌아온 최현아가 도도도 달려와 현성의 품에 안겼다.

    “현아야, 학교 잘 다녀왔어?”

    현성이 최현아를 꼭 안아 주며 물었다.

    “응! 그런데 오빠, 임대 아파트가 좋은 거야, 아니면 나쁜 거야?”

    최현아의 말에 현성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이걸 뭐라고 설명해 줘야 하나?’

    “오빠도 몰라?”

    최현아의 물음에 현성이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임대 아파트라는 건 말이지…….”

    현성이 최대한 어린아이의 시선에 맞춰 임대 아파트의 정의에 대해서 설명을 해 줬다.

    참 어려웠다.

    자칫 잘못 설명했다가는 임대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에 대한 편견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니 최대한 쉽게 그리고 정확하게 설명해 줘야 했다.

    “이상하다. 내 친구 우진이는 임대 아파트 사는데 부자래. 차도 외제 차 타고 다닌다는데? 근데 희정이를 보면 오빠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최현아의 말을 들은 현성의 머릿속에 임대 아파트에 사는 기생충들의 존재가 떠올랐다.

    정말로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돌아가야 할 혜택을 가로채는 자들.

    수천에서 1억을 호가하는 외제 차를 타고 명품 쇼핑을 하러 해외여행을 다닐 정도로 여유로우면서도 임대 아파트에 사는 자들.

    그런 자들은 대부분 차명으로 뒷주머니를 차고 있었다.

    ‘내가 플레이어가 되기 전에도 그런 기사를 봤던 거 같은데. 아직도 개선이 안 되었나 보네.’

    아무래도 청와대와 야당 대표에게 전화를 한 번 더 해야 할 것 같았다.

    최현아와 놀아 준 현성이 전화 몇 통을 더 돌렸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대대적인 임대 아파트 전수조사가 시작되었다.

    진실의 계약 스킬을 보유한 검찰과 경찰 소속 플레이어들이 대거 동원되자 순식간에 정리가 되었다.

    ‘진실의 계약 스킬북을 좀 더 구입해야겠어.’

    플레이어들은 고레벨만 있는 게 아니다.

    중, 저레벨 플레이어들도 많다.

    또 그중에는 몬스터와의 전투를 두려워하는 자들도 많다.

    그런 이들은 몸을 쓰는 일을 하기도 하고 쓸 만한 스킬이 있는 경우 국가 별정직 공무원으로 임무를 수행하기도 한다.

    쉽게 말해 현성이 진실의 계약 스킬북만 구해 주면 활약할 수 있는 저레벨 플레이어들이 널려 있다는 소리였다.

    ‘현아랑 소희가 살아갈 나라야.’

    대한민국이 좀 더 상식이 통하고 깨끗한 나라가 되었으면 했다.

    물론 대한민국은 좋은 나라다.

    타국에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민 오고 싶어하는 나라 1위가 바로 대한민국이었다.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날 확률 제로.

    세계 경제 순위 1위.

    세계 치안 순위 1위.

    세계 범인 검거율 1위.

    총기 사고가 날 걱정도 없고 국민 소득도 높다.

    그러나 현성은 여기서 만족할 수가 없었다.

    한국을 좀 더 살기 좋은 국가로 만들고 싶었다.

    자신이 아닌 여동생 최현아와 조카 백소희를 위해서.

    * * *

    “도대체 최현성 플레이어가 왜 이렇게 나를 들들 볶는 겁니까?”

    대통령이 울상이 되어 비서실장에게 물었다.

    학교 폭력과 임대 아파트를 시작으로 온갖 사소한 일로도 전화를 해서 대통령을 달달 볶았다.

    그 덕분에 현재 정부 관료들은 쉴 시간도 없이 일에 전념하고 있었다.

    검찰과 경찰을 포함한 일반 공무원들도 정신없이 바빴다.

    일 하나가 끝나면 곧바로 다른 일이 터졌기 때문이다.

    과거 사건 하나 터져서 국민들이 들고일어났을 때처럼 두루뭉술하게 넘길 수도 없었다.

    현성은 냄비근성이 없었다.

    또 연예계에도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렇기에 괜한 스캔들을 터트려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릴 수도 없다.

    무조건 시작을 했으면 제대로 끝을 봐야 했다.

    나중에 딴소리를 한다?

    그건 정계에서 은퇴해야 한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저기 그게, 최현성 플레이어의 여동생과 조카가 초등학교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런데요?”

    “제가 추측하기로는…….”

    비서실장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결론은 하나, 현성의 여동생이나 조카가 하는 한마디가 이 사달을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초등학생들 생각에 대한민국이 좌지우지되고 있는 꼴이군요.”

    “저 대통령님.”

    대통령의 말에 비서실장이 입가에 검지손가락을 가지고 갔다.

    입조심하라는 뜻이었다.

    “휴! 임기 내내 죽어라 일하는 수밖에 없겠군요.”

    대통령의 말에 비서실장이 안쓰러운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최현성 플레이어가 세상일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면?

    큰 사고만 치지 않으면 별다른 문제 없이 임기를 마칠 수 있었다.

    그러나 최현성 플레이어가 세상일에 관심을 가졌다.

    해결해야 할 일이 사방에 산적해 있으니…….

    임기 내내 죽어라 일을 해야 했다.

    거기다 최현성 플레이어가 지시하는 개선 사항들은 정치인들의 목을 조르는 경우가 많았다.

    느슨한 법망 덕분에 혜택을 보는 이들은 대부분 정치인이나 재력가 들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야당이 최현성 플레이어가 지시한 사항에 대해서는 감히 여당의 발목을 잡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최대한 열심히 하고 그걸 현 정권의 업적으로 만들어 봅시다.”

    어차피 최현성 플레이어의 지시를 거스를 수는 없다.

    거기다 불행 중 다행으로 최현성 플레이어의 지시는 대다수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일이었다.

    어차피 거스를 수 없다면?

    최대한 이용하는 것밖에는 해결책이 없었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과 공무원들이 쉼 없이 일했다.

    그리고 그만큼 대한민국은 더 살기 좋은 나라로 변해 갔다.

    본래 국가의 녹을 먹는 정치인들과 공무원들이 바빠져야 일반인들이 편하게 사는 법이다.

    * * *

    현성 일가에 경사가 하나 생겼다.

    바로 백소희의 동생이 생긴 것이다.

    “삼촌, 엄마 배 속에 정말 내 동생이 있는 거야?”

    백소희가 호기심이 가득 찬 얼굴로 현성에게 물었다.

    “그럼 있지.”

    “동생은 남자애야, 여자애야?”

    “그건 아직 모르겠는데. 소희는 남동생이 좋아, 여동생이 좋아?”

    “난 다 좋아!”

    백소희가 잔뜩 신이 났다.

    덕분에 난감해진 것은 현성의 부모님이었다.

    “엄마! 아빠! 나도 동생 갖고 싶어!”

    최현아가 자신도 동생을 가지고 싶다고 부모님께 떼를 썼다.

    “현아야, 그게.”

    어머니가 난감한 표정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

    사실 낳으려면?

    지금이라도 얼마든지 낳을 수 있다.

    그러나 현성의 부모님은 더 이상 2세 계획이 없었다.

    애초에 최현아 자체도 계획해서 낳았다기보다는 예정에 없던 임신으로 낳은 경우였다.

    거기다 딸인 최현아와 손녀인 백소희의 나이가 같은 것도 상당히 민망했다.

    특히 학부모 모임 같은 곳에 갔을 때 말이다.

    그런데 이 나이에 또 늦둥이를 낳는다?

    그건 정말 사양하고 싶었다.

    족보도 꼬인다.

    백소희에게는 자신보다 한참 어린 이모나 삼촌이 생기는 꼴이었으니까 말이다.

    “현아는 언니랑 오빠가 있잖아. 그걸로 참자.”

    “그래, 현아 착하지.”

    부모님은 어떻게든 현아를 달래려고 했다.

    하지만 아직 열 살에 불과한 어린아이인 최현아로서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싫어! 나도 동생 갖고 싶단 말이야! 나도 동생 만들어 줘!”

    최현아가 난생처음으로 일주일 넘게 떼를 썼다.

    하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였다.

    시간이 흘러 누나 최현지의 출산 예정일이 되었다.

    그날 누나 최현지는 아무런 사고도 없이 건강한 남자아이를 낳았다.

    “하하하! 우리 손주 참 잘생겼구나!”

    “그러게요. 너무 잘생겼어요.”

    부모님은 새로운 손주가 생겼다는 사실에 기뻐하셨다.

    “축하해, 누나. 매형, 축하드려요.”

    현성도 축하 인사를 건넸다.

    설마 누나가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아이를 낳을 줄은 몰랐다.

    “고마워.”

    “고맙습니다.”

    두 사람의 입가에는 환한 미소가 맺혀 있었다.

    ‘행복해 보이네.’

    현성은 누나 부부의 모습을 보며 묘한 감정을 느꼈다.

    그러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입을 열었다.

    “누나, 혹시 셋째 생각도 있어?”

    현성의 물음에 누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은 없어.”

    “그럼 나중에는 생각이 바뀔 수도 있다는 말이야?”

    “그건 나도 모르지. 일단 당장은 없어. 애초에 소현이도 계획해서 가진 건 아니니까.”

    소현은 누나 부부의 둘째 이름이었다.

    “그럼 계획은 없었다는 거네?”

    “그렇지. 뭐, 억지로 피임하고 그런 건 아니니까, 셋째가 생길 수도 있겠지.”

    현성의 누나 최현지는 둘째를 낳기 전에도 한 남자의 아내이자 한 아이의 엄마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초거대 공룡 기업인 아라의 회장이기도 했다.

    그런 만큼 잠시 쉴지언정 손에서 일을 놓지는 않았다.

    백소희를 낳은 후에도 출산 휴가 후 회사로 복귀에 업무를 수행했다.

    남편인 백우신 역시 이모탈 길드 소속 파티장으로 활발하게 던전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었다.

    두 사람 다 일이 많은 상황에서 육아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두 사람의 바쁜 일정을 생각해 보면 사실 둘째가 생긴 것도 놀라운 일이었다.

    ‘아니, 소희가 초등학교에 가서 두 사람이 같이 있을 시간이 늘어나서 소현이가 생긴 건가?’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갓난아기였던 백소현은 무럭무럭 자랐다.

    최현아와 백소희는 다행스럽게도 동생과 조카를 잘 챙겼다.

    나이 차이가 열 살이나 나다 보니 자연스럽게 챙기는 것 같았다.

    또 둘 다 여자아이다 보니 남자아이들보다 동생을 더 잘 챙기는 편이었다.

    백소현이 자라는 만큼 최현아와 백소희도 쑥쑥 자랐다.

    아이들이 성장해 가며 서로가 서로를 챙겨 주는 모습을 보자 현성의 마음이 살짝 흔들렸다.

    여동생과 조카들도 이렇게 이쁜데 자신이 직접 낳은 자식은 얼마나 이쁠 것인가?

    또 저 아이들 틈에 자신의 아이가 함께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너무 고민이 많은가?’

    현성의 부모님과 누나 부부 역시 영원불멸의 삶을 약속받았다.

    한데 그에 대한 걱정이 전혀 없어 보였다.

    물론 현성과 달리 선택권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나도 선택권 자체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

    휘하의 신하들을 모두 풀어 준다면?

    자연스럽게 경험치와 포인트가 들어올 일도 없다.

    그 상태에서 포인트 수급을 하지 않으면?

    현성 역시 자연스럽게 늙어 죽을 수 있었다.

    ‘그걸 자살이라고 봐야 할까?’

    하지만 그걸 자살로 본다면?

    현성의 부모님과 누나 부부가 먼 훗날 죽음을 선택하는 것 역시 자살이라고 해야 할지도 몰랐다.

    ‘모르겠다.’

    괜히 머릿속만 더 복잡해졌다.

    ‘루시아랑 이야기해 보자.’

    현성은 이 일에 대해 루시아와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눠 보기로 결심했다.

    “루시아, 지금 시간 있어요?”

    -네, 당장 불러도 괜찮아요.

    루시아의 대답에 현성은 그녀를 소환했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굳이 그렇게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루시아의 의견은 간단했다.

    “그리고 그렇게 고민된다면 다른 1레벨 플레이어들의 삶을 관찰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그게 도움이 될까요?”

    1레벨 플레이어들 중에는 크로우처럼 자식을 자신의 도구처럼 여기는 자들이 많았다.

    “다 그렇지는 않겠죠. 그런 이들을 찾아보면 되지 않을까요?”

    루시아의 말에 현성이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조언을 얻기 위한 여행을 시작했다.

    -전 행복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는 게 편합니다.

    -제 아이는 떠나갔지만, 그 아이는 제게 축복 같은 아이였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의 후손들을 돌보는 재미도 꽤 쏠쏠합니다.

    -전 후회스럽습니다. 어쩌다 한 번씩 먼저 세상을 떠난 아이들이 떠오르더군요.

    -전 후회는 없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걸 다해 줬고 그 아이들도 자신들의 천수를 누리고 갔으니까요.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다.

    아쉬워하는 이도 있었고 후회하는 이도 있었으며 담담한 이도 있었다.

    또 아예 아이 없이 살아가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결론은 하나.

    본인의 선택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본인이 선택한 일은 본인이 책임을 져야 했다.

    “전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엄마로서 최선의 노력을 할 거예요. 하지만 그게 전부예요. 그 후의 일은 아이의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루시아의 말을 들은 현성이 생각에 잠겼다.

    결국 루시아의 말은 아이가 성장해 어떤 선택을 하든 지켜봐 주자는 것이었다.

    ‘틀린 말은 아니야.’

    어떤 직업을 가질지 어떤 삶을 살지.

    그건 본인들의 선택이었다.

    영원불멸의 삶 역시 마찬가지였다.

    만약 여동생 최현아나 조카 백소희와 백소현이 영원불멸의 삶을 거부한다면?

    다른 이들처럼 평범하게 살다가 세상을 떠나기를 원한다면?

    슬프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건 그 아이들의 선택이었다.

    현성이 원한다고 해서 강제할 수 없고 강제해서도 안 되는 아이들의 선택 말이다.

    “제대로 각오가 서고 아이들이 그런 선택을 한다고 해도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때 결정하세요.”

    루시아의 조언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다른 1레벨 플레이어들에 비해 현성은 상당히 축복받은 상황에 놓여 있었다.

    원한다면.

    자신이 가진 영생을 다른 이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으니까 말이다.

    현성이 장고에 들어갔다.

    그리고 결정을 내렸다.

    ‘내가 너무 생각이 많았어.’

    걱정도 많았다.

    아버지의 말씀처럼 다가오지도 않은 일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일단 피임은 그만두죠.”

    현성의 말에 루시아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굳이 아이를 가지려고 노력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피임할 생각도 없었다.

    그저 자연스럽게 기다려 볼 생각이었다.

    누나 최현지처럼 말이다.

    * * *

    5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현성과 루시아 사이에 아이는 생기지 않았다.

    사실 아이를 갖는다는 것 자체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부부들 중에는 아이를 갖기 위해 10년을 노력해도 갖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거기다 생각해 보니 현성과 루시아는 같은 인간이기는 하지만 서로 다른 차원의 인간이다.

    어쩌면 다른 차원의 인간들끼리는 아이를 갖지 못하는 게 당연한 일일 수도 있었다.

    현성의 입장에서 아내인 루시아는 외계인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건 루시아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현성은 마음을 편하게 먹었다.

    괜히 그간의 고민이 바보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저 임신했어요.”

    루시아가 식사 도중 덤덤히 말했다.

    “네?”

    현성은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아예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놓고 있었다.

    한데 루시아가 임신을 했다고 한다.

    “그게 정말이에요?”

    “네, 오늘 산부인과도 다녀왔어요. 보실래요?”

    루시아가 초음파 사진을 내밀었다.

    “네.”

    루시아가 초음파 사진을 내밀었다.

    솔직히 봐도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만져 봐도 될까요?”

    현성의 물음에 루시아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현성이 조심스럽게 루시아의 아랫배를 쓰다듬었다.

    귀를 가져다 대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사실 당연했다.

    아직 아기의 심장도 생기지 않았을 임신 초기였으니까 말이다.

    “식사나 마저 하세요.”

    루시아의 말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이고 밥을 먹었다.

    밥을 다 먹자 루시아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릇을 치우려고 했다.

    “앉아 있어요. 지금이 가장 위험할 때예요.”

    현성이 그 말과 함께 식기를 정리하고 설거지까지 했다.

    그러다 순간 의문이 들어서 물었다.

    “식사 준비도 직접 한 거죠?”

    “네.”

    “그러지 마세요. 골렘들도 있는데 왜 그랬어요.”

    현성의 집에는 가사를 도와주는 창조 등급 골렘들이 있었다.

    애초에 루시아가 직접 집안일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제가 하고 싶어서 그런 거예요.”

    “사람이 만든 걸 먹고 싶어서 그래요? 그럼 내가 요리를 할까요? 아니면 요리사를 고용할까요?”

    “그럴 필요까지는 없어요.”

    루시아의 답변을 듣고도 현성은 안절부절못했다.

    “임산부는 이런 거 하면 안 된다고 하던데.”

    현성이 말이 많아졌다.

    “뭐, 필요한 거 있어요? 움직이지 말고 나한테 말해요.”

    루시아를 꼼짝도 못 하게 했다.

    그런 팔불출 같은 현성의 행동에 루시아가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조금 섭섭했다.

    임신을 했다고 말했는데 현성이 별다른 반응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내심 결심은 했다고 했지만 아이를 싫어하는 건가 하는 걱정도 했었다.

    한데 그게 아니었다.

    현성은 기뻐하고 있었다.

    그리고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5년 만에 가진 아이가 잘못될까 봐 말이다.

    “엄마! 아빠! 나 아빠가 돼요!”

    현성이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어 자랑을 했다.

    난리가 났다.

    -당장 집으로 가마.

    부모님이 현성의 집으로 한달음에 달려왔다.

    “축하한다.”

    “정말 잘됐구나.”

    부모님이 기뻐하며 축하 인사를 해 주었다.

    * * *

    이른 아침 현성의 가족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오늘이 바로 최현아와 백소희의 중학교 졸업식이기 때문이었다.

    ‘시간 참 빠르네.’

    갓난아기였던 게 엊그제 같고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졸업한 게 몇 년 전인 것 같은데 벌써 중학교 졸업식이라니?

    ‘이제 고등학생인 건가?’

    여동생 최현아와 조카 백소희가 언제 이렇게 컸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다 어어 하는 순간에 대학생 되고 사회인이 되는 건가? 우리 튼튼이도 이렇게 빨리 크려나?’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요.”

    배가 잔뜩 부풀어 오른 루시아의 말에 현성이 찰싹 달라붙어서 부축을 했다.

    “그렇게까지는 안 해도 괜찮아요.”

    루시아는 현성을 제외하면 전 차원에서 가장 강한 플레이어다.

    아무리 임신을 했다지만 루시아의 전투력이라면 눈앞에서 핵폭탄이 터져도 자신의 몸과 배 속의 아이를 안전하게 지킬 능력이 있었다.

    “이래야 내가 안심이 돼서요.”

    하지만 현성에게는 아니었다.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어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루시아를 지극정성으로 챙겼다.

    그것도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말이다.

    “쯧쯧쯧, 저놈이 남자 망신 다 시킨다니까.”

    집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버지가 혀를 끌끌 찼다.

    “당신은 현성이 반만이라도 좀 닮아 봐요.”

    그러다 괜히 어머니한테 한 소리 들었다.

    “다들 준비 끝났지?”

    “네!”

    아버지의 외침에 가족들이 힘차게 대답했다.

    “그럼 출발하자.”

    아버지의 말에 따라 차를 타고 중학교로 향했다.

    졸업식 장소는 북적북적했다.

    그리고 현성 가족 또래로 보이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 뭔가 어색하기는 했다.

    사실 현성의 가족들은 중학교를 졸업하는 아이들의 학부모와 조부모 같지가 않았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가장 나이가 들어 보이기는 하지만, 그래 봤자 30대다.

    현성 부부와 누나 부부는 아무리 많게 봐도 20대 초반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현성의 가족들은 주변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차분하게 기다렸다.

    졸업식은 금방 끝났다.

    하지만 진짜는 이제부터였다.

    운동장은 졸업식에 참석한 학생과 그 가족들로 가득 차 있었다.

    모두 사진을 찍느라 바빴다.

    현성은 신경을 날카롭게 곤두세우고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했다.

    루시아는 그런 현성의 모습에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솔직히 말해서 기분은 좋았다.

    “우리도 사진 찍자.”

    현성 가족도 사진을 찍기 위해 움직였다.

    가장 먼저 단체 사진을 찍었다.

    그 후에는 개별 사진이었다.

    “현아야! 아빠랑 둘이서 사진 찍자!”

    아버지의 말에 최현아가 고개를 획 하고 돌렸다.

    “오빠 나랑 둘이서 사진 찍자.”

    그러더니 오빠인 현성에게 착 달라붙었다.

    “현아랑 둘이서 찍고 오세요.”

    루시아의 말에 현성이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현아를 따라갔다.

    그러면서도 곱게 가지는 않았다.

    루시아 주변을 온갖 방어 스킬로 한 번 더 도배한 후 몸을 움직였다.

    “하아…….”

    한편 현성의 아버지 최형규는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막내딸이 벌써부터 자신을 외면할 줄은 몰랐다.

    최형규가 질투 어린 눈빛으로 현성을 노려봤다.

    그런 최형규의 시선을 느낀 현성이 승자의 미소를 지으며 최현아와 사진을 찍었다.

    일반적으로 남매 사이는 원수가 되거나 그게 아니더라도 서로가 소 닭 보듯 하기 마련이다.

    현성과 최현지의 경우가 그랬다.

    그러나 현성과 최현아는 달랐다.

    일단 나이 차이가 워낙 많이 나다 보니 서로 싸울 일이 없었다.

    오히려 어렸을 때부터 잘 놀아 주고 챙겨 주다 보니 남매 사이가 무척이나 좋았다.

    “소희야! 할아버지랑 둘이서 사진 찍자!”

    막내딸의 외면을 받은 아버지가 타깃을 손녀인 백소희로 바꿨다.

    그러나…….

    “삼촌, 저랑 사진 찍어요.”

    백소희 역시도 현성에게 가 버렸다.

    “왜 다 저 녀석만 좋아하는 거야.”

    아버지가 입술을 삐죽이며 투덜거렸다.

    “그걸 몰라서 물어요?”

    어머니가 한심하다는 듯 아버지에게 말했다.

    “당연히 모르지.”

    “현성이가 당신보다 훨씬 잘생겼잖아요.”

    “아니, 그게 무슨 상관이야?”

    아버지의 말에 어머니가 최현아와 백소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두 사람은 순식간에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우리 오빠야!”

    “우리 삼촌이야!”

    최현아와 백소희는 친구들에게 현성을 자랑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최현아와 백소희의 친구들은 꺅꺅거리며 현성에게 달라붙어 같이 사진을 찍자고 난리를 피웠다.

    “저걸 보고도 모르겠어요? 멋지고 잘생긴 오빠랑 삼촌은 자랑거리가 되지만, 평범하게 생긴 아빠랑 할아버지는 그렇게 큰 자랑거리가 아니에요.”

    “나도 나름 잘생겼는데.”

    “휴우!”

    아버지의 중얼거림에 어머니가 한숨을 푹 하고 쉬었다.

    “어디 가서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냉정하게 말해서 당신이 잘생긴 건 아니죠.”

    어머니의 팩트 폭력에 아버지가 고개를 푹 숙이며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아빠! 저랑 둘이서 사진 찍어요.”

    “할아버지! 이모랑 찍은 다음엔 저랑 둘이서 사진 찍어요.”

    하지만 최현아와 백소희가 달라붙자 언제 그랬냐는 듯 활짝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 * *

    졸업식 사진 촬영이 끝나자 현성의 가족들은 다 함께 식사를 하러 갔다.

    “그동안 계속 붙어 다녔는데 이제 떨어지겠네.”

    아버지의 말에 최현아와 백소희가 울상을 지었다.

    유치원부터 시작해 초등학교와 중학교까지는 함께 다녔다.

    그런데 고등학교는 각각 다른 곳으로 진학하게 되었다.

    일찍 진로를 결정한 백소희 때문이었다.

    최현아는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하지만 백소희는 특성화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자신의 꿈인 요리사를 위해서였다.

    “소희야, 요리는 대학교 가서 배워도 되지 않아? 다시 한번 생각해 봐.”

    최현아의 말에 백소희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고등학교 3년 동안 공부만 하기는 싫어. 내 손으로 직접 요리를 만들어 보고 싶어.”

    백소희의 단호한 대답에도 불구하고 최현아는 몇 번이나 더 칭얼거렸다.

    어른들은 그러려니 했다.

    저 모습을 한두 번 보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현성의 집안은 아이 개개인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렇기에 백소희의 꿈을 응원해 주었다.

    사실 진로를 일찍 결정하지 못하는 이유는 혹시 그 길이 자신의 길이 아니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또 가족의 입장에서는 아이의 미래를 걱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성의 가족들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요리사가 백소희의 길이 아니라면?

    재능이 없다면?

    다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지원해 주면 그만이다.

    요리사가 좋고 재능도 있지만 취직이 힘들다면?

    설사 취직하더라도 박봉이라면?

    가게를 차려 주거나 월급 이상의 용돈을 주면 그만이다.

    돈과 권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다.

    그렇지만 거의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

    굳이 현성이 나설 필요도 없다.

    백소희의 부모인 백우신과 최현지가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재산을 보유한 대부호였으니까 말이다.

    첫 번째는 당연히 현성이었고 전 세계 부호 1위와 2위를 오빠와 언니로 둔 최현아 역시 평생 돈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참 밝게 자랐단 말이야.’

    왕따나 학교 폭력 문제가 심각하다 보니 현성도 걱정을 많이 했다.

    그래서 최현아와 백소희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 괜히 설레발을 쳐서 왕따와 학교 폭력 그리고 청소년 범죄에 대한 법률을 개정시키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아무 일도 없었다.

    사실 온갖 아티팩트로 중무장을 하고 창조 등급 골렘이 은신한 상태로 경호까지 하고 있는데 무슨 일이 있는 게 이상했다.

    현성은 그간 계속 한국 내부의 일에 신경을 썼다.

    그게 모두 최현아와 백소희가 살아갈 세상을 좀 더 아름다운 곳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었다.

    ‘앞으로도 계속 밝게만 자라라.’

    그렇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은 자신이 만들어 줄 것이다.

    그리고 최현아와 백소희가 간 길을 백소현과 루시아의 배 속에 있는 튼튼이가 따라가리라.

    ‘잘도 먹네.’

    현성이 미소를 지으며 최현아와 백소희 그리고 백소현이 복스럽게 먹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 * *

    최현아와 백소희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그리고 얼마 후.

    루시아의 출산일이 되었다.

    저벅저벅.

    현성이 초조한 표정으로 병원 로비를 왔다 갔다 왕복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아무 일도 없을 거야.”

    “그렇겠죠?”

    어머니 박미숙의 여사의 말에 현성이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 그러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현성은 만반의 준비를 끝낸 상태였다.

    그런 만큼 사실 사고가 일어날 확률은 제로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현성은 쉽게 불안감을 떨쳐 내지 못했다.

    여동생인 최현아가 태어났을 때와 조카인 백소희, 백소현이 탄생했을 때도 현성은 많이 긴장했다.

    그러나 그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나 루시아나 튼튼이가 잘못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응애! 응애!”

    그때 힘찬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간호사가 분만실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건강한 공주님입니다.”

    현성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루시아는 순산했다.

    진통도 오래 겪지 않았다.

    온갖 안 좋은 상상을 하며 초조해하던 현성의 걱정이 무색할 정도.

    현성이 만약을 대비해 준비해 놓은 엘릭서를 비롯한 아이템들은 사용할 일 자체가 없었다.

    “들어오세요.”

    간호사의 말에 현성이 분만실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루시아가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갓 태어난 아기를 안고 있었다.

    아기는 너무 작았다.

    또 쭈글쭈글했다.

    하지만 그런 모습임에도 현성의 눈에는 너무나 예뻐 보였다.

    “안아 보세요.”

    루시아의 말에 현성이 떨리는 손으로 아기를 안아 보았다.

    ‘내 아이.’

    여동생 최현아와 조카 백소희, 백소현을 안았을 때와는 다른 느낌의 감동이 솟구쳤다.

    아기가 생기기도 전부터 온갖 걱정을 했다.

    아니, 아이가 생기는 것 자체가 두려웠다.

    한데 품에 아이를 안고 있으니 그런 걱정이 너무도 우습게 느껴졌다.

    ‘내가 생각이 너무 많았어.’

    아버지의 말씀이 맞았다.

    ‘행복하게 해 줄게.’

    루시아의 말처럼 아이의 미래는 부모가 결정하는 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가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부모는 아이가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

    “루시아, 고마워요.”

    루시아가 더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현성의 말에 루시아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기 이름은 정하셨어요?”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많은 후보가 나왔다.

    하지만 아직 확실하게 결정은 하지 못한 상태였다.

    “윤희, 최윤희로 하죠.”

    루시아가 강력하게 주장했던 이름.

    빛날 윤, 기쁠 희.

    아이의 삶이 항상 밝게 빛나기를.

    아이의 삶에 항상 기쁜 일만 가득하기를.

    그렇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지은 이름이었다.

    * * *

    ‘시간이 너무 빠르다.’

    현성은 최근 들어 그렇게 느꼈다.

    하루하루는 길었다.

    갓난아기인 딸 최윤희는 2시간마다 울며 보챘다.

    현성과 루시아는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딸 최윤희를 보살폈다.

    그러다 보니 하루하루가 정말 길게 느껴졌다.

    하지만 어어 하는 순간 시간이 훅훅 지나갔다.

    딸 최윤희의 체중이 빠르게 늘어났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하던 아기가 뒤집기를 하고 바닥을 기어 다녔다.

    그러다 어어 하는 순간 첫돌이 지나 버렸다.

    첫돌이 지난 후에는 이유식을 먹고 자기 발로 걸어 다녔다.

    그리고 더 성장한 후에는 기저귀를 떼고 혼자 화장실을 갔다.

    이제는 현성과 루시아가 떠먹여 주지 않아도 혼자서 숟가락과 포크로 밥을 먹는다.

    이제는 걷는 걸 넘어서 뛰어다니며 온갖 사고를 쳤다.

    현성은 하루하루 커 나가는 딸 최윤희의 모습을 보는 게 즐거우면서도 아쉬웠다.

    딸인 최윤희가 너무 빨리 자라는 것 같았다.

    ‘벌써 유치원에 갈 나이가 될 줄이야.’

    태어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유치원에 갈 나이가 되어 버렸다.

    “아빠!”

    최윤희가 밝게 웃으며 현성의 품에 안겼다.

    “그래, 우리 딸.”

    “나 정말 유치원 가는 거 맞지?”

    “응, 맞아.”

    “얼른 가고 싶어.”

    최윤희가 설렌다는 듯 말했다.

    부모의 품에서 떨어져 유치원에 가는 것을 싫어하는 아이들도 많다.

    조카인 백소현의 경우가 그랬다.

    그런데 딸인 최윤희는 그렇지 않았다.

    성격이 활달해서 그런지 새로운 공간에 가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걸 겁내지 않았다.

    오히려 좋아했다.

    “유치원 가는 게 그렇게 좋아?”

    현성이 섭섭함이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엄마와 아빠의 품을 떠나 유치원에 가는데 저렇게 좋아하다니?

    물론 울고불고하지 않고 웃으며 가는 게 좋은 건 맞다.

    그렇지만 그게 좋은 걸 알면서도 괜한 아쉬움이 들었다.

    벌써 부모의 품을 떠나는 것 같은 느낌?

    “응, 좋아! 그런데 엄마랑 아빠랑 같이 유치원 갈 수는 없어?”

    최윤희의 말에 현성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그러고 싶어?”

    “응, 그랬으면 좋겠어.”

    “그럴 수는 없어. 윤희 혼자 가야 하는 거야. 대신 친구들은 많을 거야.”

    “히히히, 나 친구들 많은 거 좋아!”

    밝게 웃는 최윤희의 모습을 바라보는 현성의 속내가 복잡했다.

    유치원 가는 걸 너무 좋아하면 아쉽다.

    유치원 가는 걸 걱정하는 것 같으면?

    현성도 덩달아 걱정이 된다.

    ‘잘 지낼 수 있을 거야.’

    유치원은 아이의 첫 사회생활이다.

    그런 만큼 걱정이 많이 될 수밖에 없었다.

    최윤희는 정말 예뻤다.

    현성이 아빠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봐도 정말 정말 예뻤다.

    한 가지 걱정되는 게 있다면 최윤희의 외모였다.

    엄마인 루시아의 피를 짙게 이어받은 최윤희는 찬란한 은발과 푸른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이목구비는 동서양의 장점이 잘 어우러져 있었다.

    그러나 최윤희가 서양인에 가까운 외모를 가지고 있었기에 현성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괜히 외모를 가지고 또래 아이들이 놀리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말이다.

    ‘괜찮을 거야.’

    현성이 애써 마음을 가라앉혔다.

    최윤희가 태어난 후.

    대통령을 포함한 각 부서의 장관들과 국회의원들은 정말 피똥을 쌌다.

    현성이 그들을 달달 볶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덕분에 대한민국은 더 살기 좋은 나라가 되었다.

    특히 유아와 어린아이 들을 보호하는 법령이 강화되었다.

    신생아 연쇄 사망 사건이나 가습기 살균제 사건 그리고 유치원에서 벌어지는 아동 학대와 여름철 어린이 차량 방치 사망 사건 등등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말이다.

    물론 경제적인 이해관계가 얽혀서, 또는 구조적으로 복잡해서 해결하기 힘든 문제들도 있었다.

    그런 쪽은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을 닦달해 해결했다.

    예산 부족은 더 이상 핑곗거리가 되지 못했다.

    현재 한국은 미국을 누르고 전 세계 경제 1위의 대국이었다.

    누나 최현지가 운영하는 아라가 국가에 납부하는 법인세만으로도 경제적, 구조적 문제의 대부분을 해결할 수 있었다.

    중간에 엉뚱하게 새어 나가는 세금만 없다면 말이다.

    진실의 계약 스킬북을 대거 풀었기에 세금 도둑을 잡는 것도 무척 손쉬웠다.

    전처럼 증거가 없다고 오리발을 내밀거나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날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은 다 속여도 자기 자신을 속일 수는 없었으니까 말이다.

    이런 현성의 노력 덕분에 대한민국의 청렴도가 빠르게 상승했다.

    범죄율도 떨어졌다.

    아, 물론 고생하는 이들도 있었다.

    정치인과 공무원 들이었다.

    그러나 고생하는 만큼 봉급이 올라갔으니 그들에게도 손해는 아니었다.

    ‘열심히 일한 사람에게 그만한 보상을 주는 건 당연한 거지.’

    한데 충분한 보수를 주었음에도 전처럼 관행이니 생계형이니 어쩌고 하는 짓거리를 한다면?

    징벌의 철퇴를 내리면 그만이었다.

    * * *

    ‘행복하다.’

    현성은 요즘 행복이라는 감정을 절정으로 느끼고 있었다.

    최윤희는 유치원 생활에 잘 적응했다.

    아니, 오히려 유치원의 인기인이 되었다.

    그 모습을 보며 현성은 자신이 괜한 걱정을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들 잘 지내는 것 같네.’

    최윤희만 잘 자란 게 아니었다.

    여동생 최현아와 첫째 조카 백소희는 대학생이 되었다.

    최현아는 음대에 진학했고, 백소희는 요리학과에 진학했다.

    둘 모두 자신이 좋아하고 하고 싶은 무언가를 찾은 것이다.

    설사 나중에 더 좋아하는 무언가가 생겨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럼 그 길로 갈 수 있도록 지원해 주면 그만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러고 보니 소현이는 중학교 생활에 잘 적응했으려나?’

    현성이 둘째 조카 백소현에 대해 떠올렸다.

    백소현은 얼마 전 중학교에 진학했다.

    최근 현성이 딸 최윤희의 유치원 입학을 걱정하다 보니 백소현에 대해서는 잘 신경을 써 주지 못했다.

    ‘오래간만에 소현이랑 같이 PC방이나 가야겠다.’

    가서 함께 게임을 하면서 은근슬쩍 중학교 생활이 어떤지 이야기해 보면 좋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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